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드루리
1. 개요
아서 드루리는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잉글랜드 축구 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풋볼 리그 회장과 그림즈비 타운 FC 구단주를 지냈다. 1955년 국제 축구 연맹 회의에서 회장에 당선되었고, 1958년 FIFA 월드컵을 감독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2차 세계 대전에서는 노스 링컨셔의 수석 감시원으로 복무했다. 또한, 그림즈비에서 자치구 의원과 치안 판사 등 시민 역할을 맡았으며, 1953년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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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스포츠인 -
대니얼 벌리 울폴
대니얼 벌리 울폴은 20세기 초 잉글랜드 축구 협회 회장과 FIFA 회장을 역임하며 FIFA 규정 초안 작성, 축구 경기 규칙 통일화, 올림픽 축구 정식 종목 채택, FIFA 국제적 확장 등에 기여한 인물이다. -
잉글랜드의 스포츠인 -
스탠리 라우스
스탠리 라우스는 영국의 축구 심판이자 행정가로, FA컵 결승전 심판, 축구 규칙 개정 기여, 잉글랜드 축구 협회 총무 및 FIFA 회장 역임 등의 활동을 했으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옹호로 논란이 되었다. -
FIFA 회장 -
제프 블라터
스위스 출신 제프 블라터는 로잔 대학교 경제학 학위를 바탕으로 FIFA 기술 이사 및 사무총장을 거쳐 1998년부터 2015년까지 FIFA 회장을 역임하며 월드컵 확대와 아프리카, 아시아 축구 발전에 기여했으나, 재정 관리 부실, 부정부패 혐의, 월드컵 개최지 선정 논란으로 비판받고 2015년 FIFA 부패 스캔들로 사임 후 축구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아 FIFA 부패 문제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
FIFA 회장 -
주앙 아벨란제
주앙 아벨란제는 브라질 스포츠 행정가로서 올림픽 선수 출전, 브라질 올림픽 위원회 위원을 거쳐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역임하며 FIFA 월드컵 본선 참가국 확대와 FIFA 여자 월드컵 창설 등 국제 축구 발전에 기여했으나, 상업화 촉진 및 부패 스캔들로 비판받기도 했다. -
대영제국 훈장 사령관 -
아서 C. 클라크
영국의 SF 작가이자 발명가, 해저 탐험가인 아서 C. 클라크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로 유명하며 SF계의 '빅3'로 불리고, 정지 궤도 통신 위성의 개념을 제안하여 '클라크 궤도'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
대영제국 훈장 사령관 -
스티븐 호킹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특이점 정리, 호킹 복사 등의 획기적인 개념을 제시하고 《시간의 역사》와 같은 대중 과학 서적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우주론자이다.
2. 생애 및 경력
아서 드루리는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잉글랜드 축구 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풋볼 리그 회장과 그림즈비 타운 FC의 구단주를 지냈다. 1955년 6월 7일, 리스본에서 열린 국제 축구 연맹(FIFA) 회의에서 회장에 당선되었다.
1958년 뮌헨 참사 이후 희생자 유족을 위한 기금 모금 위원회 회장을 맡아 52000GBP를 모금하기도 했다. 1953년에는 대영 제국 훈장 사령관(CBE)을 받았다.
2.1. 초기 생애
드루리는 링컨셔주 그림즈비에서 태어나 그림즈비 컬리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11년 드루리는 링컨셔 요먼리(Lincolnshire Yeomanry)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1/1st 링컨셔 요먼리 부대 소속으로 팔레스타인에서 복무했다. 드루리는 요먼리 부대에서 자신의 분대에서 군수 상사 계급에 도달했다. 1919년, 드루리는 그림즈비의 생선 상인의 딸과 결혼했고, 1953년 은퇴할 때까지 장인의 사업을 운영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드루리는 노스 링컨셔의 수석 감시원과 최고 소방 감시원으로 복무했다. 드루리는 고향 그림즈비에서 여러 시민 역할을 맡아 자치구 의원과 치안 판사로 활동했다.
2.2. 축구 행정 경력
아서 드루리는 그림스비 타운의 이사로 축구 행정 경력을 시작했으며, 그의 장인이 구단 회장이었고, 드루리 자신도 구단 회장이 되었다. 이후 1949년부터 1955년까지 풋볼 리그 회장을 역임했다. 1944년부터 잉글랜드 축구 협회(FA) 국제 선수 선발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풋볼 리그 회장직을 수행한 후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잉글랜드 축구 협회 (FA) 회장을 역임했다. 드루리는 건강 악화로 사임한 아모스 브룩 허스트의 뒤를 이어 FA 회장이 되었다.
드루리는 잉글랜드가 최약체 팀에게 1-0으로 패한 1950년 잉글랜드와 미국의 경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0 FIFA 월드컵의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린 경기였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월터 윈터보텀은 스페인과의 다음 경기를 위해 일부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려고 했지만, 드루리가 단독 선수 선발관으로서 이를 뒤엎고 칠레와의 2-0 승리에서 변경 없는 팀을 선택했다. FA의 비서인 스탠리 로우스는 드루리를 방문하여 스탠리 매튜스를 포함시키고 팀에 다른 변화를 줄 것을 촉구했지만, 드루리는 변경 없는 팀을 유지하려는 그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과의 패배 후, 드루리는 팀에 4명의 변경을 허용했지만, 잉글랜드는 스페인과의 다음 경기에서 1-0으로 패했고, 그 결과 토너먼트에서 탈락했다.
1958년 뮌헨 참사로 인해 다수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직원 및 관계자가 사망한 후, 드루리는 3월에 사고 관련자들의 유족을 위한 기금 모금 위원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기금은 1958년 10월 분배 시점에 52000GBP에 달했다.
FA 회장 자격으로 드루리는 불법적인 지불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여 1957년에 출장 정지된 5명의 선덜랜드 선수들에게 고소당한 6명의 축구 관계자 중 한 명이었다. 스탠리 로우스는 FA에서 드루리의 비서로 활동했다. 드루리와 로우스는 1945년 스위스로 건너가 FIFA 본부에서 영국의 홈 네이션스가 FIFA에 재가입하도록 성공적으로 협상했다.
드루리는 쥘 리메에 의해 FIFA 부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리메의 후임인 벨기에 출신 로돌프 윌리엄 세엘드레이어르스가 사망한 후 6개월 동안 임시 회장직을 수행했다. 1955년 6월 7일, 리스본에서 열린 제30회 FIFA 총회에서 드루리는 프랑스의 M. 라파르주를 38대 16표로 꺾고 회장에 선출되었다. 드루리는 재임 기간 동안 1958년 FIFA 월드컵을 감독했으며, 1년 간의 질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5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했다.
2.3. 기타 활동
아서 드루리는 링컨셔주 그림즈비에서 태어나 그림즈비 컬리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11년 링컨셔 요먼리(Lincolnshire Yeomanry)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1/1st 링컨셔 요먼리 부대 소속으로 팔레스타인에서 복무했으며, 군수 상사 계급까지 올랐다. 전쟁 후 1919년, 그림즈비의 생선 상인의 딸과 결혼했고, 1953년 은퇴할 때까지 장인의 사업을 운영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드루리는 노스 링컨셔의 수석 감시원과 최고 소방 감시원으로 복무했다. 드루리는 고향 그림즈비에서 자치구 의원과 치안 판사 등 여러 시민 역할을 맡았다.
1953년 대관식 기념 훈장에서 드루리는 대영 제국 훈장 사령관(CBE)으로 임명되었다.
1958년 뮌헨 참사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직원 및 관계자가 다수 사망한 후, 드루리는 1958년 3월에 사고 관련자들의 유족을 위한 기금 모금 위원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기금은 1958년 10월 분배 시점에 52000GBP에 달했다.
3. 서훈
1953년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