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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고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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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를 고대극장은 프랑스 아를에 위치한 로마 시대 극장 유적이다. 기원전 40년경에 건축이 시작되어 기원전 12년경에 완성되었으며, 카베아(관객석), 무대, 장식된 벽면으로 구성되었다. 약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좌석과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특징이며, 연극 공연을 위해 사용되었다. 중세 시대 이후 훼손되었으나, 18세기 후반에 재발견되어 발굴 및 복원 작업을 거쳤다. 현재는 유적과 함께 아를 영화제 등 현대적인 행사에도 활용되고 있다.

2. 구조

아를 고대 극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관객석인 카베아(cavea),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 그리고 아름답게 장식된 벽면이다.

카베아는 직경 102미터의 계단식 좌석 (33단)으로,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좌석은 관객들은 사회 계급에 따라 나뉘어 있었다. 내부 계단 자리나 오케스트라 자리에는 귀족이나 기사 등이 포진했다.

당시의 무대는 폭 50 미터, 깊이 6 미터의 나무의 평판으로 되어 있으며, 무대 장치 등을 수납했다. 안쪽 벽은 3층으로 되어 있고, 장식이 되어 있으며, 코린트 양식으로 된 3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이 중 현존하는 것은 2개이다.

벽에는 악천후 시 무대를 보호하기 위한 텐트 형태의 지붕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벽감에는 현대에서는 아를의 비너스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여성상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이 여성상은 현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발견시 오른팔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의 비너스는 당시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2. 1. 카베아 (관객석)

카베아(cavea)는 지름 102미터의 반원형 계단식 좌석(33단)으로, 약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좌석은 아를 원형 경기장의 2분의 1 규모에 해당한다. 관객들은 사회 계급에 따라 좌석이 구분되었는데, 안쪽 계단석이나 오케스트라석에는 귀족이나 기사 등이 자리했다.

2. 2. 무대

당시 무대는 폭 50미터, 깊이 6미터의 나무 판으로 만들어졌으며, 무대 장치 등을 수납할 수 있었다. 안쪽 벽은 3층으로 되어 있었고, 코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그 중 2개만 남아있다. 또한 벽에는 악천후 시 무대를 보호하기 위한 텐트 형태의 지붕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3. 벽면 및 장식

안쪽 벽은 3층으로 되어 있으며 장식이 되어 있고, 코린트 양식의 기둥 3개가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2개만 남아있다. 벽에는 악천후 시 무대를 보호하기 위한 텐트 형태의 지붕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벽감에는 "아를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여성상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를의 비너스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발견 당시 오른팔이 유실된 상태였다.

3. 용도

아를 고대 극장은 주로 연극 공연을 위해 사용되었다. 고대 그리스식이나 고대 로마식 희극, 비극, 판토마임 등이 상류층을 포함한 관객들에게 제공되었다. 축제 때 신들에게 바치는 연극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여, 모두가 참여할 기회를 제공했다.

4. 역사

아를 고대 극장은 데쿠마누스 막시무스(도시의 동서를 관통하는 대로) 도중의 오튀르 언덕 위에 세워졌다. 건축은 기원전 40년경에 시작되어 기원전 12년경에 완성되었다. 장식의 호화로움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아를(현 아를)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경우와는 달리 이 극장은 디오니소스가 아닌 아폴론에게 헌정된 것으로 여겨졌다.

4. 1. 중세 시대 이후

5세기 초, 기독교 교회는 극장을 생 트로핌 교회(당시 생테티엔 대성당) 건조를 위한 채석장으로 사용하면서 훼손되기 시작했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사이에는 극장 터가 요새화되었고, "롤랑 탑" 등의 탑이 설치되었다.

극장 부지는 주택, 골목길 등으로 구획되었으며, 예수회 등의 수도회 건물과 콜레지오 등이 세워지면서 점차 원래 모습을 잃어갔다.

4. 2. 발굴 및 복원

1755년부터 1789년 사이에 극장 터가 재발견되었다. 1825년부터 당시 시장이었던 샤르트뢰즈 남작 덕분에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1840년에는 사적 보존 조사를 하던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목록에도 추가되었고, 1860년에 발굴이 완료되었다.

5. 현재

현재는 계단식 좌석 흔적만이 남아 있다. '오케스트라'에는 아폴론에게 바쳐진 제단의 벽감 흔적이 남아 있으며, 무대를 장식했던 기둥 두 개도 남아 있다. 이 유적은 아를 영화제 등 현대적인 행사에도 사용되어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Arles, Roman and Romanesque Monuments http://whc.unesco.or[...]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2021-10-10
[2] 웹사이트 Arles Roman Theater http://www.arles-gui[...] 2021-10-10
[3] 웹사이트 The Roman Theatre of Arles https://www.worldhis[...]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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