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일번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안양일번가는 경부선 개통과 함께 상권이 형성되어, 안양시의 중심 상업 지역으로 발전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공업지대로 성장했으며,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으로 서울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상권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1979년 안양역전 지하상가가 조성되었으며, 2000년대에는 젊은 층이 주로 찾는 곳이 되었다. 2010년대 이후 프랜차이즈 점포 증가와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상권이 위축되었으나, 현재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안양시의 관광지 - 안양예술공원
안양예술공원은 과거 안양유원지였으나 환경 훼손과 홍수 피해 후 환경 사업을 통해 2005년 재탄생했으며, 현재는 안양파빌리온 주관 행사와 APAP 작품이 있는 문화 공간이다. - 안양시의 관광지 - 병목안시민공원
병목안시민공원은 [정의 또는 핵심 설명]이며, [추가적인 주요 정보 또는 특징]을 제공하고, [맥락 또는 중요성]을 가진다. - 안양시의 지리 - 관악산
관악산은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있는 높이 629m의 산으로, 험준한 봉우리와 기암절벽, 깊은 계곡으로 유명하며 효령대군과 관련된 연주대와 연주암이 있고,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풍수지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방송 송신 시설이 위치해 있다. - 안양시의 지리 - 평촌신도시
평촌신도시는 1980년대 후반 주택난 해결을 위해 건설된 1기 신도시 중 하나로,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에 따라 안양시 일대에 조성되었으며, 수도권 대규모 택지개발지구 사업의 중요한 부분이다. - 만안구 - 경인교육대학교
경인교육대학교는 1946년 개성사범학교로 설립되어 초등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14개의 세분화된 전공을 운영하며, 교육전문대학원을 통해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제공하고 부설 기관 및 국제 교류를 활발히 진행한다. - 만안구 - 안양대학교
안양대학교는 1948년 설립된 기독교 정신의 사립 종합대학교로, 안양시 이전 후 종합대학으로 발전하여 현재 다양한 학부 및 대학원 과정과 국제 교류를 운영하며 인성교육과 창의융합 인재 양성에 힘쓰고, 정부 재정지원 제한 이후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되어 재도약하고 있다.
안양일번가 | |
---|---|
개요 | |
위치 | 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
특징 | 안양 최대의 상업 지구 중 하나 |
역사 | |
형성 시기 | 1920년대 안양역 개통 이후 |
발전 계기 | 1970년대 후반 안양우체국 및 경기도립안양도서관 이전 |
주요 변화 | 1990년대 롯데백화점 (평촌점) 개점 이후 상권 분산 |
최근 변화 | 2000년대 이후 지하상가 조성 및 젊은 층 유입 증가 |
주요 시설 | |
쇼핑 | 각종 의류 매장 화장품 가게 액세서리 상점 안양지하상가 |
음식 | 음식점 카페 술집 |
문화 | 영화관 서점 공연장 |
기타 | 은행 병원 학원 |
교통 | |
지하철 | 수도권 전철 1호선 안양역 |
버스 | 안양역 버스 환승 센터 |
기타 정보 | |
주요 고객층 | 젊은 층 (10대 ~ 30대) |
특징 | 다양한 문화 행사 및 축제 개최 |
2. 역사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3] 경부선 개통 당시 역명은 安陽이었고 이후 일제강점기 어느 시점에 현재의 安養으로 변경되었다.[4] 일부에서는 이를 조선총독부의 의도적인 변경으로 주장하기도 하지만, 당시까지도 인구가 적은 농촌이었던 안양 지역은 조선시대에도 安陽과 安養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었다.[5] 안양역이 들어 선 곳은 서이면으로 과천군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시흥군으로 넘어갔으며 이때 서이면사무소를 비롯한 우체국, 소방서 등이 안양역 앞으로 이전하여 행정 중심지역이 되었다. 서이면은 1941년 안양면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 명칭이 지금의 안양시까지 이어지고 있다.[6] 안양일번가는 면사무소와 행정 기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이 시간이 흐르면서 확장된 곳이다.
안양은 일제강점기 후반인 1930년대부터 공업지대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70년대까지 안양은 방직산업의 중심지였다.[7] 이로인해 1912년 3,462 명 이었던 안양의 인구는 1940년 1만명을 넘었고 1972년 10만 명을 넘어서며 도시로 성장하여 1973년 시로 승격하였다.[8] 도시화 과정에서 인구가 밀집한 지역은 안양역에서 안양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안양일번가는 역과 주택가 사이에 위치하여 자연스럽게 상업 밀집 지역이 되었다.[8]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개통으로 안양일번가를 비롯한 안양역 인근은 서울로 출퇴근이 원활한 지역이 되어 인구가 계속하여 늘어났고 이후 많은 유동인구로 강력한 상권을 갖추게 되었다.[9] 당시 안양시청 역시 지금의 안양일번가 내에 자리잡고 있어 이 지역은 여러 모로 안양의 중심지였다.[10]
1979년 안양역전 지하상가를 조성하였고 2004년 보수 정비하여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11] 신도시가 세워지면 구도심의 공동화와 상권 위축이 발생하는 일반적인 사례와 달리 안양일번가의 경우 전철역의 유동인구를 바탕으로 상권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9] 21세기에 들어 인근 여러 대학교의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장소가 되어 가수 MC 스나이퍼가 〈안양 1번가〉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청년들이 주로 찾아 상권도 각종 의류와 함께 분식을 비롯한 음식점이 발달했다.[12]
그러나 2020년 이후 코로나19 범유행 동안에 방문객이 급감하며 부진을 겪었고 2023년 현재 옛 모습을 완전히 되찾지 못하고 있다.[13][14]
2. 1. 일제강점기 이전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상권 형성의 기틀을 다졌다.[3] 경부선 개통 당시 역명은 安陽이었고 이후 일제강점기 어느 시점에 현재의 安養으로 변경되었다.[4] 일부에서는 이를 조선총독부의 의도적인 변경으로 주장하기도 하지만, 당시까지도 인구가 적은 농촌이었던 안양 지역은 조선시대에도 安陽과 安養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었다.[5] 안양역이 들어 선 곳은 서이면으로 과천군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시흥군으로 넘어갔으며 이때 서이면사무소를 비롯한 우체국, 소방서 등이 안양역 앞으로 이전하여 행정 중심지역이 되었다.[6]2. 2. 일제강점기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3] 경부선 개통 당시 역명은 安陽이었고 이후 일제강점기 어느 시점에 현재의 安養으로 변경되었다.[4] 당시까지도 인구가 적은 농촌이었던 안양 지역은 조선시대에도 安陽과 安養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었다.[5] 1914년 서이면사무소를 비롯한 우체국, 소방서 등이 안양역 앞으로 이전하여 행정 중심지역이 되었고, 1941년 서이면은 안양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6] 안양일번가는 면사무소와 행정 기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이 시간이 흐르면서 확장된 곳이다.안양은 일제강점기 후반인 1930년대부터 공업지대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1912년 3,462 명 이었던 안양의 인구는 1940년 1만명을 넘었다.[8]
2. 3. 해방 이후 ~ 1970년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안양일번가는[3] 일제강점기 후반인 1930년대부터 공업지대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7] 1970년대까지 안양은 방직산업의 중심지였으며,[7] 이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여 1973년 안양시로 승격되었다.[8] 도시화 과정에서 안양역과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안양일번가는 자연스럽게 상업 밀집 지역이 되었다.[8]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안양역 인근은 서울로 출퇴근이 편리해져 인구가 계속 증가했고, 많은 유동인구로 인해 안양일번가는 강력한 상권을 갖추게 되었다.[9] 당시 안양시청도 안양일번가 내에 위치하여 이 지역은 안양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10] 1979년에는 안양역전 지하상가가 조성되어 2004년 보수 정비를 거쳐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11]
2. 4. 1980년대 ~ 2000년대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안양역 인근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늘어나 더욱 많은 유동인구를 갖추게 되었다.[9] 당시 안양시청 역시 지금의 안양일번가 내에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안양의 중심지였다.[10]1979년 안양역전 지하상가가 조성되었고 2004년 보수 정비되었다.[11] 신도시 개발 이후에도 안양일번가는 전철역의 유동인구를 바탕으로 상권이 유지되었다.[9] 2000년대에는 인근 대학교의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장소가 되었고, MC 스나이퍼는 〈안양 1번가〉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하였다.[12]
2. 5. 2010년대 이후
2010년대에 들어 안양일번가는 여러 사건을 겪었다. 2014년 1월 16일에는 안양일번가 내 기름탱크에서 기름 1만8천L가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다.[15] 2010년대 후반 대한민국의 여러 상권이 그러하듯 안양일번가 역시 프렌차이즈 점포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임대료가 상승하여 기존의 터줏대감 같던 가게들이 쫓겨나고, 그 자리를 비슷한 프렌차이즈 점포가 다시 차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특색을 잃고 쇠퇴하기 시작하였다.2020년 이후 코로나19 범유행 동안에 방문객이 급감하며 부진을 겪었고 2023년 현재 옛 모습을 완전히 되찾지 못하고 있다.[13][14]
3. 특징
4. 사건 및 사고
2014년 9월 28일 안양일번가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15]
4. 1. 2014년 기름 유출 사고
2014년 9월 28일 안양일번가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15]5. 대중문화 속 안양일번가
MC 스나이퍼의 노래 〈안양 1번가〉에서 안양일번가가 묘사된다.
참조
[1]
웹사이트
안양일번가 지하쇼핑몰 경쟁력 평가 B등급
http://www.ohmynews.[...]
2008-10-14
[2]
뉴스
안양1번가 생뚱맞은 문화재에 이런 속사정이
https://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21-04-28
[3]
간행물
기억 속의 안양... 눈에 띄지 않는 근대문화유산 (1)
https://ggc.ggcf.kr/[...]
경기문화재단
[4]
간행물
1905년 경부선 개통시 안양역 한자 지명은 安陽이었다
https://ngoanyang.or[...]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5]
간행물
1861년 대동방여전도(大東方輿全圖)속 안양권과 한자
https://ngoanyang.or[...]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6]
웹사이트
구서이면사무소
https://www.heritage[...]
문화재청
[7]
서적
안양의 공업 100년
https://memory.libra[...]
안양시사편찬위원회
[8]
간행물
산업화과정을 통해 본 안양시의 도시성장
https://ngoanyang.or[...]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9]
뉴스
안양 전통의 지역상권 안양역 1번가
http://www.sangganew[...]
상가뉴스레이디
[10]
간행물
1974년 안양 중앙동(현 안양일번가)에 있던 안양시청사 전경
https://ngoanyang.or[...]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11]
웹사이트
안양역전지하도(상가) 보수․보강공사 원활하게 추진
http://anyangnews.ne[...]
안양광역신문
2005-09-01
[12]
간행물
안양_안양일번가
https://ggc.ggcf.kr/[...]
경기문화재단
[13]
뉴스
‘존폐 위기’ 안양일번가 지하상가 대책 촉구
https://www.kihoilbo[...]
기호일보
2023-04-12
[14]
뉴스
"아, 옛날이여" 최고 번화가로 이름 날리던 안양일번가의 몰락
https://realty.chosu[...]
조선일보
2023-06-25
[15]
뉴스
안양1번가 청소차량서 기름 유출…행인 불편
http://news.naver.co[...]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