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파루흐
1. 개요
아스파루흐는 불가르족의 칸이자 쿠브라트의 아들로, 오노구르족을 이끌고 다뉴브강 유역에 정착했다. 비잔티움 제국을 상대로 세력을 확장하여 680년 콘스탄티누스 4세의 군대를 격파하고, 681년 불가리아 제1제국을 건국하여 플리스카를 수도로 삼았다.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공납을 인정받았으며, 701년 하자르 카간국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산으로는 불가리아 국가 수립과 영토 확장, 그리고 불가리아 내 여러 지명에 그의 이름이 사용된 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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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 | 불가르인의 카나수비기 |
|---|---|
| 종교 | 텡그리 신앙 |
| 왕조 | 둘로 |
| 재위 기간 | 681년–701년 |
|---|---|
| 이전 통치자 | 쿠브라트 |
| 후임 통치자 | 테르벨 |
| 출생 | 640년경 |
|---|---|
| 사망 | 701년 |
| 사망 장소 | 드네프르 강 |
| 아버지 | 쿠브라트 |
| 자녀 | 테르벨 아야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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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년 출생 -
낙빈왕
낙빈왕은 당나라 초기의 뛰어난 시인이자 문장가로, 왕발, 양형, 노조린과 함께 '당나라 사걸'로 불리며, 측천무후를 비판하는 격문을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고, 화려한 변문 스타일과 복잡한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을 남겼으며, 이경업의 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으나 그의 삶과 문학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701년 사망 -
연남산
연남산은 연개소문의 아들로, 639년에 태어나 701년에 사망했으며, 아들로 천광부를 두었다. -
701년 사망 -
교황 세르지오 1세
교황 세르지오 1세는 687년부터 701년까지 재임한 84대 교황으로, 시리아계 혈통으로 로마 교회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교회 내 변화를 주도했으며 사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불가리아의 군주 -
크룸
크룸은 800년경 불가리아의 군주로, 아바르족을 격파하고 비잔티움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확장했으며, 불가리아 최초의 성문법전을 제정하여 강력한 통치를 펼쳤다. -
불가리아의 군주 -
보리스 3세
보리스 3세는 소피아에서 태어나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후 불가리아의 차르가 되어 정치적 격변과 암살 시도 속에서 "왕의 정부" 시대를 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추축국에 가담 후 히틀러와의 회담 직후 사망하여 그의 아들 시메온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2. 생애
아스파루흐는 불가르족의 칸인 쿠브라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불가르족의 한 분파인 오노구르족을 이끌고 다뉴브강 삼각주 지대에 정착했다. 이후 비잔티움 제국에 맞서 세력을 확장했으며, 680년에는 콘스탄티누스 4세 황제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 군대를 옹글 전투에서 물리쳤다.
681년에는 플리스카를 수도로 삼아 불가리아 제1제국을 건국하고,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공납을 인정받았다. 그의 통치 기간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존재한다. 불가리아 칸 명부는 그가 둘로 씨족 출신이며 61년간 통치했다고 기록하지만, 이는 그의 생애 전체 기간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연대기들은 그의 통치 종료 시점을 700년 또는 701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700년경 하자르 카간국 군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왕위는 아들 테르벨이 계승했다.
2.1. 초기 생애
아스파루흐는 불가르족의 칸(Khan)이자 대불가리아를 세운 쿠브라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비잔티움 제국 자료에 따르면, 그는 쿠브라트의 여러 아들 중 막내였다. 불가리아 칸 명부는 아스파루흐가 둘로 씨족 출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 쿠브라트가 현재의 우크라이나 대초원에서 광대한 국가를 다스리는 동안 정치와 국정 운영에 대한 경험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쿠브라트는 665년경(모스코프의 연대기에 따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진위 여부에 논란이 있는 문헌인 자그파르 타리히에 따르면, 아스파루흐는 아버지에 의해 불가르족의 한 분파인 오노구르족(Onogur)의 지도자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쿠브라트가 사망한 후, 아스파루흐는 형인 바트 바얀의 통치를 인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668년 하자르의 공격으로 대불가리아는 붕괴되었고, 이 사건 이후 아스파루흐와 그의 형제들은 각자의 백성을 이끌고 더 안전한 곳을 찾아 흩어졌다. 아스파루흐는 자신이 이끌던 오노구르족과 함께 다뉴브강 삼각주 지대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정착했다.
아스파루흐의 통치 기간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불가리아 칸 명부는 그가 61년간 통치했다고 기록하지만, 이는 연대기적으로 볼 때 정확한 통치 기간이라기보다는 그의 생애 전체 기간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모스코프가 제시한 연대기에 따르면, 아스파루흐는 668년부터 695년까지 통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연대기들은 그의 통치 종료 시점을 700년 또는 701년으로 기록하기도 하는데, 이는 명부의 기록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2.2. 불가리아 제1제국 건국
불가르족의 칸인 쿠브라트의 아들인 아스파루흐는 불가르족의 한 분파인 오노구르족을 이끌고 다뉴브강 삼각주 지대에 정착했다. 그는 3만에서 5만 명 가량의 불가르족을 이끌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아랍의 칼리프 무아위야 1세에게 포위된 상태(674–678)였고, 이 시기에 아스파루흐와 그의 백성들은 현재는 사라진 다뉴브 삼각주의 페우케 섬에 자리를 잡았다.
아랍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 공격이 끝난 후,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4세는 680년 불가르족과 그들의 슬라브족 동맹 세력을 공격했다. 콘스탄티누스 4세는 초기에는 불가르족을 요새화된 야영지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으나, 안키알로(오늘날의 포모리에)에서 자신의 질병 치료를 위해 군 지휘를 포기하게 되면서 전황이 바뀌었다. 황제가 전장을 떠나자 비잔틴 군대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되었고, 황제가 도망쳤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일부 병사들이 탈영하기 시작했다. 이 혼란을 틈타 불가르족과 동맹군은 680년 온갈 전투에서 비잔틴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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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갈 전투에서의 승리 이후 아스파루흐는 다뉴브 삼각주에서 발칸 산맥으로 신속하게 남하하여 모에시아 지역을 정복했다. 이 과정에서 아스파루흐는 세베리족 및 일곱 슬라브 부족과 같은 현지 슬라브 부족들과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
681년, 아스파루흐는 비잔틴 제국의 트라키아 지역까지 공격을 감행했다. 거듭된 패배와 불가르족의 위협에 직면한 콘스탄티누스 4세는 결국 불가르족과 조약을 체결하고, 매년 공물을 바치기로 약속했다. 이 사건은 불가리아 제1제국의 건국과 비잔틴 제국에 의한 공식적인 국가 승인으로 간주된다. 아스파루흐는 플리스카를 제국의 수도로 정했으며, 후대의 전승에 따르면 드러스터(실리스트라)와 같은 주요 도시들을 건설하고 다뉴브강에서 흑해까지 이어지는 방어 성벽(리메스)을 구축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