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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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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파다나는 기둥이 있는 석조 구조의 궁전 또는 알현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고대 페르시아 건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특히 페르세폴리스와 수사에 아파다나 궁전이 존재했다.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는 하이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다리우스 1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조가 새겨진 계단으로 유명하다. 이 건물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발굴을 통해 그 구조와 특징이 밝혀졌다. 수사의 아파다나는 다리우스 1세 시대에 건설되어 크세르크세스 1세 시대에 완공되었으며, 벽돌 부조와 기둥으로 장식되었다. 아파다나의 건축 양식은 우마이야 왕조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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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다나

2. 어원

단어로서 아파다나/𐎠𐎱𐎭𐎠𐎴peo (남성형)는 열주식 홀, 즉 기둥이 있는 석조 구조의 궁전 또는 알현실을 지정하는 데 사용된다.[2] 이 단어는 엘람어로 ''ha-ha-da-na'', 바빌로니아어로는 ''ap-pa-da-an''으로 번역되며 어원적으로 모호하다.[2] '도착하다'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आपादन)과 '은신처 또는 은폐'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apa-dhā'' (अपधा), 그리고 "창고"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αποθήκηgrc)와 비교되었다.[2] 이 단어는 이란에서 파르티아어 '''pdn(y)'' 또는 '''pdnk(y)'' "궁전"으로 후대에 살아남았으며, 이란 밖에서는 아랍어 فَدَنar (음역: ''fadan'') "궁전"과 아르메니아어 ''aparan-kʿ'' "궁전"을 포함하여 여러 언어에서 차용어로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2]

현대 건축 및 고고학 용어로서 ''apadana''라는 단어는 우라르투의 열주식 홀, 예를 들어 알틴테페와 에레부니에서 발굴된 홀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3] 이러한 홀은 페르시아의 홀보다 앞선 것이며, 우라르투가 후대 페르시아 열주식 알현실의 양식적 기원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이 있었다.[3]

3. 구조 및 특징

아파다나 궁전 (동쪽),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궁전, 페르세폴리스


페르세폴리스에서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었던 아파다나는 하이포 양식(영어: Hypostyle)으로 지어졌다. hypóstȳlos/ὑπόστυλοςgrc에서 유래한 이 건축 양식은 벽이 없고 기둥으로 평평한 지붕을 받치는 형태이다.[6] 평방미터가 1000m2에 이르며 기둥 사이에 천을 설치해 공간을 구분하였다. 72개나 되는 이 기둥들은 높이가 20~24m에 이르렀고 황소나 사자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중앙 홀은 북쪽과 동쪽의 계단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데, 계단에는 아케메네스 제국에 속한 23개 국가의 대표들이 중앙에 앉은 다리우스 1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아파다나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할 때 파괴되었으며 기둥들은 인근 주민들이 건축자재로 사용했다. 20세기 초에는 이 거대한 기둥 중 13개만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에 무너진 완전한 기둥을 다시 세워 현재 아파다나의 14번째 기둥이 되었다.

아파다나는 페르세폴리스의 테라스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으며, 1931년에서 1939년 사이에 독일 고고학자 에른스트 헤르츠펠트와 그의 조수 프리드리히 크레프터, 그리고 에리히 슈미트에 의해 발굴되었다. 발굴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들은 현재 워싱턴 D.C.에 있는 프리어 미술관의 기록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수사 아파다나 궁전 기둥


수사 아파다나는 도시 자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버려졌고, 건축 자재를 위해 약탈당했다.

3. 1.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페르세폴리스에서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었던 아파다나는 하이포 양식(hypóstȳlos/ὑπόστυλοςgrc)으로 지어졌다.[6] 벽이 없고 기둥으로 평평한 지붕을 받치는 형태로, 평방미터가 1000m2에 이르며 기둥 사이에 천을 설치해 공간을 구분하였다. 72개나 되는 이 기둥들은 높이가 20~24m에 이르렀고 황소나 사자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중앙 홀은 북쪽과 동쪽의 계단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데, 계단에는 아케메네스 제국에 속한 23개 국가의 대표들이 중앙에 앉은 다리우스 1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아파다나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할 때 파괴되었으며 기둥들은 인근 주민들이 건축자재로 사용했다.[6] 20세기 초에는 이 거대한 기둥 중 13개만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에 무너진 완전한 기둥을 다시 세워 현재 아파다나의 14번째 기둥이 되었다.

아파다나는 페르세폴리스의 테라스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으며, 1931년에서 1939년 사이에 독일 고고학자 에른스트 헤르츠펠트와 그의 조수 프리드리히 크레프터, 그리고 에리히 슈미트에 의해 발굴되었다. 발굴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들은 현재 워싱턴 D.C.에 있는 프리어 미술관의 기록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수사 아파다나는 도시 자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버려졌고, 건축 자재를 위해 약탈당했다.

3. 2. 수사 아파다나



페르세폴리스에서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었던 아파다나는 하이포 양식(hypóstȳlos/ὑπόστυλοςgrc)으로 지어졌다. 고대 그리스어로 기둥 아래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 건축 양식은 벽이 없고 기둥으로 평평한 지붕을 받치는 형태이다.[6] 평방미터가 1000m2에 이르며 기둥 사이에 천을 설치해 공간을 구분하였다. 72개나 되는 이 기둥들은 높이가 20~24m에 이르렀고 황소나 사자 모양의 복잡한 형태로 조각되어 있었다. 중앙 홀은 북쪽과 동쪽의 계단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 계단은 아케메네스 제국에 속한 23개 국가의 대표들이 중앙에 앉은 다리우스 1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찬란한 건축물이었던 아파다나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할 때 파괴되었으며 기둥들은 인근 주민들이 건축자재로 사용했다. 수사의 아파다나도 도시가 몰락할 때 같이 무너졌으며 대부분 버려지거나 건축자재로 사용되었다.

수사의 아파다나 궁전은 기원전 515년에 전체적인 계획이 선택된 후 다리우스 1세 치세에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크세르크세스 1세 치세에 완공되었다.[4] 이 궁전의 벽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벽돌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기둥은 돌로 만들어졌다. 내부 벽은 유약을 바른 벽돌 부조로 덮여 있었고, 영생 불멸의 페르시아 근위대, 날개 달린 사자, 연꽃이 묘사되었다. 아파다나 궁전의 중요한 부분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치세 (기원전 461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치세 (기원전 359년)에 재건되었다.

4. 발굴

5. 파괴 및 영향

아파다나의 건축 양식은 우마이야 왕조의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 페르시아와 이라크에 건설된 초기 모스크도 아파다나의 구조를 모방하여 지어졌다.[7][5]

6. 현대적 사용

7. 같이 보기

참조

[1] 문서 M. Root (1986) p. 1.
[2] 문서 R. Schmitt, Apadana i. Term, in Encyclopaedia Iranica
[3] 서적 Greece, from Mycenae to the Parthenon (Taschen's World Architecture) 1997
[4] 웹사이트 The Apadana | Institute for the Study of Ancient Cultures https://isac.uchicag[...]
[5] 논문 Umayyad Building Techniques And The Merging Of Roman-Byzantine And Partho-Sassanian Traditions: Continuity And Change https://brill.com/vi[...] 2019-04-04
[6] 웹인용 하이포 스타일 https://www.hisour.c[...] 2021-04-28
[7] 저널 Umayyad Building Techniques And The Merging Of Roman-Byzantine And Partho-Sassanian Traditions: Continuity And Change https://brill.com/vi[...] 201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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