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내무국
1. 개요
조선총독부 내무국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로 조선총독부에 설치된 내무부에서 시작하여, 1919년 내무국으로 개칭되었고, 1941년 사정국으로 변경되었다가 1943년 폐지되었다. 내무국은 지방 행정, 사회 통제, 노동력 동원, 사회 기반 시설 건설 및 관리를 담당했다. 초대 내무부 장관은 우사미 가쓰오였으며, 역대 국장으로는 아카이케 코이, 오츠카 츠네사부로, 이쿠타 세이자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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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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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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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지속된 시기로, 강제 병합, 경제적 착취, 정치적 억압, 문화적 동화 정책 등이 특징이며, 3·1 운동과 같은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고, 위안부 문제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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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3·1 운동은 1919년 일본의 무단 통치에 저항하여 시작된 한국의 독립운동으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일본의 무력 진압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2. 연혁
1910년 10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내무부가 설치되었다. 초기 내무부에는 서무과, 지방국, 학무국 2국이 설치되었다. 1915년 3월 31일 행정 간소화를 위해 지방국이 폐지되고 지방과가 설치되었다. 1919년 8월 20일 조선총독부 관제 개정(칙령 제386호)에 따라 내무부는 내무국으로 개칭되었고, 학무국은 총독 직속의 국이 되었다. 1941년 11월 19일 내무국은 사정국(司政局)으로 개편되었다. 1943년 12월 1일 사정국은 총무국, 식산국, 농림국, 철도국, 전매국과 함께 폐지되었다.
2.1. 내무부 설치 (1910년)
1910년 10월 1일 한일 병합 조약 체결과 함께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내무부가 설치되었다. 초기 내무부에는 서무과, 지방국, 학무국 2국이 설치되었다. 1915년 3월 31일 행정 간소화를 위해 지방국이 폐지되고 지방과가 설치되었다.
2.3. 내무국으로 개편 (1919년)
1919년 8월 20일 조선총독부 관제 개정(칙령 제386호)에 따라 내무부는 내무국으로 개칭되었다. 또한, 관할 하에 있던 학무국은 총독 직속의 국으로 독립하였다.
2.4. 사정국으로 개편 (1941년)
1941년 11월 19일에 내무국은 사정국(司政局)으로 개편되었다. 1943년 12월 1일에는 총무국, 식산국, 농림국, 철도국, 전매국과 함께 폐지되었다.
3.1. 내무국 (1941년)
1941년 9월 1일 당시 조선총독부 내무국의 조직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내무국
지방과: 지방 행정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다.
사회과: 사회 통제 및 복지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다.
노무과: 노동력 동원 및 관리 업무를 담당하였다.
토목과: 도로, 교량 등 사회 기반 시설 건설 및 관리 업무를 담당하였다.
* 내무국 토목출장소
지방관 관리 양성소: 조선인 지방 관리 양성을 위한 기관이었다.
4. 역대 국장
조선총독부 내무부 장관은 1910년(메이지 43년) 10월 1일부터 1919년(다이쇼 8년) 8월 19일까지, 내무국장은 1919년(다이쇼 8년) 8월 20일부터 1941년(쇼와 16년) 11월 19일까지, 사정국장은 1941년(쇼와 16년) 11월 19일부터 1943년(쇼와 18년) 12월 1일까지 존속하였다.
역대 내무부 장관, 내무국장, 사정국장은 다음과 같다.
| 성명 | 재임 기간 | 비고 |
|---|---|---|
| 우사미 가쓰오 | 1910년 10월 1일 ~ 1919년 8월 19일 | |
| 아카이케 코이 | 1919년 8월 20일 ~ 1919년 9월 20일 | |
| 오츠카 츠네사부로 | 1919년 9월 20일 ~ 1925년 6월 15일 | |
| 이쿠타 세이자부로 | 1925년 6월 15일 ~ 1929년 11월 8일 | |
| 이마무라 타케시 | 1929년 11월 8일 ~ 1931년 7월 22일 | |
| 우시지마 쇼조 | 1931년 7월 22일 ~ 1931년 9월 23일 | 사무 취급 |
| 우시지마 쇼조 | 1931년 9월 23일 ~ 1936년 5월 21일 | |
| 오오타케 쥬로 | 1936년 5월 21일 ~ 1941년 1월 24일 | |
| 카미타키 모토이 | 1941년 1월 24일 ~ 1941년 11월 19일 | |
| 스즈카와 히사오 | 1941년 11월 19일 ~ 1942년 10월 3일 | |
| 신가이 하지메 | 1942년 10월 3일 ~ 1943년 12월 1일 |
4.1. 내무부 장관 (1910년 ~ 1919년)
| 성명 | 재임 기간 | 비고 |
|---|---|---|
| 우사미 가쓰오 | 1910년 10월 1일 ~ 1919년 8월 19일 |
4.2. 내무국장 (1919년 ~ 1941년)
4.3. 사정국장 (1941년 ~ 1943년)
| 성명 | 재임 기간 | 비고 |
|---|---|---|
| 스즈카와 히사오 | 1941년 11월 19일 ~ 1942년 10월 3일 | |
| 신가이 하지메 | 1942년 10월 3일 ~ 1943년 12월 1일 |
4.4. 내무부 지방국장 (1910년 ~ 1915년)
고바라 신조는 1910년(메이지 43년) 10월 1일부터 1915년(다이쇼 4년) 3월 31일까지 조선총독부 내무부 지방국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