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낙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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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동 낙강정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에 위치한 정자로, 안동 권씨 권예 선생의 정자이다. 원래 예천에 있던 것을 이건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 건물로 전면 1칸은 누마루를 설치하고 계자난간을 둘러 열린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마애선생문집』등의 문헌 기록과 낙강정·판서연 등의 현판이 남아있어 역사적, 고건축적 가치를 지닌다.

안동 낙강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낙강정 정보
안동 낙강정
안동 낙강정
이름안동 낙강정
한자 표기安東 洛江亭
유형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587
지정일2011년 6월 2일
해제일해당 없음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72
시대조선시대
소유해당 없음
참고해당 없음
면적해당 없음
수량1동
전승지해당 없음
전승자해당 없음
설명해당 없음
문화재청 ID31,05870000,37
낙강정
국가대한민국 안동시
유형문화유산
번호33
지정일2010년 3월 12일
해제일2011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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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낙강정은 원래 예천에 있었으나, 이후 현재 위치로 이건되었다. 이건기와 상량문이 남아있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낙강정의 평면 구성은 영양 서석지의 경정, 봉화 도암정과 유사하여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2.1. 건립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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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강정(洛江亭)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 아담한 건물로, 마애(磨厓) 권예(權輗) 선생의 정자이다. 권예는 1516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519년 기묘사화조광조 일파의 탄압을 반대하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전해진다.

권예는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학문과 자연을 벗 삼아 은둔 생활을 하였다. 낙강정은 이러한 그의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공간으로, 세속의 번잡함을 떠나 자연 속에서 학문에 정진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2.2. 이건 과정

낙강정은 원래 예천에 있었던 정자였으나, 현재 위치로 이건되었다. 이건기와 상량문이 남아있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평면 구성은 영양 서석지의 경정, 봉화 도암정과 유사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 건물로, 전면 1칸은 누마루로 설치하고 주변에 계자난간을 둘러 열린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마애선생문집』등의 문헌기록과 낙강정(洛江亭), 판서연(判書淵) 등의 현판이 남아있어 당호가 확실하며, 역사적, 고건축적 가치가 있다.

3. 건축

낙강정은 권예 선생의 정자로, 원래 예천에 있던 것을 이건하였다고 한다. 이건기와 상량문이 남아 있으나, 자세한 연호가 기록되지 않아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애선생문집』등의 문헌 기록과 낙강정(洛江亭), 판서연(判書淵) 등의 현판이 현존하고 있어 역사적, 고건축학적 가치가 있다.

3.1. 구조적 특징

낙강정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구릉 위에 지어진 아담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 구조이며, 전면 1칸에는 누마루를 설치하고 주변에 계자난간을 둘러 열린 공간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평면 구성은 서석지의 경정 및 봉화 도암정과 유사하다.

4. 관련 인물

안동 권씨 권예는 1516년 문과에 급제, 1519년 기묘사화조광조 일파 탄압에 반대했다. 낙동강변에 위치한 낙강정은 그의 정자이며, 『마애선생문집』, 낙강정·판서연 현판 등이 남아있다.

4.1. 권예(權輗)

권예(權輗)는 안동 권씨로, 1516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519년 기묘사화조광조 일파의 탄압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마애(磨厓) 권예(權輗) 선생의 정자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낙강정이다.

5. 관련 기록

『마애선생문집』등의 문헌 기록이 남아있고, 낙강정(洛江亭)·판서연(判書淵) 등의 현판이 현존하여 역사적·고건축적으로 가치가 있다.

5.1. 문헌 기록

안동 권씨 권예는 1516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519년 기묘사화조광조 일파의 탄압을 반대하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전해진다.

낙강정(洛江亭)은 원래 예천에 있던 정자를 이건한 것으로, 이건기와 상량문이 있으나 자세한 연호를 기록하지 않아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마애선생문집』등의 문헌 기록이 남아있고 낙강정(洛江亭)·판서연(判書淵) 등의 현판이 현존하고 있다.

5.2. 현판

낙강정(洛江亭)·판서연(判書淵) 등의 현판이 현존하고 있어 당호가 확실하며, 역사적·고건축적으로 가치가 있다.

6. 문화재적 가치

낙강정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 아담한 건물로, 마애(磨厓) 권예 선생의 정자이다. 안동 권씨인 권예는 1516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519년 기묘사화조광조 일파의 탄압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로 전해진다.

원래 예천에 있었던 정자를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하며, 당시의 이건기와 상량문이 있으나 자세한 연호를 기록하지 않아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자의 평면 구성이 영양 서석지의 경정 및 봉화 도암정과 유사한 유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 건물이다. 전면 1칸은 누마루를 설치하고 주변에 계자난간을 둘러 열린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어 특색이 있다.

『마애선생문집』등의 문헌 기록이 남아있고 낙강정(洛江亭), 판서연(判書淵) 등의 현판이 현존하고 있어 당호가 확실하며, 역사적·고건축적으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