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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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고대부터 중요한 교역 중심지이자 문화의 요충지였다. 기원전 8세기부터 이란계 민족이 정착하여 도시로 발전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사산조, 우마이야 왕조, 사만 왕조, 카라한 왕조 등 다양한 왕조의 지배를 거치며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4세기에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어 건축과 문화가 번성했고, 19세기에는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었다. 현재는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도시로, 레기스탄 광장, 비비하눔 모스크, 구르아미르 영묘 등 역사적인 건축물과 다양한 종교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대륙성 기후를 보이며, 우즈베크어를 비롯하여 타지크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가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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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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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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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사마르칸트 |
현지 명칭 | |
기타 명칭 | 사마르칸드 |
위치 | 우즈베키스탄 남동부 |
행정 구역 | 사마르칸트 주 |
설치 | 기원전 8세기 |
면적 | 120km² |
고도 | 705m |
인구 (2019년 1월 1일) | 513,572명 |
도시권 인구 | 950,000명 |
인구 밀도 | auto |
시간대 | UTC+5 |
우편 번호 | 140100 |
공식 웹사이트 | samarkand.uz |
세계 유산 | 사마르칸트 - 문화 교차로 |
지리 | |
위치 | 우즈베키스탄 |
역사 | |
초기 역사 | 기원전 5세기부터 정착 |
고대 그리스어 명칭 | Μαράκανδα (마라칸다) |
역사 | 페르시아 제국, 알렉산더 대왕, 실크로드 |
정치 | |
정치 체제 | 시 행정 |
시장 | 푸르카트 라히모프 |
언어 | |
사용 언어 | 우즈베크어 타지크어 러시아어 |
기타 정보 | |
로마자 표기 | Samarqand |
2. 어원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을 왔을 때, 이 도시의 이름은 ‘마라칸다’(''Marakanda'')로 알려져 있었다.[117] 마라칸다가 어떻게 사마르칸트/사마르칸으로 진화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고대 페르시아어의 ‘돌’, ‘바위’를 의미하는 ‘아스마라’(''asmara'')와 소그드어에서 ‘요새’, ‘성곽도시’(town)를 의미하는 ‘칸드’(''kand'')의 결합이다.[118] 산스크리트어 경전에 의하면, 사마르칸트의 원래 이름은 ‘마르칸다’(''Markanda'')였으며, 이는 마르칸다라는 이름을 가진 베다 성자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이후 그리스어에서는 이 도시를 ‘마라칸다’(''Maracanda'')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이전 산스크리트어 이름의 오기라고 추측된다.[117]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이란계 민족이 오아시스 도시로 발전시켰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 왕국 원정군에 끝까지 저항한 소그드인들의 도시 '''마라칸다'''라는 이름으로 그리스 사료에 알려졌다.
이름은 이란어군의 페르시아어와 소그드어 samar|돌, 바위sog와 kand|요새, 도시sog에서 유래한다.[12] 이러한 점에서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의 이름과 같은 의미를 공유하는데, ''tash-''는 돌을 의미하는 투르크어이고 ''-kent''는 이란어에서 차용된 ''kand''와 유사한 투르크어이다.[13]
11세기 학자 마흐무드 알 카쉬가리에 따르면, 이 도시는 카라칸어로 ''Sämizkänd'' ()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살찐 도시"를 의미한다.[14] 16세기 무굴 제국의 황제 바부르도 이 이름으로 도시를 언급했고, 15세기 카스티야의 여행가 루이 곤살레스 데 클라비호는 사마르칸트가 단순히 그 이름의 변형된 형태라고 말했다.[15]
3. 역사
중국에서는 후한서 등의 역사서에 ‘강국’(康國)으로 나타나 있으며, 소무구성[119]의 하나로 거론되었고, 왕족은 월지의 자손으로 언급되었다. 현장과 후세의 아랍, 페르시아 지리서에는 소그디아나, 트란스옥시아나의 중심으로 불렸다. 8세기 초 사마르칸트 왕 데이워스티투가 소그드 왕을 자칭하는 등, 도시 국가 연합체였던 소그디아나에서 사마르칸트 지배자는 때때로 도시 국가 연맹 전체의 맹주가 되기도 했다.
712년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이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 연합군에 정복되어 이슬람화가 시작되었다. 759년 이슬람 세계 최초의 제지 공장이 사마르칸트에서 운용되었다. 이슬람 시대를 통해 부하라와 함께 마라와 안나폴의 중심도시로 발전했다.
1060년 중국 당나라의 역사서 신당서 서역전에는 강국(康國) 또는 살말건(薩末建), 실만근(悉萬斤)으로 기재되어 있다.
8세기 전반 칼리프 정권 하에 들어가 이슬람화하였으며, 9세기~10세기에는 이란계 이슬람 정권인 사만 왕조 하에서 번영하였다. 그 후 카라한 왕조, 카라키타이 왕국, 호라즘 샤 왕조 등의 지배하에 점차 투르크화하였다. 요나라, 원나라의 사서에 심사간(尋思干)으로 보이는 것은 투르크명 Semizkend의 음을 빌린 것이다. 13세기 전반, 몽골족의 정복 이후에는 약간 쇠퇴하였다.
14세기 후반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어 크게 번영하였다. 16세기 초 이래 부하라 한국의 영유가 되었고, 19세기 중엽 러시아에 점령되었다.
3. 1. 고대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이란계 민족이 오아시스 도시로 발전시켰다. 그리스 사료에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 왕국 원정군에 끝까지 저항한 소그드인들의 도시 '''마라칸다'''(Μαρακάνδαgrc)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17]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통치 체제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오레피우스(Orepius)라는 인물이 "선물로 조상이 아닌" 통치자가 되었다고 언급된다.[18][19]
알렉산드로스의 초기 정복으로 사마르칸트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빠르게 회복하여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 번영했다. 장방형 벽돌이 정방형 벽돌로 대체되고, 우수한 석조 및 회반죽 기술이 도입되는 등 건축 기술도 발전했다.[20]
헐 페렌스 미술관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중앙아시아에 고전 그리스 문화를 소개했고, 한때 그리스 미학은 지역 장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헬레니즘 유산은 셀레우코스 제국,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쿠샨 제국 등 여러 후계 국가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쿠샨족은 중앙아시아 출신임에도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였다.) 기원후 3세기 쿠샨 제국이 소그디아나에 대한 지배력을 잃은 후, 사마르칸트는 경제, 문화, 정치적 중심지로서 쇠퇴했다가 5세기에 들어서야 다시 부흥했다.
초기부터 사마르칸트는 소그드 문명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였다. 아케메네스 제국 시대에는 소그드 총독령의 수도였다.
260년경 사마르칸트는 페르시아 사산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사산조 지배하에 이 지역은 마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고,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마니교를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21]
350년~375년 사이에는 기원이 불분명한 유목민족 흉노(Xionites)에게 정복당했다.[22] 4세기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중앙 시르다리야(Syrdarya) 분지 출신 유목민들의 문화가 이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사마르칸트에 유목민 집단이 재정착했다.[23] 457년~509년에는 키다르(Kidarite) 국가의 일부였다.[24]
에프탈(Hephthalites)("백색 훈족")이 사마르칸드를 정복한 후 돌궐(Göktürks)이 560년경 부하라 전투(Battle of Bukhara)에서 사마르칸드를 탈환할 때까지 이 지역을 지배했다. 돌궐은 사산조 페르시아와 동맹을 맺고 있었다.[27]
6세기 중반, 알타이에서 아쉬나(Ashina) 왕조가 건국한 투르크 국가가 형성되었다. 이 국가는 돌궐 제국이라 불렸으며, 카간이라는 통치자가 다스렸다. 557년~561년 투르크와 사산조의 연합 작전으로 에프탈(Hephthalites) 제국이 멸망하고 두 제국 사이에 국경이 확립되었다.[28]
초기 중세 시대에 사마르칸드는 네 겹의 방어벽과 네 개의 문으로 둘러싸여 있었다.[29]
사마르칸드 지역에서는 말을 함께 묻는 고대 투르크식 매장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6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30]
서돌궐 제국의 통치자 통야브구 카간(Tong Yabghu Qaghan) (618년-630년)은 사마르칸드 통치자와 가족 관계를 맺었는데, 자신의 딸을 사마르칸드 통치자에게 시집보냈다.[31]
4세기부터 사마르칸드의 일부 지역은 기독교 지역이었다. 5세기에는 사마르칸드에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 주교좌가 설립되었고, 8세기 초에는 네스토리우스파 대주교구로 승격되었다.[32] 기독교(Christianity)와 마니교(Manichaeism)를 믿는 소그드인들 사이에 논쟁과 논박이 있었으며, 이는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33]
3. 2. 이슬람 시대
712년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이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 연합군에 정복되어 이슬람화가 시작되었다.[119] 이슬람 시대를 통해 부하라와 함께 마라와 안나폴의 중심도시로 발전했다. 759년 이슬람 세계 최초의 제지 공장이 운용된 것도 사마르칸트의 것으로 전해진다.[36]
우마이야 칼리파의 군대는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Qutayba ibn Muslim) 지휘하에 약 710년 CE에 당나라로부터 도시를 점령했다.[21] 이 기간 동안 사마르칸트는 조로아스터교, 불교, 힌두교, 마니교, 유대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등 여러 종교가 공존했지만, 대부분의 인구는 조로아스터교를 따랐다.[35]
쿠타이바는 중앙아시아에 아랍인들을 정착시키지 않았지만, 예외적으로 사마르칸트에는 아랍 수비대와 행정부를 설립하고, 조로아스터교 사원들을 파괴하고 모스크를 건설했다.[36] 도시 인구의 상당수가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37] 장기적으로 사마르칸트는 이슬람과 아랍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했다.[36]
압바스 왕조 통치 기간,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한족으로부터 제지술의 비밀을 얻어 사마르칸트에 이슬람 세계 최초의 제지소를 설립했다는 전설이 있다.[39]
압바스 왕조의 사마라의 혼란(Anarchy at Samarra)으로 사마르칸트에 대한 지배력은 약화되었고, 사마니드 왕조(875-999)가 대신했다. 사마니드 통치하에 이 도시는 수도이자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999년 카라하니드 왕조에 의해 멸망한 후, 200년 동안 셀주크 투르크, 호라즘 샤 등 튀르크 부족들의 지배를 받았다.[40]
999년 사마니드 왕조가 멸망한 후 투르크계 카라칸 왕조가 통치하는 카라칸 왕국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41] 카라칸 왕국이 동서로 분열된 후, 사마르칸드는 서카라칸 칸국의 일부가 되었고, 1040년부터 1212년까지 그 수도였다.[41] 서카라칸 칸국의 창시자는 이브라힘 탐가치 칸(1040–1068)이었다.[41] 그는 사마르칸드에 처음으로 국고로 마드라사를 건립하고 지역 문화 발전을 지원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사마르칸드에는 공공 병원(베모리스탄)과 의학을 가르치는 마드라사가 설립되었다.
샤히진다(Shah-i-Zinda) 기념 건축물은 11세기에 카라칸 왕조의 통치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42]
10세기 페르시아 작가 이스타크리(Istakhri)는 트란스옥사니아를 여행하고, "사마르칸드 소그드" 지역의 풍부한 자연을 묘사했다. 그는 "그곳이나 사마르칸트 자체에서 높은 지대에 올라가도 푸른 자연과 즐거운 곳을 보지 못하는 곳이 없고, 그 근처에 나무가 없는 산이나 먼지투성이 대초원이 없는 곳이 없다"고 기록했다.
3. 3. 티무르 제국 시대
1365년 사마르칸트에서 차가타이 몽골의 지배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49] 1370년 티무르 제국의 창립자이자 통치자인 정복자 티무르(타메를란)는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삼았다. 티무르는 수도 사마르칸트의 도시 계획을 포함하여 다양한 정당화 수단을 사용했다.[50] 이후 35년 동안 그는 도시 대부분을 재건하고 제국 전역에서 온 훌륭한 장인들로 도시를 채웠다. 티무르는 예술의 후원자로 명성을 얻었고, 사마르칸트는 트란속시아나 지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티무르는 적들에게는 무자비했지만, 특별한 예술적 능력을 가진 예술가, 장인, 건축가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자신의 수도를 개선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티무르는 건설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했으며, 그의 비전은 종종 노동자들의 기술적 능력을 넘어섰다. 도시는 끊임없이 건설 중이었고, 티무르는 결과에 만족하지 않으면 건물을 빨리 짓고 다시 짓도록 명령하는 경우가 잦았다.[51] 그의 명령에 따라 사마르칸트는 도로로만 접근할 수 있었고, 깊은 도랑이 파였으며, 둘레가 약 8.05km에 달하는 성벽이 도시를 주변 이웃들과 분리했다.[52] 당시 도시 인구는 약 15만 명이었다.[53]
1403년부터 1406년까지 사마르칸트에 주둔했던 카스티야의 엔리케 3세의 사절 루이 곤살레스 데 클라비호는 도시에서 계속되는 끝없는 건설을 증명했다. "티무르가 건설한 모스크는 우리가 사마르칸트 도시에서 방문했던 모든 모스크 중 가장 고귀한 것으로 보였다."[54]
1417년에서 1420년 사이 티무르의 손자 울루그 베그는 사마르칸트에 마드라사를 건립했는데, 이는 레기스탄 건축단지의 첫 번째 건물이 되었다. 울루그 베그는 이 마드라사에 이슬람 세계의 많은 천문학자와 수학자들을 초청했다. 울루그 베그 시대에 사마르칸트는 중세 과학의 세계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15세기 전반기에 잠시드 알카시, 카디 자다 알루미, 알리 쿠슈지를 포함한 저명한 천문학자와 수학자들을 하나로 묶는 과학 학교가 울루그 베그 주위에 생겨났다. 울루그 베그의 과학에 대한 주된 관심은 천문학이었으며, 그는 1428년에 천문대를 건설했다. 그 주요 장비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벽면 사분의였다.[55] "파크리 육분의"로 알려진 이 장비는 반지름이 40미터였다.[56] 왼쪽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측정을 수행하는 조수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양쪽에 계단이 있는 아치형 구조로 정교하게 건설되었다.
14세기 말부터 15세기에 걸쳐 티무르 제국의 수도로서 번영하였다. 시가지 내부에는 티무르의 묘인 구르 에미르 묘와 비비하눔 모스크 등이, 아프라시압에는 샤히 진다 묘역이 건설되었고, 교외에는 티무르 왕조의 왕족, 아미르, 신하들이 크고 작은 정원과 목장, 숙영지를 설치하였다. 『서역번국지』에 따르면, 15세기 초 명나라 영락제의 명을 받은 진성이 육로로 이곳(「사마아르한」으로 기록되어 있다)을 방문하였다.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 베그 시대에는 울루그 베그 천문대가 건설되었고, 당시 건물을 포함하여 문화 교차로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티무르 제국 후기에는 여러 왕가가 사마르칸드를 놓고 다툼을 반복했고, 훗날 무굴 제국의 시조가 된 바부르도 고향인 페르가나에서 여러 차례 이곳에 원정을 와서 이 다툼에 참여하여 여러 차례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
3. 4. 러시아 제국 시대
1868년 콘스탄틴 페트로비치 폰 카우프만(Konstantin Petrovich von Kaufman) 대령이 이끄는 러시아군이 사마르칸트 요새를 함락시키면서 이 도시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63] 그 직후 500명의 소규모 러시아 수비대는 포위 공격을 받았다. 부하라 에미르의 반란을 일으킨 장남 압둘 말릭 투라(Abdul Malik Tura), 샤흐리사브즈(Shahrisabz)의 바바 베그(Baba Beg), 키타브(Kitab, Uzbekistan)의 주라 베그(Jura Beg)가 이끄는 이 공격은 큰 손실을 입고 격퇴되었다. 알렉산드르 콘스탄티노비치 아브라모프(Alexander Konstantinovich Abramov) 장군은 러시아인들이 제라프샨 강(Zeravshan River)을 따라 사마르칸트를 행정 중심지로 하여 설립한 군사 오크루그의 초대 주지사가 되었다. 러시아 지역의 도시는 이 시점 이후, 대부분 옛 도시의 서쪽에 건설되었다.
1886년, 이 도시는 새로이 형성된 러시아 투르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주의 수도가 되었고, 1888년 트란스카스피아 철도가 이곳에 도착하면서 더욱 중요성을 얻게 되었다.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의 면화 공업에 원면을 공급하게 되었다. 1880년부터 중앙아시아 철도 건설이 시작되어 1888년에는 사마르칸드에 도착하였다. 1906년에 철도는 오렌부르크와 타슈켄트를 연결하여 완공되었고, 유럽 러시아로 운반되는 원면은 더욱 증가하였다.
3. 5. 소비에트 연방 시대
사마르칸트는 1925년부터 1930년까지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였으나, 이후 타슈켄트로 대체되었다.[65]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하자, 많은 사마르칸트 시민들이 스몰렌스크로 파견되어 전투에 참여하였다. 그중 다수는 나치의 소련 포로 학대로 포로가 되거나 살해당했다.[65][66] 또한, 점령된 소련 서부 지역의 난민 수천 명이 이 도시로 피난했으며,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소련 전체에서 피난민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사마르칸트 역사에 대한 유럽의 연구는 1868년 러시아 제국이 사마르칸트를 정복한 후 시작되었다. N. 베셀롭스키, V. 바르톨드, V. 비야트킨이 사마르칸트 역사 연구의 선구자였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우즈베키스탄 과학 아카데미 원사인 이브라힘 무미노프가 편집한 2권 분량의 ''사마르칸트 역사''에서 사마르칸트 역사에 대한 자료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었다.[67]
샤라프 라시도프의 지원을 받아 우즈베크 SSR 과학 아카데미 원사 I. 무미노프의 주도로 1970년 사마르칸트 25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울루그 베크 기념비가 세워졌고, 사마르칸트 역사 박물관이 설립되었으며, 2권으로 된 사마르칸트 역사가 편찬 및 출판되었다.[68][69]
1880년부터 중앙아시아 철도 건설이 시작되어 1888년에는 사마르칸드에 도착하였다. 1906년에 철도는 오렌부르크와 타슈켄트를 연결하여 완공되었고, 유럽 러시아로 운반되는 원면은 더욱 증가하였다.
사마르칸드는 원래 부하라와 마찬가지로 이란계 페르시아어 사용자, 즉 타지크인이 많은 도시였지만, 소비에트 연방 시대인 1924년, 민족적 경계 설정에 따라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되어 1930년까지 그 수도였다.
3. 6. 독립 우즈베키스탄 시대
소비에트 연방 시대인 1924년, 민족적 경계 설정에 따라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되었고, 1930년까지 그 수도였다. 원래 부하라와 마찬가지로 이란계 페르시아어 사용자, 즉 타지크가 많은 도시였지만, 이러한 조치가 취해졌다.
4. 지리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남동부 제라프샨 강(Zeravshan River) 계곡에 위치하며, 카르시에서 135km 떨어져 있다. M37 도로는 사마르칸트를 부하라(Bukhara)와 연결하고(240km), M39 도로는 타슈켄트(Tashkent)와 연결한다(270km). 타지키스탄 국경은 사마르칸트에서 약 35km 떨어져 있으며,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는 사마르칸트에서 210km 떨어져 있다. M39 도로는 사마르칸트를 아프가니스탄의 마자르이샤리프와 연결하며(340km), 거리는 340km이다.
도시의 교외 지역으로는 굴략칸도즈(Gulyakandoz), 수페르포스팟니(Superfosfatnyy), 부하리쉴락(Bukharishlak), 울루그벡(Ulugbek), 라바낙(Ravanak), 카타키쉴락(Kattakishlak), 레기스탄(Registan), 제비니소(Zebiniso), 카프타르호나(Kaftarkhona), 우즈뱅킨티(Uzbankinty)가 있다.[108]
아무다리야 강의 지류인 자라프샨 강 연안에 위치하며, 기계, 화학, 목화, 견직물, 피혁 관련 산업이 발달해 있다. 인구는 약 55만 명(2021년)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는 이 도시 출신이다.
스텝 기후에서 지중해성 기후로 이행하는 지역 특유의 맑고 푸른 하늘과 모스크의 래피스라줄리 색깔에서 “푸른 도시”라고 불린다.
4. 1. 기후
대륙성 기후로 기온차가 심하다. 여름은 건조하고 낮에는 40°C 가까운 무더위가 오지만, 해발 702m의 높은 고도로 타슈켄트보다는 더위가 누그러져 아침 저녁으로는 비교적 시원하다. 겨울은 춥고 강설량도 있지만, 해마다 차이가 크고, 1월 평균 기온 0도 전후를 큰폭으로 밑도는 추위가 오기도 하며, 과거에는 -25.4°C를 기록한 적도 있다.[120]
5. 문화
실크로드 사마르칸드는 2022년 초 사마르칸트 동부에 문을 연 현대식 복합 단지이다. 260ha의 부지에 세계적인 수준의 비즈니스 및 의료 호텔, 음식점, 레크리에이션 시설, 공원, 민족지구역, 국제 행사를 위한 대규모 회의장 등이 들어서 있다.[102]
이 단지 내 "영원한 도시(Eternal city)"는 17ha 부지에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고대 도시의 정취를 재현한 곳이다. 좁은 거리에는 예술가, 장인, 공예가들의 상점이 즐비하고, 건물들은 고대 서적에 묘사된 실제 집과 광장에서 영감을 받았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우즈베키스탄 여러 시대와 지역의 향토 음식을 맛보고 전통 거리 공연을 관람할 수 있으며, 파르티아, 헬레니즘, 이슬람 문화의 조화를 통해 과거 유산을 체험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 보부르 이스모일로프(Bobur Ismoilov)의 디자인으로 탄생했다.[103]
천일야화의 액자 구성은 사산 왕조의 왕이 자신의 형제인 샤 자만에게 사마르칸트를 다스리도록 임명하는 내용을 포함한다.[112] 200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는 자신의 시집 제목을 ''사마르칸트와 내가 알았던 다른 시장들''(Samarkand and Other Markets I Have Known)이라고 했다.[113]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트라우드는 2003년에 사마르칸트의 부적을 출판했다.
5. 1. 건축
레기스탄은 이슬람 건축의 뛰어난 예시 중 하나로, 다음 세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울루그벡 마드라사 (1417–1420)
- 셰르도르 마드라사 (용맹한 사자) (1619–1635/36)
- 틸라 코리 마드라사 (1647–1659/60)
- 비비하님 모스크
- 구르아미르 영묘 (1404)
- 울루그벡 천문대 (1428–1429)
- 샤히진다 영묘
- 아프라시야브 유적지 (기원전 7세기 ~ 13세기)
- 시욥 바자르

티무르는 1398~1399년 인도 원정 이후 비비하님 모스크 건설을 시작했다. 원래 대리석 기둥이 약 450개 있었는데, 티무르가 힌두스탄에서 데려온 코끼리 95마리의 도움을 받아 운반하고 설치했다.[51] 인도의 장인과 석공들이 모스크의 돔을 설계하여 다른 건물들 사이에서 독특한 외관을 갖게 했다. 1897년 지진으로 기둥이 파괴되었고, 그 후 재건 과정에서 완전히 복구되지는 않았다.[51]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잘 알려진 랜드마크는 구르아미르 영묘이다. 이 능묘는 이슬람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 과거 문명, 이웃 민족, 종교의 영향을 보여준다. 몽골인들이 사마르칸트의 티무르 이전 이슬람 건축물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티무르 치하에서 이러한 건축 양식은 부활하고, 재현되고, 복원되었다. 모스크 자체의 청사진과 배치는 정확한 측정을 통해 이슬람의 기하학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구르-이 아미르의 입구는 아랍어 서예와 비문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후자는 이슬람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티무르의 세심한 디테일에 대한 관심은 특히 능묘 내부에서 분명하다. 타일로 된 벽은 놀라운 모자이크 파이앙스의 예시이며, 이는 각 타일을 개별적으로 자르고, 색칠하고, 제자리에 맞추는 이란 기술이다.[51] 구르-이 아미르의 타일은 또한 "무함마드"와 "알라"와 같은 종교적인 단어를 표현하도록 배열되었다.[51]
구르아미르 영묘 벽의 장식에는 정원을 상징하는 꽃과 식물 모티브가 포함되어 있으며, 바닥 타일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꽃 무늬가 있다. 이슬람에서 정원은 천국의 상징이며, 따라서 무덤 벽에 묘사되고 사마르칸트 자체에서도 재배되었다.[51] 사마르칸트는 새로운 정원과 마음의 즐거움 정원이라는 두 개의 주요 정원을 자랑했으며, 이곳은 대사와 중요한 손님들을 위한 중심 오락 지역이 되었다. 1218년 징기스칸의 친구인 엘류 추차이는 사마르칸트가 "수많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모든 가정에 정원이 있었으며, 모든 정원은 잘 설계되어 운하와 분수가 둥글거나 네모난 연못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풍경에는 버드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있었고, 복숭아와 자두 과수원이 나란히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사마르칸트를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보고했다.[104] 티무르 시대 건물에서 꽃 무늬가 있는 페르시아 카펫도 발견되었다.[105]
전통적인 이슬람 건축의 요소는 정원이 있는 중앙 안뜰을 중심으로 지어진 전통적인 진흙 벽돌 우즈베키스탄 주택에서 볼 수 있다.[106] 이러한 주택 대부분은 페인트칠된 나무 천장과 벽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도시 서쪽의 주택은 주로 19세기와 20세기에 지어진 유럽식 주택이다.[106]
사마르칸트 건축에는 투르크-몽골의 영향도 분명하다. 능묘의 멜론 모양 돔은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매장하거나 다른 처리를 하기 전에 전시했던 전통적인 몽골 천막인 유르트(yurt) 또는 게르(ger)을 반영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여겨진다. 티무르는 벽돌과 나무와 같은 더 내구성 있는 재료로 천막을 지었지만, 그 목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51] 티무르 자신의 시신이 안치된 방에는 말이나 야크 꼬리털을 원형으로 배열한 꼭대기를 매단 막대인 "투그(tug)"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깃발은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귀중한 상품인 말을 희생하는 고대 투르크 전통을 상징했다.[51] 투그는 오스만 투르크 시대까지 많은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일종의 기병 표식이기도 했다.
사마르칸트 건물의 색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배적인 건축 색상은 파란색이며, 티무르는 이를 다양한 개념을 전달하는 데 사용했다. 예를 들어, 구르아미르 영묘의 파란색 음영은 애도의 색깔이며, 당시 중앙아시아에서는 파란색이 애도의 색깔이었고, 오늘날에도 여러 문화권에서 그러하다. 파란색은 중앙아시아에서 "마귀의 눈"을 막을 수 있는 색깔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개념은 도시 안팎의 파란색으로 칠해진 문의 수에서 알 수 있다. 또한 파란색은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특히 귀한 자원인 물을 나타냈습니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벽은 도시의 부를 상징했다.
금도 도시에서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티무르의 궁륭에 대한 매료는 구르아미르 영묘에서의 과도한 금 사용뿐만 아니라 도시와 그의 건물에서 자수된 금실의 사용을 설명한다. 몽골인들은 중국식과 페르시아식 금실 직물뿐만 아니라 이란과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짠 나시즈[107]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오고타이 칸과 같은 몽골 지도자들은 스스로 금실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시에 직물 공방을 건설했다.

14세기 말부터 15세기에 걸쳐 티무르 제국의 수도로서 번영하였다. 시가지 내부에는 티무르의 묘인 구르아미르 영묘와 비비하님 모스크 등이, 아프라시압에는 샤히 진다 묘역이 건설되었고, 교외에는 티무르 왕조의 왕족, 아미르, 신하들이 크고 작은 정원과 목장, 숙영지를 설치하였다.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 시대에는 울루그벡 천문대가 건설되었고, 당시 건물을 포함하여 문화 교차로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티무르 제국 후기에는 여러 왕가가 사마르칸드를 놓고 다툼을 반복하게 되었고, 후일 무굴 제국의 시조가 된 바부르도 고향인 페르가나에서 여러 차례 이곳에 원정을 와서 이 다툼에 참여하여 여러 차례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 그 후 1500년에 킵차크 칸국 계열의 우즈벡 세력인 샤이바니 왕조의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후에는 잔드 왕조 등 투르크계 우즈벡인의 국가인 부하라 칸국에 속하여 수도의 지위는 부하라로 옮겨졌지만, 17세기에는 울루그벡 마드라사와 대응하는 셰르도르 마드라사가 추가되어 현재의 레기스탄 광장이 형성되는 등 중앙아시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기능하였다.
18세기 중반부터는 우즈벡 여러 정권 내부의 대립과 주변 여러 부족의 항쟁, 그리고 이란 아프샤르 왕조의 나디르 샤의 침공 등으로 인해 황폐화가 심해졌다. 19세기에는 부하라 아미르국의 발전에 따라 부흥되었지만, 아미르 나스룰라가 죽고 부하라의 지배력이 약해지자, 1868년에는 러시아군에 점령되어 러시아령 투르키스탄에 편입되었다.
5. 2. 종교
8세기, 중앙아시아 아랍 침략 시기(우마이야 칼리파국)에 이슬람이 사마르칸드에 전파되었다. 그 이전 사마르칸드 주민 대부분은 조로아스터교도였으며,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과 불교도도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 이후 여러 이슬람 지배 세력의 통치 기간 동안 사마르칸드에는 수많은 모스크, 마드라사, 미나레트, 사당, 묘소가 건설되었으며, 많은 건축물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하디스 편찬으로 유명한 이슬람 학자(울레마)인 이맘 부하리의 사당이 있다. 그의 저서인 『사히흐 알부하리』는 수니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히흐'') 하디스 편찬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의 다른 저서로는 『알아다브 알무프라드』가 있다. 사마르칸드는 또한 마투리디즘의 창시자인 이맘 마투리디의 사당과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에서 존경받는 예언자 다니엘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사마르칸드 주민 대부분은 무슬림이며, 주로 수니파 (하나피파)와 수피이다. 도시 무슬림의 약 80~85%가 수니파이며, 거의 모든 타지크인, 우즈베크인, 사마르칸드에 사는 아랍인을 포함한다. 사마르칸드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슬람 성스러운 계보는 호자 아흐로르 왈리 (1404~1490)와 마크두미 아잠 (1461~1542)과 같은 수피 지도자들의 후손, 사이이드 아타 (14세기 전반)와 미라코니 호자들 (이란의 미라콘 마을 출신 사이이드)의 후손들이다.[90] 샤프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자유로운 정책은 종교적 정체성 표현에 새로운 기회를 열었다. 2018년부터 사마르칸드에서는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91]

사마르칸트주(Samarqand Vilayat)는 우즈베키스탄의 두 지역(부하라주(Buxoro Region)와 함께) 중 하나로, 많은 수의 시아파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사마르칸트주의 총 인구는 3,720,000명이 넘는다.
사마르칸트 시의 시아파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여러 개의 시아파 모스크와 마드라사가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펀자브 모스크(Punjabi Mosque), 펀자브 마드라사(Punjabi Madrassah), 무라드 아블리야 묘(Mausoleum of Mourad Avliya)이다. 매년 사마르칸트의 시아파 무슬림들은 아슈라를 비롯한 다른 중요한 시아파 기념일과 축제를 기념한다.
사마르칸트의 시아파 무슬림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이라니'(Irani)라고 부르는 사마르칸트 이란인들(Samarkandian Iranians)이다. 그들의 조상들은 18세기부터 사마르칸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했고, 다른 일부는 투르크멘(Turkmens) 포로들에게 노예로 팔려 왔으며, 또 다른 일부는 사마르칸트에 주둔한 군인들이었다. 대부분은 호라산 (Khorasan), 마슈하드 (Mashhad), 사브제바르 (Sabzevar), 니샤푸르 (Nishapur), 메르브 (Merv) 출신이었고, 그 다음으로 이란 아제르바이잔 (Iranian Azerbaijan), 잔잔 (Zanjan), 타브리즈 (Tabriz), 아르다빌 (Ardabil) 출신이었다. 사마르칸트 시아파 무슬림들에는 아제르바이잔인들과 소수의 타지크인들과 우즈베크인들도 포함된다.
우즈베키스탄 내 시아파 무슬림의 총 수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수십만 명"으로 추산된다. 유출된 외교 문서에 따르면, 2007~2008년 미국 국제종교자유 대사(United States Ambassador-at-Large for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수니파 뮬라(mullah)들과 시아파 이맘(imam)들과 일련의 회의를 가졌다. 한 대화에서 부하라(Bukhara)의 시아파 모스크 이맘은 부하라주에 약 30만 명, 사마르칸트주에 약 100만 명의 시아파 무슬림이 거주한다고 말했다. 대사는 이러한 수치의 진위 여부에 대해 약간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의 보고서에서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제공한 종교 및 소수 민족 수에 대한 데이터는 민족 간 및 종교 간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 때문에 매우 "민감한 주제"로 간주된다고 강조했다. 대사는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지역의 전통 이슬람, 특히 수피즘 (Sufism)과 수니즘 (Sunnism)이 시아파를 포함한 다른 종교와 종파에 대해 큰 종교적 관용을 보이는 것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92][93][94]
사마르칸트는 소그디아나 지역의 일부였던 시절, 중앙아시아에 이슬람교가 퍼지기 훨씬 이전부터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그 후 이 도시는 중앙아시아에서 네스토리우스파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95] 당시 인구 대부분은 조로아스터교도였지만, 사마르칸트는 중국, 페르시아 (대이란), 유럽을 잇는 무역로의 요충지였기에 종교적으로 관용적인 분위기였다. 우마이야 칼리파 시대에 조로아스터교도와 네스토리우스파 신자들은 아랍 정복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생존자들은 다른 곳으로 피신하거나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사마르칸트에는 여러 네스토리우스파 사원이 세워졌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없다. 그 흔적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아프라시아브(사마르칸트) 유적지와 사마르칸트 외곽에서 발견되었다.
1329년부터 1359년까지 30년 동안,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마르칸트 주교구는 도시에 살고 있는 수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을 담당했다. 마르코 폴로와 차가타이 칸의 후손인 요한 엘레모시나에 따르면, 차가타이 왕조의 창시자인 엘지기데이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다. 엘지기데이의 도움으로 사마르칸트에 세례자 요한 성당이 세워졌다. 그러나 얼마 후 이슬람이 가톨릭을 완전히 대체했다.
기독교는 수세기 후인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 제국이 사마르칸트를 점령한 후 다시 나타났다. 1868년 사마르칸트에 러시아 정교회가 전래되었고, 여러 교회와 사원이 건설되었다. 20세기 초에는 더 많은 정교회 대성당, 교회, 사원이 건설되었지만, 사마르칸트가 소련의 일부였던 동안 대부분 철거되었다.
현재 사마르칸트에서 기독교는 두 번째로 큰 종교 집단이며, 주된 형태는 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다. 사마르칸트 주민의 5% 이상이 정교회 신자이며, 대부분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이며, 일부 한국인(고려인)과 그리스인도 있다.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주, 카슈카다리야주, 수르한다리야주를 포함하는 사마르칸트 지부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교구( 중앙아시아 대주교구 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소속)의 중심지이다. 이 도시에는 모스크바의 성 알렉시 대성당, 성모승천 교회, 성 조지 승리자 교회 등 몇몇 활동적인 정교회 교회가 있다. 또한 성 조지 포베도노세츠 교회와 같이 활동하지 않는 정교회 교회와 사원들도 있다.[96][97]
사마르칸트에는 폴란드인, 독일인, 일부 우크라이나인 등 수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다. 사마르칸트 중심부에는 20세기 초에 건립된 세례자 요한 가톨릭 성당이 있다.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사도좌에 속한다.[98]
사마르칸트에서 세 번째로 큰 기독교 종파는 수만 명의 아르메니아인 사마르칸트 주민들이 따르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이다. 아르메니아인 기독교인들은 19세기 말부터 사마르칸트로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소비에트 시대에 이러한 이주가 증가했다.[99] 사마르칸트 서쪽에는 수르브 아스바차친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다.[100]
사마르칸트에는 루터교, 침례교,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한국 장로교 등 수천 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있다. 이러한 기독교 운동들은 주로 1991년 우즈베키스탄의 독립 이후 사마르칸트에 나타났다.[101]
5. 3. 언어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사마르칸트 주민 대다수는 우즈베크인이지만, 많은 자료에서는 이 도시를 타지크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도시로 언급하며,[78][79][80][81] 도시 인구의 최대 70%에 달한다고 한다.[82] 특히 타지크인들은 도시 동부, 주요 건축물들이 위치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한다.다양한 독립적인 자료에 따르면, 타지크인은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다. 우즈베크족은 두 번째로 큰 집단이며,[83] 사마르칸트 서부에 주로 거주한다. 일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모국어로 타지크어를 사용하지만 중앙 정부에 우즈베크인으로 등록되어 있어 "우즈베크인"으로 자신을 밝히기 때문에 정확한 인구 통계 수치를 얻기가 어렵다. 폴 버그네는 1926년 인구 조사에서 상당수의 타지크 인구가 우즈베크인으로 등록되었다고 설명한다.[83]
사마르칸트에는 "이란계 민족",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아르메니아인, 아제르바이잔인, 타타르인, 고려인, 폴란드인, 독일인 등 다양한 민족 공동체가 있으며, 이들은 주로 도시 중심부와 서부 지역에 거주한다. 이들 민족은 19세기 말부터, 특히 소비에트 시대에 사마르칸트로 이주했으며, 대부분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사마르칸트 서쪽과 남서쪽 극단에는 주로 우즈베크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아랍인 인구가 있다. 고령층의 일부만이 중앙아시아 아랍어를 사용한다. 사마르칸트 동부에는 한때 부하라(중앙아시아) 유대인들의 큰 마할라(마을)가 있었지만, 1970년대부터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유럽으로 이주했다. 오늘날 사마르칸트에는 몇몇 유대인 가정만 남아 있다.
사마르칸트 동부에는 중앙아시아 "집시"[84](리울리, 주기, 파리아 등 여러 집단)가 거주하는 여러 지역이 있다. 이들 민족은 수세기 전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 지역에서 사마르칸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타지크어 방언과 함께, 특히 파리아어를 포함한 자체 언어를 사용한다.

사마르칸트를 포함한 우즈베키스탄 전역의 국가 및 공식 언어는 우즈베크어이다. 우즈베크어는 튀르크어족 언어 중 하나이며, 사마르칸트에 거주하는 우즈베크인, 투르크멘인, 사마르칸트 이란인, 그리고 대부분의 사마르칸트 아랍인의 모국어이다.
우즈베키스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어는 사마르칸트에서 사실상 제2의 공식 언어이며, 사마르칸트의 간판과 비문의 약 5%가 러시아어로 쓰여 있다. 사마르칸트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폴란드인, 독일인, 고려인, 대다수의 우크라이나인, 대다수의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일부 타타르인, 그리고 일부 아제르바이잔인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사마르칸트에서는 "Samarkandskiy vestnik"(러시아어: Самаркандский вестник, 사마르칸트 헤럴드) 등 여러 러시아어 신문이 발행되며, 사마르칸트 TV 채널인 STV는 일부 방송을 러시아어로 진행한다.
사실상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흔한 모국어는 타지크어(타지크어는 페르시아어의 방언 또는 변종이다)이다. 사마르칸트는 페르시아어가 발전한 도시 중 하나였다. 아부르카심 피르도우시, 오마르 카얌, 압드루라만 자미, 아부 압둘라 루다키, 수자니 사마르칸디, 카말 쿠잔디 등 수천 년 동안 많은 고전 페르시아 시인과 작가들이 사마르칸트에 살거나 방문했다.
공식적인 입장은 우즈베크어가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흔한 언어라는 것이지만, 일부 자료에 따르면 주민의 약 30%만이 모국어로 우즈베크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나머지 70%의 경우 타지크어가 모국어이며, 우즈베크어는 제2언어, 러시아어는 제3언어이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 인구 조사가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 타지크어가 사마르칸트에서 두 번째로 흔한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공식 언어 또는 지역 언어의 지위를 누리지는 못한다.[85][79][80][86][81][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르칸트 주립대학교의 10개 학부에서는 타지크어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타지크어 문학과에는 170명이 넘는 학생이 재학 중이다.[88] 사마르칸트에서 키릴 문자 타지크 문자로 발행되는 신문은 Ovozi Samarqand(타지크어: Овози Самарқанд — 사마르칸트의 목소리) 한 곳뿐이다. 지역 사마르칸트 STV와 "사마르칸트" TV 채널, 그리고 한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타지크어 방송을 제공한다. 2022년에는 타지크어로 된 분기별 문학 잡지인 ''Durdonai Sharq''가 사마르칸트에서 발간되었다.[88]
우즈베크어, 타지크어, 러시아어 외에도 사마르칸트에서 사용되는 모국어로는 우크라이나어, 아르메니아어, 아제르바이잔어, 타타르어, 크림 타타르어, 아랍어(극소수의 사마르칸트 아랍인을 위해) 등이 있다.
6. 인물
- 바흐티요르 파질로프(Bakhtiyor Fazilov)
- 탁흐미나 이크로모바(Takhmina Ikromova), 우즈베키스탄 리듬체조 선수
7. 교통
사마르칸트는 잘 발달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소련 시대부터 현재까지 시내버스와 택시(GAZ-21, GAZ-24, GAZ-3102, VAZ-2101, VAZ-2106, VAZ-2107)가 운행되고 있다. 주로 삼오토(SamAuto)와 이스즈(Isuzu Motors) 버스가 가장 일반적이고 인기 있는 교통 수단이다. 대부분 쉐보레(Chevrolet)와 대우(Daewoo Motors) 세단인 택시는 대개 노란색이다. 2017년부터는 바리오 LF.S 체코 트램을 주로 사용하는 사마르칸트 트램 노선이 여러 개 운행되고 있다. 소련 시대부터 2005년까지는 무궤도 전차(트롤리버스)도 이용되었다. 사마르칸트에는 대우 다마스(Daewoo Damas)와 GAZelle 미니버스인 "마르슈르트카(Marshrutka)"도 운행된다.
1950년까지 사마르칸트의 주요 교통 수단은 말과 당나귀가 끄는 마차와 "아라바(Araba (carriage))"였다. 1924년부터 1930년까지는 증기 트램이 운행되었고, 1947년부터 1973년까지는 현대적인 트램이 운행되었다.
7. 1. 항공
사마르칸트 국제공항이 있으며, 타슈켄트, 모스크바 등으로 운항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인천국제공항에서 직항편은 없고, 타슈켄트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우즈베키스탄항공이 운항하고 있기 때문에, 경유를 하거나 국내선 편으로 갈아타야 한다.[123]타슈켄트와 연결하는 고속 열차 아프로시욥 호가 매일 왕복 운행되고 있다. 사마르칸트 시 북쪽에는 1930년대 소련 시대에 개장한 사마르칸트 국제공항이 있다. 2019년 봄 기준으로 사마르칸트 국제공항은 타슈켄트, 누쿠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카잔, 이스탄불, 두샨베로 가는 정기편을 운항하고 있으며, 다른 도시로 가는 전세편도 이용 가능하다.
7. 2. 철도
타슈켄트와 연결하는 고속 열차 아프로시욥 호가 매일 왕복 운행되고 있다.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중요한 철도 교차점이며, 모든 국내 동서 철도 노선이 이 도시를 통과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하고 긴 노선은 타슈켄트–쿤그라드 노선이다. 타슈켄트-사마르칸트 고속철도가 운행되어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잇는다. 사마르칸트는 또한 사라토프–사마르칸트, 모스크바–사마르칸트, 아스타나–사마르칸트 등 국제 철도 연결망도 갖추고 있다.[123]1879년부터 1891년까지 러시아 제국은 중앙아시아 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트란스카스피아 철도를 건설했다. 이 철도는 카스피해 연안의 크라스노보드스크(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바시)에서 시작되었다. 종착역은 처음에는 사마르칸트였으며, 사마르칸트 역은 1888년 5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그러나 10년 후, 이 철도는 동쪽으로 타슈켄트와 안디잔까지 연장되었고, 이름이 중앙아시아 철도로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크 SSR과 소비에트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역 중 하나로 남았다.
8. 자매 도시
사마르칸트는 다음 도시들과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109]
국가 | 도시 |
---|---|
Türkiye|튀르키예tr | 이스탄불 |
Türkiye|튀르키예tr | 이즈미르 |
Türkiye|튀르키예tr | 에스키셰히르 |
Türkiye|튀르키예tr | 안탈리아 |
ایران|이란fa | 니샤푸르 |
Україна|우크라이나uk | 리비우 |
افغانستان|아프가니스탄ps | 발흐 |
Türkmenistan|투르크메니스탄tk | 메르브 |
Тоҷикистон|타지키스탄tg | 후잔트 |
Oʻzbekiston|우즈베키스탄uz | 부하라 |
Perú|페루es | 쿠스코 |
پاکستان|파키스탄ur | 라호르 |
대한민국|대한민국한국어 | 경주 |
Indonesia|인도네시아id | 반다아체 |
भारत|인도hi | 뉴델리 |
تونس|튀니지ar | 카이르완 |
Россия|러시아ru | 크라스노야르스크 |
Россия|러시아ru | 사마라 |
中华人民共和国|중화인민공화국중국어 | 시안 |
9. 갤러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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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tat.uz/[...]
202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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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te Committee of the Republic of Uzbekistan on stat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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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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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ws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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