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백 (1931년)
1. 개요
이기백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이다. 육군 대장으로 예편 후, 제2야전군 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역임했다. 아웅 산 묘역 폭탄 테러 사건에서 생존했으며, 제5공화국 시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과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을 지냈다. 이후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평화의 댐 건설을 주도했다.
| 이름 | 이기백 |
|---|---|
| 현지어 표기 | 李基百 |
| 별명 | 호(號)는 석관(石寬) |
| 본관 | 고성(固城) |
| 출생일 | 1931년 10월 20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연기군 |
| 사망일 | 2019년 12월 16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 복무 기간 | 1955년~1985년 |
| 근무 | 합동참모본부 |
| 지휘 | 합동참모총장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베트남 전쟁 |
| 기타 이력 | 국방부 장관 한나라당 특임고문 자유민주연합 특임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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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대전공업고등학교 동문 -
염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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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대전공업고등학교 동문 -
송백헌
송백헌은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및 명예교수를 지내며 많은 문학박사를 배출하고 한국문인총연합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이자 수필가, 교육자이다. -
육군통신학교 동문 -
편거영
편거영은 《국도신문》 기자와 《Cinema Pan》 편집장 겸 편집주간을 역임하고 영화 《비단이 장사 왕 서방》 시나리오를 통해 데뷔한 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 영화 감독, 소설가, 언론인이다. -
육군통신학교 동문 -
박종규 (1944년)
박종규(1944년)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여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하고 김오랑 소령을 살해했으며,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사면 후 유족에게 사죄하고 2010년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
대한민국의 테러 피해자 -
윤보선
윤보선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한국민주당 창당, 서울특별시장 및 상공부 장관 역임, 제2공화국 대통령 역임, 그리고 민주화 운동 참여 등의 활동을 했다. -
대한민국의 테러 피해자 -
함병춘
함병춘은 법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서 연세대학교 법학과 교수, 박정희 정부의 외교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및 주미 한국 대사, 전두환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며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했으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순직했다.
2. 학력
| 연도 | 학교 | 학위 |
|---|---|---|
| 1950년 | 대전고등공업학교 | |
| 1955년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11기 | 공학사 |
| 1957년 |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 |
| 1958년 | 대한민국 육군통신학교 | |
| 1959년 | 대한민국 육군공병학교 | |
| 1960년 | 미국 육군포병학교 | |
| 1962년 | 대한민국 육군포병학교 | |
| 1963년 | 대한민국 육군기갑학교 | |
| 1966년 | 대한민국 육군대학 | |
| 1970년 | 미국 육군참모대학교 | |
| 1972년 |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17기 | 행정학사 |
| 1983년 |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 행정학 석사 |
3. 군 경력
이기백은 1970년 육군대학 특수학부장을 시작으로, 1972년 연대장, 1973년 육군 전투교육사령부 교육참모를 역임했다. 1975년 3사 교수부장, 1976년 육군 수도군단 참모장, 1977년 훈련단장, 1979년 사단장을 거쳤다. 1981년 군단장, 1982년 육군참모본부 차장을 역임한 후 1983년 2군사령관에 올랐다. 같은 해 합동참모본부 의장에 임명되었고, 1985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에서 생존하여 육군사관학교에 당시 착용했던 정복을 기증했다.
3.1. 아웅산 묘역 폭탄테러 사건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여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 당시 이기백은 합동참모본부 의장 자격으로 아웅산 묘소를 참배하러 갔다. 이때 아웅산 묘역 폭탄테러사건이 발생하여 피해를 입었지만, 당시 전속부관이었던 전인범 중위의 신속한 응급조치로 18명의 장·차관들 중 유일하게 생존했다. 이 사고를 당한 이기백은 귀국 후 자신의 모교인 육군사관학교에 이 당시 입고 있던 정복을 기증하였으며, 현재도 이 정복은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4. 정치 경력
이기백은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과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을 지냈다. 1986년에는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고, 1987년 민주정의당 국책평가위원을 맡았다. 이후 1990년 민주자유당 촉탁위원, 1996년 신한국당 특임위원, 1998년 한나라당 특임고문, 2001년 자유민주연합 특임고문을 역임하였다.
4.1. 평화의 댐 건설 주도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에서 생존한 이기백은 대국민 사기극인 평화의 댐 건설을 주도한 인물이다. 1986년 북한이 금강산댐(임남댐)을 건설하자, 정부는 이 댐이 붕괴될 경우 63빌딩 중턱까지 물이 차오를 것이라며 위협을 과장했다. 이규호 건설부 장관은 특별 담화를 통해 이러한 내용을 발표했고, 주요 언론들은 '물의 남침', '서울 전역 침수' 등을 보도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기백 국방부 장관은 "200억t 물로 수공작전을 전개하면 핵무기보다 큰 위력을 가진다"고 발언하여 국민들을 공포에 빠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