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현보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498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사간원정언으로 활동하며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했다가 유배되기도 했으나 중종반정 이후 복직되어 밀양부사, 안동부사, 충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1523년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를 하사받았으며,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대구부윤, 경상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542년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을 벗 삼아 생활했다. 그는 문장에 능하여 자연을 노래한 시조를 많이 남겼으며, 특히 <어부가>를 5장으로 고쳐 지어 <청구영언>에 실렸다. 저서로는 <농암문집>이 있으며, 초상화는 보물로, 농암각자와 영정 후사본 및 금서대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이현보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이현보 |
한자 이름 | 李賢輔 |
자 | 비중(菲仲) |
호 | 농암(聾巖), 설빈옹(雪鬢翁) |
별호 | 미상 |
아호 | 미상 |
시호 | 효절(孝節) |
국적 | 조선 |
성별 | 남성 |
출생일 | 1467년 8월 28일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1555년 7월 1일 |
사망지 | 미상 |
매장지 | 미상 |
본관 | 영천(永川) |
아버지 | 미상 |
어머니 | 미상 |
배우자 | 미상 |
형제자매 | 미상 |
자녀 | 미상 |
친인척 | 미상 |
관직 정보 | |
직책 | 미상 |
재임 | 미상 |
전임자 | 미상 |
공동 재위자 | 미상 |
후임자 | 미상 |
대리청정 | 미상 |
영의정 | 미상 |
임금 | 미상 |
기타 정보 | |
분야 | 미상 |
스승 | 미상 |
주요 제자 | 미상 |
성과 | 미상 |
주요 저작 | 미상 |
서훈 | 미상 |
2. 생애
이흠의 아들로 안동 도산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32세에 벼슬길에 올랐다. 예문관검열, 춘추관기사관, 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되었으나,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했다가 안동에 유배되었다.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된 후 밀양부사, 안동부사, 충주목사를 지냈고, 1523년(중종 18)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이후 병조참지, 동부승지, 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 경주부윤,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 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중종 37)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 조선 중종 임금과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였으나 소매를 뿌리치고 거절하였고, 배에는 오직 화분 몇 개와 바둑판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전사옹(田舍翁)으로 자처하며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였고, 사람들은 그를 신선으로 여겼다. 송재 이우를 비롯하여 그의 조카 퇴계 이황과도 대를 이어가며 친분을 두텁게 하였다.
벼슬은 참판에 그쳤으나, 품계는 조선 명종 때인 1549년에 숭정대부에 이르렀다. 명종실록에서는 그의 만년 지조를 으뜸으로 친다고 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노나라 래자에 비견되었고, 1519년 안동부사 재직 당시 중양절에 화산양로연(花山養老宴)을 열어 부모님을 포함한 고을의 80세 이상 노인들을 초대해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어 부모님을 즐겁게 하였다.
그는 특히 문장에 뛰어나 자연을 노래한 시조가 많이 있는데, 10장으로 전해지던 <어부가>를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에 실려 있다. <효빈가>, <농악가>, <농암가> 등이 그의 저서인 <농암문집>에 수록되어 있다.[1]
2. 1. 초기 생애
이흠의 아들로 안동 도산 분천리에서 태어났다.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관·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이때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했다가 안동에 유배되었으나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된다.[1]
2. 2. 관직 생활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 춘추관기사관, 예문관봉교 등을 거쳤다. 1504년(연산군 10)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되었다.[1]이때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했다가 안동에 유배됐으나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되었다.[1]
밀양부사, 안동부사, 충주목사를 지냈고, 1523년(중종 18)에는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1]
이후 병조참지, 동부승지, 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 경주부윤,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 호조참판을 지냈다.[1]
1542년(중종 37)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7월,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농암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조선 중종 임금과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였으나 소매를 뿌리쳐 거절하였다.[1]
농암의 벼슬은 비록 참판에 그쳤으나 품계는 조선 명종 치세때인 1549년에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이르렀다.[1]
2. 3. 낙향과 만년
이흠의 아들로 안동 도산 분천리에서 태어났다.[1]1542년(중종 37)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1] 농암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조선 중종과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였으나 소매를 뿌리쳐 거절하였고,[1] 강가에서 배를 탈 때 배에는 오직 화분 몇 개와 바둑판 하나뿐이었다고 한다.[1]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스스로를 전사옹(田舍翁)이라 칭하며 집 앞 시냇가에 배를 띄우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니, 사람들이 농암을 신선으로 여겼다.[1] 특히 농암은 송재 이우를 비롯하여 그의 조카 퇴계 이황과도 대를 이어가며 친분을 두텁게 하였다.[1]
농암의 벼슬은 비록 참판에 그쳤으나, 품계는 조선 명종 때인 1549년에 숭정대부에 이르렀다.[1] 명종실록의 이현보 졸기에서는 만년의 지조가 완전하여 으뜸으로 친다고 하였다.[1]
효성이 지극하여 노나라 래자에 비견되었고, 1519년 안동부사 재직 당시 중양절에 화산양로연(花山養老宴)을 열어 부모님을 포함한 고을의 80세 이상 노인들을 초대해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어 부모님을 즐겁게 하였다.[1]
그는 특히 문장에 뛰어나 자연을 노래한 시조가 많이 있는데, 10장으로 전해지던 <어부가>를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에 실려 있다. <효빈가>, <농악가>, <농암가> 등이 그의 저서인 <농암문집>에 수록되어 있다.[1]
2. 4. 효행
이현보는 효성이 지극하여 노나라 래자에 비견되었으며, 1519년 안동부사 재직 당시 중양절에 화산양로연(花山養老宴)을 열어 부모님을 포함한 고을의 80세 이상 노인들을 초대해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어 부모님을 즐겁게 하였다.[1]3.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
고조부 | 이헌(李軒) |
증조부 | 이파(李坡) |
조부 | 이효손(李孝孫) |
아버지 | 이흠(李欽) |
어머니 | 안동 권씨 (권겸의 딸) |
부인 | 안동 권씨 (권효성의 딸) |
장남 | 이석량(李碩樑) |
차남 | 이문량(李文樑) |
삼남 | 이희량(李希樑) |
사남 | 이중량(李仲樑) |
오남 | 이계량(李季樑) |
육남 | 이숙량(李叔樑) |
이현보의 고조부 이헌(李軒)은 고려 말에 군기감소윤을 지냈으며, 영천 이씨 소윤공파의 파조이다. 이현보는 후손이 있다.
4. 작품 활동
이현보는 중종 때 어부단가(漁父短歌)를 지었는데, 이는 고려 때부터 전해 오던 어부단가를 고쳐 지은 것이다. 모두 5장으로 어부의 생활을 읊은 내용이며, 청구영언, 해동가요에 그 가사가 전해진다.[2]
4. 1. 어부사(漁父詞)
고려 때부터 전해 오던 어부단가 10수를 고쳐 중종 때 이현보가 지은 연시조는 어부단가(漁父短歌)이다. 모두 5장으로 어부의 생활을 읊은 것이며, 본래의 어부단가 10수는 전하지 않는다. 그 가사는 청구영언, 해동가요에 전해 온다.[2]4. 1. 1. 주제 및 해제
이현보는 중종 때 연시조인 어부단가(漁父短歌)를 지었는데, 이는 고려 때부터 전해 오던 어부단가 10수를 고쳐 지은 것이다. 모두 5장으로 내용은 어부의 생활을 읊은 것이며 본래의 어부단가 10수는 전하지 않는다. 그 가사는 청구영언, 해동가요에 전해 온다.[2]- 주제: 강호한정(江湖閑情). 자연에 은거하는 어부의 생활
- 해제: 자연을 벗 삼아 고기잡이를 하는 한가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는 "가어옹(假漁翁)"으로, 실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가어옹"이란 속세를 떠나 강호에서 낚시하면서 시나 읊고 술잔을 기울이던 양반을 이르는 말로, 작품에서도 실제 어부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천심녹수(千尋綠水)", "만첩청산(萬疊靑山)"과 같이 상투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관념적으로 어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의 어부의 삶이란 곧 자연 속에서의 은둔 생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5수의 초장과 중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다.
5. 저서
- 농암문집
6. 문화재
- 이현보 초상 - 보물 제872호
- 농암각자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
- 농암 영정 후사본 및 금서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
7. 기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인수대비에서 배우 한동환이 이현보 역을 연기했다.
7. 1. 드라마
2011년부터 2012년까지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인수대비에서 배우 한동환이 이현보 역을 연기했다.7. 2. 갤러리
참조
[1]
서적
이현보
: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서적
어부사(漁父詞)
: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