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지성
1. 개요
히메지성은 효고현 히메지시에 있는 일본의 성으로, 일본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성 중 하나이다. 1346년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1609년에 완성되었다. 히메지성은 일본 성곽 건축의 전형적인 사례로, 방어 시스템, 미로 같은 통로, 83개의 건물, 21개의 문, 74개의 중요 문화재, 그리고 15개의 문과 32개의 토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15년에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마쳤다.
| 이름 | 히메지 성 |
|---|---|
| 일본어 이름 | 姫路城 |
| 로마자 표기 | Himeji-jō |
| 별칭 | 시라사기조 (백로성) |
| 위치 | 히메지, 효고현, 일본 |
| 유형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성 |
| 재료 | 나무, 돌, 회반죽, 기와 |
| 높이 | 46.4m |
| 현재 상태 | 온전함, 최근 보존을 위한 복원 작업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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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 시작 | 1333년, 1300년 (히메야마 요새/성) |
|---|---|
| 확장 | 1581년, 1601년~1609년, 1617년~1618년 |
| 건설자 | 아카마쓰 노리무라 (1333년~134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1581년) 이케다 데루마사 (1601년~1609년) 혼다 다다마사 (1617년~1618년) |
| 사용 기간 | 1333년~1868년, 1945년 (군사 캠프로 사용) |
| 파괴 | 1346년 (재건축을 위해 파괴), 1601년~1609년 (재건축을 위해 파괴) |
| 수비대 규모 | 약 500명 (이케다 가문, 군인) 약 4,000명 (혼다 가문, 군인) 약 3,000명 (사카키바라 가문, 군인) 약 2,200명 (사카이 가문, 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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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유산 | 명칭: 히메지-조 ID: 661 지정 년도: 1993년 기준: 문화적 기준 (i, iv) 면적: 107 ha 완충 지역: 143 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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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곽 종류 | 평산성, 와곽식 |
|---|---|
| 천수 구조 | 3중 3층 (1580년 건설) 연립식 망루형, 5중 6층 지하 1층 (1609년 건설) |
| 건축가 | 아카마쓰 사다노리 |
| 건축 연도 | 1346년 |
| 개축 | 구로다 시게타카, 하시바 히데요시, 이케다 데루마사 |
| 성주 | 고데라 씨, 구로다 씨, 이케다 씨, 혼다 씨, 마쓰다이라 씨, 사카키바라 씨, 사카이 씨 |
| 유적 | 현존 천수, 망루, 문, 담, 석벽, 해자, 토루, 정원 |
| 문화재 | 국보 (대소 천수 및 와타루야 등 8동) 중요문화재 (망루, 와타루야 27동, 문 15동, 담 32동) 특별사적 유네스코세계유산 |
| 지역 내 위치 | 효고현 내에서의 위치 |
| 추가 링크 | 특별사적 히메지 성 유적 정비 보존 계획 (히메지시) 안내 (유네스코) 특별사적 히메지 성 유적 정비 보존 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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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이름 | 히메지 성 |
|---|---|
| 로마자 표기 | Himeji-jo |
| 일본어 표기 | 姫路城 |
| 또다른 일본어 이름 | 白鷺城 |
| 로마자 표기 | Shirasagij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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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6년 완공된 건축물 -
크리스토플 탑
크리스토플 탑은 스위스 베른에 위치했던 중세 시대 감시탑으로, 목재로 건설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된 후 석조 구조물로 재건되었으며, 재건 당시 시계가 설치되었으나 이후 새로운 기계 장치로 교체되었다. -
고데라씨 -
구로다 요시타카
구로다 요시타카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하시바 히데요시의 측근으로서 모리 씨 공략과 규슈 평정에 공헌했으며, 천하 통일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가담하여 서군을 제압하는 데 기여했고, 만년에는 조스이라는 호를 사용하며 은거하여 '이 시대의 장량'이라는 평을 받았다. -
효고현의 국보 -
고베 시립 박물관
고베 시립 박물관은 사립 미술관에서 시작하여 여러 단계를 거쳐 1982년 현재의 모습으로 통합되었으며,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과 다양한 중요 문화재를 소장하고 시민들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효고현 고베시의 박물관이다.
2. 역사
히메지성은 에도 시대 이전에 건조된 천수각을 가진 성곽 중 하나로, 현존하는 천수각을 가진 12곳의 성 가운데 하나이다. 천수각이 국보인 성은 히메지성을 포함하여 마쓰모토성, 이누야마성, 히코네성, 마쓰에성 이 다섯 곳뿐이다. 히메지성은 이들 성 중에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뛰어나 '천하의 명성', '일본 제일의 명성'이라 불린다.
에도 시대에 성이 필요없게 되자, 히메지성은 개인에게 팔렸으나, 성을 구입한 사람은 민가의 건축물에 재사용하려다 포기하였다. 태평양 전쟁 때 미국군이 효고현 히메지시의 히메지성에 폭탄을 직격으로 날렸으나 불발되었다. 이러한 여러 위험에서 목조 건물로 살아남아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성이 축성된 이래 폐성과 전화(戰火)의 위기를 모두 면해, 천수를 비롯한 많은 건물이 현존해 있다. 그중 대천수, 소천수, 와타리 망루 등 8개 동이 국보, 74동의 각종 건조물(망루 27동, 문 15동, 담 32동)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히메지성의 주소인 ‘히메지시 혼정 68번지’는 일본의 주소 중 천황의 거처인 고쿄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근대에는 육군 보병 제10연대가 주둔했었다. 시대극이나 영화 등의 현지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히메지 성의 건설은 13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리마국(播磨国)의 지배자였던 아카마쓰 노리무라(赤松則村)가 히메야마(姫山) 언덕에 요새를 건설했던 것이다.
2.1. 무로마치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346년 아카마쓰 사다노리가 남북조 시대에 그의 아버지 아카마쓰 노리무라가 히메야마 산에 세웠던 사찰 쇼묘지를 토대로 성을 축성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때 건축된 것은 1층 정도의 매우 소규모의 성이었다. 현재 상태로 건축된 것은 도쿠나가 시대인 1609년에 건축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1441년 가키쓰의 난에서 아카마쓰 가문이 몰락하자 야마나 가문의 세력하에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닌의 난이 일어났고,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 다시 아카마쓰 가문이 이 지역을 탈환하였다.
16세기 전반 고차쿠성을 중심으로 아카마쓰 가문의 일족인 고데라 가문이 하리마 평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고데라 가문의 사관이었던 구로다 시게타카가 조다이로 하리마성에 입성한다. (이 시기 축성설도 있다.) 시게타카는 소규모 성채에 불과하던 히메지성을 개축한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히메야마 산의 지형을 잘 살린 중세성곽이라고 생각된다. 1573년까지 구로다 가문 대대로 조다이에 역임되었지만, 1576년 오다 노부나가의 명을 받은 하시바 히데요시가 하리마에 주둔하자, 하리마 국내에서는 오다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과 모리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이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엔 오다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이 승리하게 되었다. 모리 가문을 지지했던 고데라 가문은 몰락하자, 사관으로 있던 구로다 요시타카는 재빨리 하시바 히데요시 슬하로 들어가게 된다.
1580년 구로다 요시타카는 히데요시에게 히메지성을 본성으로 삼도록 성을 헌상한다. 히데요시는 같은 해 음력 4월부터 다음해 음력 3월에 걸쳐 성을 대폭 개수하였고, 히메지성은 근세성곽으로 재탄생되었다. 당시 유행했던 석벽으로 성을 둘렀으며, 더욱이 성에 천수각을 세운다. 이 천수는 3층이었다고 전해진다. 성의 남부에는 대규모 성하 마을이 생겼으며, 히메지를 하리마 국의 중심지가 되도록 정비하였다. 이 시기 히메지 북쪽으로 지나던 산요도를 끌어들여 히메지의 성하 마을을 관통하게 정비하였다.
1582년 음력 6월 히데요시는 주군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아케치 미쓰히데를 야마자키 전투에서 격파하고 단숨에 천하 패자의 자리에 올랐다. 다음해인 1583년 자신의 거처를 오사카성으로 옮기고, 히메지성은 동생 하시바 히데나가에게 주었지만, 히데나가도 1585년 야마토 고리야마성으로 이봉되었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여 사돈 관계인 기노시타 이에사다가 히메지성에 입성 이 지역을 다스린다.
1601년 이에사다는 빗추 아시모리번으로 이봉되었고, 그를 대신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이케다 데루마사가 하리마 일국 52만 석을 영지로 받아 히메지성에 입성한다. 이 시기 히메지성은 8년에 걸쳐 대폭 개수되었으며, 성의 면적도 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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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에도 시대
산요도 교통의 요지에 히메지성이 있다. 에도 시대에는 도자마 다이묘인 이케다 가문과 신판 다이묘인 마쓰다이라 가문, 후다이 다이묘가 성주로 역임하였다. 더욱이 서국 도자마 다이묘의 감시를 위해 사이고쿠 단다이(西国探題)가 설치되었다.
1617년 3대 번주 이케다 미쓰마사가 유아였기 때문에 중요 거점을 맡기기에는 불안하다고 판단, 이나바 돗토리번으로 전봉되었다. 그 후임으로 이세 구와나번에서 혼다 다다마사가 15만 석에 입봉되어 입성한다. 1618년 제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인 센히메와 혼다 다다마사의 아들 혼다 다다토키와의 결혼을 계기로 니시노마루가 정비되어 성의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그 후에도 히메지 번주는 신판 및 후다이 다이묘가 역임하였으며, 1749년 고즈케 마에바시번에서 사카이 다다즈미가 입봉되어 메이지 유신때까지 대대로 사카이 가문이 성주로 역임했다. 그러나, 고쿠다카 15만 석의 히메지 번의 경제력으로는 유지하기에 너무 벅찬 성이었고, 게다가 번주가 막부의 요직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번의 경제를 압박했다.
히메지성은 에도 시대에도 몇 번의 수리가 있었지만, 당시 기술로는 천수의 무게를 못 이겨 지반이 침하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고, 기둥과 들보 등의 변형도 심했다. 《동쪽으로 기운 히메지의 성은 꽃 같은 에도가 그리운가》라는 민요도 있다.
막부 말기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히메지 번주 사카이 다다토는 로주로서 막부측에 속해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히메지 번도 조정의 적으로 인식되어 오카야마번과 다쓰노번의 병사 1,500명에 포위되었다. 이때 이케다 데루마사의 자손인 이케다 모치마사가 이끄는 오카야마 번의 부대가 히메지성을 향해 수발의 공포탄을 쏘아 위협사격을 하는 중에 실탄도 발사되어 한발이 남서쪽의 福中門일본어에 명중되었다. 신정부군의 히메지성 총공격이 불가피해 보였지만, 셋쓰의 호상 기타가제 쇼조가 15만 량을 신정부군에 헌상해 무력 충돌을 막았다. 그 간에 번주를 대신하여 성을 관리하던 가신들이 개성을 결정하였고, 신정부군과 화친하였다. 이렇게 해서 히메지성에서 일어난 무력 충돌은 일단락되었다.
애당초 성주의 거관은 천수대 아래에 있는 혼마루인 비젠마루(備前丸)였다. 이는 이케다 데루마사의 소령과 연관된 이름이다. 그러나, 비젠마루는 산 정상에 있어 불편하였고, 혼다 다다마사가 히메지번으로 이봉되었을 때 산노마루에 혼조(本城)라는 거관을 지어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 시대의 성주 사카키바라 마사미네가 요시와라 유곽으로부터 다카오다유를 낙적(落籍)시켜 살게 한 니시야시키(西屋敷)가 있었다. 현재 니시야시키 터는 히메지성의 정원인 고코엔(好古園)으로 정비되었다.
현재 산노마루의 혼조(本城)가 있던 자리는 정원인 센히메보탄엔(千姫ぼたん園)으로 정비되었고, 무카이야시키(向屋敷)가 있던 자리는 산노마루 광장으로 정비되었다. 이 산노마루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처 및 이벤트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2.3. 메이지 시대 이후
1871년(메이지 4년) 폐번치현과 1873년(메이지 6년)에 공포된 폐성령에 따라 일본의 많은 성들이 해체, 매각되었다. 히메지성도 경매에 붙여져 요네다 정의 한 개인에게 23.5엔에 낙찰되었다. 성의 기와를 팔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해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지지부진해지자 성에 대한 권리가 소멸되었다. 1927년(쇼와 2년) 그의 아들이 히메지성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가 났지만, 다른 신문이 후일 취재한 결과 사실무근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성터는 진지로서 최적의 장소라 생각한 군은 부대를 배치하였다. 1874년(메이지 7년) 히메지 성내에 보병 제10연대가 주둔하였고, 그때 본성(本城) 등의 산노마루에 있는 건물과 무사시노 어전 등 다수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1882년에는 화재로 비젠마루가 소실되었다.
메이지 시대 초기의 개혁이 일단락된 1877년(메이지 10년)경에는 일본 성곽 보존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1878년 육군 건축담당부서의 나카무라 시게토 대좌가 육군성 장관 야마가타 아리토모에게 나고야성 및 히메지성의 보존을 다조칸(太政官)에 제출하도록 요구해 성과를 얻었다. 히메지성 히시노 문 안쪽에는 나카무라 대좌를 기리는 현창비가 남아 있다. 그러나 예산 문제가 남아있었고, 육군 예산으로는 성 보존비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긴급한 수리만 한 채 방치되자, 지역 유지들이 중의원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1910년(메이지 43년) 국고 보조금 93이 지급되어 성이 대대적으로 수리되었다. 이를 〈메이지 대수리〉라고 한다. 그럼에도 기울어진 천수를 수리하는 데에는 비용이 부족했고, 천수가 기울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19년(다이쇼 8년) 육군성이 니시노마루를 수리하였고, 이후 제10연대는 오카야마로 이전되었다.
1928년(쇼와 3년) 히메지성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문부성 소관이 되었다. 실제 관리는 히메지 시가 맡고 있다. 1931년(쇼와 6년) 천수각은 국보로 지정되었고, 후에 와타리 망루 등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시점에서 국보는 구(舊) 국보를 뜻하며, 현재의 중요문화재에 해당한다.
쇼와 대수리는 1934년(쇼와 9년) 니시노마루의 와타리 망루와 석벽 등이 호우로 붕괴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건물 해체 후 재조립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천수 이외의 건물을 수리했지만, 1944년(쇼와 19년) 태평양 전쟁으로 중단되었다. 다행히 성은 소실되지 않았다. 1950년(쇼와 25년) 대수리가 재개되었고, 1955년(쇼와 30년) 천수를 제외한 모든 건물 수리가 완료되었다.
1956년(쇼와 31년)부터 천수 수리에 착수하여 천수 전체의 거대한 지붕을 해체, 수리하였다. 이때 구조물에 쓰여있는 여러 문장이 발견되어 히메지성 연구에 큰 기폭제가 되었다. 성을 받치던 주춧돌은 철거되었고, 철근 콘크리트로 된 새로운 주춧돌이 놓였다. 기존 주춧돌은 산노마루 북쪽 광장에 배열되어있다.
천수 해체 시, 동쪽 기둥과 서쪽 기둥 중 서쪽 기둥은 썩어 재사용이 불가능하여 대체 목재를 찾게 되었다. 효고현 간자키군 이치카와정 가사가타 신사 경내의 전나무가 검토되었지만, 상부가 휘고 뿌리 부분이 썩었다는 의문이 들어 보류되었다. 1959년(쇼와 34년) 기후현 에나 군 쓰케치 정의 산에서 적당한 전나무를 찾았다. 하지만 벌목 과정에서 나무가 꺾여, 옆의 나무를 벌목해 운반했지만 이마저도 너무 커서 꺾였다. 결국 두 나무를 잇는 방식으로 가사가타 신사의 전나무와 이어 사용되었다. 예전에 사용되었던 서쪽 심주도 두 나무를 이어 만든 것이다. 서쪽 기둥은 구조적으로 중앙 부분이 분할되지 않으면 기둥을 세울 때 먼저 세워진 동쪽 기둥의 간섭을 받아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해야 했고, 제대로 조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수 수리에 맞춰 기와 중량을 경감시키고, 내진성 강화를 위해 금속제를 사용하였다. 석벽 등은 천수에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되어 대부분 손보지 않았다. 천수 수리는 1964년(쇼와 39년) 완료되었다.
천수각 공사비는 약 530으로, 태평양 전쟁 전 수리비를 물가로 환산해 합산하면 약 1(1964년 당시 가격)에 해당한다고 사료된다.
1993년(헤이세이 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2006년(헤이세이 18년) 4월 6일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되었다.
2.4. 부전의 성(不戦の城)
히메지성은 부전의 성(不戦の城)으로 불린다. 이는 막부 말기와 태평양 전쟁 때 전화를 모면했기 때문이다.
히메지성은 흰색 성벽으로 매우 눈에 잘 띄고 육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 대상이었다. 그래서 히메지성의 주요 부분에는 검게 칠해진 망이 씌워졌다. 1945년 7월 3일 히메지 대공습으로 히메지성 주변은 불길에 휩싸였다. 다행히 본성 터에 있던 중학교 교사만 소실되었을 뿐, 니시노마루에 떨어진 폭탄 2발은 불발되거나 곧 소화(消火)되었다. 대천수에도 소이탄이 떨어졌지만 불발로 그쳐 성 전체는 기적적으로 소실을 면했다. 다음날 아침, 성이 무사한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5. 쇼와 대수리
1871년 (메이지 4년) 폐번치현과 1873년 (메이지 6년)에 공포된 폐성령에 따라 일본의 많은 성들이 해체 매각되었다. 히메지성도 경매에 붙여져 요네다 정에 사는 한 개인에게 23엔 50전에 낙찰되었다. 성의 기와를 팔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해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지지부진하자 성에 대한 권리가 소멸되었다. 그 후 1927년 (쇼와 2년) 그의 아들이 히메지성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가 났지만, 별개의 신문이 후일 취재한 결과 사실무근이란 기사를 실었다.
성터에는 진지로서 최적의 장소라 생각한 군은 부대를 성터에 배치하였다. 그 예로 1874년 (메이지 7년) 히메지 성내에 보병 제10연대가 주둔하였고, 그때 본성(本城) 등의 산노마루에 있는 건물과 무사시노 어전 등 다수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더욱이 1882년에 일어난 화재로 비젠마루가 소실되었다.
한편 메이지 시대 초기에 실행된 개혁이 일단락된 1877년 (메이지 10년)무렵에는 일본의 성곽 보존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에 따라 1878년 육군의 건축담당부서의 나카무라 시게토 대좌가 육군성 장관인 야마가타 아리토모에게 나고야성 및 히메지성의 보존을 다조칸(太政官)에 제출하도록 요구해, 일말의 성과를 얻었다. 히메지성의 히시노 문 안쪽에는 나카무라 대좌를 기리는 현창비가 남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예산의 문제가 남아있었고, 육군의 예산으로는 성의 보존비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긴급한 수리만 한 채 방치되고 있어, 지역 유지들이 중의원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1910년 (메이지 43년) 국고 보조금 93,000엔이 지급되어 성이 대대적으로 수리되었다. 이를 〈메이지 대수리〉라고 한다. 그래도 기울어진 천수를 수리하는 데에는 비용이 부족했고, 천수가 기울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19년 (다이쇼 8년) 육군성이 니시노마루를 수리하였고, 그 후, 제10연대는 오카야마로 이전되었다.
1928년 (쇼와 3년) 히메지성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문부성의 소관으로 되었다. 실제는 히메지 시가 관리를 맡고 있다. 1931년 (쇼와 6년) 천수각은 국보로 지정되었고, 후에 와타리 망루 등도 국보로 지정된다. 단 이 시점에서 국보는 구(舊) 국보를 뜻하는 것이다. 현재의 중요문화재에 상응한다.
쇼와 대수리는 1934년 (쇼와 9년) 니시노마루의 와타리 망루가 호우에 석벽 등이 붕괴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건물을 한번 해체한 다음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천수 이외의 건물을 손보았지만, 1944년 (쇼와 19년) 태평양 전쟁의 전국 악화로 중단되었고, 다행히도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성이 소실되는 것은 면했다. 1950년 (쇼와 25년) 대수리는 재개되었고, 1955년 (쇼와 30년) 천수를 제외한 모든 건물의 수리가 완료되었다.
1956년 (쇼와 31년)부터 천수의 수리에 착수했으며 특히 천수 전체의 거대한 지붕을 해체 수리하였다. 이에 따라 구조물에 쓰여있는 여러 문장이 발견되었고, 히메지성의 연구에도 큰 기폭제가 되었다. 한편 성을 받치고 있던 주춧돌은 철거되었고, 철근 콘크리트로 된 새로운 주춧돌이 놓이게 되었다. 기존의 주춧돌은 산노마루 북쪽 광장에 그대로 배열되어있다.
천수가 해체될 때, 이를 지지하던 동쪽 기둥과 서쪽 기둥 중, 서쪽 기둥은 썩어 재사용이 불가능하였고, 이를 대신할 목재를 찾게 된다. 효고현 간자키군 이치카와정의 가사가타 신사 경내의 전나무가 검토되었지만, 상부가 휘어있고, 뿌리 부분이 썩었다는 의문이 들어 보류되었다. 1959년 (쇼와 34년)이 되어서야 기후현 에나 군 쓰케치 정의 산에서 적당한 전나무를 찾았다. 하지만, 벌목하는 과정에서 나무가 꺾여 버렸고, 하는 수 없이 그 옆에 나무를 벌목해 운반했지만, 이마저도 나무가 너무 커서 꺾어졌다. 궁여지책으로 두 나무를 잇는 방식으로 가사가타 신사의 전나무와 이어 사용되었다. 실제 예전에 사용되었던 서쪽의 심주도 두 나무를 이어 만든 것이다. 서쪽 기둥은 구조적으로 중앙부분이 분할되지 않으면 기둥을 세울 때 먼저 세워진 동쪽 기둥의 간섭을 받아,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해야되고, 제대로 조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수의 수리에 맞추어 기와의 중량을 경감시켰으며, 내진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금속제를 새롭게 사용하였다. 한편으로는 석벽 등은 천수에 별 지장을 두지 않는다고 판단되어 대부분 손을 보지 않았다. 천수의 수리는 1964년 (쇼와 39년) 완료되었다.
천수각의 공사비는 약 530으로, 태평양 전쟁 전의 수리비를 물가로 환산해 합산하면 약 1 (1964년 당시 가격)에 해당된다고 사료된다.
2.6. 헤이세이 대수리 (예정)
平成の大修理일본어는 2009년에 착공하여 2011년에 마칠 예정이었다. 공사비는 1000 이상으로 보이며, 목재 부식이 진행됨에 따라 대천수의 옻칠과 기와 교체, 내진성 보강에 중점을 둘 예정이었다. 보수 작업 중에도 견학할 수 있도록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
3. 구조
히메지성은 현존하는 12곳의 천수각을 가진 성 중 하나이며, 에도 시대 이전에 건조된 천수를 가진 성곽 중 하나이다. 천수각이 국보인 성은 히메지성을 포함하여 마쓰모토성, 이누야마성, 히코네성, 마쓰에성 5곳뿐이다. 히메지성은 이들 성 중에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아 '천하의 명성', '일본 제일의 명성'이라 불린다.
히메지성은 축성 이후 폐성과 전화(戰火)의 위기를 모두 면하여 천수를 비롯한 많은 건물이 현존하고 있다. 이 중 대천수, 소천수, 와타리 망루 등 8개 동이 국보, 74동의 각종 건조물(망루 27동, 문 15동, 담 32동)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건물과 담의 지붕에는 역대 성주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케다 가문의 호랑나비 문양, 도요토미 가문의 오동나무 문양, 혼다 가문의 아욱 문양 등이 있으며, 십자 문양의 기와도 있다.
천수 북쪽 고시쿠루와(腰曲輪)에는 농성을 위한 우물, 곡물 창고(고메구라), 소금 창고(시오구라)가 있었다. 평상시에는 히메야마 산 주위에 창고를 사용했다. 천수 아래는 암반이라 우물을 팔 수 없어, 천수와 고시쿠루와 사이에 미즈쿠루와(水曲輪)를 두고 미즈 일문(水一門)부터 미즈 오문(水五門)까지 문을 설치하였다.
고시쿠루와 안, 호노 문 안쪽에는 기름 벽(油壁)이라 불리는 토담이 있다. 흰색 회벽과 달리 차색(茶色)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히데요시가 성주였을 때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성벽에는 사마(狹間)라 불리는 사격용 구멍이 많다. 사각형은 야사마(矢狹間)로 활을 사용했고, 그 외는 뎃포사마(鉄砲狭間)로 조총을 사용했다. 천수 벽에도 사마가 있으며, 각 건물에는 이시오토시(石落し)가 설치되어 성벽을 오르는 적에게 돌과 끓는 물로 공격할 수 있었다.
3.1. 기본 배치
히메지성은 전형적인 제곽식 평산성이다. 히메야마 산 중심에 천수가 있으며, 그 주위를 여러 건물과 성벽으로 둘러싸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히메야마 산 북쪽을 기점으로 좌측으로 선회하는 구조이다. 선회반경은 내 구역, 중간 구역, 외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내 구역의 범위가 히메지 성의 범위로 인식되고 있다.
내 구역 내부는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 니시노마루, 데마루의 5중 구조로 되어 있다. 내 구역 밖에도 미즈쿠루와, 고시쿠루와, 오비쿠루와 등이 있다. 이들 성문은 이로하 순으로 명명되어 세밀하게 구역을 나누고 있다. 현재 산노마루는 광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데마루의 일부는 히메지 동물원에 속해있다.
이케다 데루마사가 축성한 시기는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의 중간 시점이었기 때문에 실전 위주의 방어 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1615년 에도 막부의 일국일성령에 따라 새로운 성을 축성하거나 개축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쇼군의 명령으로 지어진 에도성과 나고야성 등을 제외하고는 히메지성과 같은 규모의 성은 지어지지 않았다.
히메야마 산 북부에는 축성 이전부터 원시림이 존재했다. 혼마루에서 원시림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현재까지 통로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산노마루부터 니시노마루 석벽 밑에는 사기야마구치 문이 내측 해자로 연결되어 있다.
히메야마 산 서쪽에 있는 센바 강(船場川)은 내측 해자 가까이에서 흐르고 있어 해자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중간 구역에는 무가 저택이 있었고, 외 구역에는 하급 무사와 마을 주민들이 거주하였다. 현재 히메지시 중심부에 남아 있는 마을 이름에서 그 마을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에도 시대에 성곽 안에 많은 마을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와 같이 도시를 둘러싼 성곽이 있는 경우를 소가마에(総構え)라고 한다. 오늘날 중간 구역과 외 구역에는 해자와 석벽의 일부가 남아있고, 국도 372호(国道372号) 주변에는 다케노몬 교차로(竹の門交差点), 노자토 길(野里街道) 인근에는 노자토몬 우체국(野里門郵便局)이라는 형태로 문의 이름이 남아있다. 외 구역 남쪽은 산요 본선 히메지역 부근까지 달하고 있다.
히메지성 주소지인 히메지 시 혼 정 68번지(本町68番地)는 주위에 경찰서, 고등학교, 미술관 등이 있다. 번지로는 고쿄의 도쿄도 지요다구 지요다 1번지 다음으로 면적이 넓다. 혼 정 68번지는 내 구역 및 중간 구역에 해당되며 메이지・다이쇼 시대에는 육군 보병 제10연대가 주둔했었다. 1980년대 이후 이 일대는 정비되거나 재개발되어 다양한 문화시설과 관광명소가 자리 잡고 있다.
히메지 성은 일본에서 가장 큰 성이다. 히메지 성의 곡선 벽은 때때로 거대한 부채일본어를 닮았다고 한다.
히메지 성 단지는 효고현 히메지 시 중심부의 히메야마 언덕 위에 위치하며, 해발 45.6m 높이에 있다. 성곽 단지는 창고, 문, 복도 및 망루일본어 등 83개의 건물로 구성된 네트워크이다. 성곽 단지에는 1992년 히메지 시 10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된 [[고코엔]]한국어이라는 일본식 정원이 있다.
히메지 성 단지는 동서로 950m 에서 1600m, 남북으로 900m 에서 1700m 길이를 가지고 있다. 성곽 단지의 둘레는 4200m이다. 233헥타르(2,330,000m2 또는 576에이커)의 면적을 차지하며, 이는 도쿄 돔의 약 50배 또는 고시엔 구장의 약 60배에 달한다.
단지 중앙의 [[천수각일본어는 46.4m 높이이며, 해발 92m에 있다. 본성과 함께 세 개의 소규모 천수각일본어가 탑의 무리를 형성한다. 외부에서 보면 본성은 5층이지만, 실제로는 지하층을 포함하여 6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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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륜은 본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 니시노마루, 데마루(오사쿠지소), 세가쿠리륜의 다중 구조로 되어 있다. 이노몬, 로노몬 등 이로하 순서로 명명된 문 등에 의해 수곡륜, 요시곡륜, 오비곡륜 등의 곡륜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내곡륜에 있는 누각과 문의 위치 관계는 --을 참조한다. 내곡륜에는 천수각과 누각군 등 군사 시설과, 고덴과 저택 등 정무 중심 시설이 배치되었다.
히메야마 북쪽에는 수목이 무성한 "히메야마 숲"이 있다. 이 숲 속에는 본마루에서 이어지는 비밀 통로의 출구가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히메야마 서쪽을 흐르는 후나바타가와는 내호에 붙어 흐르고 있으며, 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에도 시대에는 이름 그대로 수운을 위해 이용되었다.
; 내곡륜의 통로와 문
내곡륜의 통로는 미로처럼 구불구불하며,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며 천수각으로 바로 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원래 지형과 히데요시 시대의 성곽 배치를 살린 것으로 생각된다. 문들 중 일부는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거나, 알아보기 어려운 위치·구조를 하고 있어,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를 하고 있다. 이것은 방어를 위한 것으로, 적을 혼란시켜 분산시키고, 막다른 골목에서 포위 공격하기 위한 장치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입성구(산노마루 북쪽)에서 들어가자마자 있는 "히시노몬"에서는, "이노몬"·"로노몬"·"하노몬" 순으로 진행하면 천수각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히시노몬에서 산고쿠호리 옆을 오른쪽으로 돌아 성벽 속에 숨겨진 구멍문인 "루노몬"으로부터 진행하는 것이 더 가깝다. "하노몬"에서 "니노몬"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수비 측에 등을 돌리지 않고서는 진행할 수 없다. "호노몬"은 극단적으로 좁은 철문이다. 그 후에는 천수각 주변을 한 바퀴 돌아야 대천수각에 도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노몬"으로 이어지는 경사로는 "쇼군자카"라고 불린다.
"히시노몬"은 후시미성에서 옮겨졌다는 전승이 있으며, 장압형 벽에 화등창을 배치한 옛 방식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토노이치몬"은 오키시오성에서 이축했다는 전승이 있으며, 벽이 판자로 되어 있고, 문 아래에 있는 적을 활과 창 등으로 공격할 수 있는 "이시오토시"가 없는 등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성 내에 현존하는 문 중에서도 이색적인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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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통로와 문
히메지성의 통로는 미로처럼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다.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통로는 곧바로 천수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없게 만든다. 이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성주로 있던 시절의 방어 체계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문 또한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거나,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동하기 매우 어렵다. 이는 적을 분산시켜 좁은 길에서 각개격파하기 위한 방어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성의 출입구인 히시노 문(菱の門)으로 들어가면 이노 문(いの門), 로노 문(ろの門), 하노 문(はの門) 순으로 가는 길이 천수에 빨리 도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히시노 문에서 오른쪽에 있는 루노 문(るの門)으로 가는 것이 더 빠르다. 루노 문은 흙으로 묻어 숨길 수 있는 우즈미 문(埋門) 형식으로, 적에게 갑작스러운 공격을 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노 문에서 니노 문(にの門)으로 가는 통로는 적병이 성을 방어하는 쪽에 등을 보이지 않고서는 전진하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호노 문(ほの門)은 매우 좁은 쇠문이다. 그 후에도 대천수에 도달하려면 천수군 주위를 돌아야만 한다.
이처럼 히메지성의 통로와 문은 복잡한 구조를 통해 적의 침입을 막고, 효율적인 방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전형적인 일본식 성곽 건축의 훌륭한 사례이며, 일본 성곽과 관련된 많은 방어 및 건축적 특징을 보여준다.
3.3. 천수
히메지성의 천수는 현존하는 12곳의 천수 중 하나이다.
히메지성의 천수는 히메야마 산 정상에 놓인 천수대 위에 건립된 것으로 1580년 봄 하시바 히데요시가 3층 천수를 건립한 것이 그 시초이다. 그 후 이케다 데루마사에 의해 해체되어 이누이 소천수가 세워질 때 그 부재로 사용되어 현재 모습을 띠고 있다.
천수의 구조는 동서에 두 심주로 지탱되는 5층 6계 지하 1층인 7층의 대천수와 3층인 소천수 3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수와 천수 사이에는 2층인 와타리 망루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양식을 연립식이라고 한다. 건축 시기와 구성으로 볼 때 후기 망루형에 속한다. 전체는 백색의 회벽으로 되어 있어 방화, 내화, 총탄의 방어와 미관상의 이유도 있다고 본다.
천수의 외관은 다른 성의 천수와 비교해도 매우 다채롭다. 다양한 하후를 볼 수 있으며 소천수에는 화두창을 볼 수 있다. 화두창은 후기 망루형 천수인 히코네성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누이 소천수의 화두창은 미완성을 강조하기 위해 격자가 없다.
히메지성의 천수는 히메야마 산(표고 45.6m) 정상에 건립되었고, 히메지성 자체 높이는 석벽이 14.85m, 건물이 31.5m로 도합하면 해발 92m가 된다. 천수의 총중량은 대략 5,700t이다. 예전에는 6,200t이었지만, 《쇼와 대수리》때 기와 등을 경량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천수각 안에는 히메지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31년 (쇼와 6년) 천수각은 국보로 지정되었고, 후에 와타리 망루 등도 국보로 지정되었다. 단 이 시점에서 국보는 구(舊) 국보를 뜻하는 것이다. 현재의 중요문화재에 상응한다.
1956년 (쇼와 31년)부터 천수의 수리에 착수했으며 특히 천수 전체의 거대한 지붕을 해체 수리하였다. 이에 따라 구조물에 쓰여 있는 여러 문장이 발견되었고, 히메지성의 연구에도 큰 기폭제가 되었다. 한편 성을 받치고 있던 주춧돌은 철거되었고, 철근 콘크리트로 된 새로운 주춧돌이 놓이게 되었다.
천수가 해체될 때, 이를 지지하던 동쪽 기둥과 서쪽 기둥 중, 서쪽 기둥은 썩어 재사용이 불가능하였고, 이를 대신할 목재를 찾게 되었다. 1959년 (쇼와 34년)이 되어서야 기후현 에나 군 쓰케치 정의 산에서 적당한 전나무를 찾았다. 하지만, 벌목하는 과정에서 나무가 꺾여 버렸고, 하는 수 없이 그 옆에 나무를 벌목해 운반했지만, 이마저도 나무가 너무 커서 꺾어졌다. 궁여지책으로 두 나무를 잇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천수의 수리에 맞추어 기와의 중량을 경감시켰으며, 내진성을 강화하기 위해 금속제를 새롭게 사용하였다. 천수의 수리는 1964년 (쇼와 39년) 완료되었다.
천수각의 공사비는 약 530으로, 태평양 전쟁 전의 수리비를 물가로 환산해 합산하면 약 1 (1964년 당시 가격)에 해당된다고 사료된다.
3.4. 니시노마루
1617년 3대 번주 이케다 미쓰마사가 아직 유아였기 때문에 중요 거점을 맡기기에는 불안하다고 판단, 이나바 돗토리번으로 전봉 조치되었다. 그 후임으로 이세 구와나번에서 혼다 다다마사가 15만 석에 입봉되어 입성하였다. 1618년 제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인 센히메와 혼다 다다마사의 아들 혼다 다다토키와의 결혼을 계기로 니시노마루가 정비되어, 성의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니시노마루(西の丸)에는 와타리 망루인 나가쓰보네(長局)와 그 북단에 위치한 게쇼 망루(化粧櫓)가 있다. 나가쓰보네는 시녀들의 방이었고, 게쇼 망루는 혼다 다다마사가 이세 구와나번에서 하리마 히메지번으로 이봉되었을 때, 며느리인 센히메의 게쇼료(化粧料) 10만 석으로 1618년에 지어진 것이다. 센히메는 니시노마루 안에 있는 주쇼마루(中書丸)와 산노마루(三の丸)의 무사시노 어전(武蔵野御殿)을 거처로 삼았다. 현재 두 건물은 소실되었다.
평산성인 히메지성(姫路城)은 천수각이 있는 히메야마(姫山)와 니시노마루(西の丸)가 있는 사기야마(鷺山)를 중심으로 주변 지형을 이용하여 성하마을을 포함한 총구조(내곡륜은 동서 465m 남북 543m, 외곡륜은 동서 1418m 남북 1854m)를 형성하고 있다.
3.5. 고시쿠루와, 미즈쿠루와
히메지성의 천수 북쪽에 있는 고시쿠루와(腰曲輪)에는 농성을 위한 우물과 곡물 창고인 고메구라(米蔵)와 소금 창고인 시오구라(塩蔵)가 있었다. 덧붙여 평상시에 사용되던 창고는 히메야마 산 주위에 있었다.
천수 아래는 암반으로 우물을 팔 수 없었기 때문에, 천수와 고시쿠루와 사이에는 미즈쿠루와(水曲輪)를 두어, 미즈 일문(水一門)부터 미즈 오문(水五門)까지 문을 설치하였다.
고시쿠루와 안에는 호노 문 안쪽에 기름 벽(油壁)이라고 불리는 토담이 있다.
3.6. 하라키리마루
본래 성의 방어와 사격 등으로 사용되던 장소였지만, 어스레한 분위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할복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애당초 성 안에서 죄인 등을 할복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3.7. 방어시설
히메지 성의 성벽에는 수많은 구멍이 있는데, 이를 사마(狹間)라고 부르며 일종의 사격용 구멍이다. 사각형은 활을 사용하는 야사마(矢狹間)이고, 그 외는 조총을 사용하는 뎃포사마(鉄砲狭間)이다. 천수 벽에도 사마가 있으며, 각 건물에는 성벽을 오르는 적에게 돌과 끓는 물로 공격하는 이시오토시(石落し)가 설치되어 있다.
히메지 성은 봉건 시대부터 발전된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원형, 삼각형, 사각형 등 다양한 모양의 총안(사마)이 곳곳에 있어, 수비병이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타네가시마나 활로 공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성 건물에는 약 1,000개의 총안이 있다. 성벽 곳곳에 설치된 이시오토시마도(石落窓)는 아래를 지나는 공격자에게 돌이나 끓는 기름을 쏟을 수 있게 했다.
성곽에는 세 개의 해자가 있었는데, 외해자는 매립되었고, 중앙 해자의 일부와 내해자는 남아있다. 해자의 평균 너비는 20m, 최대 너비는 34.5m, 깊이는 약 2.7m이다. 산고쿠보리(三国堀)는 소방용 물을 저장하는 목적도 있었다.
성곽, 특히 고시쿠루와(腰曲輪)에는 쌀, 소금, 물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다. 시오야구라(塩櫓)는 소금 저장용 건물로, 약 3,000포대의 소금을 저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에는 내해자 안에 33개의 우물이 있었고, 13개가 남아 있으며, 가장 깊은 우물은 30m 깊이이다.
성의 가장 중요한 방어 요소 중 하나는 성의 중심 건물로 이어지는 복잡한 미로 같은 길이다. 성곽의 문, 베일리 및 외벽은 접근하는 적을 혼란스럽게 하도록 배치되어, 중심 건물로 가는 길에 성곽 주변을 나선형으로 이동하게 한다. 성곽에는 원래 84개의 문이 있었고, 그중 15개는 일본 음절 이로하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현재 21개의 문이 남아 있으며, 13개는 일본 음절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많은 경우, 성곽의 통로는 되돌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이동을 크게 방해한다. 예를 들어, 히시노몬(菱の門)에서 본성(大天守)까지의 직선 거리는 130m이지만, 실제 경로는 325m이다. 통로는 가파르고 좁아서 진입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 시스템을 통해 침입자는 본성에서 감시받고 공격받을 수 있었지만, 히메지 성은 이런 방식으로 공격받은 적이 없어 실제로 시험되지 않았다.
성벽에는 총 997개의 좁은 틈(さま)이 남아 있다. 개구부 안쪽과 바깥쪽에 각도를 줌으로써 적을 조준하기 쉽고, 적에게는 조준되기 어렵게 만들었다. 모양은 원형, 삼각형, 직사각형이 있으며, 직사각형은 "화살 틈", 그 외는 "철포 틈"이다. 좁은 틈은 히메지 시내 공공시설 디자인에도 통합되어 있다. 천수각 벽에 숨겨진 틈, 문과 벽 속에 설치된 돌 떨어뜨리개 등, 수많은 방어 기구가 그 우아한 모습 속에 감춰져 있다.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을 잇는 다리루각, 소천수각끼리 잇는 다리루각의 각 복도에는 튼튼한 문이 설치되어 대천수각, 소천수각 각각 독자적으로 적을 방어하고, 고립하여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내곡륜의 통로는 미로처럼 구불구불하며,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며 천수각으로 바로 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원래 지형과 히데요시 시대의 성곽 배치를 살린 것으로 생각된다. 문들 중 일부는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거나, 알아보기 어려운 위치·구조를 하고 있어,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를 하고 있다. 이것은 방어를 위한 것으로, 적을 혼란시켜 분산시키고, 막다른 골목에서 포위 공격하기 위한 장치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입성구(산노마루 북쪽)에서 들어가자마자 있는 "히시노몬"에서는, 곧바로 "이노몬"·"로노몬"·"하노몬" 순으로 진행하면 천수각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히시노몬에서 산고쿠호리 옆을 오른쪽으로 돌아 성벽 속에 숨겨진 구멍문인 "루노몬"으로부터 진행하는 것이 더 가깝다. "하노몬"에서 "니노몬"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수비 측에 등을 돌리지 않고서는 진행할 수 없다. "호노몬"은 극단적으로 좁은 철문이다. 그 후에는 천수각 주변을 한 바퀴 돌아야 대천수각에 도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노몬"으로 이어지는 경사로는 "쇼군자카"라고 불린다.
3.8. 그 밖의 특징적인 구조물
히메지 성의 건물과 담의 지붕에 있는 기와 등에서는 역대 성주 가문의 문장을 볼 수 있다. 이케다 가문의 호랑나비 문양, 도요토미 가문의 오동나무 문양, 혼다 가문의 아욱 문양 등이 있으며, 그중에는 열십자 문양의 기와도 있다.
3.9. 성주의 거관
애당초 성주의 거관은 천수대 아래에 있는 혼마루인 비젠마루(備前丸)였다. 이는 이케다 데루마사의 소령과 연관된 이름이다. 그러나 비젠마루는 산 정상에 있어 사용하기 불편했기 때문에, 혼다 다다마사가 히메지번으로 이봉되었을 때 산노마루에 혼조(本城)라는 거관을 지어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 시대의 성주 사카키바라 마사미네가 요시와라 유곽으로부터 다카오다유를 낙적(落籍)시켜 살게 한 니시야시키(西屋敷)가 있었다. 현재 니시야시키 터는 히메지성의 정원인 고코엔(好古園)으로 정비되었다.
3.10. 중간 구역, 외 구역
산요도 교통 요지에 있는 히메지성은 에도 시대에 도자마 다이묘인 이케다 가문, 신판 다이묘인 마쓰다이라 가문, 후다이 다이묘가 성주를 역임했다.
1617년 3대 번주 이케다 미쓰마사가 이나바 돗토리번으로 전봉된 후, 이세 구와나번에서 혼다 다다마사가 15만 석으로 입성했다. 1618년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 센히메와 혼다 다다마사의 아들 혼다 다다토키의 결혼을 계기로 니시노마루가 정비되어 성의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1749년 고즈케 마에바시번에서 사카이 다다즈미가 입봉되어 메이지 유신까지 사카이 가문이 성주를 역임했다. 그러나 15만 석의 히메지 번은 경제적으로 성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번주가 막부 요직에 있어 번 경제를 더욱 압박했다.
막부 말기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히메지 번주 사카이 다다토는 막부 측에 속해 오카야마번과 다쓰노번 병사 1,500명에게 포위되었다. 이케다 모치마사가 이끄는 오카야마 번 부대가 히메지성에 공포탄과 실탄을 발사했고, 기타가제 쇼조가 신정부군에 150을 헌상해 무력 충돌을 막았다. 가신들이 개성을 결정하고 신정부군과 화친하여 히메지성 무력 충돌은 일단락되었다.
1871년 폐번치현과 1873년 폐성령에 따라 히메지성은 경매에 부쳐져 23엔 50전에 낙찰되었으나, 해체 비용 문제로 소유권이 소멸되었다. 1927년 소유권 주장 소송 기사가 났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1874년 히메지 성내에 보병 제10연대가 주둔하며 건물들이 파괴되었고, 1882년 화재로 비젠마루가 소실되었다. 1878년 나카무라 시게토 대좌가 나고야성 및 히메지성 보존을 야마가타 아리토모에게 요구해 성과를 얻었다. 1910년 국고 보조금 93,000엔이 지급되어 성이 대대적으로 수리되었으나, 천수 기울임을 막지는 못했다. 1919년 육군성이 니시노마루를 수리했고, 제10연대는 오카야마로 이전되었다.
히메지성은 전형적인 제곽식 평산성으로, 천수는 히메야마 산 중심에 있고, 주위는 건물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체적으로 히메야마 산 북쪽에서 좌측으로 선회하는 구조이며, 내 구역, 중간 구역, 외 구역으로 나뉜다. 중간 구역과 외 구역에는 성하 마을이 있어 히메지 성의 소가마에(총구역)에 해당한다.
이케다 데루마사 축성 시기는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 사이로, 실전 위주 방어선을 갖추면서 서국 쇼군으로 불린 이케다 데루마사의 위엄을 나타냈다.
1615년 에도 막부의 일국일성령으로 새로운 성 축성이나 개축이 금지되어, 히메지성과 같은 규모의 성은 지어지지 않았다.
히메야마 산 북부에는 원시림이 존재하며, 혼마루에서 원시림으로 통하는 비밀통로 소문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산노마루부터 니시노마루 석벽 밑에는 사기야마구치 문이 내측 해자로 연결된다.
히메야마 산 서쪽의 센바 강(船場川)은 내측 해자 가까이에서 해자 역할을 하며, 수운으로 이용되었다.
중간 구역에는 무가 저택, 외 구역에는 하급 무사와 마을 주민들이 거주했다. 현재 히메지시 중심부에 남아 있는 마을 이름에서 그 성격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누치 정(鍛冶町), 고야 정(紺屋町) 등 장인 마을, 고메야 정(米屋町), 시오 정(塩町) 등 상인 마을, 고쇼 정(小姓町), 다카조 정(鷹匠町) 등 신분 관련 마을, 가미데라 정(上寺町), 시모데라 정(下寺町) 등 사찰 관련 마을이 있다. 에도 시대에 성곽 안에 많은 마을이 있는 경우는 드물며, 이런 경우를 소가마에(총구역)라 한다. 소가마에로 유명한 성은 에도성과 오다와라성이 있다. 오늘날 중간 구역과 외 구역에는 해자와 석벽 일부가 남아있고, 국도 372호(国道372号) 주변에는 다케노몬 교차로(竹の門交差点), 노자토 길(野里街道) 인근에는 노자토몬 우체국(野里門郵便局) 등 문의 이름이 남아있다. 외 구역 남쪽은 산요 본선 히메지역 부근까지 달한다.
히메지성 주소지인 히메지 시 혼 정 68번지(本町68番地)는 주위에 경찰서, 고등학교, 미술관 등이 있다. 번지로는 고쿄의 도쿄도 지요다구 지요다 1번지 다음으로 면적이 넓다. 혼 정 68번지는 내 구역 및 중간 구역에 해당되며 메이지・다이쇼 시대에는 육군 보병 제10연대가 주둔했었다. 1980년대 이후 이 일대는 정비되거나 재개발되어 문화시설과 관광명소가 자리 잡고 있다.
4. 문화재
히메지성은 현존하는 천수각을 가진 12개 성 중 하나이며, 에도 시대 이전에 지어져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천수각이 국보로 지정된 성은 히메지성을 포함하여 마쓰모토성, 이누야마성, 히코네성, 마쓰에성 단 다섯 곳뿐이다. 히메지성은 이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나 '천하의 명성', '일본 제일의 명성'이라 불린다.
마쓰모토 성, 구마모토 성과 함께 일본 3대 성으로 꼽히는 히메지성은 2015년 한 해 286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에도 시대, 성의 필요성이 줄자 히메지성은 개인에게 팔렸으나, 구매자는 민가 건축에 재활용하려다 포기했다. 태평양 전쟁 중 미군의 폭격에도 불발탄으로 끝나 목조 건물임에도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국보로 지정되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대천수, 소천수, 와타리 망루 등 8개 동이 국보, 망루 27동, 문 15동, 담 32동을 포함한 74동의 건물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4.1. 세계유산
국제기념물유적이사회(ICOMOS)는 1992년 9월과 1993년 4월 및 8월에 히메지성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히메지성은 1993년 12월 11일 법륭사 지역의 불교 건조물과 함께 일본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등록 지역은 히메지성의 내 구역과 중간 구역이며, 주변은 완충지대로 지정되었다. 성의 5개 건물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천수각일본어, 북서쪽 소천수각일본어, 서쪽 소천수각일본어, 동쪽 소천수각일본어, 그리고 이, 로, 하, 니-복도와 부엌일본어이다. 성곽 안쪽 해자 안의 지역은 특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ICOMOS는 히메지성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 목조건축물로서, 백색 회반죽의 성벽을 가진 뛰어난 아름다움과 실용적인 기능을 겸비하고 있다.
* 메이지 이전의 봉건제도의 상징이다.
* 일본의 목조 성곽 건조물로서 최고이다.
세계유산 등록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히메지성은 목조 건축의 걸작이며, 실용적인 기능과 뛰어난 미적 외관을 겸비하고 있다”는 점을 적용 이유로 들었다.
: “일본 목조 성곽 건축의 최고봉을 보여주며, 중요한 특징을 모두 손상 없이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 적용 이유이다.
과거 세계유산 등록에서 진정성(오센티시티) 평가는 베네치아 헌장에 기초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유럽의 "돌의 문화"에는 적합하지만, 해체 수리를 하는 일본의 "나무의 문화"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었다. 일본의 세계유산 조약 가입과 히메지성 및 법륭사의 추천·등록은 세계유산위원회에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시켰다. 이는 이듬해 세계문화유산 나라 컨퍼런스 개최와 "진정성에 관한 나라 문서" 채택으로 이어졌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문화유산 등록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서가 되었다.
4.2. 국보
히메지 성은 1993년 12월 11일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성의 5개 건물은 국보로도 지정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 명칭 | 내용 |
|---|---|
| 大天守일본어 | |
| 乾小天守일본어 | 북서쪽 소천수각 |
| 西小天守일본어 | 서쪽 소천수각 |
| 東小天守일본어 | 동쪽 소천수각 |
| イ, ロ, ハ, ニの渡櫓附台所1棟일본어 | 이, 로, 하, 니-복도와 부엌 |
1951년(쇼와 26년) 6월 9일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다음 5개소 8동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 대천수(大天守)
* 동소천수(東小天守)
* 서소천수(西小天守)
* 건소천수(乾小天守)
* 이·로·하·니의 4동의 와타루(渡櫓)(부속지정: 부엌 1동)
위의 천수와 와타루 8동은 1931년(쇼와 6년) 1월 19일 국보보존법에 따라 당시의 국보(「구국보」: 문화재보호법의 「중요문화재」에 해당)로 지정되었고, 같은 해 12월 14일에는 와타루, 문, 담 등 74동도 국보(구국보)로 지정되었다. 이후 1950년(쇼와 25년) 8월 29일 문화재보호법 시행에 따라 「구국보」는 「중요문화재」로 간주되었다(문화재보호법 부칙 제3조).
4.3. 중요문화재
히메지성은 1931년 12월 14일에 중요문화재(건조물/성곽)로 지정되었다. 지정된 중요문화재는 총 74개 동이다.
* 건축물 상세 목록
| 망루 | 문 | 토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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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중요문화재인 "이(イ)의 와타리야구라(渡櫓)"는 국보인 "이(イ)의 와타리야구라(渡櫓)"와는 다른 건물이다. 전자는 본마루 북쪽의 요스쿠루와(腰曲輪)에 있으며, 후자는 연립 천수각의 일부이다. (로(ロ)·하(ハ)·니(ニ)의 와타리야구라도 마찬가지)
* 아래의 문은 문 단독으로는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 호(ほ)의 문 (「이(イ)의 와타리야구라(渡櫓) 남방 토벽」의 부속)
* 루(る)의 문 (「이(い)의 문 동방 토벽」의 부속)
* 미즈노 삼문 (「니(ニ)의 야구라(櫓) 남방 토벽」의 부속)
* 미즈노 사문 (「미즈노 고몬(水の五門) 남방 토벽」의 부속)
* 미즈노 고몬 (「니(ニ)의 와타리야구라(渡櫓)」의 일부)
4.4. 특별 사적
히메지 성터는 1956년 11월 26일에 특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성곽 안쪽 해자 안의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1928년 9월 20일에는 사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법에 의해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56년 11월 26일에는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특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5. 민속 자료
히메지성에는 성을 지키는 수호신과 관련된 여러 가지 민속 자료들이 전해진다.
* 오사카베묘진(刑部明神): 히메지성 5층에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여우 요괴이다. 원래 오사카베 가문의 조상신이었으며, 대천수 최상층의 제단에 모셔져 있다.
* 미야모토 무사시의 요괴 퇴치: 기노시타 이에사다가 히메지 성주였던 시절, 미야모토 무사시가 요괴를 퇴치하고 오사카베묘진에게서 명검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시대가 맞지 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 우바가이시 (姥が石):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성을 지을 때 석재가 부족하자, 한 노파가 돌절구를 바쳐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누이 소천수 북쪽 석벽에서 돌절구가 발견되었다.
* 무네마치 겐베이의 전설: 축성을 담당한 목수 겐베이가 천수가 기울었다는 아내의 말에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 반슈 [[사라야시키]](播州皿屋敷): 조루리 등에서 공연되는 사라야시키 이야기의 원형으로, 혼마루에는 오키쿠 우물이 남아있다.
* 풍수: 히메지성 주위의 지형지물은 풍수에서 사신(四神)으로 여겨진다.
히메지성 내곡륜(内曲輪)에는 11개의 문이 있었으며, 각 문에는 고유한 이름과 역할이 있었다. 2차 사카하라 시대(二次榊原時代)에는 문의 통행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 문 이름 | 위치 | 유래 및 특징 |
|---|---|---|
| 이치노하시문(市ノ橋門) | 내곡륜 서쪽, 외해자 밖 | 이치노하시(市ノ橋)에서 유래 |
| 구르마문(車門) | 내곡륜 서쪽, 후나바가와(船場川) 강가 | 수레(荷車)가 통과하는 차도문(車道門)에서 유래, 이중 마스가타 구조 |
| 우즈미문(埋門) | 내곡륜 남서쪽 구석 | 귀문(鬼門) 방향에서 유래 |
| 쿠마타카문(鵰門) | 중해자(中堀) 남부 서쪽 | 성주 교체 시 매를 건네주는 의식에서 유래 |
| 나카노문(中ノ門) | 중해자(中堀) 남부 중앙 | 내곡륜 정면 5개 문의 중앙에서 유래 |
| 소샤문(総社門) | 중해자(中堀) 남부 | 하리마노쿠소샤(播磨国総社) 서문으로 통하는 데서 유래 |
| 토리이사키문(鳥居先門) | 소샤문(総社門) 동쪽 | 하리마노쿠소샤(播磨国総社) 남쪽 토리이(鳥居) 앞에서 유래, 아카즈노문(あかずのもん)이라고도 불림 |
| 우치쿄구치문(内京口門) | 중해자(中堀) 남동쪽 | 교토(京都) 방면으로 통하는 데서 유래 |
| 큐쵸문(久長門) | 중해자(中堀) 동쪽 | 큐쵸초(久長町)에서 유래 |
| 노자토문(野里門) | 중해자(中堀) 북동쪽 | 노자토(野里)로 향하는 출입구에서 유래 |
| 시미즈문(清水門) | 북쪽 면의 북세인(北勢隠) | “사기노시미즈(鷺の清水)” 우물에서 유래, 하리마쥬스이(播磨十水) 중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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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전승(傳承)
히메지성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 나가카베히메(오사카베히메): 히메지성에 산다고 전해지는 요괴이다. 12겹의 의례용 기모노를 입은 노파(혹은 30대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인간의 마음을 읽고 켄조쿠신(kenzokushin)이라는 하급 동물형 요괴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한다.
* 열리지 않는 방: 대천수 3층에서 4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아래에 있는 작은 방이다. 기카와 에이지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무사시가 이 방에 3년간 유폐되었다고 묘사되지만, 이는 허구이며 실제로는 창고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니노몬(二ノ門)의 십자 문양 기와: 니노몬 처마 위에는 십자가를 그린 기와가 있는데, 하시바 히데요시가 기리시탄이었던 구로다 다카타카를 높이 평가하여 만들게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 하쿠로죠(白鷺城)라는 별명: 히메지성은 흰색 회반죽으로 칠해진 성벽의 아름다움, 쇠백로 등 백로가 많이 서식했기 때문, 오카야마성과의 대비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5.1.1. 오사카베묘진(お菊井戸刑部明神 또는 長壁明神)
히메지성의 수호신이다. 원래는 형부씨의 씨신이었다. 대천수 최상층에 모셔져 있다. 그 외에도 구 중곡륜의 나가카베 신사나 하리마 국 총사에도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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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에는 여러 지역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 중 하나가 오키쿠의 우물 전설이다. 오키쿠는 귀중한 가보인 접시를 잃어버렸다는 누명을 쓰고 살해당해 우물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녀의 유령은 밤에 우물을 배회하며, 낙담한 어조로 접시를 세었다고 한다. 이 우물은 오늘날에도 성에 남아 있다.
5.1.2. 미야모토 무사시의 요괴퇴치
기노시타 이에사다가 히메지 성주로 재임하던 시절, 미야모토 무사시가 히메지 성의 아시카루 부쿄(足軽奉公)로 일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밤, 무사시는 천수에 나타나는 요괴를 퇴치하라는 명을 받았다. 무사시는 등불을 들고 요괴를 쫓았고, 천수 최상층에서 오사카베묘진이 귀인의 딸로 변신하여 나타났다. 오사카베묘진은 무사시에게 요괴 퇴치에 대한 답례로 고요시히로(郷義弘)라는 이름이 새겨진 메이토고요시히로(郷義弘)를 주었다.
이 이야기는 시대가 일치하지 않아 명백한 전설로 여겨진다.
5.1.3. 우바가이시 (姥が石)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히메야마 산에 3층 천수를 건립할 때, 성의 석벽으로 쓰일 석재를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성 밑에서 떡을 팔던 가난한 노파가 이것을 알고 돌절구를 히데요시에게 바쳤다. 히데요시는 노파의 마음에 크게 기뻐했다. 이 이야기는 곧 유명해져 사람들이 앞다투어 돌을 기증했고, 덕분에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실제 이누이 소천수 북쪽 석벽에는 돌절구가 있다. 그 밖에도 고대 석관(石棺)이 석벽에서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석벽에 쓰일 수 있는 돌은 모두 모은 것으로 보인다.
5.1.4. 무네마치 겐베이의 전설
무네마치 사쿠라이 겐베이(棟梁・桜井源兵衛)는 축성 공사를 끝내고 아내와 함께 천수를 보러 갔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천수가 남동쪽으로 기운 것 같다"라고 말하자, 여기에 충격을 받아 천수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성주로 있을 때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사실 겐베이는 이케다 데루마사가 성주로 있을 때의 사람이고, 그가 자살했다는 증거는 없다. 천수가 남동쪽으로 기운 것은 예전부터 그랬고, 《쇼와 대수리》 때 원인이 동서의 초석이 침하된 것이라고 밝혀졌다.
사쿠라이 겐베이는 히메지 성 천수각 건축 당시 이케다 데루마사의 우두머리 목수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사쿠라이는 자신의 건축물에 불만을 품었는데, 천수각이 남동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괴로워하며 천수각 꼭대기로 올라가 입에 끌을 문 채 투신자살했다고 한다.
5.1.5. 반슈 사라야시키(播州皿屋敷)
조루리 등에서 공연되는 사라야시키 이야기의 원형이다. 현재 히메지성이 축성되기 이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혼마루 우에야마사토에는 〈오키쿠 우물(お菊井戸)〉이 남아있다. 사라야시키·오키쿠 신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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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풍수에서의 사신(四神)
히메지성 주변은 동쪽으로는 이치가와 강, 서쪽으로는 산요도, 북쪽으로는 히로미네 산, 남쪽으로는 하나마나타로 되어 있다. 이들은 히메지성의 풍수에서 사신(四神)으로 보고 있다.
6. 자매성
프랑스 파리 근교 샹티이 시에 있는 샹티이 성(Château de Chantilly)은 1989년 히메지 성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샹티이 성은 르네상스 시대의 장엄한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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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Neuschwanstein Castle, 별칭: 백조성)과 히메지 성(별칭: 백로성)이 "백성 동맹"으로 관광 우호 교류 협정을 맺었다. 아사히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인기는 있지만 19세기 후반에 건축되어 역사가 짧아 세계유산 등록에 불리한 노이슈반슈타인 성 쪽에서 먼저 히메지 성에 제휴를 요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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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9일에는 영국 웨일스에 있는 콘위 성(Conwy Castle)과 히메지 성이 자매 성 제휴를 맺어 웨일스와의 문화, 예술, 교육, 관광 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 시작되었다. 콘위 성은 세계문화유산인 그위네드의 에드워드 1세의 성곽과 성벽(Castles and Town Walls of King Edward in Gwynedd)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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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히메지 성과 같은 국보인 마쓰모토 성(松本城)과는 자매 성 제휴는 없지만, 히메지 시와 마쓰모토 시(松本市)는 자매 도시 제휴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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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작품
*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에서는 주인공 신멘 다케조(미야모토 무사시)가 다쿠안 소호의 처분으로 히메지 성 천수각에 3년간 유폐되어 교양을 쌓는 장소로 등장한다. 이케다 데루마사는 성장한 다케조에게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이름을 주었다.
* 이즈미 교카의 소설 《천수 이야기》에서는 천수각 안에 숨겨진 이세계와 할복을 명받은 젊은 사무라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 많은 시대극의 현지 촬영지로 사용되었으며, 《아바렌보 쇼군》, 《미토 고몬》, 《오오쿠》 등이 히메지성에서 촬영되었다. 1937년 시대극 촬영 중 폭파 장면에서 로노 문이 파손되고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 영화 《007 두번 산다》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린 산노마루 광장이 등장한다. 촬영 중 성벽에 수리검을 던져 성벽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다.
* 1974년 TBS 드라마 《일본 침몰》에서는 하리마나다 지진으로 히메지성이 파괴되는 장면(미니어처)과 주제가의 배경 영상(실물)에 히메지성이 등장한다.
*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X ~도전자 들~》의 2001년 9월 11일 방송분에서는 〈쇼와 대수리〉의 에피소드가 방송되었다.
*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년)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들이 촬영되었다.
* 오쿠무라 도규의 『성(城)』(1955년), 『문(門)』(1967년)
8. 관광
히메지성은 현존하는 천수각을 가진 12곳의 성 중 하나이며, 에도 시대 이전에 건조된 천수를 가진 성곽 중 하나이다. 천수각이 국보인 성은 히메지성을 포함하여 마쓰모토성, 이누야마성, 히코네성, 마쓰에성 이 다섯 곳뿐이다. 히메지성은 이들 성 중에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아 일본 제일의 명성이라 불린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007 두 번 산다(1967),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가게무샤(1980)와 란(1985) 등 여러 일본 영화 및 외국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쇼군(1980)에서는 봉건 시대의 오사카성 대역으로 사용되었다.
개장 시간 및 입장료는 다음과 같다.
* 개장 시간
* 일반: 9시 - 16시 (17시 폐장)
* 하계: 9시 - 17시 (18시 폐장)
* 휴장일: 12월 29일, 12월 30일
* 입장료
* 어른: 1,000엔
* 어린이(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300엔
* 단체(30명 이상): 20% 할인
히메지 성은 국보로 지정된 5개의 건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성곽 안쪽 해자 안의 지역은 특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마쓰모토 성, 구마모토 성과 함께 일본 3대 성으로 여겨진다. 2015년에는 286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방문하여 일본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성이 되었다.
성내에서는 실버 관광 가이드 또는 외국어 자원봉사 가이드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마쓰다이라 켄(松平健)이 음성 안내를 하는 프리미엄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되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외국어 버추얼 투어도 시작되었다. 성내 20곳 이상에서 Wi-Fi 연결 이용이 가능하다.
히메지 성은 매일 일몰부터 0시까지 조명이 켜지며, 계절이나 이벤트에 따라 색이 바뀐다.
2009년 4월 14일, 쇼와 시대 복원 이후 누적 방문객 수가 4천만 명을 돌파했다. 다음은 연도별 방문객 수를 정리한 표이다.
| 연도 | 방문객 수 |
|---|---|
| 1964년 | 1,738,000명 |
| 1989년 | 1,197,000명 |
| 1990년 | 811,000명 |
| 1991년 | 871,000명 |
| 1992년 | 885,000명 |
| 1993년 | 1,019,000명 |
| 1994년 | 983,000명 |
| 1995년 | 695,000명 |
| 1996년 | 861,000명 |
| 1997년 | 716,000명 |
| 1998년 | 792,000명 |
| 1999년 | 713,000명 |
| 2000년 | 662,000명 |
| 2001년 | 708,000명 |
| 2002년 | 729,000명 |
| 2003년 | 814,000명 |
| 2004년 | 771,000명 |
| 2005년 | 778,000명 |
| 2006년 | 899,000명 |
| 2007년 | 1,023,000명 |
| 2008년 | 1,195,000명 |
| 2009년 | 1,561,000명 |
| 2010년 | 458,000명 |
| 2011년 | 611,000명 |
| 2012년 | 711,000명 |
| 2013년 | 881,000명 |
| 2014년 | 919,000명 |
| 2015년 | 2,860,000명 |
8.1. 교통
* 서일본여객철도(JR 서일본): 산요 신칸센·산요 본선·반탄 선·히메신 선 히메지 역 히메지성 입구(북쪽 출구)에서 도보 약 20분.
* 산요 전기철도: 본선 산요히메지 역에서 도보 약 15분.
* 신키 버스 "히메지성 오테몬 앞" 정류장 하차 후 바로. 12월~2월은 토, 일·공휴일, 3월~11월은 매일, 평일은 30분에 1대, 토, 일, 공휴일은 15분에 1대 신키 버스 운행하는 "히메지성 순환 버스"도 운행된다.
* 유료 공영 주차장이 성 주변에 5곳 합쳐 약 1,600대 분, 역 주변에 5곳 합쳐 약 1,100대 분, 유료 공영 자전거 주차장이 역에서 성 구역에 3곳 합쳐 자전거 약 2,900대 분, 오토바이 약 600대 분이 있다.
8.2. 이벤트
; 시로의 날 (4월 6일)
: 1990년부터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날에 한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보통 비공개된 부분이 공개되고, 그 밖에도 많은 이벤트가 열린다. 이때 히메지 성 안의 벚꽃이 피며 지역을 대표하는 꽃놀이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 히메지성 축제 (8월 초순)
: 히메지성 다키기노가 산노마루 광장에서 열리며, 〈성의 여왕〉 등의 퍼레이드가 오테마에 대로에서 벌어진다.
; 원단 무료 입장 (1월 1일)
: 2020년까지 원단은 입성이 무료였으나, 2021년 원단은 유료가 되었다. 2010년(헤이세이 22년)까지는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대천수까지 오를 수 있었으나, 극심한 혼잡으로 안전을 고려하여 폐지되었고, 개성 시간의 앞당김이 이루어지고 있다.
; 세계유산 히메지 성 마라톤(2월)
: 골은 히메지 성 3의 마루 광장이다. 히메지 성 로드 레이스 대회와 히메지 성하 마라톤 대회를 발전적으로 통합하여, 2015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 히메지 성 역전 대회(2월)
: 내호(内堀) 주변을 주회한다. 2010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 시로(城)의 날 (4월 6일)
: 히메지 시제 100주년을 기념한 「고향 창생 사업」을 실시하기 위해 시민으로부터 공모하여, 1990년(헤이세이 2년)부터 행해지고 있다. 평소에는 비공개인 부분이 봄 특별 공개로 5월경까지 공개되는 외에, 다수의 이벤트가 개최된다. 히메지 성 내의 벚꽃이 개화하는 시기이며, 지역을 대표하는 꽃놀이 명소가 된다. 제정 이래, 이 날에는 성을 포함하여 지정된 주변 시설이 입장 무료였다. 그러나 벚꽃 개화 시기와 겹쳐 방문객 수가 증가하여, 입장 제한을 하는 등 하고 있었으나 안전 관리를 고려하여 무료 개방은 2007년(헤이세이 19년) 4월 6일을 기하여 종료되었다.
; 히메지 성 관앵회 (4월 상순)
: 와타이코·금 등의 연주와 자매 도시로부터의 출품 등이 이루어진다.
; 히메지 성 야앵회 (4월 상순)
: 니시노마루 정원에서 밤에 개최되며, 벚꽃의 라이트업 등이 이루어진다. 2021년도는 코로나 대책으로 사전 웹 예약제가 도입되어, 유료 이벤트로 변경되었다.
; 천희(千姫) 작약 축제 (4월 하순)
: 3의 마루 서쪽(본성 흔적)에서 개최되며, 「천희(千姫) 님 가마 행렬」과 구회(句会) 등이 이루어진다.
; 히메지 성 축제 (8월 상순)
: 히메지 성 다키기노(3의 마루 광장), 「성의 여왕」 등에 의한 오테마에도리(大手前通り) 퍼레이드 등이 이루어진다.
; 히메지 성 관월회 (9월 하순)
: 금곡(箏曲)·무용과 월관측, 지주(地酒)와 츠키미 단고(月見団子)의 출점 등이 이루어진다. 2020년도는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 히메지 성 국화전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 1000점에 가까운 국화를 전시한다.
; 가을 특별 공개 (11월 상순)
: 비공개 부분을 1주일 정도 기간 한정으로 공개한다.
; 히메지 성 세계문화유산 등록 기념일 (12월 11일)
: 세계유산 등록일을 기념하여 2008년(헤이세이 20년) 제정되었다. 위의 「시로(城)의 날」에 대신하여 성과 지정된 주변 시설이 입장 무료가 된다.
; 연말연시
: 성내의 소나무에 코모마키(菰巻き)를 하거나, 거대한 도소송(門松)을 장식하는 외에, 히메지 성 클린 작전이라는 제목의 청소 사업이 1976년(쇼와 51년)부터 매년 12월 중순에 행해져 왔다. 육상자위대히메지 주둔지의 대원에 의한 훈련의 일환으로, 차량이나 보트 등도 사용하여 평소에는 청소가 어려운 성벽이나 해자 등을 중점적으로 청소하고 있다. 단, 코모마키(菰巻き)에 대해서는 역효과라는 등의 이유로, 2015년부터 중지되었다.
그 외, 시민 유지에 의한 청소회(아이조우카이(愛城会)) 등.
8.3. 주변 문화 시설 및 관광명소
히메지성 주소지인 히메지 시 혼 정 68번지는 주변에 경찰서, 고등학교, 미술관 등이 있다. 번지로는 고쿄의 도쿄도 지요다구 지요다 1번지 다음으로 면적이 넓다. 혼 정 68번지는 내 구역 및 중간 구역에 해당되며 메이지・다이쇼 시대에는 육군 보병 제10연대가 주둔했었다. 1980년대 이후 이 일대는 정비되거나 재개발되어 다채로운 문화시설과 관광명소가 자리 잡고 있다.
* 효고 현립 역사박물관 - 히메지성 등 일본 전국의 성곽을 소개하는 전시관이 있다.
* 히메지 시립 미술관 - 애당초 육군 건물이었고, 후에 히메지 시청 건물로 사용되었다.
* 일본 성곽 연구센터 - 시립 성내 도서관이 병설되어 있다.
* 고코엔 - 히메지성의 정원으로 명칭은 사카이 가문이 설립한 번교 〈고코토(好古堂)〉에서 따왔다.
* 가로야시키아토 공원 -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 오테마에 공원
* 시로토피아 기념공원
* 히메지분가쿠칸
* 오토코야마 덴만궁・센히메 덴만궁
* 이타테효즈 신사
* 주니쇼 신사
* 히메지 시립 동물원
* 시오다 온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