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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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유자는 제 경공의 아들이자 제나라의 군주로, 기원전 490년에 태자가 되었으나 이듬해 폐위되어 살해되었다. 경공의 막내아들로, 어머니 우사의 총애를 받아 태자로 책봉되었으나, 경공 사후 진걸 등 세력의 다툼 속에서 폐위되었다. 이후 도공이 즉위하고, 안유자는 유배 도중 살해되었다.
| 이름 | 안유자 |
|---|
| 본관 | 강(姜) |
|---|
| 씨 | 여(呂) |
|---|
| 휘 | 도(荼) |
|---|
| 추존 여부 | 없음 |
|---|
| 재위년도 | 기원전 489년 |
|---|
| 이전 군주 | 경공 |
|---|
| 다음 군주 | 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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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제 경공의 적자는 일찍 죽었고, 어머니 예희가 총애를 받았으나, 예희가 천하고 도는 어렸으므로 여러 대부들은 도가 후사가 될까 두려워 경공에게 나이 많고 어진 자로 태자를 삼기를 구했다. 그러나 경공은 이를 듣지 않았고, 경공 58년(기원전 490년)에 병이 들자 비로소 국혜자와 고소자에게 명하여 도를 태자로 삼고 여러 공자들을 쫓아내 내 땅으로 옮겼다. 경공이 죽자 도가 제후가 되니 곧 안유자다. 경공(齊)과 육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유자 원년(기원전 489년), 진걸이 거짓으로 국혜자와 고소자를 섬기면서 국혜자, 고소자와 다른 대부들 사이를 이간질하였고, 6월에 진걸, 포목과 대부들이 공궁을 공격하자 국혜자와 고소자가 안유자를 도와 싸웠으나 져, 국하(國夏)와 고장(高張 (齊國))은 모두 실각했다. 전걸과 포목(鮑牧) 등이 기병하여 공궁에 들어가, 국하(國夏)와 고장(高張 (齊國))은 장에서 싸워 패배하고 노로 망명했다. 진걸은 노나라로 망명한 공자 양생을 불러와 대부들과 함께 옹립하니 곧 제 도공이다. 10월, 전걸 등은 공자 양생(도공)을 맞이하여 국군으로 옹립했다.
경공은 기원전 490년 가을에 사망했다. 곽씨와 고씨는 공자 도를 왕위에 앉혔고, 다른 공자들은 인근 국가인 위와 노나라로 도망쳤다. 10월, 래에 있던 공자 가, 공자 구, 공자 검은 위로 망명했고, 공자 서, 공자 양생은 노로 망명했다. 도공은 호희를 시켜 안유자를 뇌 땅으로 보내고 안유자의 모친 육사와 따로 안치시켰다. 포목은 공자 도를 폐위하는 것을 꺼렸지만, 전씨에 반대하지 못했다. 또 주모를 시켜 유자를 태(駘)로 옮기게 했는데, 주모가 도중에 유자를 죽여 수모순(殳冒淳)에 묻었다. 도는 뢰로 옮겨졌고, 더 나아가 태로 옮겨져, 야외 막사에서 살해되었다. 유해는 서모순에 묻혔다.
2.1. 태자 책봉
제 경공의 막내아들 안유자는 어머니가 경공의 총애를 받는 후궁 우사였다. 우사는 소국 순우 출신이었다. 기원전 490년 여름, 경공 재위 58년에 제나라 태자가 사망하자, 경공은 다른 성인 아들들을 제쳐두고 안유자를 태자로 책봉했다. 안유자는 어린 소년이었고 어머니의 신분이 낮았기 때문에, 경공은 국씨 가문의 곽하와 고씨 가문의 고장에게 안유자를 보좌하게 하고 다른 왕자들을 변방 도시 내로 추방했다.
2.2. 즉위와 폐위
아버지 경공의 적자는 일찍 죽었고, 어머니 예희가 총애를 받았으나, 예희가 천하고 도는 어렸으므로 여러 대부들은 도가 후사가 될까 두려워 경공에게 나이 많고 어진 자로 태자를 삼기를 구했다. 그러나 경공은 이를 듣지 않았고, 경공 58년(기원전 490년)에 병이 들자 비로소 국혜자와 고소자에게 명하여 도를 태자로 삼고 여러 공자들을 쫓아내 내 땅으로 옮겼다. 경공이 죽자 도가 제후가 되니 곧 안유자다. 경공(齊)과 육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유자 원년(기원전 489년), 진걸이 거짓으로 국혜자와 고소자를 섬기면서 국혜자, 고소자와 다른 대부들 사이를 이간질하였고, 6월에 진걸, 포목과 대부들이 공궁을 공격하자 국혜자와 고소자가 안유자를 도와 싸웠으나 져, 국하와 고장은 모두 실각했다. 전걸과 포목(鮑牧) 등이 기병하여 공궁에 들어가, 국하(國夏)와 고장(高張 (齊國))은 장에서 싸워 패배하고 노로 망명했다. 진걸은 노나라로 망명한 공자 양생을 불러와 대부들과 함께 옹립하니 곧 제 도공이다. 10월, 전걸 등은 공자 양생(도공)을 맞이하여 국군으로 옹립했다.
경공은 기원전 490년 가을에 사망했다. 곽씨와 고씨는 공자 투를 왕위에 앉혔고, 다른 공자들은 인근 국가인 위와 노나라로 도망쳤다. 10월, 래에 있던 공자 가, 공자 구, 공자 검은 위로 망명했고, 공자 서, 공자 양생은 노로 망명했다. 도공은 호희를 시켜 안유자를 뇌 땅으로 보내고 안유자의 모친 육사와 따로 안치시켰다. 포목은 공자 투를 폐위하는 것을 꺼렸지만, 전씨에 반대하지 못했다. 또 주모를 시켜 유자를 태(駘)로 옮기게 했는데, 주모가 도중에 유자를 죽여 수모순(殳冒淳)에 묻었다. 도는 뢰로 옮겨졌고, 더 나아가 태로 옮겨져, 야외 막사에서 살해되었다. 유해는 서모순에 묻혔다.
3. 가계
안유자는 제 경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예희이다. 형제로는 제 도공이 있다.
4.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