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청원루
1. 개요
안동 청원루는 조선 중종 때 김번이 지은 집을, 1646년 청음 김상헌이 누각으로 다시 지은 건물이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여 6년간 옥살이를 하였으며, 청원루는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34년 홍수로 인해 2채의 건물 중 1채가 유실되어 현재는 7칸짜리 건물만 남아있다. 청원루는 17세기 재지사족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며,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19년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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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안동 청원루 |
|---|---|
| 한자 표기 | 安東 淸遠樓 |
| 유형 | 보물,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2050 (보물), 199 (유형문화재) |
| 지정일 | 2019년 12월 30일 (보물), 1985년 10월 15일 (유형문화재) |
| 해제일 | 2019년 12월 30일 (유형문화재) |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번지 |
| 시대 | 조선 시대(1618년 중창) |
| 관리 | 김성진 |
| 참고 사항 | 목조 / 정면5칸‧측면2칸, 팔작지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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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완공된 건축물 -
히메지성
히메지성은 효고현 히메지시에 있는 일본의 성으로, 1346년에 처음 건설되어 1609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일본 성곽 건축의 전형적인 사례로 199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1618년 완공된 건축물 -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
셰이크로트폴라 모스크는 이란 이스파한에 있는 사파비 왕조 시대의 모스크로, 왕실의 사적인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되었으며, 모하마드 레자 이스파하니가 설계하고 돔 내부의 독특한 공작 문양과 섬세한 타일 장식이 특징이다. -
대한민국의 문화에 관한 -
새마을 운동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정부 주도로 1970년에 시작된 지역사회 개발 운동으로,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바탕으로 농촌 근대화, 소득 증대, 환경 개선을 목표로 추진되었으나,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 수단 활용, 전통문화 탄압 등의 비판도 있으며, 현재는 생명살림운동으로 변화를 모색 중이다. -
대한민국의 문화에 관한 -
부산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은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동부 지역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국으로, 1959년 한국문화방송 부산방송국으로 개국하여 TV 방송을 개국했으며, 언론 통폐합을 거쳐 현재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본사를 두고 있다. -
안동시의 문화유산 -
안동소주
안동소주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전통 증류주로, 조옥화, 박재서 두 명인의 제조 방식이 있으며, 높은 도수와 깊은 풍미, 숙취가 적은 특징을 가지며, 신라 시대 기원설과 원나라 침입 관련설이 있고, 주세법 개정으로 생산 중단 후 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재개되었다. -
안동시의 문화유산 -
징비록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전말과 원인, 자신의 과오 등을 기록하여 반성하고 후대에 같은 전란을 경계하고자 한 책으로, 임진왜란 전모를 기록한 귀중한 사료이다.
2. 역사
조선 중종 때 김번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1646년(인조 23년)에 김상헌이 누각으로 다시 지었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했던 인물로, 청나라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는 청나라에서 풀려난 뒤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을 담아 '청원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래 41칸 2채 건물이었으나 1934년 홍수로 한 채가 허물어져 현재 앞면 7칸짜리 건물만 남아 있다. 안동 김씨 소산종회'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1618년경 김상헌에 의해 풍산 소산마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건립되었으며, 김상헌은 청서파의 영수이자 삼학사 중 한 명이다.
청원루는 17세기 재지사족의 생활행태와 건축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2019년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2.1. 건립 배경
조선 중종 때 김번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난 1646년(인조 23년)에 청음 김상헌이 누각으로 다시 지었다.
김상헌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굴욕적으로 항복하는 것에 반대한 척화주전론의 우두머리로, 청나라 군대의 지원병 요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서 6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풀려난 뒤 이 누각을 지었는데, 이름도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청원루'라 했다.
2.2. 김상헌과 청원루
조선 중종 때 김번 선생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난 1646년(인조 23년)에 청음 김상헌 선생이 누각으로 다시 지었다.
김상헌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굴욕적으로 항복하는 것을 매우 반대한 척화주전론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청군의 지원병 요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서 6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풀려난 뒤 이 누각을 지었는데, 이름도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청원루'라 했다.
안동 청원루는 1618년경 김상헌에 의해 본향인 풍산의 소산마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건립되었다. 김상헌은 청서파의 영수로 조선 유학에 미친 영향이 대단한 인물이며, 병자호란 때에는 청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갖은 곤욕을 치르다가 참형에 처해진 윤집, 홍익한, 오달제와 함께 삼학사로 불린다.
3. 건축적 특징
안동 청원루는 인방, 벽선 등 수장폭으로 결정되는 부재들을 굵고 넓게 사용하였고, 장식이 거의 없으며 곡선보다는 직선을 강조하였다. 특히 지붕은 보통 건물의 앙곡보다 약하고 안허리곡은 거의 없을 정도로 직선적이다. 난간과 머름등의 건축 조형성은 강직한 선비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17세기 중창 때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3.1. 평면 구성
청원루는 좌우 대칭으로 노론 유학자의 권위성을 표현하였지만, 좌우 전면에 누마루를 달아내고 칸살을 달리하면서까지 누마루를 강조하였다. 이는 제사와 살림보다는 조선 초기 접객 중심의 가옥 구성 형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경상도 지역에서 'ㄷ'자 평면의 별서 건물은 드물뿐더러 정자로서도 매우 희귀하다.
3.2. 구조 및 조형미
안동 청원루는 노론 유학자의 권위성을 표현하듯 좌우 대칭의 평면 구성을 보인다. 하지만 좌우 전면에 누마루를 달아내고 칸살을 달리하면서까지 누마루를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제사와 살림보다는 조선 초기 접객 중심의 가옥 구성 형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경상도 지역에서 'ㄷ'자 평면의 별서 건물은 드물뿐더러 정자로서도 매우 희귀한 형태이다.
청원루의 건축적 특징은 인방, 벽선 등 수장 폭으로 결정되는 부재들을 예외적으로 굵고 넓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재들에는 장식이 거의 없으며 곡선보다는 직선을 강조한 건축적 조형성을 보인다. 특히 지붕은 보통 건물의 앙곡보다 약하고 안허리곡은 거의 없을 정도로 지붕선이 직선적이다.
난간과 머름을 포함하여 장식이 극히 배제된 전반적인 건축의 조형성은 강직한 선비의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는 인문적인 요인이 어떻게 조형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청원루는 17세기 중창 때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건물의 전체 구성이 같은 맥락으로 이어져 있어 완전성을 갖추고 있다.
4. 문화재적 가치
안동 청원루는 1618년경 김상헌에 의해 본향인 풍산의 소산마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건립되었다. 김상헌은 청서파의 영수로 조선 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며,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는 참형에 처해진 윤집, 홍익한, 오달제와 함께 삼학사로 불린다. 이처럼 청원루는 1618년경에 김상헌이 지은 것으로 시대와 지은이가 거의 분명하고, 지은 사람이 조선 후기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청서파의 영수라는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성을 지닌다.
청원루의 평면 구성을 보면 좌우 대칭으로 노론 유학자의 권위성을 표현했지만, 좌우 전면으로 누마루를 달아내고 칸살을 달리하면서까지 누마루를 강조하였다. 이는 제사와 살림보다는 조선 초기 접객 중심의 가옥 구성 형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경상도 지역에서 'ㄷ'자 평면의 별서 건물은 드물지만, 정자로서도 매우 희귀하다.
17세기 재지사족의 생활 방식이 건물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청원루는 드물게 재지사족의 건축 형태를 볼 수 있는 시대성과 계층성이 반영된 건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청원루의 건축적 특징은 인방, 벽선 등 수장 폭으로 결정되는 부재들을 예외적으로 굵고 넓게 사용하였고, 이런 부재들에 장식이 거의 없으며 곡선보다는 직선을 강조한 건축적 조형성이다. 특히 지붕은 보통 건물의 앙곡보다 약하고 안허리곡은 거의 없을 정도로 지붕선이 직선적이다.
따라서 청원루는 17세기 재지사족의 건축적 특징이 잘 드러난 건축이라는 측면 하나로도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게다가 난간과 머름을 포함하여 장식이 극히 배제된 전반적인 건축의 조형성이 강직한 선비의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인문적인 요인이 어떻게 조형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중창 때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건물의 전체 구성이 같은 맥락으로 이어져 있어서 완전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2019년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