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토이버
1. 개요
아이린 토이버(Irene Taeuber, 1906-1974)는 미국의 인구 통계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미주리 대학교에서 학사,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석사,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교에서 교원직을 시작하여 프린스턴 대학교 인구 연구 사무소에서 선임 연구 인구 통계학자로 활동하며 《인구 지수(Population Index)》 편집에 참여했다. 또한, 《일본의 인구(The Population of Japan)》를 저술하여 일본의 인구 변화를 분석했으며, 미국 인구 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녀는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미국 과학 진흥 협회 등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미국 사회학회에서 스튜어트 A. 라이스 상을 수상했다. 미국 인구 협회는 그녀의 업적을 기려 아이린 B. 토이버 상을 제정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아이린 반스 토이버 |
|---|---|
| 출생일 | 1906년 12월 25일 |
| 출생지 | 미주리주 미드빌 |
| 사망일 | 1974년 2월 24일 |
| 사망지 | 메릴랜드주 하이애츠빌 |
| 국적 | 미국 |
| 모교 | 미네소타 대학교 |
|---|---|
| 학위 논문 제목 | 미네소타 주간 신문의 읽을거리 내용 및 표현의 변화, 1860-1929 |
| 학위 논문 URL | 미네소타 대학교 학위 논문 링크 |
| 학위 논문 연도 | 1931년 |
| 직업 | 인구 통계학자 |
|---|---|
| 직장 | 인구 조사 연구소 |
-
미국의 인구학자 -
개릿 하딘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철학자인 개릿 하딘은 인구 문제와 자원 관리에 대한 연구, 특히 1968년 에세이 "공유지의 비극"을 통해 인구 증가와 자원 고갈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으나, 그의 주장은 비판과 논쟁에 직면하기도 했다. -
미국의 인구학자 -
로널드 프리드먼
-
1974년 사망 -
육영수
육영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이자 퍼스트레이디로서 사회복지 사업과 민원 해결에 힘썼으며 육영재단 설립 등으로 아동 복지 증진에 기여했으나, 19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저격으로 사망했다. -
1974년 사망 -
최두선
최두선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언론인, 교육자,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동아일보 사장, 초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했다. -
노스웨스턴 대학교 동문 -
함병춘
함병춘은 법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서 연세대학교 법학과 교수, 박정희 정부의 외교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및 주미 한국 대사, 전두환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며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했으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순직했다. -
노스웨스턴 대학교 동문 -
이효성
이효성은 MBC, 경향신문,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각종 의혹과 SNI 차단 방식 추진으로 인터넷 검열 논란을 겪었다.
2. 생애
아이린 토이버는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남편과 함께 워싱턴 D.C.로 이주한 후에는 미국 인구 협회의 학술지 인구 문헌 및 인구 지수에 기여하며 인구 통계학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프린스턴 대학교 인구 연구 사무소에서 연구 조교로 시작하여 선임 연구 인구 통계학자로 승진, 1973년 은퇴했다.
미국 의회 도서관과 미국 인구조사국의 공동 사업을 지휘하고, 여러 학회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1974년 폐렴과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아이린 바네스는 1906년 12월 25일 미주리주 미드빌에서 태어났다. 1927년 미주리 대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1931년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9년, 학생 신분으로 콘래드 토이버(Conrad Taeuber)와 결혼했다. 콘래드 토이버와 그녀의 자녀 리처드 토이버(Richard Taeuber)와 칼 토이버(Karl Taeuber) 또한 저명한 인구 통계학자가 되었다.
2.2. 경력
1931년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교(Mount Holyoke College)에서 교원직을 맡았지만, 1934년 남편이 연방 비상 구호 행정처(Federal Emergency Relief Administration)에 합류하면서 워싱턴 D.C.(Washington, DC)로 이사했다. 미국 인구 협회(Population Association of America)의 학술지인 인구 문헌(Population Literature)에 기고하기 시작했으며, 1935년 편집자 프랭크 로리머(Frank Lorimer)가 떠나면서 학술지는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의 인구 연구 사무소로 옮겨져 인구 지수(Population Index)가 되었고, 아이린 토이버도 함께 이동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처음에는 연구 조교로 일했으며, 1961년에는 선임 연구 인구 통계학자로 승진했고, 1973년에 은퇴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의회 도서관과 미국 인구조사국의 공동 사업인 인구 조사 도서관 프로젝트(Census Library Project)를 지휘했다. 또한 태평양 과학 협회와 미국 사회학회의 인구 및 인구 통계 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1953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 인구 협회 회장을 지냈다.
3. 학문적 기여
테이버는 《인구 지수》 외에도 다양한 학술 활동에 참여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의회 도서관과 미국 인구조사국의 공동 사업인 인구 조사 도서관 프로젝트(Census Library Project)를 지휘했으며, 태평양 과학 협회와 미국 사회학회의 인구 및 인구 통계 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또한 1953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 인구 협회 회장을 지냈다.
테이버는 "12권의 영향력 있는 책과 책 분량의 보고서, 약 250편의 논문과 장"을 저술했다. 그녀의 저작들은 사회 변화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인구 통계 분석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인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3.2. 인구 조사 도서관 프로젝트
미국 의회 도서관과 미국 인구조사국의 공동 사업인 인구 조사 도서관 프로젝트(Census Library Project)를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지휘했다.
3.3. 《일본의 인구》(The Population of Japan)
태이버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 《일본의 인구》(The Population of Japan)는 1958년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거의 500쪽에 달하며, 7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일본의 삶과 문화에 대한 역사적, 사회학적 개요를 제공하고, 그 다음에는 메이지 시대와 현대 시대를 다룬다. 이어서 내부 이주, 메이지 시대의 일본 제국의 확장, 출산율과 사망률이 인구에 미치는 영향, 제2차 세계 대전이 일본에 미친 영향에 대한 인구 통계적 관점,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다룬다. 이 저서는 "사회 변화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인구 통계 분석의 힘을 보여준다"라고 평가받는다. 이 책은 일본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마이니치 신문에서 일본어 번역본을 출판했다.
4. 수상 및 영예
토이버는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미국 과학 진흥 협회, 미국 사회학회 및 미국 통계 협회 회원(1960년)으로 선출되었다. 1960년 스미스 칼리지, 1965년 웨스턴 여성 칼리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주리 대학교와 미네소타 대학교도 그녀의 업적을 기렸으며, 미국 사회학회는 1972년 스튜어트 A. 라이스 상을 수여했다. 미국 인구 협회는 연구 업적을 기리는 아이린 B. 토이버 상을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