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케 아쓰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아카이케 아쓰시는 일본 제국의 내무성 관료이자 정치인이다. 나가노현 출신으로,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가 교토부, 후쿠시마현, 시가현, 아이치현, 효고현 등에서 사무관과 경찰부장을 역임했다. 이후 내무 서기관, 시즈오카현 지사, 조선총독부 내무국장 및 경무국장을 거쳐 내각 척무국 장관과 경시총감을 지냈다. 관동 대지진 이후 경시총감직을 사임하고 귀족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공자 - 만세의 스승》, 《지나사변과 유대인》 등이 있다.

아카이케 아쓰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아카이케 아쓰시
로마자 표기Akaike Atsushi
국적일본
출생지일본 나가노현 하니시나군
부모아카이케 나나에몬
정치 경력
의원 재임(아무 문자열이나 입력되면 "예"로 처리되고, 비워두면 "아니오"가 됨)
기타 정보
학력도쿄제국대학 법학과 졸업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시즈오카현지사 - 유아사 구라헤이
    유아사 구라헤이는 일본의 내무 관료이자 정치가로, 내무성 경보국장,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궁내대신, 내대신 등을 역임했으며,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재직 시절 식민 통치에 앞장섰다는 비판과 쇼와 유신 반대, 궁중 양식파 활동 등의 행적을 남겼다.
  • 시즈오카현지사 - 다케야마 유타로
    농상무성 관료 출신 정치인 다케야마 유타로는 일본 협동당 소속 중의원 의원 9선, 건설대신, 시즈오카현 지사를 지냈으며, 다고노우라항 헤드로 공해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중일 국교 회복에 기여했다.
  • 일본의 척무관료 - 야스이 세이이치로
    야스이 세이이치로는 도쿄도지사를 세 차례 역임하고, 조선총독부 비서관, 경기도 지사 등을 거쳐 수도권정비법 제정 및 1964년 도쿄 올림픽 유치를 추진했으며,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 일본의 척무관료 - 가와무라 다케지
    가와무라 다케지는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내무성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하여 여러 요직을 거쳐 귀족원 의원, 내무 차관, 남만주 철도 사장, 대만 총독, 사법 대신 등을 역임하다 1955년에 사망했다.
  • 조선총독부 사람 - 아리요시 주이치
    아리요시 주이치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의 일본 고위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여러 현의 현지사와 조선총독부 총무국장, 정무총감을 지내며 현대화 사업과 도시 재건에 기여했으나,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에 관여한 점은 비판적으로 평가되며 귀족원 의원과 요코하마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 후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 조선총독부 사람 - 기무라 지로에몬
    기무라 지로에몬은 1897년에 태어나 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근무하고 90세까지 농업에 종사했으며, 2011년 세계 최고령 남성이 되어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고 116세의 나이로 사망한 일본의 장수 기록 보유자이다.

2. 경력

나가노현 하니시나군 난조촌(현 사카키정) 출신으로, 아카이케 시치에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도쿄부립 제일 중학교,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02년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 법률학과(독법)를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갔다. 일본 내무성 관료, 조선총독부 관료, 척무국 장관 및 경시총감을 역임했다. 1923년 8월, 귀족원 칙선 의원에 임명되어 동화회에 속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다.

2.1. 일본 내무성 관료

1902년 7월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 법률학과(독법)를 졸업하고 내무성에 들어갔다. 교토부 속으로 내무부 제1과에 배속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문관 고등시험 행정과 시험에 합격했다. 1904년 5월 내무 속, 대신관방 비서과 겸 지방국 근무가 되었고, 이후 후쿠시마현 참사관, 사무관, 시가현 사무관・경찰부장, 아이치현 사무관・경찰부장, 효고현 사무관・경찰부장 등을 역임했다.

1913년 6월 내무성 본성으로 돌아와 내무 서기관에 취임했다. 이후 지방국 현(府県)과장, 내무 감찰관, 겸 내무성 참사관 등을 맡았고, 1918년 5월 시즈오카현 지사에 취임했다.

2.2. 조선총독부 관료

1919년 8월, 조선총독부로 전임하여 내무국장이 되었고, 이후 경무국장을 역임했다. 3.1 운동 이후 문화 통치 시기에 내무 행정을 담당했고, 이후 경무국장으로서 치안 유지를 담당했다.

2.3. 척무국 장관 및 경시총감

1922년 6월, 내각 척무국 장관에 취임했다. 같은 해 10월, 경시총감이 되어, 1923년 1월 미카와시마 사건 조정을 담당했다. 같은 해 9월 1일 관동 대지진이 발생하자, 같은 달 5일에 사임했다. 1924년 1월 7일, 경시총감에 재임명되어 같은 해 6월까지 맡았다.

3. 사상

아카이케 아쓰시는 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졌으며, "일본 민족회"나 "국제 정경 학회" 같은 음모론 연구 단체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3.1. 반유대주의

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 민족회"나 "국제 정경 학회"라는 반유대주의와 음모론을 연구하는 단체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프리메이슨의 "대일 음모"나 반유대주의적인 내용에 대한 질문을 귀족원에서 하기도 했다.

4. 저작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제목출판사출판일
공자 - 만세의 스승현황사1928년 11월 5일
정교에서 본 논어 신석와세다 대학 출판부1930년 8월 3일
명의 군신의 망명과 그 보호신의 일본사1938년 6월
지나사변과 유대인정경서방1939년 3월 10일

5. 친족

* 장남: 아카이케 켄 (내무성 관료)
* 장녀: 다쿠마 가즈코 (타쿠마 타케토의 아내,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