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미 다쓰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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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가미 다쓰히코는 일본의 만화가이자 소설가로, 본명은 미야케 타츠히코이다. 1965년 만화가로 데뷔하여 SF, 호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으며, 1969년 메이저 데뷔 후, 사회 정세를 반영한 『빛나는 바람』, 슬랩스틱 개그 만화 『희극 신사상 대계』,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가키데카』 등 여러 대표작을 발표했다. 1990년 만화 집필을 중단하고 소설가로 전향했으며, 2004년 『가키데카』의 속편을 발표하며 다시 만화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원작을 담당한 『양의 나무』로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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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가미 다쓰히코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야마가미 다쓰히코 |
| 본명 | 야마가미 다쓰히코 |
| 다른 이름 | 야마가미 류히코 아키쓰 구니히로 |
| 출생일 | 1947년 12월 13일 |
| 출생지 | 일본 도쿠시마현 |
| 직업 | 만화가 소설가 |
| 활동 기간 | 1965년 - |
| 장르 | 개그 만화 SF 만화 4컷 만화 |
| 대표작 | 빛나는 바람 희극 신사상 대계 개구쟁이 데카 양의 나무 |
| 수상 |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우수상 (2014년) |
| 관련 인물 | |
| 다른 이름으로 활동한 만화가 | 아키모토 오사무 ("야마도메 다쓰히코"라는 필명 사용) |
2. 생애 및 경력
오사카의 히노마루 문고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대본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1965년 만화가로 데뷔했다. 초기에는 SF, 호러 장르를 다루었으나 1970년대 발표한 『빛나는 바람』과 『가키데카』가 큰 성공을 거두며 대표적인 만화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빛나는 바람』은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여 군국주의를 비판적으로 그려 높은 평가를 받았고[3], 『가키데카』는 사회 현상을 일으킬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에는 일상 속 부조리를 다루는 개그 만화로 작품 경향을 바꾸었으며, 1990년 만화 집필 중단을 선언하고 소설가로 전향했다. 이후 다시 만화 활동을 재개하여 『양의 나무』 원작 등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 1. 초기 활동 (1965년 ~ 1969년)
본명은 미야케 다쓰히코[3]이다. 양자로 보내져 모리타 성을 따랐고, 오사카로 이사한 후 어머니의 옛 성인 야마가미 성을 사용하게 된다[3].고등학교 졸업 후, 오사카의 히노마루 문고에 입사하여 편집을 하면서 대본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965년 히노마루 문고 "카게 별책"에 게재된 『비밀지령0』으로 정식 만화가 데뷔를 했다. 이후 SF, 호러 등을 집필했다. 잡지 데뷔는 1968년, 호분샤 "코믹 매거진" 3월 12일호에 게재된 『제7병동 이상 없음』이다. 1969년에는 "주간 소년 매거진"에 『두 명의 구세주』를 발표하며 메이저 데뷔를 했다.
2. 2. 주요 작품 활동 (1970년 ~ 1990년)
1970년에는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초기 대표작인 『빛나는 바람』의 연재를 시작했다. 이 작품은 당시 사회 정세를 교묘하게 반영하여 군국주의의 대두와 그 공포를 그려 독자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으며, 정치적 서스펜스를 다룬 선구적인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1971년에는 도쿄로 이주하여 와코시를 거쳐 네리마구 오이즈미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여러 걸작을 발표하게 된다.
1972년에는 『희극 신사상 대계』의 연재를 시작하며 작품 경향에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전의 진지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슬랩스틱하고 과격한 개그를 선보여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함께 큰 호응을 얻었고, 개그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부터 "주간 소년 챔피언"에서 연재한 『가키데카』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미즈시마 신지의 『도카벤』, 카모가와 츠바메의 『마카로니 호렌소』와 더불어 "주간 소년 챔피언"의 판매 부수 증가에 크게 기여했으며,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1980년에 『가키데카』의 연재를 일단락 지은 후, 1980년대에는 작품 경향에 다시 변화가 나타났다. 『유노하나 부모와 자식』과 같은 작품들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미묘한 부조리함이나 위화감, 그리고 일본적인 일상 풍경을 주제로 한 개그 만화를 주로 그렸다. 동시에, 동글동글한 체형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귀인류전-고고의 천재 검사 야나기 사콘』 같은 전위적인 개그 만화도 발표하며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다.
그러나 점차 만화라는 표현 형식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1990년 『가키데카』 완결편을 마지막으로 만화 집필을 중단하고 소설가로 전향할 뜻을 밝혔다.
2. 3. 소설가 전향 및 이후 활동 (1990년 ~ 현재)
만화 표현에 한계를 느껴, 1990년 『가키데카』 완결편 탈고와 함께 만화 집필을 그만두고 소설가로 전향했다. 그러나 다시 만화 집필에 의욕을 보여, 2004년에는 『가키데카』의 속편인 『나카하루 코마와리 군』을 빅 코믹에 발표했다. 2014년에는 원작을 맡고 이가라시 미키오가 작화를 담당한 『양의 나무』로 제18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우수상을 수상했다.3. 작품 목록
야마가미 다쓰히코의 작품은 크게 만화와 소설로 나눌 수 있으며, 다수의 작품이 여러 잡지에 연재되거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 선집으로는 후타바샤에서 출간된 전 20권의 '야마가미 다쓰히코 선집'(1992년)과 쇼가쿠칸 크리에이티브에서 출간된 전 5권의 '야마가미 다쓰히코 선집'(2008년~)이 있다. 후타바샤 선집 각 권에는 야마가미의 자전적 연재가 수록되었는데, 이는 오랫동안 단행본화되지 않다가 2017년 에세이집 『오사카 사투리 개』(프리스타일)에 수록되어 간행되었다. 쇼가쿠칸 선집은 만화가 에구치 히사시가 감수하고 프리스타일의 요시다 타모츠가 편집을 맡았다.
또한 쇼가쿠칸 크리에이티브에서는 '단행본 미수록 걸작선'과 '초기 걸작선' 시리즈를 통해 그의 초기 작품이나 단행본에 실리지 않았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표작인 희극 신사상 대계, 쾌승의 자라시, 빛나는 바람 등 여러 작품의 완전판이 프리스타일이나 쇼가쿠칸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출간되기도 했다.
그 외 에세이집으로 『오사카 사투리 개』(프리스타일, 2017년)가 있다. 상세한 만화 및 소설 작품 목록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1. 만화
1989년 10월 27일호 ~ 1990년 11월 8일호,2009년 4월 23일호
1981년 3월 7일호,
1982년 1월 2일호 ~ 11월 9일호
1983년 6월호 ~ 1984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