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1. 개요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는 실크로드 교역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유적에서 발견된 벽화로, 7세기 중반 서돌궐 카간국 쇠퇴기와 당나라의 중앙아시아 세력 확장 시기인 648년에서 65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벽화들은 당시 사마르칸트의 외교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특히 서쪽 벽에는 고대 한국(고구려) 사신을 비롯하여 중국, 인도, 차가니안 등 각국 사신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벽화에는 소그드어 비문이 함께 발견되었으며, 서돌궐인들의 모습과 복식 또한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 2014년부터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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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
카트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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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드인 -
강승회
강승회는 3세기 중엽 오나라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경전 번역가로, 교지에서 불교에 귀의한 후 건강에 건초사를 건립하고 경전 한역 및 저술 활동을 통해 중국에 불교를 전파했으며, 손권 및 손호와의 인과응보 논쟁은 초기 중국 불교의 유교적 융합 과정을 보여준다. -
7세기 작품 -
서튼후 투구
7세기 초 래드왈드 왕과 관련된 서튼후 투구는 앵글로색슨 시대의 권력과 예술성을 보여주는 유물로, 얼굴, 동물 형상, 기하학적 문양 등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벽화의 발견과 내용
실크로드 중개무역을 통해 동서양 문명 교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사마르칸트 지역의 특성상, 벽화에 그려진 차가니안 등 각국에서 온 외교 사신들의 모습은 당시의 외교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 그림들은 서기 7세기 중반 서돌궐 카간국이 쇠퇴하고 당나라가 중앙아시아에서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인 648년에서 651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서쪽 벽에는 고대 한국인의 사신들이 중심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유적의 개인 주택 방 네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중앙아시아와 인접한 세 또는 네 개의 국가를 묘사하고 있다. 북쪽 벽에는 중국이 (배를 탄 황후와 사냥하는 황제가 묘사된 중국 축제 장면); 남쪽 벽에는 사마르칸트 (즉, 고대 페르시아 세계: 노루즈 축제 기간에 조상을 기리는 종교적 장례 행렬); 동쪽 벽에는 인도가 (비록 이 그림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점성가와 피그미족의 땅으로 묘사됨) 그려져 있다.
2.1. 서쪽 벽의 사절단
실크로드 중개무역을 통해 동서양 문명 교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사마르칸트 지역의 특성상, 벽화에 그려진 차가니안 등 각국에서 온 외교 사신들의 모습은 당시의 외교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서쪽 벽에는 고대 한국인의 사신들이 중심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프라시압 유적의 소그드어 비문에는 사마르칸트의 왕 바르후만과 여러 지역에서 온 사신들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에 따르면, 바르후만 왕에게 차가니안의 재상 푸카르자테가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자신은 사마르칸트의 신들과 글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왕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이후 차치의 재상이 발언을 이어간다.
3. 고구려 사신
벽화 속에서는 조우관(鳥羽冠, 새의 깃으로 장식한 모자)을 쓰고 환두대도(環頭大刀, 둥근 고리가 달린 큰 칼)를 찬 고구려인 두 명이 확인되어 국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권영필 교수는 벽화에 그려져 있는 고구려 사신들은 적대국이며 경쟁국이었던 당나라를 견제하며 대항하기 위해 연개소문이 보낸 사신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4. 서돌궐 인물들
벽화 속 서돌궐인들은 선물을 가져오지 않고 외국 사절들의 군사 호위병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긴 땋은 머리를 하고 있어 터키인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바르후만 왕과 서돌궐 카간은 모두 중국의 명목상 봉신이었는데, 벽화에 다수의 터키 장교와 시종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시 사마르칸트 궁정에서 서돌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벽화에서 서돌궐인들은 턱수염이 없는 얼굴과 이목구비를 통해 터키화된 소그드인이 아닌 민족 터키인, 즉 누시비인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벽화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민족 집단이며, 사절이 아닌 군사 시종이다. 이들의 복식은 서기 6~7세기 터키인들의 의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서돌궐인들은 보통 3개 또는 5개의 긴 땋은 머리를 하고 있으며, 종종 하나의 긴 천으로 묶었다. 두 개의 깃이 달린 발목까지 오는 단색 소매 코트를 입고 있는데, 이 옷깃 스타일은 서기 2~4세기 투르판 근처 호탄에서 처음 나타났다. 낮고 검은색의 날카로운 코가 달린 부츠를 신고, 청금석이나 진주가 박힌 금팔찌를 착용했다.
5. 벽화의 보존 및 복원
아프라시압 벽화는 발견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되었으나, 2014년 초 프랑스의 지원으로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벽화의 복원은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고, 중앙아시아 역사와 문화 연구에 더욱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6. 카라한 칸국 시대의 벽화
카라한 칸국(999-1212) 시대의 궁궐 건축물이 최근 아프라시압에서 발견되었으며, 서기 1200년경의 수많은 장식 그림이 완비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호라즘 제국의 샤 무함마드 2세가 사마르칸트를 점령한 1212년에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예술적 번영의 시기는 1212년에 끝나게 되는데, 이는 사마르칸트의 카라한 칸국이 호라즘인에게 정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호라즘은 초기 몽골 제국에 의해 침략당했고, 그 통치자 칭기즈 칸은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의 한때 활기 넘치던 도시들을 파괴했다. 그러나 1370년 사마르칸트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로서 부활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