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리 사토루
1. 개요
아사리 사토루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1997년 FC 도쿄에 입단하여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2000년 J1 리그 승격 이후에도 팀의 수비 핵심으로 활약했다. 2004년 무릎 부상 이후 출전 기회가 줄었으나, 2009년 은퇴할 때까지 FC 도쿄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에는 FC 도쿄 홍보부, 강화부, 육성부 등을 거쳐 현재 아카데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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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미드필더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1974년 출생 -
강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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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출생 -
이즈미 겐타
이즈미 겐타는 1974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태어나 2003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된 후 민주당 정권에서 내각부 부대신을 역임하고, 2021년 입헌민주당 대표가 되어 중도 자유주의, 진보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
J2리그의 축구 선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J2리그의 축구 선수 -
고지마 노부유키
고지마 노부유키는 쇼난 벨마레,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은퇴한 축구 골키퍼 선수로, 쇼난 벨마레 시절 천황배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아사리는 메이지 대학 졸업 후, 1997년 일본 풋볼 리그의 도쿄 가스 (현 FC 도쿄)에 입단하여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97년부터 2009년 은퇴할 때까지의 선수 경력은 다음과 같다.
* 1997년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천황배 8강 벨마레 히라츠카전에서는 나카타 히데토시를 밀착 마크하여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다.
* 1998년 팀은 일본 풋볼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999년부터 J2 리그로 승격했다.
* 1999년에는 클럽이 2위를 차지하여 2000년 J1 리그로 승격했다.
* 2000년, J1 리그에 승격한 팀에서는 최적의 공수 밸런스를 찾기 위해 다양한 조합이 시도되었지만, 아사리는 수비의 핵심으로 고정되어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 2004년 8월에 오른쪽 무릎 반월상 연골 손상으로 수술을 받고 전력에서 이탈했다. 복귀 후에도 이마노 야스유키나 카지야마 요헤이 등의 주력 선수 정착으로 출전 기회가 줄었다.
* 2008년에는 조후쿠 히로시 감독의 신뢰를 받아 공식전 46경기에 모두 명단에 포함되었고 25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 2009년은 아킬레스건 주위염, 후방 십자 인대와 발목 통증, 요네모토 타쿠지의 부상 등으로 출전 기회가 급감하여 10월 26일에 은퇴를 발표했다.
2.1. 유소년 시절
사이타마시에서 1974년 6월 10일에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으며, 중학교 시절에는 축구부 활동과 더불어 사이타마 교원 축구 클럽 연습에도 참가했다. 당시 포지션은 공격수(FW)나 톱 아래 등 공격적인 역할이었다.
1990년, 무난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전국 선수권에 3년 연속 출전했다. 1학년과 3학년 때는 베스트 4, 2학년 때는 베스트 8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에노 료지(1년 선배), 우라타 나오키, 에하라 아츠시, 무로이 이치에이(동급생), 사이토 마사토(1년 후배), 카나자와 죠, 미야자와 카츠유키(2년 후배) 등과 함께 무난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사리는 이시카와 나오히로와 같은 빠른 윙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3년에는 메이지 대학에 진학하여 수비형 미드필더(볼란치)를 맡았다.
2.2. FC 도쿄 (도쿄 가스)
1997년 일본 풋볼 리그의 도쿄 가스 (후의 FC 도쿄)에 입단했다. 첫 시즌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로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클럽은 1997년 2위, 1998년 우승을 차지하며 1999년부터 새로운 리그인 J2 리그로 승격했다. 1999년에는 클럽이 2위를 차지하여 2000년 J1 리그로 승격했다. 오랫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2004년 8월에 오른쪽 무릎을 부상당했다. 부상 이후 곤노 야스유키와 카지야마 요헤이에 밀려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2008년에는 새로운 감독인 조후쿠 히로시의 지지를 받아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고, 2009 시즌 말에 은퇴했다.
재팬 풋볼 리그·FC 도쿄에서 J리그·FC 도쿄에 이르기까지 13년 동안 도쿄만을 위해 선수 생활을 한 축구 선수. 은퇴 후에도 같은 클럽의 직책을 맡았다. 클럽이 J리그에 진출하여 프로화가 진행되는 중에도 도쿄 가스에서 출향하는 사원 선수라는 입장에서 재적했으며, 은퇴 당시 사이토 마사토(오미야 아르디자)와 함께 "마지막 사원 J리거"로 화제가 되었다.
1999년, 클럽이 FC 도쿄로서 프로화되어 J리그 2부(J2)에 가맹한 후에도, 도쿄 가스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없었던 것도 있어서 "그라운드에 서면 같다"라고, 프로 계약을 맺지 않고 도쿄 가스에 적을 둔 채 회사원 선수로 플레이했다.
2.3. 플레이 스타일
현역 시절에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볼란치)를 맡았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마크하는 상대를 정확하게 제압하고, 어떤 유형의 선수와도 좋은 연계를 구축하는 밸런서 및 그림자 역할로서의 능력에 뛰어났다. 팀이 선수층 확충을 계속하여 매년 볼란치 보강이 이루어졌지만, 아사리의 견실하고 헌신적인 수비는 오랫동안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팀 동료이자 후배인 요네모토 타쿠지는 "경기 중에 2, 3수 앞을 내다보고 지시를 내린다. 생각하는 힘이 대단했다. 프로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며 축구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라며 존경했다.
2004년 8월에 오른쪽 무릎 반월상 연골 손상으로 전선에서 이탈했다. 복귀 후에도 이마노 야스유키나 카지야마 요헤이 등의 주력 선수 정착으로 좀처럼 레귤러로 복귀하지 못했지만, 항상 경기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고 전력으로 연습에 임하는 모습은 주변에 모범이 되었다.
2008년에 취임한 조후쿠 히로시 감독으로부터 큰 신뢰를 받아, 바이탈 에어리어를 케어하는 장인적인 활약을 보였다.
현역 시절, 목표로 하는 선수로는 클로드 마켈렐레와 마우로 실바를 꼽았다. 가장 대단하다고 느낀 상대 선수로는 드라간 스토이코비치를 꼽았으며, "깎으러 가고 싶어도,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실력의 차원이 다른 선수와는 달랐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가장 영향을 받은 선수로는 도이 요이치를 꼽아, "매일 몸 관리와 오프 시즌의 몸 만들기를 눈앞에서 보면서 이것이 프로라고 느꼈다. 그라운드에서도 항상 100%. 위대한 분이고 존경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4. 은퇴 이후
재팬 풋볼 리그·FC 도쿄에서 J리그·FC 도쿄에 이르기까지 13년 동안 도쿄만을 위해 선수 생활을 한 축구 선수이다. 은퇴 후에도 같은 클럽의 직책을 맡았다. 클럽이 J리그에 진출하여 프로화가 진행되는 중에도 도쿄 가스에서 출향하는 사원 선수라는 입장에서 재적했으며, 은퇴 당시 사이토 마사토(오미야 아르디자)와 함께 "마지막 사원 J리거"로 화제가 되었다.
2010년부터는 "은퇴 후에는 한 사회인으로서 성장한다"라는 이유로 축구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FC 도쿄 홍보부에 소속되었다. 또한, 등번호 7은 아사리의 희망에 따라 요네모토 타쿠지에게 계승되었다. 2011년부터는 동 클럽의 강화부로 이동하였다. 2018년부터 육성부에서 U-15의 총괄을 중심으로 선수 육성에 종사했으며, 2022년부터 아카데미 디렉터에 취임했다.
3. 클럽 통산 기록
* 1997년 4월 20일: JFL 첫 출장 - JFL 제1절 vs 후쿠시마 FC (고마자와)
* 1998년 8월 30일: JFL 첫 득점 - JFL 제20절 vs 오미야 아르디자 (오미야)
* 1999년 3월 14일: J2 첫 출장 - J2 제1절 vs 사간 도스 (니시가오카)
* 1999년 7월 4일: J2 첫 득점 - J2 제16절 vs 콘사돌레 삿포로 (삿포로 아쓰베쓰)
* 2000년 3월 11일: J1 첫 출장 - J1 제1절 vs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요코하마 국제)
* 2004년 5월 22일: J1 100경기 출장 - J1 1st 제11절 vs 가시마 앤틀러스 (가시마)
4. 개인 수상
아사리 사토루는 J리그컵에서 2004년과 2009년에 우승했다.
5. 기타
아사리 사토루는 현역 시절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상대를 정확하게 제압하고, 어떤 유형의 선수와도 좋은 연계를 구축하는 밸런서 역할을 잘 수행했다. 팀 동료였던 요네모토 타쿠지는 "경기 중에 2, 3수 앞을 내다보고 지시를 내린다. 생각하는 힘이 대단했다."라며 존경을 표했다.
재팬 풋볼 리그와 FC 도쿄에서 J리그 승격 이후에도 13년 동안 도쿄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에도 같은 클럽에서 일했다. 도쿄 가스에서 출향하는 사원 선수 신분으로 J리그에 참가했으며, 은퇴 당시에는 사이토 마사토(오미야 아르디자)와 함께 "마지막 사원 J리거"로 화제가 되었다.
5.1. 존경하는 선수
현역 시절, 아사리 사토루는 클로드 마켈렐레와 마우로 실바를 목표로 하는 선수로 꼽았다. 가장 대단하다고 느낀 상대 선수로는 드라간 스토이코비치를 꼽았으며, "깎으러 가고 싶어도,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실력의 차원이 다른 선수와는 달랐다"라고 극찬했다. 가장 영향을 받은 선수로는 도이 요이치를 꼽아, "매일 몸 관리와 오프 시즌의 몸 만들기를 눈 앞에서 보면서 이것이 프로라고 느꼈다. 그라운드에서도 항상 100%. 위대한 분이고 존경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