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고로
1. 개요
야마다 고로(山田午郎)는 일본의 축구 선수, 감독, 기자이다. 1894년 후쿠시마현에서 태어나 도쿄 아오야마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도쿄 슛큐단에서 선수로 활동, 1921년 천황배에서 우승했다. 1925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며, 아사히 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축구 보급에 기여했다. 1924년부터 1958년까지 일본 축구 협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1958년 뇌출혈로 사망 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이름 | 야마다 고로 |
|---|---|
| 원어 이름 | 山田 午郎 |
| 로마자 표기 | Yamada Gorō |
| 출생일 | 1894년 3월 3일 |
| 출생지 |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시 |
| 사망일 | 1958년 3월 9일 |
| 사망지 | 도쿄도 오타구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도쿄 아오야마 사범학교 |
|---|---|
| 클럽 | 도쿄 축구단 |
| 국가대표팀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감독 년도 | 1925년 |
|---|---|
| 감독 클럽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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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필리프 트루시에
필리프 트루시에는 프랑스 출신 축구 감독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클럽 및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했으며, 플랫 스리 전술과 젊은 선수 기용을 특징으로 하지만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나가누마 겐
나가누마 겐은 일본의 축구 선수, 감독, 행정가로, 선수로서는 올림픽에 출전하고, 감독으로서는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으며, 행정가로서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1958년 사망 -
찰스 케터링
찰스 케터링은 전기식 계산대, 자동차용 전기 시동 장치, 점화 및 조명 시스템을 개발하여 자동차 대중화에 기여하고 GM 연구소 부사장을 역임한 미국의 발명가, 엔지니어, 사업가이다. -
1958년 사망 -
최린
최린은 3·1 운동의 주요 기획자였으나, 이후 친일 행보를 보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하는 등 극렬한 친일 활동을 펼쳤고, 광복 후 체포되었다가 석방, 한국 전쟁 중 월북하여 북한에서 사망, 남북 모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받으며 친일파 명단에 등재된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야마다 고로는 니혼마쓰에서 태어나, 도쿄 아오야마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도쿄 슛큐단에서 선수로 뛰면서 1921년 제1회 천황배 우승에 기여했다. 포지션은 오른쪽 미드필더였고, 팀의 주장을 맡았다. 도쿄부 아오야마 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축구를 배웠고, 1917년(다이쇼 6년) 졸업 후 우치노 다이레이의 권유로 도쿄 축구단에 입단했다. 1921년(다이쇼 10년) 제1회 전국 우승 대회(현재의 천황배) 결승에서 오른쪽 HB으로 출전하여 우승했다.
3. 감독 경력
1925년 야마다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1925년 마닐라에서 열린 극동 선수권 대회 축구에 참가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필리핀과 중화민국을 상대로 2경기를 지휘했지만, 일본은 두 경기 모두 패했다.
4. 기자 경력 및 기타 활동
1926년 야마다는 아사히 신문 축구 기자가 되었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아사히 신문 운동부장을 역임했다. 1924년부터 1958년까지 일본 축구 협회 이사, 간토 축구 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전후에는 일본 축구 협회 기관지 "축구"의 편집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