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귀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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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동 귀래정은 조선 중종 8년(1513) 이굉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안동에 지은 정자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은퇴 후 삶과 학문적, 예술적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귀래정에는 이현보, 이우, 이식, 윤훤 등 30여 명의 시가 보존되어 있으며, 앞면 2칸, 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로 팔작지붕 양식을 갖추고 있다.

안동 귀래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귀래정 정보
귀래정
귀래정
이름귀래정 (歸來亭)
국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자료
지정번호17
지정일1985년 8월 5일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옹정골길 19-8 (정상동)
시대알 수 없음 (정보 없음)
소유자고성이씨문중
참고사항알 수 없음 (정보 없음)
면적알 수 없음 (정보 없음)
수량1동
전승지알 수 없음 (정보 없음)
전승자알 수 없음 (정보 없음)
설명알 수 없음 (정보 없음)
웹사이트알 수 없음 (정보 없음)
문화재청 ID31,0017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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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립 배경 및 역사

이굉(1414∼1516)은 25세 때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으나, 권력 다툼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중종 8년(1513)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으로 돌아와 귀래정을 지었다. 정자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왔다고 한다.

귀래정에는 이현보, 이우, 이식, 윤훤 등 30여 명의 시가 보존되어 있다.

2.1. 이굉의 생애와 귀향

이굉(1489∼1574)은 25세 때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으나, 권력 다툼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중종 8년(1513)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으로 돌아와 귀래정을 지었다. 정자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왔다.

2.2. 귀래정 관련 인물

귀래정에는 이현보, 이우, 이식, 윤훤 등 30여 명의 시가 보존되어 있다. 이들은 이굉과 교류하며 귀래정에서 학문과 예술을 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건축 양식

귀래정은 앞면 2칸, 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마루 주위를 제외한 다른 곳의 기둥은 각이 있고 창문에 쐐기 기둥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3.1. 구조 및 특징

귀래정은 앞면 2칸, 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마루 주위를 제외한 다른 곳의 기둥은 각이 있고 창문에 쐐기 기둥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4. 문화적 의의

귀래정은 조선 중종 8년(1513) 이굉(1414∼1516)이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에 지은 정자로, 은퇴 후 삶과 학문적, 예술적 교류의 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유산이다. 이굉은 25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으나, 권력 다툼에 휘말려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이름을 따 귀래정을 짓고, 자연과 학문을 벗삼아 여생을 보냈다. 이는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자연과 학문을 추구했던 그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귀래정에는 이현보, 이우, 이식, 윤훤 등 30여 명의 시가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