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임라인 바로가기

아사히 신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타임라인 바로가기

1. 개요

아사히 신문은 1879년 오사카에서 창간된 일본의 유력 일간지이다. 1888년 도쿄로 진출하여 전국적인 신문으로 성장했으며, 현재 오사카, 도쿄, 홋카이도, 나고야, 서부, 후쿠오카에 본사를 두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여러 차례의 오보와 논란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위안부 문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보도 등에서 논란이 있었다. 좌파 성향으로 평가받으며, 정치·사회 문제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아사히상(朝日賞)을 제정하여 일본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온라인 서비스인 아사히 신문 디지털을 운영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자유주의 단체 - 한겨레
    한겨레는 국민주 모금을 통해 설립된 진보 성향의 종합 일간지로, 편집위원장 직선제, 한글 전용 가로쓰기 도입 등 혁신적인 시도를 했으며, 사회 의제들을 다루고 자매지 발행 및 다양한 사업을 전개한다.
  • 1879년 설립된 기업 - 싱텔
    싱텔은 1879년 설립된 싱가포르의 주요 통신 서비스 제공업체이며, 이동 통신, 인터넷, 유료 TV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해외 통신사에 지분을 투자하며, 기업 공개 후 여러 사건을 겪었다.
  • 1879년 설립된 기업 - 가고시마 은행
    가고시마 은행은 1879년 설립된 제147국립은행에서 시작하여 여러 은행과의 합병을 거쳐 1952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고 가고시마현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점을 운영하며 모바일 결제 서비스와 스포츠 분야에도 기여하는 일본의 지방 은행이다.
  • 1879년 창간 - 파수대
    《파수대》는 찰스 테이즈 러셀이 창간한 여호와의 증인 공식 간행물로, "여호와의 왕국을 선포하는 파수대"라는 제목으로 400개 이상의 언어로 배포되며, 성경에 근거한 내용으로 일반 대중용 공개판과 연구용 연구판으로 나뉘어 자발적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 1879년 창간 - 산요 신문
    1879년 창간된 산요 신문은 오카야마현을 중심으로 배포되는 지방 신문으로, 방송사와 라디오 방송국을 산하에 둔 산요 신문 그룹의 핵심이다.
아사히 신문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신문 이름아사히 신문
아사히 신문 로고
로고
1879년 1월 25일 창간호
유형일간 신문
회사 유형비상장 회사
판형블랭킷 (54.6cm x 40.65cm)
창간일1879년 1월 25일
창립자무라야마 료헤이
우에노 리이치
소유주자기 주식 매입(25%)
무라야마 가문 (21.02%; 고세쓰 미술관을 통해 10%)
우에노 가문 (총 14.22%, 2016년 우에노 쇼이치 사망)
TV 아사히 (11.88%)
돗판 (7.31%)
아사히 방송 그룹 홀딩스 (2.31%)
본사오사카부오사카시기타구나카노시마, 일본
발행 국가일본
웹사이트 (일본어)아사히 신문 일본어 웹사이트
웹사이트 (영어)아사히 신문 영어 웹사이트
정치 성향
정치 성향자유주의 (일본)
사회 자유주의
중도좌파
발행 부수
2021년4,574,906부
2020년5,160,355부
2018년5,954,336부
2016년6,572,195부
2010년7,960,000부
발행 정보
1부 가격(조간) 180엔
(석간) 70엔
월 구독료(종이판) 조석간 세트 4,900엔
(종이판) 통합판 4,000엔
(더블 코스) 조석간 세트 5,400엔
(더블 코스) 통합판 4,500엔
(일간 스포츠 종이판 세트) 4,353엔
(전자판 단독) 베이직 코스 980엔
(전자판 단독) 스탠다드 코스 1,980엔
(전자판 단독) 프리미엄 코스 3,800엔
종이판 구독자 대상 "지면 뷰어 코스" 제공
추가 정보
발행 부수(종이판, 조간) 약 336만 부
(종이판, 석간) 약 96.5만 부
전자판 유료 회원약 30.6만 명
회사명 (일본어)株式会社朝日新聞社
회사명 (로마자 표기)Kabushiki gaisha Asahi Shimbun-sha
회사명 (구자체)朝日新聞社
특징"아사히닷컴"은 2012년에 디지털판으로 통합
"천성인어" 코너에 최초 여성 필자 기용

2. 연혁

2. 1. 창간과 초기 발전 (1879년 ~ 1918년)

1879년 1월 25일, 오사카에서 1부 1센짜리 4페이지 소형 신문으로 창간되었다.[72][73] 당시 발행 부수는 약 3,000부였고, 창립 멤버는 기무라 노보루(木村昇) 회장, 무라야마 료헤이 소유주, 쓰다 테이(津田貞) 편집장이었다. 같은 해 9월 13일 첫 사설 「신문지 논설의 일을 논함」을 게재했다.[73][74] 창간 초기에는 신문 소설과 통속 기사가 주를 이루는 오사카 지방신문이었다.[117]

1881년에는 모든 기사를 뉴스로 구성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우에노 리이치를 공동 소유주로 영입했다. 1882년부터는 메이지 14년의 정변 이후 정부와 미쓰이 은행으로부터 비밀리에 경영 자금을 지원받으며 경영 기반을 다졌다.[118] 이는 아사히 신문이 초기에 정부 편향적인 성격을 띠게 된 배경이 되었다.

1888년 7월 10일, 도쿄의 소규모 신문이었던 『메사마시 신문』(めさまし新聞)을 인수하여 『도쿄 아사히 신문』을 창간하며 도쿄로 진출했다.[73] 이듬해인 1889년 1월 3일에는 오사카 본사에서 발행하는 신문의 제호를 『오사카 아사히 신문』으로 변경했다.[75][76]

1904년 러일전쟁 발발 당시 아사히 신문은 주전론을 펼쳤으며, 전쟁 보도를 통해 발행 부수를 크게 늘렸다. 같은 해 1월 5일 오사카 아사히 신문은 유명 칼럼인 「천성인어(天声人語)」 연재를 시작했고,[73] 9월 30일 도쿄 아사히 신문은 일본 신문 최초로 전쟁터 사진을 게재했다.[73] 전쟁 후 포츠머스 조약 체결 시에는 강화 조건에 반대하는 논조를 보이기도 했다.

1907년에는 유명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도쿄 제국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입사하여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77] 1908년 10월 1일에는 오사카 아사히 신문과 도쿄 아사히 신문이 합병하여 자본금 약 60만 엔 규모의 아사히 신문 합자회사(朝日新聞合資会社)가 설립되었다.[18]

다이쇼 시대에 들어서면서 아사히 신문은 다이쇼 민주주의의 흐름 속에서 헌정옹호운동을 지지하고 테라우치 마사타케 내각을 비판하는 등 자유주의적인 논조를 보였다.[119][120][121][122] 1915년 10월 10일 오사카 아사히 신문이 석간 발행을 시작했으며,[79] 같은 해 전국 중등 학교 야구 대회(현재의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를 처음 개최했다. 1916년 3월 29일에는 도쿄 아사히 신문에서 칼럼 「청연필(青鉛筆)」 연재가 시작되었다.[73]

1918년 쌀 소동 당시에는 신흥 재벌인 스즈키 상점이 쌀을 매점매석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는데,[123][124] 이는 스즈키 상점이 민중의 습격을 받아 불타는 사건의 한 원인이 되었다. 후일 작가 시로야마 사부로는 스즈키 상점의 매점매석은 사실이 아니었으며, 아사히 신문의 날조 보도가 풍평 피해를 일으켰고 그 배후에 경쟁 관계였던 미쓰이와의 관련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123][125] 같은 해 8월, 오사카 아사히 신문은 테라우치 내각을 비판하는 기사("백홍일을 관철하라") 때문에 신문지법 위반으로 탄압을 받았다. 이 사건(백홍 사건)으로 관련 기자는 유죄 판결을 받고 해고되었으며, 편집 간부들이 사퇴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73] 사건 이후 아사히 신문은 "불편불당", "평론의 온건 타당" 등을 내세운 새로운 편집 강령을 발표하며 논조에 변화를 보였다.

아사히 신문 배달원

2. 2. 격동의 시대 (1918년 ~ 1945년)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아사히 신문은 헌정옹호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며 당시 테라이치 마사타케 내각을 비판하는 등[119][120][121][122] 리버럴적인 논조를 보였다. 1918년 쌀 소동 때는 신흥 재벌인 스즈키 상점이 쌀을 매점매석한 악덕 상인이라고 공격했고,[123][124] 이 보도는 스즈키 상점이 민중의 습격으로 불타는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작가 시로야마 사부로는 스즈키 상점의 매점매석은 사실이 아니었으며, 아사히 신문의 날조 보도가 소동을 부추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123][125] 같은 해, 오사카 아사히 신문은 테라이치 내각을 비판하는 기사("백홍일을 관철하라")가 신문지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탄압받았다. 이 사건으로 편집 간부들이 사퇴하고 기자는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이른바 백홍 사건),[73] 아사히 신문은 이후 "불편불당", "온건 타당"을 표방하는 편집 강령을 발표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군축을 지지하고[126] 시베리아 출병에 반대했으며, 보통선거 실시를 주장하는 등[127] 반군, 자유주의적 논조를 이어갔다. 그러나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폭동에 대한 유언비어를 기사로 게재하기도 했다.

만주사변 이후 아사히 신문의 논조는 크게 변하여, 대외 강경론을 지지하고 군부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향토 군인회와 신사 관계자 등에 의한 불매운동이 있었고, 영업 측면을 고려한 결과였다고 한다. 제1차 상하이 사변 당시 일본군 병사를 '육탄 삼용사'라 칭하며 영웅시하고 노래를 공모하는 등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국제 연맹 탈퇴 시에는 "연맹이여 안녕"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대표 마쓰오카 요스케를 칭찬하기도 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고노에 후미마로 수상의 전시 체제(고노에 신체제)를 열렬히 지지했다.[128] 당시 주필이었던 오가타 타케토라는 극우 민족주의 단체 겐요샤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승인 아래 류 신타로, 사사 히로오, 오자키 호츠미 등 아사히 신문의 영향력 있는 논설위원, 기자들이 고노에 정권의 싱크탱크인 쇼와 연구회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133] 특히 오자키 호츠미는 리하르트 조르게가 조직한 소련 스파이단(조르게 사건)의 일원으로 체포되어, 주모자 중 한 명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133] 아사히 신문 도쿄 본사 정치경제부장 다나카 신지로와 부원 이소노 키요시도 같은 혐의로 체포되었다.

1936년 2.26 사건 때는 반란군이 도쿄 아사히 신문 사옥을 습격하는 일도 있었다. 1940년 9월 1일, 오사카 아사히 신문과 도쿄 아사히 신문은 제호를 '아사히 신문'으로 통일했다.[73]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아사히 신문은 마이니치 신문, 요미우리 신문 등 다른 주요 신문들과 마찬가지로 대본영 발표를 그대로 전하며 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국민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보도를 이어갔다.[134][135]

1943년 1월 1일, 나카노 세이고가 기고한 전시 내각 비판 논설("전시 재상론")을 게재했다가 정부로부터 발행 금지 처분을 받았다.[73] 같은 해 12월, 사장 무라야마 나가타카는 오가타 다케토라를 부사장으로 강등시키고 사내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오가타 다케토라는 1944년 고이소 구니아키 내각에서 무임소 장관 겸 내각 정보국장이 되었고,[133] 1945년에는 아사히 신문 전 부사장 시모무라 히로시가 스즈키 간타로 내각에서 무임소 장관 겸 내각 정보국장을, 오가타 다케토라는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내각에서 무임소 장관 겸 내각관방장관 겸 내각 정보국장을 맡는 등 아사히 신문 간부들이 전시 내각에 참여하기도 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 후, 아사히 신문은 8월 23일자 사설 「자신을 벌하는 변」을 통해 전쟁을 부추긴 자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그러나 9월 18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는 아사히 신문의 기사와 하토야마 이치로의 기고문이 연합군 점령 정책에 위배된다며 48시간 발행 정지 명령을 내렸다.[82][83] 이후 11월 7일, 아사히 신문은 "국민과 함께 서겠다"는 성명과 "신문의 새로운 사명"이라는 사설을 게재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73]

2. 3. 전후의 변화와 발전 (1945년 ~ 현재)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인 1945년 8월 23일, 아사히 신문은 사설 「자기를 죄하는 변」을 통해 전쟁 중 자사의 보도 태도에 대한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같은 해 9월 18일에는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로부터 48시간 발행 정지 명령을 받았으며[82][83], 11월 5일에는 전쟁 중 신문의 원칙을 훼손한 책임을 지고 사장과 고위 경영진이 일괄 사퇴했다. 11월 7일에는 성명 「국민과 함께 서리라」와 사설 「신문의 새로운 사명」을 게재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73]

1946년 11월 21일에는 현대 가나 표기법을 채택했으며[73], 1947년 6월 8일에는 이시사카 요지로의 소설 『푸른 산맥』 연재를 시작하며 전후 신문 소설 시대를 열었다.[73] 1949년 11월 30일에는 석간 발행을 재개하며 하세가와 마치코의 만화 『사자에상』 연재를 시작했다.[73][79] 『사자에상』은 이후 일본의 국민 만화로 큰 인기를 얻었으나, 1974년 2월 21일 작가의 건강 문제로 연재가 종료되었다. 1950년 9월 27일에는 일본 공산당 간부 이토 리쓰와의 단독 회견 기사를 게재했으나, 이는 훗날 담당 기자에 의한 날조로 밝혀지는 이토 릿쓰 회견 보도 사건으로 이어졌다.[84] 1951년에는 네모토 스스무의 만화 『크리짱』 연재를 시작하고(1965년 종료)[73], 조석간 세트 발행을 재개했으며[73], 독자 투고란인 「히토토키(ひととき)」를 신설했다.[73] 1954년부터 1971년까지는 영어 연간지 ''This is Japan''을 발행하기도 했다.

1957년에는 「부모 찾기 운동」 관련 기사로 제1회 일본 신문 협회상을 수상했다.[73] 1959년 6월 1일에는 홋카이도 지사에서 발행을 시작했다.[85]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 개정을 둘러싼 안보 투쟁 당시에는 도쿄의 주요 7개 신문사와 함께 「폭력을 배제하고 의회주의를 지켜라」는 공동 선언을 게재했다.[73] 1963년에는 사주 일가와 경영진 간의 갈등인 '무라야마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65년에는 일본 신문 최초로 발행 부수 500만 부를 돌파했으며[73], 사토우 산페이의 만화 『후지 사타로』 연재를 시작했다(1991년 종료).[73] 1968년에는 일중 기자 교환 협정에 동의했다. 1976년에는 록히드 사건을 일본 언론 중 가장 먼저 특종 보도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73] 1979년에는 소노야마 슌지의 만화 『페에스케』 연재를 시작했다(1992년 중단).[86]

1980년 11월 도쿄 본사를 지요다구 유라쿠초에서 주오구 쓰키지로 이전하며 납 활자를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 신문 제작 시스템 '넬슨(NELSON)'을 도입했다. 이후 1988년 6월 오사카 본사를 마지막으로 전 지면이 '넬슨' 시스템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지면의 글자 크기는 1981년(1단 14자), 1983년(1단 13자), 1991년(1단 12자)[73], 2001년(1단 11자)[73], 2008년(12단 조판)[73], 2011년(1행 12자)[97] 등 여러 차례 확대 및 조정되었다. 1986년 1월 1일에는 런던에서 국제 위성판 발행을 시작했다.[73]

1987년 5월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지국에서 소속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통칭 '''적보대 사건''')이 발생했으며, '적보대'를 자칭하는 이의 범행 성명이 있었으나 범인은 검거되지 않은 채 2003년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쇼와 천황의 병세를 특종 보도하여 일본 신문 협회상을 수상했다.[73] 1988년 6월에는 리크루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73] 그러나 1989년 4월에는 오키나와현의 산호초 훼손 기사가 자사 기자에 의한 조작으로 밝혀지는 아사히 신문 산호 기사 날조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적 비판을 받고 사장이 사임하는 등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20][21][87]

1991년에는 이시이 히사이치의 만화 『노노짱』(당시 제목 'となりのやまだ君') 연재를 시작했다. 1992년에는 도쿄 사가와 급편 사건을 특종 보도하여 일본 신문 협회상을 수상했다.[73] 1995년 8월에는 뉴스 웹사이트 'asahi.com'을 개설하며 디지털 시대를 준비했다.[68][88] 1996년에는 서부 본사의 제작 기능을 후쿠오카 본부로 이전했다. 1999년에는 와카야마 독물 카레 사건 보도로 일본 신문 협회상을 수상했다.[73] 2000년 4월에는 생활 정보면인 「쿠라시(くらし)」란을 신설했다.[73]

2001년 4월부터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현 인터내셔널 뉴욕 타임스)과 제휴하여 영어 신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아사히 신문'''을 발행했다. 이는 기존의 ''아사히 이브닝 뉴스''를 대체했으나, 2010년 수익성 악화로 제휴가 해소되었고, 이후 온라인 영어 뉴스 서비스 ''Asia & Japan Watch''를 운영하고 있다.[23] 2002년 3월에는 일요판을 폐지하고 4월부터 토요판 '''be'''를 창간했으며[73], 시리아가리 코토부키의 만화 『지구 방위 가의 히토비토』 연재를 시작했다. 2003년 6월에는 서부 본사를 기타큐슈시 고쿠라키타구 내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2004년 1월 1일에는 남극 지국을 개설했다. 2005년 4월 1일에는 신문 제작 시스템을 '넬슨'에서 신미디어계 시스템으로 교체했으며, 4월 3일에는 일요판 형식의 'be on Sunday'를 창간하고 기존 토요판은 'be on Saturday'로 개칭했다.[73] 같은 해 회원제 사이트 아스파라클럽을 시작했고, JR 후쿠치야마 선 탈선 사고 사진 보도로 일본 신문 협회상을 수상했다.[73]

2006년 1월 창간 127주년을 맞아 '저널리스트 선언' 캠페인을 시작했으나, 2007년 2월 요미우리 신문 웹사이트 기사 도용 사실이 드러나 캠페인을 자숙하는 등 논란을 빚었다.[89] 2007년 6월 26일, 후나바시 요이치가 편집장으로 임명되었다. 2008년 10월 6일에는 국제 뉴스 섹션인 「GLOBE」를 월요일 조간 내 중철 지면으로 창간했다.[90][91] 2009년 4월 지면 쇄신으로 다시 일요판이 폐지되고 일부 연재 기사가 토요판으로 통합되었다. 2010년 1월 1일에는 어린이를 위한 칼럼 「질문! 도라에몽」 연재를 시작했으며[92], 같은 해 9월 21일 오사카 지검 특수부 주임 검사 증거 조작 사건을 특종 보도하여 사상 최초의 '추가 수상' 형태로 일본 신문 협회상을 받았다.[95]

2011년 3월 13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시에는 이례적으로 일요일 석간을 발행했으며[96], 4월부터는 「GLOBE」를 일요일 별쇄판으로 발행하며 일요판 형식을 부활시켰다.[98] 5월 18일에는 유료 디지털 뉴스 서비스인 『아사히 신문 디지털』을 창간했다.[99] 2012년 1월 23일에는 기존 웹사이트 'asahi.com' 브랜드를 '아사히 신문 디지털'로 통합했다.[100]

그러나 2014년, 아사히 신문은 큰 신뢰 위기를 맞았다. 5월 20일자 조간에서 보도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당시 요시다 마사오 소장의 대기 명령 위반 철수 기사가 오보로 밝혀졌고, 8월 5일과 6일에는 과거 제주도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고 증언한 요시다 세이지 관련 기사들이 증거 부족으로 허위였음을 인정하고 32년 만에 공식 철회했다.[101] 9월 11일, 기무라 다다카즈(木村 伊量) 당시 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두 건의 오보 및 기사 철회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102][470] 특히 요시다 세이지 관련 기사 취소에 대해 "정정이 너무 늦어 독자 여러분께 사죄한다"고 밝혔으나, 위안부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의사에 반해 군 등이 관여한 강제성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471] 이 사태로 인해 10월에는 위안부 보도 제3자 위원회[103]와 사내 '신뢰 회복과 재생을 위한 위원회'[105]가 발족했으며, 12월 5일 기무라 사장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106] 12월 22일 제3자 위원회 보고서가 제출되었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내 징계가 이루어졌다.

2016년 2월 29일에는 1997년부터 공동 소유주였던 우에노 쇼이치가 사망했으며[22], 4월에는 콘텐츠 마케팅 스타트업 섬라이트를 인수했다. 2018년 9월에는 재무성의 공문서 개찬 문제를 특종 보도하여 일본 신문 협회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에는 코로나19 범유행요코하마항에 정박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신문을 무료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와타나베 마사타카 대표이사는 지난 6년간 발행 부수가 185만 부 감소했으며 2020년도 결산에서 약 170억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발표하며 경영 책임을 지고 2021년 봄 퇴임 의사를 밝혔다.[107] 또한 희망퇴직 등을 통해 사원 수를 약 3,900명까지 감축할 계획을 발표했다.[108]

2021년 7월 1일, 제작 비용 상승과 광고 수입 감소,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27년 7개월 만에 소비세 증세를 동반하지 않는 구독료 인상을 단행했다.[109] 이후 2023년 5월 1일에도 구독료를 추가 인상했다.[111][112] 경영난으로 인해 석간 발행 지역도 점차 축소되어, 2023년 4월 나고야 본사 발행 석간(아이치·미에·기후)[110], 2024년 3월 홋카이도 지사 발행 석간[113], 2024년 9월 시즈오카현, 야마구치현, 후쿠오카현 석간 발행이 중단되었다.[114] 2025년 3월 31일에는 젊은층 대상 미디어 커뮤니티인 『아사히 신문 DIALOG』 서비스 종료가 예정되어 있다.

3. 논조 및 정치적 성향

아사히 신문은 일반적으로 좌파 성향으로 평가받으며,[25][26][27] 때로는 "일본 정계 좌파의 지적 기함"으로 불리기도 한다.[28] 오랜 기간 동안 보수 성향의 경쟁 언론사들보다 정치적 스캔들을 더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을 보여왔다.[29] 일본의 기록 보관 신문 중 하나로 여겨진다.[30][31][32]

아사히 신문은 일본의 우익 민족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문화 및 외교 문제에서는 진보적 경향을 보인다.[33] 다만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마이니치 신문의 상대적으로 케인즈주의적 경제관과는 대조된다.[33] 전반적으로 일본의 사회자유주의 (좌파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논조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34][35]

특히 전후 헌법, 그중에서도 전쟁을 통한 분쟁 해결을 금지하는 제9조의 수호를 강조한다.[36] 2014년 공격받는 동맹국 지원을 허용하도록 해당 조항의 해석을 변경(소위 집단적 자위권)하려는 움직임에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36]

과거 요시다 세이지의 신빙성 없는 증언을 바탕으로 한 기사를 취소한 바 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한국인 등 여성을 강제로 동원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그 존재를 인정하는 편집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37]

2009년 신문통신조사회 조사에서는 전국 5대 신문 중 가장 진보적인 논조(점수가 낮을수록 진보적, 아사히 4.4점)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었다.[116] (요미우리 5.6점, 산케이 5.3점, 니혼게이자이 5.2점, 마이니치 5.0점)

그러나 아사히 신문의 논조가 항상 일관되었던 것은 아니며,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해왔다. 이는 다른 주요 신문사들도 마찬가지인 경향이다.


  • 1930년대 후반에는 고노에 후미마로 수상의 전시 체제(근위 신체제 운동)를 적극 지지했으며,[128] 당시 주필 오가타 다케토라 등의 승인 아래 가사 신타로, 사사 히로오, 오자키 호쓰미 등 주요 논설위원과 기자들이 고노에 정권의 싱크탱크인 쇼와 연구회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133] 오가타 주필 본인도 신체제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중일 전쟁 확대를 주장했으며, 이후 코민테른 공작원으로 밝혀진 오자키 호쓰미와 다나카 신지로, 이소노 기요시 등 아사히 신문 관계자가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가 조직한 스파이단에 연루되어 체포되기도 했다. 오자키는 사형 판결을 받았다.
  • 관동군이 만주 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건국하고 국제 연맹에서 탈퇴하자 "연맹이여 안녕"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대표 마쓰오카 요스케를 찬양하기도 했다.
  •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다른 주요 신문들과 마찬가지로 군부의 논리를 대변하며 전쟁을 옹호하는 보도를 했고,[134][135] 대본영 발표를 그대로 게재했다.
  • 패전 후에는 사설 「스스로를 죄하는 변」(1945년 8월 23일), 성명 「국민과 함께 서리라」(1945년 11월 7일) 등을 통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경영진이 사퇴했으나, 무라야마 나가타카·우에노 세이이치 두 사주는 공직추방 해제 후 복귀하기도 했다.
  • 전전 시기에는 조선인의 일본 밀항이나 조선인 밀항 조직, 조선인 노동자의 고소득 등을 자주 보도했으나,[136][137][138][139][140][141] 1959년 재일 조선인 북송 사업이 시작된 이후에는 점차 좌경화되어 재일조선인이 강제 연행되었다는 주장을 보도하기 시작했고,[142]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탁아소 등 복지 정책을 긍정적으로 소개하며 "이 나라의 미래를 느꼈다"는 식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143]
  • 전후 한때는 재 엘리트를 포함한 고학력층의 지지를 받았으나,[144] 동시에 기자들을 비롯한 직원들의 엘리트 의식이 지나치다는 비판("아사히의 DIY" - 고함치다, 뻐기다, 부르다)도 있었다.[145]
  • 전후 오랫동안 여당이었던 자유민주당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을 보였으나,[146] 가사 신타로가 논설 주간이었던 시대부터 자유주의 우파 성향의 고치카이(宏池会)와는 비교적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며,[147] 오가타 다케토라, 이시이 코지로, 고노 이치로 등을 총리로 강하게 지지했던 시기도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시기(주로 2005년경)에는 고이즈미가 추진한 구조 개혁 노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 구로다 가쓰히로에 따르면,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아사히 신문의 논조는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고 김대중을 옹호하는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일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반한(反韓) 미디어"로 평가받기도 했다고 한다.[148]


이러한 논조 때문에 우익 및 보수 진영으로부터 좌편향, 자학사관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396][397][398][399] 특히 산케이 신문,[400] 정론(正論),[401] WiLL,[402] Hanada,[403] SAPIO,[404] 주간문춘,[405] 일본문화채널벚꽃[406] 등에서 비판적인 보도가 나온다.

구체적인 비판 사례는 다음과 같다.

  • 1960년 안보투쟁 당시에는 상무이사 겸 논설주간 가사 신타로가 안보 조약 개정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혀, 일본신문노동조합연합의 하라 도시오 등으로부터 "정부 추종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407] 당시 가사 주간은 니시오 스에히로민주사회당 결성을 지지하는 논조를 폈다.[408]
  • 2006년부터 2007년에 걸쳐 당시 총리 아베 신조에 대한 아사히 신문의 보도가 "네거티브 캠페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409]
  • 제45회 중의원 총선거 전의 아소 내각에 대한 보도에 대해, 가지 노부유키는 아사히 신문 등이 자민당을 공격하고 민주당을 칭찬하는 편파 보도를 했다고 비판했다.[410]
  • 2008년 히카리시 모자 살해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오사카 부지사 하시모토 도루의 발언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하자, 하시모토는 공개 석상에서 "남의 험담만 하는 아사히 신문 같은 어른이 늘어나면 일본은 망한다"고 비판했다.[411]
  • 오가와 에이타로의 저서 『약속의 날 아베 신조 시론』에서, 당시 아사히 신문 논설주간 와카미야 히로부미가 정치평론가 미야케 히사유키에게 "아베 정권 타도가 사시(社是, 회사의 방침)"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실려 논란이 되었다.[412][413] 아사히 신문 홍보부는 해당 발언 사실을 부인했다.[414] 이후 2014년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 내용을 언급하며 아사히 신문의 보도를 "날조"라고 비판하자, 아사히 신문 측은 "기사는 날조가 아니며 취재에 근거한 것"이고 "아베 정권 타도라는 사시는 없다"고 반박했다.[415][416]
  • 2012년 미국 CSIS의 마이클 그린은 아사히 신문 등이 위안부 문제를 계기로 아베 총리를 '위험한 우익'으로 비난하며 그의 전략적 공헌을 간과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418]
  • 다모가미 도시오는 아사히 신문이 반대 의견을 '극우', '반지성주의'로 낙인찍어 봉쇄하며, "아사히 신문의 반대를 하면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419]
  •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아사히 신문과 이와나미 쇼텐 등이 전쟁 중에는 전쟁을 옹호하다가 패전 후 쉽게 입장을 바꾼 태도를 비판하며, 이러한 "전후 민주주의자"와는 선을 긋는다고 말했다.[420]

4. 주요 논란

아사히 신문은 일본 패전 이후 사설과 성명을 통해 과거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고 경영진이 사임했으나, 공직추방 해제 후 일부 사주가 복귀하기도 했다. 전후 오랫동안 자유민주당 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해왔으나[146], 특정 파벌(고지회)과는 비교적 가까운 관계를 맺거나[147]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의 구조 개혁 노선을 지지하는 등[147]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혁신[116]·진보·리버럴 성향으로 평가받으며, 과거에는 '아사히 지식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149] 그러나 일각에서는 논조가 보수화·관료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150] 또한, 기자를 포함한 직원들의 엘리트 의식이 높다는 지적과 함께, 외부와의 관계에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아사히의 DIY")도 있다.[145]

한국 관련 보도에서는 김대중 납치 사건(1973년) 당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고 김대중을 옹호하는 논조로 인해 한국 내에서 "반한 미디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148] 재일조선인에 대해서는 전전 시기 밀항이나 고소득 노동자 관련 보도를 하다가[136][137][138][139][140][141], 1959년 북송 사업 이후 점차 좌경화되어 강제 연행 문제를 부각하고 북한 체제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142][143] 재일 한국·조선인의 성명 표기는 원칙적으로 통명(일본 이름)을 사용한다.

중국 관련 보도에 비중을 두며 세계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156][157],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입장에 우호적인 논조가 자주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158][159][160][161] 다만 티베트나 위구르 등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적 기사나[162][163] 센카쿠 열도 문제에 대한 비교적 강경한 논조의 기사도 게재하고 있다.[164][165]

일본국헌법 제9조(평화헌법)를 통한 평화 유지 입장을 견지하며 과거에는 헌법개정 논의 자체에 반대했으나, 이후 '개헌 논의'는 용인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174] 동시에 일본국헌법 제25조(생존권) 보장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151]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는 일관되게 반대하며, 인권옹호법안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용인하나 보도의 자유 침해 가능성에는 우려를 표명했다.[154][155]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미야자키 쿤 사건 당시 사형 찬성 여론을 반영하는 듯한 보도로 비판받은 바 있다.[173] 교직원의 기미가요 제창·기립 의무화에 대해서는 사상·양심의 자유 침해라며 비판적 입장을 보인다.[179]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초기 호의적인 입장에서[166][167] 체르노빌 사고 등을 계기로 신중론으로 돌아섰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는 '탈원전'을 사론으로 내걸었다.[169][170][171][172] 특정 비밀의 보호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록히드 사건(1976), 리쿠르트 사건(1988), 도쿄 사가와 급편 사건(1992) 등 주요 정치 스캔들을 특종 보도하여 여러 상을 수상했으나[195][206], 리쿠르트 사건 보도와 관련하여 자사 간부의 접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역사 인식 문제와 관련하여 혼다 카츠이치 기자의 난징 대학살 르포(1971년)는 큰 반향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360], 산호 기사 날조 사건(1989),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요시다 조서' 오보(2014), 위안부 관련 '요시다 증언' 보도 취소(2014) 등 중대한 오보 및 날조 사건으로 사회적 비판을 받고 사장이 사임하는 등 파문을 겪었다. (상세 내용은 하위 섹션 참고)

4. 1. 위안부 문제 보도

2014년 8월, 아사히 신문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자사를 포함한 일본 주요 언론들이 여러 차례 인용했던 요시다 세이지의 위안부 강제 연행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관련 기사를 취소했다. 이 결정은 아베 정권과 일본 내 보수 언론으로부터 일본의 국제적 평판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38][39]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빌미로 위안부 문제 자체가 날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사히 신문은 기사 취소 당시 "일본군의 성적 파트너로서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갔다는 사실 자체는 지울 수 없다"고 재확인하면서도, "한국과 대만(당시 일본 제국 식민지배 하에 있던 지역)에서 군 당국이 직접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간 것을 보여주는 공식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빈곤과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로 인해 매춘 알선이 성행했으며, 군 당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취업 사기나 인신매매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여성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40][41]

아사히 신문은 1991년부터 이듬해까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재 기사를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요시다 키요하루(吉田清治)의 저서 『나의 전쟁범죄·조선인 연행 강제 기록』에 담긴 "1943년 군의 명령으로 제주도에서 여성을 강제 연행하여 위안부로 삼았다"는 체험담을 총 16회(요시다 관련 기사 기준)에 걸쳐 보도했다. 특히 "조선총독부 경찰 50명 또는 100명과 함께 마을을 포위하고 여성을 도로로 몰아내 나무 칼로 때리고 차에 태웠다", "요시다 등이 연행한 여성은 최소 950명이었다" (1992년 1월 23일 자 1면 칼럼 “창·논설위원실에서”) 등의 내용을 전했다. 그러나 이 증언은 이후 하타 이쿠히코 당시 다쿠쇼쿠대학 교수의 조사 등을 통해 허위로 밝혀졌고, 요시다 본인도 일부 허구를 인정했으며 아사히 신문 역시 "확인할 수 없다"며 사실상 정정했다.

또한, 1991년 8월 11일 자 사회면 톱 기사에서는 우에무라 타카시 기자가 "전직 조선인 종군위안부, 전후 반세기 만에 무거운 입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중일전쟁이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여자정신대로 전장에 연행되어 일본군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는 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 증언 중 "여자정신대로 연행되었다"는 부분에 대해, 당시 여자정신대라는 제도 자체가 없었고 해당 피해자는 부모에 의해 공창으로 팔렸다는 반론이 제기되며 날조 의혹이 일었다. 2013년 3월 8일, 일본유신의회 소속 나카야마 나리아키 당시 문부과학상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사히 신문이 위안부 자료를 왜곡했다며 비판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아사히 신문이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모집을 감독, 통제했다"고 보도한 것이 위안부 문제의 발단이 되어 한일 외교 문제로 비화했으며, 특히 전시근로동원제도인 "여자정신대"를 "위안부 사냥"으로 잘못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1992년 요미우리 신문마이니치 신문, 1993년 산케이 신문 역시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인용하거나 그를 "증언자"로 소개하는 기사를 게재했으며, 1990년대 초반에는 마이니치 신문과 산케이 신문도 여자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하여 보도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2014년 8월 5일, 아사히 신문은 자체 검증 결과 요시다 증언의 증거를 찾지 못해 허위로 판단하고 관련 기사를 취소했다. 그러나 당시 사과는 없었으며, 기무라 이카즈(木村伊量) 사장은 사과하지 않을 방침임을 밝혔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도쿄 전력의 '요시다 조서' 관련 오보(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소장의 명령을 어기고 직원 90%가 철수했다는 보도)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 자리에서 기무라 사장은 요시다 증언 관련 오보에 대해서도 함께 사과했다.

이 과정에서 아사히 신문의 초기 대응은 논란을 낳았다. 저널리스트 이케가미 아키라가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던 칼럼 「이케가미 아키라의 신문 나나메요미」에서 "아사히 신문은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쓰자, 아사히 측은 게재를 거부했다. 이에 이케가미가 연재 중단을 선언하자, 아사히의 대응은 사내외에서 "언론 탄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아사히 신문은 입장을 바꿔 이케가미의 글을 게재하기로 했고, 2014년 9월 4일 자 조간에 해당 칼럼 전문과 함께 아사히 신문의 사과문을 실었다.

2015년 2월 19일,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아사히 신문 ‘위안부 보도’에 대한 독립 검증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1991~1992년 아사히 신문의 위안부 보도를 "강제 연행 프로파간다(선전)"로 규정하고, 이로 인해 국제 사회에 잘못된 사실이 확산되어 일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아사히 신문이 자체 구성한 "제3자 위원회"가 내린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는 결론에 대해서는 "아사히의 책임을 회피하는 논의"라고 비판했다.[362][363][364]

2018년 8월에는 2014년 8월 5일 자 위안부 특집 기사의 영어 번역본 웹페이지 소스 코드에 검색 엔진 노출을 막는 메타태그(noindex, nofollow, noarchive)가 삽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아사히 신문 홍보부는 작업 실수였으며 수정했다고 해명했다.[365]

아사히 신문의 위안부 관련 보도를 둘러싸고 여러 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다.

  • 2015년 1월, 국내외 일본인 8,749명(이후 25,700명으로 증가)이 아사히 신문의 기사 13건을 허위보도라 주장하며 1인당 1만의 위자료와 사과 광고 게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 사무국은 "아사히 신문을 바로잡는 국민회의"였다.[366][367][368] 도쿄 지방법원(2016년 7월)과 도쿄 고등법원(2017년 9월)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고, 상고 포기로 아사히 신문의 승소가 확정되었다.
  • 2015년 2월, 일본 국내 482명이 요시다 증언 보도와 관련하여 아사히 신문이 검증 의무를 소홀히 해 독자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며 1인당 1만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원고 측 사무국은 "아사히 신문을 바로잡는 모임"이었다.[369][370] 도쿄 지방법원(2016년 9월), 도쿄 고등법원(2017년 3월), 대법원(2017년 10월) 모두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 아사히 신문의 승소가 확정되었다.[371][372]
  • 2015년 2월, 미국 글렌데일 시 인근 거주 일본인 및 국내 대학교수 등 약 2,000명이 아사히 신문의 오보 방치로 위안부 소녀상 건립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위자료와 미국 주요 신문에 사과 광고 게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373] 도쿄 지방법원(2017년 4월)과 도쿄 고등법원(2018년 2월)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 아사히 신문의 승소가 확정되었다.[374]


한편, 2014년 9월 『주간 포스트』는 아사히 신문 간부들이 위안부 관련 기사 일부 취소 결정 후, 정부 부처 관계자들에게 검증 기사의 의도 등을 설명하면서 자사를 비판하는 산케이 신문 등 특정 언론에 대해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할 방침이라고 언급했다는 내용의 정부 부처 메모를 입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426]

4. 2. 후쿠시마 원전 사고 보도

2011년 3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 초기, 아사히 신문을 포함한 일본 주요 언론들은 사고 관련 정보를 정부 발표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보도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42][43] 이러한 비판을 계기로 아사히 신문은 자체적인 취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특별취재부(特別報道部)를 신설하고 독립적인 보도를 추구했다. 특별취재부는 이후 여러 보도상을 수상하며 성과를 인정받았다.[44]

2014년 5월 20일, 특별취재부는 사고 당시 후쿠시마 제1 원전 소장이었던 요시다 마사오의 정부 조사 증언 기록, 이른바 '요시다 조서'를 단독 입수했다고 보도했다.[330] 아사히 신문은 이 보도에서 "소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원전 직원의 90%가 제2 원전으로 철수했다"고 전했으며,[330] 저녁판 칼럼 '소립자(素粒子)'에서는 "기울어지는 배에서 도망친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당시 세월호 침몰 사고에 빗대기도 했다.[331][45] 그러나 요시다 소장은 실제 증언에서 자신의 지시가 혼란 속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언급했다.[45]

이 보도는 즉각 논란을 일으켰다. 많은 일본 국민들이 요시다 소장과 현장 직원들을 재앙을 막은 영웅으로 여기던 상황에서,[46] 아사히 신문의 보도는 직원들이 명령을 어기고 비겁하게 도망친 것처럼 묘사하여 이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45]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오랫동안 취재해 온 언론인 가도타 류쇼(門田隆将) 등은 아사히 신문의 보도가 조서 내용과 다르며 사실을 왜곡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47][421][422] 아사히 신문은 초기에는 자사 보도를 옹호하며 비판자들에게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법적 조치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48][422]

하지만 2014년 8월, 요미우리 신문, 산케이 신문, 교도 통신, NHK 등 다른 주요 언론사들도 요시다 조서를 입수하여 보도하기 시작했다.[49][50][332][333] 이들 언론은 아사히 신문의 보도 내용과 달리, 직원들이 소장의 명령에 반하여 철수했다는 기록은 조서에 없다고 지적하며 아사히 신문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332][334] 당시 경제산업상이었던 카이에다 마사루 역시 직원들의 이동을 '철수'가 아닌 '대피'로 들었다고 밝히며 아사히 보도에 의문을 제기했다.[335]

결국 아사히 신문은 같은 해 8월에 있었던 위안부 관련 보도 정정과 맞물려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9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요시다 조서 관련 보도가 오보였음을 공식 인정하고 기사를 전면 취소하며 사과했다.[51][52][53][336][337][424][425] 기무라 다다카즈(木村伊量) 당시 사장은 "요시다 조서를 잘못 해석하여 직원들이 명령을 어기고 도망친 듯한 인상을 주는 잘못된 기사였다"고 해명하며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336] 아사히 측은 오보의 원인으로, 현장 직원에 대한 직접 취재가 부족했으며 다른 원전 직원의 개인 메모에 의존한 점 등을 들었다.

이 사건으로 해당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한 기자와 간부들은 징계를 받았고, 독립적인 탐사보도를 이끌었던 특별취재부는 사실상 해체되어 규모가 축소되고 많은 구성원들이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45] 특별취재부 소속이었던 핵심 기자 두 명은 이후 아사히 신문을 떠나 일본 최초의 탐사보도 전문 매체 중 하나인 '와세다 크로니클'(2021년 '도쿄 조사 뉴스룸 탄사'로 개명)을 설립했다.[45][54] 아사히 신문 탐사보도 부서는 이 사건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보도를 지양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45][54]

한편, 위안부 보도 정정 및 요시다 조서 오보 사태와 관련하여 아사히 신문 간부들이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해명하는 과정에서, 아사히를 비판하는 산케이 신문 등 특정 언론을 거론하며 명예훼손 소송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내용이 주간지 『週刊ポスト』에 보도되기도 했다.[426]

4. 3. 산호 기사 날조 사건

1989년 4월 20일자 석간에서 “산호를 더럽힌 K·Y는 누구인가”라는 큰 제목으로, 오키나와현의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된 해역에 있는 세계 최대의 아자미산호[282]에 상처가 나 있는 것을 다루었다. 이 기사는 "K·Y"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산호의 컬러 사진과 함께 일본인의 도덕 저하를 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의문을 가진 현지 다이버들의 조사 결과, 사진 기자 자신이 손상되지 않은 상태의 산호에 이니셜을 새겼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기사 날조 사건으로 발전했다.[283][284] 이 사건으로 당시 사장 일류 도이치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사태가 되었다.

4. 4. 기타 논란

2014년 8월, 아사히 신문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아사히 신문을 비롯한 일본 주요 신문에서 여러 차례 인용했던, 요시다 세이지의 강제 연행에 대한 신빙성 없는 증언을 취소했다. 이는 아베 정권과 함께 일본의 국제적 평판을 훼손했다며 비판적인 보수 언론의 공격을 받았다.[38][39]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이용하여 성노예 자체가 날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사히 신문은 취소 기사에서 "일본군의 성적 파트너로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고 재확인하면서도, "한국과 대만(당시 일본 제국 식민지배 하에 있던 지역)에서 군 당국이 직접 강제로 끌고 간 것을 보여주는 공식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빈곤과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로 인해 매춘 알선이 성행했다. 따라서 군 당국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취업 사기나 인신매매와 같은 수법으로 많은 여성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고 밝혔다.[40][41]

1918년 7월 23일부터 시작된 미곡폭동 당시 오사카 아사히 신문(大阪朝日新聞)은 스즈키 상점(鈴木商店)이 쌀을 싹쓸이하여 가격을 올리는 악덕 업자라는 허위 기사를 게재하여 공격했다. 그 결과, 스즈키 상점은 쌀값 폭등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분노를 사, 같은 해 8월 12일 불에 타 없어졌다.[270]

2002년 6월 5일, 나카타 히데토시(中田英寿) 선수가 2002 FIFA 월드컵을 끝으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할 결심을 굳혔다고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 나카타 선수가 이를 부인하고 항의했음에도 사과하지 않았으나, 4개월 후 나카타 선수가 다시 일본 대표팀에 합류하자 아사히 신문은 "기사 내용과 다른 결과가 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라고 사과했다.[285]

2004년 2월 1일부터 4일간, 「소리」란에 육상자위대의 장비와 매우 유사한 소총과 헬멧을 사용한 「타국의 하늘 아래」라는 제목의 삽화를 게재했으나, 자위대 관계자로부터 “‘병사의 묘비’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마침 육상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본대가 현지 사마와에 도착하는 시기였기에, “독자와 대원, 그 가족들에게 불쾌감을 줄 가능성에 대해 상상력이 부족했다”고 사과하고, 같은 달 5일부터 삽화를 변경했다.[286]

2004년 2월 26일 저녁판에서 여자 12현금(女子十二楽坊)의 앨범에 싱가포르 작곡가의 곡이 무단으로 사용되었고, 저작권료도 지불되지 않았다고 보도했으나, 오류였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287]

2005년 1월 12일,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두 의원이 2001년 1월 30일 방송된 NHK 프로그램 편집에 대해 NHK 상층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1월 21일 NHK는 사실무근이라며 아사히 신문에 공개 질문서를 보냈다.[288] 같은 해 7월, 아사히 신문은 해당 보도에 대한 검증 기사를 게재했다. 8월에는 사내 관계자가 프로그램 개편의 증거로 여겨지는 녹음 테이프를 우오즈미 아키라(魚住昭)에게 익명으로 제공했고, 고단샤(講談社)의 월간지 『겐다이(月刊現代)』에 그 내용이 실렸다. 9월 30일, 아사히 신문사가 위탁한 제3자 기관 ‘NHK 보도’ 위원회는 “(기자가 의혹을) 진실이라고 믿은 상당한 이유는 있으나, 취재가 충분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아사히 신문사는 취재 부족을 인정했지만, 기사 정정이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 위원회 의견에서도 아사히 신문의 검증 부족이 지적되었다.

2005년 8월 21일 아침 신문에 가메이 시즈카와 타나카 야스오가 나가노현에서 회담을 가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실제 취재 없이 허위 메모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실제 회담은 도쿄도에서 이루어졌다. 이 사건은 아사히 신문의 취재 시스템 개혁의 계기가 되었다.

2006년 1월 10일자 석간 칼럼 「소립자」에서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열린 우라야스시성인식에 대해 “우라야스의 신성인. 유원지 쥐 춤에 젖은 얼굴로 기뻐하는 것 같으니, 앞날이 걱정된다”라고 기술했다.[289] 우라야스시는 이를 명예훼손이라며 항의했고, 12일 시장 및 교육위원회 명의로 항의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아사히 신문사 홍보부는 “결코 우라야스시의 신성인을 중상할 의도는 없었다”며 사과를 거부했다.[290]

2007년 1월 6일 석간에 "스포츠 종합지 곤경"이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 기사는 스포츠 종합지가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는 내용이었으나, 『Number』(분게이슌주사)에 관해서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291]

2007년 2월 1일, 같은 해 1월 30일 저녁판에 게재된 토야마현의 칸모치(かんもち) 만들기에 관한 기사가 요미우리 신문 인터넷판의 1월 27일자 기사를 표절한 사실이 밝혀졌다.[292] 해당 기사를 작성한 도쿄 본사 편집국 주재원은 "요미우리 신문 홈페이지 기사를 참고하여 자신의 원고를 다시 썼다"고 시인했다. 아사히 신문 도쿄 본사는 요미우리 신문에 사과했으며, 이후 다른 두 건의 기사에서도 표절이 드러나 해당 기자는 해고되었다.[293]

2007년 9월 24일, 아베 신조 총리가 소신표명 연설 직후 갑자기 사임한 것에 대해 "책임을 방기하다"라는 의미로 "아베스루(アベする)"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한 칼럼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비판을 받았다.[294] 이에 대한 반발로 "아사히르(アサヒる)"(아사히 신문이 사실을 날조하면서까지 아베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모습을 의미)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 단어는 현대용어의 기초지식(現代用語の基礎知識) 2008년 판에 실렸으며,[295] '넷 유행어 대상(ネット流行語大賞) 2007'에서 연간 대상 금상을 수상했다.[296]

2008년 12월 6일 조간에, 조깅 중이던 남성을 폭행하여 상해를 입힌 혐의로 오사카부 경찰에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된 남성(이후 상해죄기소되었으나 1, 2심에서 무죄 판결)에 대해 "현장의 방범 카메라에 남성과 비슷한 남자가 찍혀 있었다"라고 보도했다. 해당 남성은 기사 내용에 오류가 있다며 아사히 신문사와 오사카부를 상대로 오사카 지방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고, 2012년 4월 11일 오사카 지방법원은 아사히 신문사에 22만의 지급을 명령했다.[297]

2008년 6월 18일자 석간 칼럼 「소립자」에서 같은 달 17일 사형 집행을 지시한 법무대신 하토야마 구니오에 대해 “영세 사형집행인 하토야마 법무상. ‘자신과 책임’에 가슴을 펴고 2개월 간격으로 승인을 내어 신기록 달성.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의 신(死に神)”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는 강하게 항의했으며, “법무상은 직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다”, “죽음의 신이라니 너무한다” 등 1800건이 넘는 항의가 아사히 신문에 빗발쳤다. 특히 전국범죄피해자회는 강하게 비판하며 3차례 공개 질문서를 보냈고, 결국 아사히 신문은 칼럼 표현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했다.[298]

2009년 4월 25일, 아사히 신문은 같은 해 1월 11일 자에 게재했던 나라현 가와카미촌산림조합 조합장이 "선거구는 민주당, 비례는 공산당"이라며 공산당에 대한 "선거 협력"을 주도하고 있다는 기사에 대해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었다며 지면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전 조합장의 신고에 따라 아사히 신문사의 "보도와 인권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기술 내용의 일부는 사실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의견을 냈다.[299][300][301]

2010년 10월 15일, 도쿄대학 의학과학연구소가 개발한 “암 펩타이드 백신”의 임상시험에서 피험자에게 발생한 소화기 출혈을 다른 병원에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는 보도를 했다.[302] 다음 날에는 “연구자의 양심이 문제된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303] 이러한 보도에 대해 도쿄대학 의학과학연구소와 명예훼손 피해를 입은 온코세라피 사이언스는 “의학적 오류나 사실 왜곡은 물론, 날조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며 반박했다. 같은 달 20일에는 암 환자 단체 회원들이 성명을 발표했고,[304] 22일에는 일본암학회와 일본암면역학회가 아사히 신문에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305] 이에 대해 24일자 기사에서 아사히 신문사 홍보부는 “기사는 확실한 취재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306][307]

2010년 10월 22일, 아사히 신문 오사카 본사는 같은 해 10월 19일자 조간 문화면에 게재한 기사 「마니교『우주도』확인」의 내용이, 교도통신사가 9월 26일에 배포한 기사 「국내에 마니교 ‘우주도’」와 매우 유사하다고 발표했다.[308] 오사카 본사 생활문화그룹의 기자는 정직 3주 등의 징계를 받았다.[309]

2012년 4월 9일, 아사히 신문 석간 사회면 톱기사에서 시코쿠 전력의 다치바나만 화력발전소가 "전력사업법에 규정된 자주 점검을 약 1년간 소홀히 했다"며 "배관 내부의 노후화 및 손상을 적어도 연 2회 점검하도록 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전력사업법은 연 2회 점검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음이 밝혀졌고[310], 다치바나만 화력발전소는 법령에 따른 빈도로 점검을 실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311]

2012년 6월 8일자 도쿄판 경제면에 주요 컴퓨터 게임 플랫폼 각사 책임자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으나, 그중 닌텐도이와타 사토루 사장으로부터 인터뷰를 거절당하자, 무단으로 닌텐도 공식 웹사이트에 있던 동영상 내용을 요약하여 이와타 사장의 인터뷰로 게재했다. 게재 후 닌텐도로부터 항의를 받고 내부적으로 사과했으나, 2014년 9월 주간문춘에 의해 폭로되자 지면에서도 독자에게 사과하는 정정 기사를 게재했다.[312][313]

2013년 1월 22일 아사히 신문 조간에서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약속[314]을 어기고 알제리 인질 사건의 일본인 피해자 유족인 본시로수 토모야(本白水智也)의 실명을 보도했으며, 해당 기사에 본인의 페이스북 페이지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했다고 본시로수가 블로그를 통해 밝혔다[315]. 본시로수는 아사히 신문사 사장 앞으로 항의문을 제출했다[316][317]. 또한, 2013년 1월 20일 아사히 신문 요코하마 총국 기자로부터 "이 영상 속에 일본인으로 보이는 시체가 3명 찍혀 있으니 확인해주십시오"라는 전화를 받았고[314][318], 이어 이나메나스의 잔혹한 영상을 보라는 이메일을 받았다는 사실도 이메일 스크린샷과 함께 공개했다[319].

2013년 3월 8일자 “자궁경부암 백신 심각한 부작용, 중학생 장기 통학 불가능” 기사[320]를 시작으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의 “부작용”을 과도하게 문제 삼는 보도를 이어갔다. 그 결과, 같은 해 6월 후생노동성이 HPV 백신 접종의 적극적인 권고를 보류하게 되었고, 백신 접종률이 현저히 감소하여 예방 가능했던 자궁경부암 환자가 증가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321][322][323]

2014년 1월 10일, 아사히 신문은 국가 주도 알츠하이머병 연구 J-ADNI에 대해 1면 기사를 통해 보도하며[324] 연구 자체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이 보도는 연구의 심리 데이터 담당자 스기시타 모리히로(杉下守弘)의 “내부 고발”을 계기로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그 결과 J-ADNI는 연구 중반에 예산 집행이 중단되어 사실상 중단되었다.[325] 이후, 도쿄대학 자체 조사[326], 제3자 위원회[327] 조사 결과 “조작”이 아닌 부적절한 판단으로 인해 혼란이 겹친 것이 발표되었다. 더불어 “고발자”로 등장한 스기시타의 책임에 대해 추궁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2015년 3월 13일, 정부는 J-ADNI와 관련하여 일본유신회 가와다 류헤이(川田龍平) 참의원의 질문에 대해 “제3자 조사위원회” 보고서를 인용하여 고의적인 데이터 조작을 부정하는 답변서를 각의 결정하였다.[328] 2015년 4월 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유신회 가와다 류헤이 의원의 질문에 대해 스기시타 모리히로의 “고발 메일”은 공익신고자 보호법상의 공익 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소비자청 가와구치 야스히로(川口康裕) 차장에 의해 제시되었다. 또한, 데이터 보존 명령 이후 데이터 “조작”이 지시되었다고 보도된 건에 대해서도 “모두 일반적인 품질 확인 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당한 조작이나 의도적인 수정이 이루어진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후생노동성 미우라 코우지 노인보건복지국장이 발언했다.[329]

2014년 5월 26일, 연재 기사 「보답받지 못하는 나라 제2부」에서 「독단적인 이사장 ‘폭주’”라는 제목으로, 가와사키시의 사회복지법인에서 이사장이 “사회복지법인에 기부된 토지를 이사회의 승인 없이 매각했고”, “이사장의 보수 등을 이사회의 승인 없이 결정했으며”, 나아가 “사회복지법인이 조명 기구를 이사장 친족 회사로부터 구매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복지법인은 토지 매각과 이사장 보수 인상에 대해 이사회에서 승인했고, 조명 기구 등의 비품을 이사장 친족 회사로부터 구매한 사실은 없었다. 이 기사를 둘러싸고 사회복지법인과 이사장은 손해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아사히 신문은 정정 및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2015년 4월 16일 화해했다. 다음 날 조간에서는 “토지 매각”과 “보수 등의 인상”에 대해 규정 등을 “명확히 하도록 (가와사키시가) 지적했다”고 정정했고, “조명 기구를 이사장 친족 회사로부터 구매했다”는 부분은 삭제했다.[338]

2014년 6월 16일 아사히 신문 1면에는 "미군함으로 일본인 구출 거부"라는 제목으로, 주변 사태 법에서 피난하는 일본인을 미군이 수송하는 항목이 미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삭제되었다고 보도했으나, 방위성은 이 보도를 부정했다.[339] 방위성의 항의를 받아 아사히 신문 측은 "일본인 구출을 거부했다"는 표현을 "타국 국민의 구출을 확약하지 않는다"로 완화했고, "일본인의 미군함 탑승은 매우 어렵다"는 지적도 삭제했다.[340] 실제로, 양국은 일미 방위 협력 지침(일미 양국이 피난민의 퇴피에 협력하는 규정)에 따라 매년 해외 거주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수송 훈련을 공동 훈련으로 실시하고 있으며,[339] 1998년에는 분쟁 중인 에리트레아에서 3명, 2011년에는 리비아에서 4명의 일본인이 미군이 준비한 함선으로 수송된 사례도 있었다.[339]

2015년 3월 19일, 튀니지박물관 습격 테러로 부상당해 수도 튀니스의 병원에 입원, 수술을 받은 직후의 여성이 아사히 신문 기자와 응대에 나선 현지 일본 대사관 직원과의 대화에 대해 "『취재를 시켜주십시오. 당신에게 거절할 권리는 없습니다』라고 일본어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 충격적이었습니다"라고 수기에서 밝혔다. 기자는 잠시 후 병동에서 나갔다고 한다. 아사히 신문의 이시아이 치카라 국제보도부장은 "기자는 큰 소리를 지르려던 의도는 없었지만, 수기에서 적혀있는 내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여성에게 사과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수기에서 여성은 대사관 직원으로부터 "당신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기뻤다"고 말하고 있다.[341]

2015년 5월 30일, 연재 기획 ‘집단적 자위권: 해외에서는’ 중 2014년 6월 15일자 기사 ‘평화 공헌이었어야 할 것이 전장이었다: 후방 지원, 독일군 55명 사망’의 내용을 수정했다.[342]

2015년 6월 1일, 아사히 신문 저녁판 1면 기사에서 '고민하는 재일교포 신문, 곤경 남미에서 일본계 인구 감소'라는 제목으로, 현지 재일교포 신문이 일본계 인구 감소에 따라 폐간이나 구독자 감소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에 대해 브라질의 재일교포 신문 니케이 신문(ニッケイ新聞)은 남미의 일본인 인구가 감소하고 일본어 사용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계 인구는 증가하고 있으며, 역사와 배경, 구독자 수, 광고 수입원도 다른 재일교포 신문을 일률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으로 보도한 것은 "자의적인 이미지 조작"이라고 비판하며 아사히 신문에 항의했다. 항의를 받은 아사히 신문 도쿄 본사는 전화와 이메일로 사과했고, 8일자 저녁판에 "남미에서 일본계 인구 감소"라고 한 것은 "남미에서 일본계 1세대 인구 감소"의 오류였다는 정정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를 쓴 상파울루 지국 기자는 "머리말(리드)에서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일본계 인구 감소'라고 적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지만, 니케이 신문은 제목이 잘못되어도 기사를 읽으면 알 수 있다는 것은 궤변이며 오만하다고 비판하고 있다.[343][344]

2015년 8월 5일, 6년 동안 천성인어를 담당하는 등의 경력을 가진 도미나가 이타루(冨永格) 특별 편집위원이 트위터에 나치(國家社會主義德國勞動者黨) 깃발을 든 사람들의 시위 사진과 함께 영어와 프랑스어로 "도쿄에서 일본인 국수주의자들의 시위. 그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그의 보수적인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는 글을 게시한 문제와 관련하여, 8월 5일 조간신문에서 "보도 태도에 의문을 품게 했다"는 사과 기사를 게재했다.[345][346][347][348] 아사히 신문사 홍보부에 따르면, 도미나가 이타루 특별 편집위원이 게재한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은 것이며, 사실 관계 확인 등은 하지 않았다.[349]

2016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사히 신문에 대해 "강매" 문제와 관련하여 주의를 했다. 이에 앞서 2015년 2월 15일 스기모토 카즈유키(杉本和行)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일본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현행 제도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는 강매를 금지하고 있으며, 실태를 제대로 감시하고 있는 중이며, 그 실태가 명확해지면 당연히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언했다.[350][351]

2016년 3월 14일 아사히 신문 조간에서는 큐슈전력 가와내 원자력발전소(川内原子力発電所) 주변에 설치된 방사성 물질 관측 체계가 부족하다고 보도했다.[352] 이에 대해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매우 범죄적이다. (아사히 신문은) 충분히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352] 원자력규제위원회에 따르면, 관측 장비의 종류에 따라 기능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며, 피난 지시에 필요한 정보는 다양한 종류의 측정 장비를 조합하여 판단하지만, 아사히 신문의 기사는 마치 현황의 관측 장치로는 피난 지시 판단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도되었고,[352] 이로 인해 지역 자치단체에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장했다고 밝혔다.[352] 또한 원자력규제청 직원이 하지 않은 내용까지 기사에 포함되어 있다며 담당 기자에게 설명을 요구했다.[352] 3월 15일, 원자력규제청은 홈페이지에 아사히 신문 기사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사실 관계를 설명하는 문서를 게재했다.[352][353] 그러나 아사히 신문은 이러한 항의에 대해 명확한 수정을 하지 않았고 취재원 제시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354] 규제청은 아사히 신문 편집 간부를 불러 무기한 취재 제한을 통보했다.[354] 구체적으로는 앞으로 아사히 신문의 전화 취재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대면 취재의 경우에도 반드시 녹음을 하기로 했다.[354]

2017년 4월 19일, 내각부가 홈페이지에서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담당자가 "내용적으로 비판 여론이 많고, 게재된 지 7년이나 지났으므로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355] 같은 날, 내각부는 삭제 사실을 부인하고, 담당자 발언으로 보도된 코멘트도 부인했다. 아사히 신문에 대한 항의도 검토하고 있다.[356] 내각부에 따르면, 18일 저녁 아사히 신문 기자의 전화 취재가 있었고, 담당자가 "홈페이지 갱신 중이어서 현재 볼 수 없다"며 삭제하지 않았다는 점을 전했다고 한다. 또한, 민원이 접수된 것도 부인하고, "보고서 게재 중단을 검토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아사히 신문은 산케이 신문의 취재에 대해 "기사는 내각부 담당자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자세한 취재 경과나 상대방의 발언 등에 대해서는 답변을 삼가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356]

산케이 신문의 아비루 루이는 2017년 5월 17일 톱기사로 보도된 가케가쿠엔 수의학부 신설 보도에 첨부된 "장관 확인 사항에 대한 내각부의 답변" 이미지에 대해, 사진 하단이 어둡고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문서 사진이 불가해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이유로 해당 부분에 "아베 총리의 지시라고 꾸며내면 어떨까"라는 내용이 적혀 있어,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오히려 총리의 지시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427] 또한 6월 15일 문부과학성이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하단 부분에는 "'국가전략특구 자문회의 결정'이라는 형태로 하면 총리가 의장이므로 총리의 지시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적혀 있다고 하며, 아사히 신문에 의한 "인상 조작"이라고 비판했다.[427] 산케이 신문의 이마나카 노부히로 기자는 2017년 7월 10일 폐회 중 심사에서 전 에히메현 지사 가토 모토히로가 문부과학성의 과거 행위를 비판한 발언을 아사히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보도의 '인상 조작'이 부각되었다"고 주장했다.[428]

2019년 2월, 아사히 신문

5. 조직 및 사업

2023년(레이와 5년) 1월부터 회사의 미디어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아사히 신문 미디어 지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115]

아사히 신문 미디어 지표
발표 시기조간 부수아사히 디지털 유료 회원합계
23년 1월383.8만30.5만414.3만
23년 4월376.1만30.5만406.6만
23년 10월357.3만30.3만387.6만
24년 4월343.7만30.6만374.3만
24년 10월334.9만30.3만365.2만


5. 1. 본사 및 지사

구분소재지주소
오사카 본사 (등록 본사)나카노시마 페스티벌 타워 이스트오사카시 기타구 나카노시마 2초메 3-18
도쿄 본사도쿄도 주오구츠키지 5초메 3-2
홋카이도 지사삿포로시주오구 키타니죠니시 1초메 1-1
나고야 본사나고야시나카구 사카에 1초메 3-3
서부 본사기타큐슈 리버워크기타큐슈시 고쿠라 키타구 무라마치 1초메 1-1
후쿠오카 지사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하카타구 하카타에키마에 2초메 1-1



아사히 신문 건물 (2006)

5. 2. 그룹 회사

5. 3. 온라인 사업

wikitext

서비스명비고
아사히 신문 디지털2012년 1월 23일 아사히닷컴 통합
론자[457]
EduA[460][461]
MOOVOO[462][463]
NewsVideo마이니치 신문, 산케이 디지털, 고베 신문, 가나가와 신문, 오키나와 타임스, 이바라키 신문과 공동 운영[464]
withnews[465]
CNET Japan[466]
호쇼코지쓰[467]
아피탈
조브라보
도라쿠2006년 종료
아사히 신문 스포츠 기자의 표화·이화2007년 종료
웹 아사히 신문2007년 6월 30일 휴지
신s아사히 신문·닛케이·요미우리 신문 3개 신문 공동 운영, 2012년 2월 29일 휴지


6. 수상 내역

1929년에 제정된 아사히상(朝日賞|아사히쇼일본어, Asahi Prize)은 아사히 신문이 수여하기 시작했으며, 1992년부터는 아사히 신문 문화재단(Asahi Shimbun Foundation)이 수여하고 있다. 이 상은 학술 또는 예술 분야에서 일본 문화 또는 사회에 지속적인 공헌을 한 업적에 대해 주어진다.[59][60]

7. 한국과의 관계

아사히 신문은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위안부 관련 기사를 나중에 취소하였으나, 편집 방향상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점령지에서 한국인 등 여성을 강제로 동원하여 성적인 행위를 강요한 위안부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37]

7. 1. 일제 강점기

(내용 없음)

8. 평가

아사히 신문은 좌파 성향으로 여겨지며,[25][26][27] "일본 정계 좌파의 지적 기함"으로 불리기도 한다.[28] 보수적인 경쟁 언론사들보다 정치적 대형 스캔들을 더 자주 보도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29] 이 신문은 일본의 기록 보관 신문으로 여겨진다.[30][31][32]

아사히 신문은 우익 일본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진보적 경향을 문화적 및 외교적 문제에서 보여주지만,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이는 마이니치 신문의 상대적으로 케인즈적 경제 관점과 대조된다.[33] 하지만 일반적인 평가에서 아사히 신문은 일본 사회자유주의자(좌파 자유주의자)를 대표하는 논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34][35]

아사히 신문은 일본의 전후 헌법과 특히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전쟁을 금지하는 제9조의 수호를 촉구해 왔다. 또한 2014년에 이루어진, 공격받는 동맹국을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반전 조항 해석 변경(소위 집단적 자위권)에도 반대했다.[36]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아사히 신문은 요시다 세이지의 신빙성 없는 증언을 바탕으로 한 과거 기사들을 취소했으나, 편집 방향은 여전히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점령지에서 한국인 및 다른 아시아 국가 여성들이 일본군을 위해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37]

2023년(레이와 5년) 1월부터는 회사의 미디어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아사히 신문 미디어 지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115]

아사히 신문 미디어 지표 추이
발표 시기조간 부수아사히 디지털 유료 회원합계
23년 1월383.8만30.5만414.3만
23년 4월376.1만30.5만406.6만
23년 10월357.3만30.3만387.6만
24년 4월343.7만30.6만374.3만
24년 10월334.9만30.3만365.2만



아사히 신문은 해외 5곳에 총국을 두고 전 세계 28개 지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AP통신, 로이터, 타스통신 등 세계적인 통신사와 제휴하여 광범위한 국제 취재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문 중 하나로 국제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390] 정치·사회 문제 보도에 강점을 보이며, 수많은 특종 기사로 일본신문협회상을 비롯한 다수의 보도 관련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옥스퍼드 대학교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8」에 따르면, 아사히 신문에 대한 독자의 신뢰도는 조사 대상 일본 5대 신문 중 가장 낮았다.[391][392] 이러한 경향은 2021년 조사까지 이어졌다.[393][394][395]

독자층은 요미우리 신문 다음으로 수도권과 긴키 지방에서 많으며, 주니치 신문 다음으로 주쿄권(나고야권)에서 많다.[430] 2013년 기준 특정 도도부현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는 않지만, 전국적으로 비교적 고르게 읽히는 편이다.[430] 2002년과 2008년 조사에 따르면, 아사히 신문 독자는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하고, 대졸 및 대학원 졸업자 비율, 상층부 화이트칼라 비율이 높으며[431], 평균 세대 연소득[432] 및 일부 상장 기업의 과장·부장급 도달률[433] 등에서 일본경제신문 독자 다음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아카가와 지로, 카야마 리카, 하야토메 카츠모토, 모리무라 세이이치, 와타나베 켄 등 저명인사들이 '나의 시점(私の視点)' 코너에 개인 자격으로 글을 기고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434]

참조

[1] 백과사전 Asahi Shimbun https://www.britanni[...]
[2] 잡지 The Silencing of Japan's Free Press https://foreignpolic[...] 2020-03-05
[3] 서적 Asia's Reckoning: China, Japan, and the Fate of U.S. Power in the Pacific Century https://books.google[...] Penguin 2017
[4] 서적 Japan at War: An Encyclopedia: An Encyclopedia https://books.google[...] ABC-CLIO 2013
[5] 웹사이트 Japan paper Yomiuri Shimbun retracts 'sex slaves' references https://www.bbc.com/[...] BBC News 2020-02-21
[6] 뉴스 The press in Japan - Gotcha https://www.economis[...] 2020-02-21
[7] 웹사이트 Japan PM to overturn pacifist defence policy https://www.theguard[...] 2020-02-21
[8] 서적 Civil and Political Rights in Japan: A Tribute to Sir Nigel Rodley https://books.google[...] 2019
[9] 웹사이트 Japan's Asahi newspaper sacks editor over Fukushima report errors https://www.ft.com/c[...] Financial Times 2020-07-13
[10] 웹사이트 Asahi Shimbun Media Resources Data File 2021 https://web.archive.[...] The Asahi Shimbun 2021-03-11
[11] 웹사이트 Strength of The Asahi Shimbun 2018 https://web.archive.[...] The Asahi Shimbun 2021-03-11
[12] 웹사이트 朝日新聞、4年間で発行部数105万減の衝撃…新聞業界、存亡の危機突入へ http://biz-journal.j[...] biz-journal
[13] 웹사이트 全国紙の朝・夕刊別販売部数(単位:部) https://web.archive.[...] Yomiuri 2011-03-31
[14] 웹사이트 PR in Japan: Targeting the Right Newspapers https://www.japanind[...] Japan Industry News 2016-01-20
[15] 웹사이트 朝日新聞媒体資料 DATA FILE 2022 広告朝日|朝日新聞社メディアビジネス局 https://adv.asahi.co[...] 2022-10-08
[16] 뉴스 The New York Times Tops 7.5 Million Subscriptions as Ads Decline https://www.nytimes.[...] 2021-02-04
[17] 웹사이트 Reuters Institute Digital News Report 2018 https://reutersinsti[...]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University of Oxford
[18] 웹사이트 The Asahi Shimbun : Corporate Overview http://www.asahi.com[...]
[19] 웹사이트 Ohara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 https://web.archive.[...] 2006-01-30
[20] 웹사이트 The Asahi's costly admission https://www.fccj.or.[...] 2023-12-06
[21] 뉴스 For Scandal-Baring Paper in Japan, a Scandal https://www.nytimes.[...] 2016-07-31
[22] 뉴스 Asahi Shimbun co-owner Ueno dies at 79 https://web.archive.[...] 2016-03-05
[23] 뉴스 Asahi to Drop English Daily https://thediplomat.[...] 2012-12-31
[24] 뉴스 Japanese newspaper Asahi Shimbun apologises over false stories on Fukushima and World War Two sex slaves https://www.independ[...] 2014-12-19
[25] 뉴스 President of Japanese Newspaper Apologizes for Errors https://www.wsj.com/[...] 2014-09-11
[26] 뉴스 Yomiuri, Japan's biggest newspaper, apologizes for using term 'sex slaves' https://www.washingt[...] 2014-11-28
[27] 잡지 It's Official: Japan Will Hold a Snap Election https://thediplomat.[...] 2014-11-22
[28] 잡지 The Silencing of Japan's Free Press https://foreignpolic[...] 2020-03-05
[29] 뉴스 Gotcha https://www.economis[...] 2014-09-20
[30] 뉴스 Reporter's death puts spotlight on shifting media landscape https://www.japantim[...] 2022-05-10
[31] 서적 The Next Frontier: National Development, Political Change, and the Death Penalty in Asia (Studies in Crime and Public Policy) Oxford University Press 2009-02
[32] 서적 Trust and Mistrust in Contemporary Japanese Politics Routledge 2019-12
[33] 잡지 労働者には「改悪」でしかない小泉・竹中「改革」メディアの本義を忘れ礼賛に終始する朝日・日経[メディア批評]:ロジスティクス・ビジネス[Logi-Biz]バックナンバー https://magazine.log[...] 2021-12-20
[34] 서적 Asia's Reckoning: China, Japan, and the Fate of U.S. Power in the Pacific Century https://books.google[...] Penguin 2017
[35] 서적 Japan at War: An Encyclopedia: An Encyclopedia https://books.google[...] ABC-CLIO 2013
[36] 웹사이트 Right of collective self-defense Asahi Shimbun "opposite"(集団的自衛権 朝日新聞「反対) http://mediawatchjap[...] Media Watch Japan
[37] 뉴스 Core of 'Comfort Women' Issue Remains Unchanged https://www.asahi.co[...] 2021-05-26
[38] 뉴스 Asahi Shimbun admits errors in past ‘comfort women’ stories http://www.japantime[...] Japan Times 2014-08-05
[39] 뉴스 Asahi ‘must reflect on consequences’ of errors http://the-japan-new[...] Japan News
[40] 뉴스 Forcibly taken away: Coercion that led to lost freedom existed http://www.asahi.com[...] 2014-08-22
[41] 뉴스 Asahi retraction reignites Japan debate over wartime brutality http://www.ft.com/cm[...] Financial Times 2014-08-15
[42] 서적 Legacies of Fukushima: 3-11 in Context https://www.upenn.ed[...]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21-05
[43] 웹사이트 After Tsunami, Japanese Media Swept up in Wave of Distrust http://www.ejc.net/m[...] European Journalism Centre 2013-03-15
[44] 간행물 Sinking a Bold Foray Into Watchdog Journalism in Japan https://www.cjr.org/[...] 2019-07-13
[45] 웹사이트 The Asahi Shimbun's Foiled Foray Into Watchdog Journalism https://apjjf.org/20[...] 2019-07-13
[46] 간행물 朝日の吉田調書報道「なぜここまで日本人貶めるのか」と作家 http://www.news-post[...] 2014-06-12
[47] 간행물 朝日の吉田調書報道「なぜここまで日本人貶めるのか」と作家 (2/2) http://www.news-post[...] NEWSポストセブン 2014-06-12
[48] 뉴스 週刊ポスト記事に朝日新聞社抗議 吉田調書めぐる報道 http://www.asahi.com[...] Asahi Shimbun Digital 2014-06-12
[49] 뉴스 率直で圧倒的な「吉田調書 https://web.archive.[...] 2017-11-03
[50] 뉴스 退避した前後の判断などを証言 http://megalodon.jp/[...] NHK 2014-08-24
[51] 뉴스 Daily Asahi Shimbun Retracts Faulty Fukushima Story, Sacks Top Editor https://www.japantim[...] 2019-07-13
[52] 뉴스 <朝日新聞>「吉田調書」報道、社長が誤り認め謝罪 毎日新聞 9月11日(木)19時50分配信 9月11日閲覧 https://web.archive.[...] 2014-09-11
[53] 뉴스 吉田調書公開 朝日が「撤退」取り消して謝罪 https://archive.toda[...] 2014-09-13
[54] 웹사이트 Investigative Journalism in Japan: Tough Times, but Signs of Hope https://gijn.org/201[...] 2019-07-13
[55] 웹사이트 珊瑚落書きから吉田調書まで 朝日新聞「お詫び会見」の歴史 https://www.news-pos[...]
[56] 웹사이트 Gong named head of Asahi Shimbun Asia Network http://www.asahi.com[...] 2003-10-01
[57] 웹사이트 Asahi Shimbun Asia Network http://www.asahi.com[...]
[58] 웹사이트 Research Achievements http://www.waseda-gi[...] Global Institute for Asian Regional Integration, Waseda University 2008-12-13
[59] 웹사이트 Asahi Prize http://www.asahi.com[...]
[60] 웹사이트 Frontier Research Center's Prof. Hosono Wins Asahi Prize https://archive.toda[...] Tokyo Institute of Technology 2011-01-12
[61] 서적 日本全史(ジャパン・クロニック) 講談社 1991
[62] 뉴스 24年8月ABC部数 2024-08-12
[63] 뉴스 日本ABC協会「新聞発行社レポート 半期」23年7-12月平均部数 2024-08-12
[64] 웹사이트 「朝日新聞メディア指標」を更新 お知らせ 朝日新聞社の会社案内 https://www.asahi.co[...] 2024-01-06
[65] 웹사이트 会社情報 https://www.asahi.co[...] 朝日新聞社 2024-09-29
[66] 웹사이트 朝日新聞のココが出た!│朝日新聞ひろば~朝日新聞の読み方をナビゲート http://info.asahi.co[...] 2022-11-01
[67] 웹사이트 朝日新聞、天声人語に初の女性筆者 「遅きに失した感はありますが、遅れていても一歩ずつ進むことは大事」 https://www.j-cast.c[...] 2022-11-01
[68] 웹사이트 原動力は「惑星直列」 アサヒ・コムはこうしてできた https://www.asahi.co[...] 2022-11-01
[69] 웹사이트 朝日新聞の電子版 「朝日新聞デジタル」を創刊 https://www.asahi.co[...] 2022-10-10
[70] 웹사이트 「アサヒ・コム」が消える 1月中にも朝日デジタル版に統合 https://www.j-cast.c[...] 2022-11-01
[71] 서적 現代ビジネス金言集(二) https://books.google[...] PHP研究所
[72] 웹사이트 朝日新聞社小史 https://www.asahi.co[...] 2022-11-01
[73] 웹사이트 会社概要 - 会社ご案内 http://www.asahi.com[...] 2022-10-03
[74] 웹사이트 独立メディア塾 http://previous.medi[...] 2022-11-01
[75] 웹사이트 1月のできごと http://www.oml.city.[...] 大阪市史編纂所 2022-10-03
[76] 웹사이트 明治・大正時代の主な新聞とその参考文献(西日本) https://rnavi.ndl.go[...] 国立国会図書館 2022-10-03
[77] 서적 漱石の朝日時代とその周辺 新典社
[78] 웹사이트 朝日新聞外地版 第2期 全37巻 - ゆまに書房 https://www.yumani.c[...] 2022-10-03
[79] 웹사이트 朝日新聞社広告局ウェブサイト - 夕刊 https://web.archive.[...] 朝日新聞 2009-06-01
[80] 뉴스 「社告 夕刊発行に付定価改正(二月一日より)」 1921-02-01
[81] 서적 昭和ニュース辞典第7巻 昭和14年-昭和16年 毎日コミュニケーションズ
[82] 웹사이트 SCAPIN-34: SUSPENSION OF TOKYO NEWSPAPER ASAHI SHIMBUN 1945/09/18 https://dl.ndl.go.jp[...] 国立国会図書館 2022-11-01
[83] 서적 占領期メディア分析 法政大学出版局
[84] 서적 生還者の証言―伊藤律書簡集 五月書房
[85] 웹사이트 (4)北海道支社創設─1959年6月1日 http://mytown.asahi.[...] 2004-06-01
[86] 웹사이트 ペエスケとは https://kotobank.jp/[...] 2022-11-01
[87] 서적 サンゴ礁の秘密 ― 彼らは“地球の肺”である 祥伝社
[88] 웹사이트 アカデミーヒルズ セミナー・イベント 新聞社は“デジタル化”できるのか? https://www.academyh[...] 2022-11-01
[89] 웹사이트 朝日新聞「ジャーナリスト宣言」自粛 https://www.j-cast.c[...] 2007-02-09
[90] 웹사이트 新聞の形態で「新書」の情報量と分かりやすさを目指す https://adv.asahi.co[...] 2022-11-01
[91] 웹사이트 朝日新聞グローブ (GLOBE)|創刊記念連載(1/10) http://globe.asahi.c[...] 2012-05-21
[92] 웹사이트 みんなでつくろう「しつもん!ドラえもん」 http://info.asahi.co[...] 2011-02-19
[93] 웹사이트 朝日新聞が「朝刊駅売り値上げ」の波紋 https://facta.co.jp/[...] 2022-10-03
[94] 문서 2010年3月10日付新聞情報
[95] 웹사이트 龍~なが 長崎新聞ホームページ:キャッチボール http://www.nagasaki-[...] 2012-01-12
[96] 문서 朝日新聞縮刷版 東日本大震災 特別紙面集成2011.3.11〜4.12
[97] 웹사이트 朝日新聞 春から新紙面! {{!}} こすもす通信 朝日新聞サービスアンカー桜ヶ丘西部 http://cosmosmail.in[...] 2011-09-25
[98] 웹사이트 朝日新聞グローブ (GLOBE)|Editor's Note http://globe.asahi.c[...] 2012-05-21
[99] 웹사이트 iPadでも、Androidでも――有料電子版「朝日新聞デジタル」創刊 https://www.itmedia.[...] 2022-10-03
[100] 웹사이트 朝日新聞デジタル:アサヒ・コムのブランドを朝日新聞デジタルに統一 - お知らせ http://www.asahi.com[...] 2022-10-03
[101] 문서 朝日新聞2014年8月5日13版1面、16面・17面、6日12版16面・17面、7日7面
[102] 웹사이트 吉田調書「命令違反」報道、記事取り消し謝罪 朝日新聞: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09-11
[103] 웹사이트 慰安婦報道検証 第三者委員会 「第三者委初会合」 https://www.asahi.co[...] 2022-10-03
[104] 웹사이트 報道と人権委員会、朝日新聞報道を審理へ 吉田調書: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09-12
[105] 웹사이트 信頼回復と再生のための委員会発足 社外から4氏: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10-14
[106] 뉴스 読売新聞 読売新聞 2014-12-06
[107] 웹사이트 朝日新聞が「創業以来の大赤字」/渡辺社長が来春退任/「後継は中村副社長」と示唆 https://facta.co.jp/[...] 2020-11-30
[108] 웹사이트 朝日新聞・渡辺雅隆社長が退任へ 9年ぶりの赤字の責任とり https://blogos.com/o[...] 2020-11-30
[109] 웹사이트 本紙購読料改定のお知らせ https://www.asahi.co[...] 2021-06-10
[110] 웹사이트 東海3県で朝日新聞夕刊を休刊:朝日新聞デジタル https://www.asahi.co[...] 2024-08-02
[111] 웹사이트 本紙購読料改定のお知らせ https://www.asahi.co[...] 2023-04-05
[112] 웹사이트 朝日新聞が5月から値上げ 朝夕刊セット4900円に https://nordot.app/1[...] 2023-04-05
[113] 웹사이트 朝日新聞、北海道内の夕刊を休止へ…経費上昇やデジタルサービスの利用者増 https://www.yomiuri.[...] 2024-02-11
[114] 웹사이트 静岡・山口・福岡で朝日新聞夕刊休刊:朝日新聞デジタル https://www.asahi.co[...] 2024-08-02
[115] 웹사이트 「朝日新聞メディア指標」を公表 お知らせ 朝日新聞社の会社案内 https://www.asahi.co[...] 2024-04-25
[116] 웹사이트 第2回 「メディアに関する全国世論調査」(2009年) http://www.chosakai.[...] 2022-09-09
[117] 백과사전 マイペディア 2010-05
[118] 논문 『中立』新聞の形成――明治中期における政府と朝日新聞―― 1986-12
[119] 서적 日本新聞通史
[120] 서적 新聞人群像
[121] 서적 近代日本ジャーナリズムの構造
[122] 서적 日本の近代14 メディアと権力
[123] 서적 鼠 鈴木商店焼打ち事件 文春文庫 1975
[124] 서적 社史(戦前編) 朝日新聞 1991
[125] 웹사이트 今、歴史に学ぶこと (1) http://www.yurindo.c[...] 有隣堂 2022-10-03
[126] 논문 戦間期における地方紙の軍縮論:ワシントン会議前後の『京都日出新聞』の報道を事例に https://dlisv03.medi[...] 大阪市立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 : 都市文化研究センター 2010-03
[127] 뉴스 普通選挙の促進運動 機は正に熟す 朝日新聞 1919-11-22
[128] 서적 メディア史研究 VOL.11 ゆまに書房 2001-09
[129] 논문 父・佐々弘雄と近衛の時代 1985-03-12
[130] 서적 戦時少年 佐々淳行 父と母と伊藤先生 文春文庫 2003
[131] 서적 焼け跡の青春・佐々淳行 ぼくの昭和20年代史 文藝春秋 2003
[132] 서적 東條英機 暗殺の夏 新潮社 1984
[133] 서적 昭和研究会 ある知識人集団の軌跡 講談社文庫 1985
[134] 뉴스 1937-07-20
[135] 뉴스 東京朝日新聞 1937-09-09
[136] 뉴스 密航朝鮮人を一網打盡 大阪朝日新聞・南鮮版 1939-02-02
[137] 뉴스 論旨の渡航者一萬九千餘人 大阪朝日新聞・北鮮版 1939-06-22
[138] 뉴스 渡航證明書を偽造し 不敵、巨利を博す 惡運つきて遂に捕へらる 大阪朝日新聞・南鮮版 1939-11-21
[139] 뉴스 密航にまた新手 内地行労働者団体に見せかけ 出帆直前に捕はる 大阪朝日新聞・南鮮版 1940-04-23
[140] 뉴스 朝鮮人鉱夫の物凄い稼高 遠賀工業所で推賞の的 大阪朝日新聞・南鮮版 1940-05-28
[141] ニュース 朝鮮人鉱夫に特別の優遇設備 まるで旅館住まひ同様 大阪朝日新聞・中鮮版 1940-04-21
[142] 書籍 朝日新聞が報道した「日韓併合」の真実 韓国が主張する「七奪」は日本の「七恩」だった 徳間書店
[143] 雑誌 自立路線を歩む 1971-11-15
[144] 書籍 漱石と三人の読者 講談社 2004-10
[145] 書籍 朝日新聞血風録 角川文庫 1996
[146] ウェブサイト 自民党 衆議院議員 衛藤征士郎|今月の話題 http://www.seishiro.[...] 2011-10-25
[147] 書籍 回想 笠信太郎 朝日新聞社 1969
[148] ニュース 【日韓国交正常化50年】朴正煕と産経新聞-日韓関係の変化象徴 https://www.sankei.c[...] 2015-06-18
[149] 書籍 朝日文化人―この日本をどうしようというのか
[150] ウェブサイト 倉重奈苗という政治部記者に象徴される朝日の保守化、官僚化 http://www.asyura2.c[...] 2013-03-15
[151] ウェブサイト 朝日新聞社から : 【社説】希望社会への提言 http://www.asahi.com[...] 2008-07-06
[152] ニュース 「靖国」上映中止―表現の自由が危うい 2008-04-02
[153] ニュース ザ・コーヴ中止―自由社会は見過ごせない 2010-06-14
[154] ニュース 自民党 人権忘れた擁護法論議 2005-03-18
[155] ニュース 人権擁護法 救済の法律は必要だ 2005-07-28
[156] ウェブサイト The Asahi Shimbun Corporate Report 2012 http://www.asahi.com[...]
[157] ウェブサイト 朝日新聞社CSR報告書・会社案内 2012 http://www.asahi.com[...]
[158] ニュース 進まぬ土地改革 革命まだ序幕の段階 1953-06-02
[159] 書籍 チベット大虐殺と朝日新聞 朝日新聞はチベット問題をいかに報道してきたか オークラ出版
[160] その他 アサ論 アスパラクラブ 2008
[161] ウェブサイト 中国と向き合う―異質論を超えて道を開け http://www.asahi.com[...] 2011-01-04
[162] ニュース 厳戒北京で自由叫ぶ チベット民主化支援の活動家 2008-09-11
[163] その他 在日華人
[164] ニュース 領海侵入―中国は冷静に振る舞え 2012-07-13
[165] ニュース 日中韓会談―成熟した3国関係を 2013-04-19
[166] ウェブサイト 推進から抑制へ 原子力社説の変遷〈社説特集〉 http://www.asahi.com[...] 2011-07-13
[167] 書籍 東電帝国―その失敗の本質 文藝春秋
[168] 書籍 マスコミ日誌79 日本ジャーナリスト専門学院出版部
[169] ニュース 浜岡原発―「危ないなら止める」へ 2011-05-07
[170] ニュース ドイツの決断―脱原発への果敢な挑戦 2011-06-08
[171] ニュース 原発と民意―決めよう、自分たちで 2011-06-15
[172] ウェブサイト 提言 原発ゼロ社会―いまこそ 政策の大転換を http://www.asahi.com[...] 2011-07-12
[173] 書籍 死刑囚からあなたへ2 インパクト出版会
[174] 書籍 論説入門 中央公論新社
[175] ニュース 国民の物語の危うさ 1998-08-16
[176] ニュース 耕論「ふたたび安倍政権」 朝日新聞 2012-12-27
[177] ニュース 北朝鮮へタンクローリー不正輸出容疑 貿易会社長を逮捕 https://megalodon.jp[...] 朝日新聞 2009-05-19
[178] ウェブサイト asahi.com(朝日新聞社):強殺未遂容疑、37歳逮捕 大阪タクシー襲撃 - 社会 http://www.asahi.com[...] 2009-05-27
[179] ウェブサイト 君が代不起立、処分激減 東京の教職員 今春の卒業式は4人 https://www.asahi.co[...] 2010-04-19
[180] ニュース 国旗・国歌――産経社説にお答えする 朝日新聞 2004-04-04
[181] ウェブサイト IT・科学ニュース:朝日新聞デジタル https://www.asahi.co[...]
[182] ウェブサイト 朝日新聞の購読お申し込み https://33.asahi.com[...] 2013-04-26
[183] ウェブサイト 各界のオピニオンリーダーに最も購読されている朝日新聞 https://adv.asahi.co[...]
[184] ウェブサイト 受験に強い朝日新聞 http://info.asahi.co[...] 2009-02-12
[185] ウェブサイト 東京大学 [ARCHIVE] http://www.u-tokyo.a[...] 2007-02-13
[186] ウェブサイト 連載「朝日・東大共同調査」一覧 https://www.asahi.co[...]
[187] ウェブサイト 朝日新聞社のスポーツへの取り組み 朝日新聞社広告局 - @ADV http://adv.asahi.com[...] 2012-05-21
[188] ウェブサイト <中央グローバルフォーラム>若宮氏「韓国、日本をあまり追い詰めないよう」 https://japanese.joi[...]
[189] ウェブサイト 朝日新聞社インフォメーション:沿革 http://www.asahi.com[...] 2009-10-09
[190] ウェブサイト 特別編の7 http://www2.plala.or[...]
[191] ウェブサイト (葦)「鎌足の墓」の写真集 https://www.asahi.co[...] 2019-03-01
[192] テレビ番組 証言 私の昭和史 6 東京12チャンネル 1969-10-21
[193] 書籍 近代日本総合年表 第四版 岩波書店 2001-11-26
[194] ウェブサイト 菊池賞受賞者一覧 http://www.bunshun.c[...] 2003-12-08
[195] ウェブサイト 新聞協会賞、新聞技術賞、新聞経営賞受賞作 https://www.pressnet[...]
[196] ウェブサイト 1956(S31)年~1960(S35)年 - ATU 自交総連 京都地方連合会 http://www.kyoto-chi[...] 2011-10-26
[197] ウェブサイト タクシートピックス http://www.jikou-o.o[...] 2009-10-26
[198] ウェブサイト 意思の疎通 http://vetweb.agri.k[...] 2007-08-04
[199] ニュース 自主的に出荷中止/イソミンとプロバンM 朝日新聞 1962-05-17
[200] ニュース イソミン問題の背景/西独で奇形児が急増、同系薬の副作用説出る 朝日新聞 1962-05-18
[201] 書籍 科学報道 朝日新聞社 1994-10
[202] ウェブサイト 花の雑学 三水会便り http://www.hone-kenk[...] 2012-05-16
[203] ニュース 日本にも睡眠薬の脅威 読売新聞 1962-08-28
[204] 書籍 サリドマイド禍の人びと―重い歳月のなかから 筑摩書房 1981
[205] ニュース 来た、見た、いなかった ― 太郎小屋に人影なし 朝日新聞 1963-01-22
[206] ウェブサイト JCJ 賞(日本ジャーナリスト会議賞)贈賞歴一覧 https://jcj.gr.jp/im[...]
[207] ウェブサイト 戦場の村 https://publications[...]
[208] ニュース 贈賄容疑で再逮捕。懲役3年(執行猶予4年)の判決。 1985-04-26
[209] ウェブサイト 医道審議会医道分科会平成17年3月2日議事要旨 https://www.mhlw.go.[...]
[210] 学術論文 「調査報道」の成立と社会的展開 : ジャーナリズムにおける対権力・権威型「調査報道」の意義を中心に https://waseda.repo.[...] 早稲田大学大学院公共経営研究科 2009-10
[211] 웹사이트 医学部教授のポストをカネで買う リアル“白い巨塔”を見せつけた調査報道とは https://frontlinepre[...] 2022-10-17
[212] 서적 東大病院精神科の30年
[213] 서적 ムスタンの真実―「やらせ」現場からの証言 リベルタ出版 1994-10
[214] 뉴스 事件前にもヒ素中毒/和歌山毒物混入/地区の民家で飲食の二人 朝日新聞 1998-08-25
[215] 웹사이트 沖縄返還に「裏負担」/米公文書、密約裏付け - 琉球新報 - 沖縄の新聞、地域のニュース http://ryukyushimpo.[...] 2013-06-23
[216] 웹사이트 asahi.com(朝日新聞社):機密文書、溶かして固めてトイレットペーパーに 外務省 - 政治 http://www.asahi.com[...] 2009-09-18
[217] 웹사이트 asahi.com(朝日新聞社):沖縄返還密約の文書焼却か 痕跡示すメモ発見 - 政治 http://www.asahi.com[...] 2010-12-24
[218] 웹사이트 この10年のJCJ賞一覧 http://jcj-daily.sak[...] 2012-05-17
[219] 웹사이트 大阪港埠頭ターミナルを捜索 野菜産地偽装で強制捜査 https://web.archive.[...] 2004-07-30
[220] 웹사이트 紀宮さまの婚約内定 お相手は都職員の黒田慶樹さん - asahi.com : 社会 http://www.asahi.com[...] 2004-11-20
[221] 웹사이트 警察裏金問題報道の道新、高知新聞にジャーナリスト大賞 - asahi.com : 社会 http://www.asahi.com[...] 2005-01-22
[222] 웹사이트 城田前部長に700万 : スケート連盟事件 : スポーツ : YOMIURI ONLINE(読売新聞) http://www.yomiuri.c[...] 2010-12-30
[223] 웹사이트 「偽装請負」労働が製造業で横行 実質派遣、簡単にクビ http://www.asahi.com[...] 2022-11-01
[224] 웹사이트 東京新聞:連立協議『高く評価』 経団連会長小沢氏に理解示す:経済(TOKYO Web) http://www.tokyo-np.[...] 2007-11-11
[225] 웹사이트 朝日新聞がダブル受賞 早稲田ジャーナリズム大賞 http://www.asahi.com[...] 2011-05
[226] 웹사이트 トピックス http://www.shinbunro[...] 2021-02-26
[227] 웹사이트 第8回-2008年度 授賞作品 https://www.waseda.j[...] 2022-11-01
[228] 웹사이트 CO・OP牛肉コロッケの牛肉原料偽装に関するお詫びとご報告(第3報) http://www.coopnet.o[...] 2007-07-01
[229] 웹사이트 ミートホープ事件から考える http://www.shinfujin[...] 2009-07-24
[230] 웹사이트 郵便の障害者割引悪用 石川の会社、通販広告を大量発送 - 法と経済のジャーナル Asahi Judiciary - WEBマガジン - 朝日新聞社(Astand) http://astand.asahi.[...] 2012-05-21
[231] 웹사이트 再発防止案及び内部処分 http://www.hakuhodo.[...] 2011-08-16
[232] 웹사이트 家電量販店元部長ら10人逮捕 https://www.jiji.com[...] 2022-11-01
[233] 웹사이트 大スクープはこうして生まれた / 大阪地検特捜部証拠改ざん事件報道を朝日・板橋記者と語る (10) - アジアプレス・ネットワーク http://www.asiapress[...] 2011-11-22
[234] 웹사이트 過去の活動・大賞 « メディアアンビシャス http://media-am.org/[...] 2013-06-16
[235] 웹사이트 同応募・推薦のお願いと募集要項 http://jcj-daily.sak[...] 2012-03-29
[236] 웹사이트 高知新聞と本紙に「新聞労連ジャーナリスト大賞」贈呈  - 琉球新報 - 沖縄の新聞、地域のニュース http://ryukyushimpo.[...] 2011-01-29
[237] 웹사이트 本紙・池田記者の「眠れぬ墓標」など受賞 第18回坂田記念ジャーナリズム賞 - MSN産経ニュース http://sankei.jp.msn[...] 2011-08-29
[238] 웹사이트 asahi.com(朝日新聞社):菅首相に違法献金の疑い 在日韓国人から 首相側未回答 - 社会 http://www.asahi.com[...] 2011-03-12
[239] 웹사이트 首相 外国人献金ドサクサ返金「こっそりじゃない」 衆院予算委 - MSN産経ニュース http://sankei.jp.msn[...] 2011-04-29
[240] 웹사이트 asahi.com(朝日新聞社):米軍グアム移転費水増し 日本の負担軽減装う 流出公電 - 政治 http://www.asahi.com[...] 2011-05-03
[241] 웹사이트 米軍グアム移転で朝日新聞がスクープ ウィキリークス提供の米公電を分析 https://www.j-cast.c[...] 2022-11-01
[242] 웹사이트 朝日新聞デジタル:朝日新聞「プロメテウスの罠」がメディア賞受賞 - 社会 http://www.asahi.com[...] 2012-02-07
[243] 웹사이트 新聞協会賞に「プロメテウスの罠」 http://book.asahi.co[...] 2022-11-01
[244] 웹사이트 第12回「石橋湛山記念 早稲田ジャーナリズム大賞」贈呈式 https://www.waseda.j[...] 2022-11-01
[245] 웹사이트 新聞労連大賞これまでの受賞作品 https://shimbunroren[...] 2022-11-01
[246] 웹사이트 第13回「石橋湛山記念 早稲田ジャーナリズム大賞」贈呈式 https://www.waseda.j[...] 2022-11-01
[247] 웹사이트 手抜き除染、作業員証言 「詰め切れぬ葉は捨てて」指示 http://www.asahi.com[...] 2013-01-04
[248] 웹사이트 「除染適正化本部」を設置 環境省、手抜き横行を受け http://www.asahi.com[...] 2013-01-07
[249] 웹사이트 朝日新聞デジタル:朝日新聞社が新聞協会賞 「手抜き除染」一連のスクープ - 社会 http://www.asahi.com[...] 2013-09-05
[250] 웹사이트 「手抜き除染報道」巡る記事、週刊新潮に事実誤認と抗議: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10-07
[251] 웹사이트 日展書道「篆刻」、入選を事前配分 有力会派で独占: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3-10-30
[252] 웹사이트 「先生に手ぶらじゃ駄目」 日展、厳しい階級社会: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3-10-30
[253] 웹사이트 日展審査で「不正発覚」と朝日スクープ 美術関係者「あ~あ、そこは秘密ってコトだったのに」 https://www.j-cast.c[...] 2022-11-01
[254] 웹사이트 文化庁が日展後援を復活 不正審査後の改革受け https://ryukyushimpo[...] 2022-11-01
[255] 웹사이트 年賀はがき「自爆営業」 局員、ノルマ1万枚さばけず: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3-11-17
[256] 웹사이트 朝日新聞「猪瀬氏5000万円」報道などに新聞協会賞 https://www.j-cast.c[...] 2022-11-01
[257] 웹사이트 関電、歴代首相7人に年2千万円献金 元副社長が証言: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07-27
[258] 웹사이트 第24回坂田賞(2016年) https://www.koekizai[...] 2022-11-01
[259] 웹사이트 改ざんはなぜ?1年間の国会議論を振り返る {{!}} 特集記事 https://www.nhk.or.j[...] 2018-04-03
[260] 웹사이트 第26回坂田賞(2018年) https://www.koekizai[...] 2022-11-01
[261] 웹사이트 第18回-2018年度 授賞作品 https://www.waseda.j[...] 2022-11-01
[262] 뉴스 韓国大統領府が朝日新聞を無期限の出入り禁止処分に https://www.sankei.c[...] 2022-10-10
[263] 웹사이트 「核搬出打診は虚偽」 韓国大統領府が朝日を出入り禁止に http://www.chosunonl[...] 2018-05-18
[264] 웹사이트 「子どもへの性暴力」が受賞 新聞労連ジャーナリズム大賞:朝日新聞デジタル https://www.asahi.co[...] 2022-11-01
[265] 웹사이트 LINEの個人情報管理に不備 中国の委託先が接続可能 https://www.asahi.co[...] 2021-03-17
[266] 웹사이트 日本のLINE利用者の画像・動画全データ、韓国で保管 https://www.asahi.co[...] 2021-03-17
[267] 웹사이트 政府内でLINE利用停止へ 業務に影響も 利用状況を調査 https://mainichi.jp/[...] 2021-03-19
[268] 웹사이트 自治体、LINE利用を相次ぎ停止 千葉県や大阪市など https://www.asahi.co[...] 2021-03-19
[269] 웹사이트 国交省による統計不正をめぐる一連の報道 朝日新聞社に新聞協会賞:朝日新聞デジタル https://www.asahi.co[...] 2022-11-01
[270] 서적 朝日新聞社史 大正・昭和戦前編 朝日新聞社 1991
[271] 뉴스 大阪朝日新聞1923年9月3日号外 1923-09-03
[272] 서적 ポルポト革命史
[273] 서적 わたしが見たポル・ポト 2006
[274] 서적 ポルポト革命史 2004
[274] 서적 わたしが見たポル・ポト 2006
[275] 서적 ポルポト革命史
[276] 뉴스 南京虐殺、現場の心情 宮崎で発見 元従軍兵士の日記 1984-08-05
[277] 뉴스 おわび 1986-01-22
[278] 뉴스 「これが毒ガス作戦」と元将校 当時の日本軍部内写真を公表 1984-10-31
[279] 뉴스 1984-11-11
[280] 뉴스 日本軍の「化学戦」の写真 贛湘作戦とわかる 1984-11-14
[281] 논문 2004
[282] 웹사이트 アザミサンゴ発見 http://www.h6.dion.n[...] 2004-11-02
[283] 웹사이트 アザミサンゴ KY事件 http://www.h6.dion.n[...] 2004-11-03
[284] 뉴스 落書き、ねつ造でした 朝日新聞 1989-05-20
[285] 뉴스 朝日新聞 2002-10-08
[286] 웹사이트 「兵士の墓標」連想 派遣時期、朝日新聞「声」欄カット 陸自装備品と酷似 https://news.goo.ne.[...] 2004-02-06
[287] 웹사이트 https://web.archive.[...]
[288] 웹사이트 朝日に回答求める催告書/番組改編問題でNHK https://www.shikoku-[...] 2005-04-20
[289] 웹사이트 成人式:浦安市、朝日新聞のコラム記事に抗議書-話題:MSN毎日インタラクティブ http://www.mainichi-[...] 2006-01-15
[290] 웹사이트 浦安市 朝日新聞「素粒子」についての本市の抗議書に対し、朝日新聞社から回答がありました http://www.city.uray[...] 2006-02-13
[291] 웹사이트 朝日報道「全く違う」 「ナンバー」が抗議 https://www.j-cast.c[...] 2007-01-23
[292] 웹사이트 朝日新聞社からのお知らせ http://www.asahi.com[...] 2009-07-05
[293] 뉴스 朝日新聞 2007-02-07
[294] 웹사이트 首相交代記念! 今だから語れる事件の真相あの「アベする」騒動を振り返る https://diamond.jp/a[...] 2010-06-16
[295] 웹사이트 ネット流行語大賞に「アサヒる」 https://www.itmedia.[...] 2007-12-14
[296] 웹사이트 「アサヒる」「初音ミク」「ローゼン麻生」、現代用語の基礎知識に https://www.itmedia.[...] 2007-11-14
[297] 웹사이트 朝日新聞に賠償命令…逮捕時の記事、一部は誤り : 社会 : YOMIURI ONLINE(読売新聞) http://www.yomiuri.c[...] 2012-04-13
[298] 뉴스 毎日新聞 2008-06-22
[299] 웹사이트 「共産党員増加の記事誤り 朝日新聞おわび」:イザ! http://www.iza.ne.jp[...] 2009-05-07
[300] 웹사이트 朝日新聞「共産党員増加めぐる記事」でおわび、記述削除 https://www.j-cast.c[...] 2009-04-25
[301] 웹사이트 asahi.com(朝日新聞社):記事の一部に問題、朝日新聞社に対応求める PRC - 社会 http://www.asahi.com[...] 2009-04-28
[302] 웹사이트 東大医科研でワクチン被験者出血、他の試験病院に伝えず - アピタル(医療・健康) http://www.asahi.com[...]
[303] 웹사이트 東大医科研―研究者の良心が問われる http://www.asahi.com[...]
[304] 웹사이트 がん臨床研究の適切な推進に関する声明文 http://www.ims.u-tok[...] 2012-01-14
[305] 웹사이트 日本癌学会|朝日新聞の記事(10月15・16日)に関して -- がん関連二学会からの抗議声明 -- http://www.jca.gr.jp[...] 2010-12-27
[306] 웹사이트 医科研記事、癌学会など抗議 朝日新聞「確かな取材」 http://www.asahi.com[...]
[307] 웹사이트 がん関連2学会朝日新聞に抗議文 https://scienceporta[...] 2010-10-25
[308] 웹사이트 共同通信記事に酷似の記事、朝日新聞が謝罪 https://www.nikkei.c[...] 2010-10-22
[309] 웹사이트 本紙記者を停職処分に 共同通信と記事酷似 http://www.asahi.com[...] 2010-11-05
[310] 웹사이트 4月9日付朝日新聞夕刊『火力発電自主点検怠る~四電・橘湾 原発停止で不足か』について http://www.yonden.co[...] 2012-04-16
[311] 웹사이트 朝日新聞おわびと削除…四国電力の記事に誤り : 社会 : YOMIURI ONLINE(読売新聞) http://www.yomiuri.c[...] 2012-04-15
[312] 웹사이트 朝日新聞に新たな不祥事任天堂・岩田聡社長インタビューを捏造していた! {{!}} スクープ速報 - 週刊文春WEB http://shukan.bunshu[...] 2014-09-13
[313] 웹사이트 任天堂と読者の皆様におわびします 朝日新聞社: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09-13
[314] 뉴스 アルジェリア人質拘束事件 実名報道 朝日新聞記者と私のやりとり http://livemedia.jp/[...] 2013-02-06
[315] 뉴스 叔父を誇りに思います http://livemedia.jp/[...] 2013-01-22
[316] 뉴스 朝日新聞の実名報道及び無許可報道に対する抗議文 http://livemedia.jp/[...] 2013-01-23
[317] 웹사이트 平成25年1月23日 朝日新聞の実名報道及び無許可報道に対する抗議文 http://livemedia.jp/[...] 2013-02-03
[318] 뉴스 この映像の中に邦人と思われる遺体が3人映っているのでご確認お願いしますという電話のあと、このメールが来ました。 https://twitter.com/[...] 2013-02-10
[319] 뉴스 朝日新聞の記者は1/20の時点で親族の私にイナメナスの残酷な映像を見るようメールで送ってきていた。朝日新聞はこんな冷酷な人材を採用しています。 https://twitter.com/[...] 2013-02-10
[320] 웹사이트 子宮頸がんワクチン重い副反応 中学生、長期通学不能に https://web.archive.[...] 2013-03-08
[321] 웹사이트 「救えるはずの患者を救えない」 子宮頸がんワクチン副作用「問題」はなぜ起きた? https://www.buzzfeed[...] 2016-12-03
[322] 웹사이트 世界に取り残される日本の「子宮頸がんワクチン」 議論に必要な情報提供を行う役割を放棄する日本のメディア https://jbpress.isme[...] 日本ビジネスプレス 2018-10-11
[323] 웹사이트 新型コロナ「反ワクチン報道」にある根深いメディアの問題 https://news.1242.co[...] ニッポン放送 2021-01-23
[324] 웹사이트 国主導のアルツハイマー病研究で改ざんか 厚労省調査: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01-09
[325] 웹사이트 J―ADNI、予算執行を一時凍結 厚労・経産両相表明 https://www.asahi.co[...]
[326] 웹사이트 記者会見「SIGN研究およびJ-ADNIに関する調査(最終報告)について」 https://www.u-tokyo.[...]
[327] 웹사이트 J-ADNI研究に関する第三者調査委員会調査報告書について https://www.mhlw.go.[...]
[328] 웹사이트 J―ADNI研究に関する第三者調査委員会の報告書に関する質問に対する答弁書:答弁本文 https://www.sangiin.[...] 2015-03-13
[329] 웹사이트 第189回国会 参議院 予算委員会 第16号 平成27年4月2日 https://kokkai.ndl.g[...]
[330] PDF 「福島原発事故・吉田調書」報道に関する見解 2014年11月12日 朝日新聞社報道と人権委員会 http://www.asahi.com[...]
[331] 웹사이트 朝日、夕刊コラムも謝罪 吉田調書「過剰な表現を撤回」 : 特集 : 読売新聞(YOMIURI ONLINE) http://www.yomiuri.c[...] 2014-09-14
[332] 뉴스 【編集日誌】率直で圧倒的な「吉田調書」 https://www.sankei.c[...] 2014-08-19
[333] 웹사이트 退避した前後の判断などを証言 https://megalodon.jp[...] 2014-08-24
[334] 간행물 正論 2014年10月号 正論 (雑誌)
[335] 웹사이트 【吉田調書】民主・海江田代表「経産相当時も撤退ではなく退避」 - 産経ニュース https://www.sankei.c[...] 2014-10-01
[336] 웹사이트 <朝日新聞>「吉田調書」報道、社長が誤り認め謝罪 (毎日新聞) - Yahoo!ニュース http://headlines.yah[...] 2014-09-11
[337] 웹사이트 吉田調書公開 朝日が「撤退」取り消して謝罪 : 社説 : 読売新聞(YOMIURI ONLINE) http://www.yomiuri.c[...] 2014-09-11
[338] 웹사이트 社会福祉法人「ひまわりの会」の記事を訂正し、おわびします 朝日新聞社: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5-04-17
[339] 웹사이트 朝日の「邦人輸送を米軍拒否」報道否定 米艦防護「現実的な重要課題」と防衛省(1/2ページ) - 産経ニュース https://www.sankei.c[...] 2014-10-01
[340] 웹사이트 なりふり構わぬ朝日「邦人輸送、米が拒否」→防衛省抗議で修正も、なお「一面的」(1/2ページ) - 産経ニュース https://www.sankei.c[...] 2014-10-01
[341] 웹사이트 【チュニジア襲撃テロ】結城さんが手記 朝日記者の怒声に「ショック…」 国際報道部長が謝罪「重く受け止めおわびします」(1/6ページ) - 産経ニュース https://www.sankei.c[...] 2015-04-02
[342] 웹사이트 朝日新聞よ、誤魔化すな! GoHoo http://gohoo.org/150[...] 2015-06-01
[343] 웹사이트 朝日新聞が本紙に謝罪=抗議受け、誤報認める=週明け、訂正記事掲載へ https://www.nikkeysh[...] 2015-06-05
[344] 웹사이트 「南米で日系人減少」の見出しを訂正 現地邦字紙の指摘で GoHoo http://gohoo.org/150[...] 2015-06-09
[345] 웹사이트 朝日新聞、紙面で謝罪 編集委員ツイッター問題 - 47NEWS(よんななニュース) http://www.47news.jp[...] 2015-08-08
[346] 뉴스 朝日記者ツイート:5日付朝刊に謝罪記事掲載 http://mainichi.jp/s[...] 毎日新聞 2015-08-05
[347] 뉴스 朝日編集委員、首相にレッテル「ナチ支援者は安倍支持者」 ツイート削除し謝罪 https://www.sankei.c[...] 2015-08-03
[348] 웹사이트 ジャーナリズム - 会社ご案内 朝日新聞社インフォメーション http://www.asahi.com[...] 2015-08-06
[349] 웹사이트 ナチス旗デモ「首相支持」 朝日編集委員が書き込み : 47トピックス - 47NEWS(よんななニュース) http://www.47news.jp[...] 2015-08-05
[350] 웹사이트 杉本和行 公正取引委員会委員長 会見 https://www.jnpc.or.[...]
[351] 웹사이트 杉本和行 公正取引委員会委員長 2016.2.15 https://www.youtube.[...] 2022-09-09
[352] 뉴스 朝日記事「非常に犯罪的だ」、規制委が定例会で批判 川内原発の観測装置報道「立地自治体に無用な不安を与えた」と https://www.sankei.c[...] 2022-10-10
[353] 웹사이트 平成28年3月14日朝日新聞朝刊の報道について http://www.nsr.go.jp[...] 2016-03-15
[354] 뉴스 電話取材受けず対面は録音 朝日に無期限「取材制限」措置 川内原発線量計報道めぐり https://www.sankei.c[...] 2022-10-04
[355] 뉴스 「朝鮮人虐殺」に苦情、削除 災害教訓の報告書 内閣府HP http://www.asahi.com[...] 2017-04-19
[356] 뉴스 内閣府、朝日記事を否定 ホームページの「朝鮮人虐殺」削除報道、抗議も検討 https://www.sankei.c[...] 2022-09-09
[357] 웹사이트 出版物引き写し、朝日新聞社記者を処分 停職2カ月 https://www.asahi.co[...] 2022-10-04
[358] 웹사이트 朝日新聞、写真集から盗用 北海道版で記事取り消し https://www.nikkei.c[...] 2022-10-04
[359] 뉴스 ハンセン病家族訴訟 記事を誤った経緯を説明します https://www.asahi.co[...] 2019-07-10
[360] 뉴스 【歴史戦 南京が顕彰した男(上)】南京記念館が賛美する元朝日記者 “大虐殺”の宣伝に貢献「小日本にもスゴい記者が…尊敬するよ」 https://www.sankei.c[...] 2022-10-10
[361] 뉴스 【歴史戦 南京が顕彰した男(中)】なぜ中国は「南京大虐殺」を記憶遺産に登録しながら証拠開示を拒むのか? 「中国の旅」の影響なお https://www.sankei.c[...] 2022-10-10
[362] 웹사이트 【朝日慰安婦報道】「強制連行プロパガンダ」で日本の名誉傷つけた 独立検証委が報告書 「第三者委は責任回避に終始」と指摘 (1/2ページ) - 産経ニュース https://www.sankei.c[...] 2015-02-19
[363] 웹사이트 朝日慰安婦報道「事実無根のプロパガンダを内外に拡散させた」 独立検証委 (1/2ページ) - 政治・社会 - ZAKZAK http://www.zakzak.co[...] 2015-02-20
[364] 뉴스 読売新聞2015年2月20日13S版37面、独立検証委員会長は中西輝政 2015-02-20
[365] 뉴스 朝日新聞、慰安婦報道取り下げ英文記事で検索回避の設定 指摘受け解除、「作業漏れ」と説明 https://www.sankei.c[...] 2022-10-10
[366] 웹사이트 慰安婦報道巡り、慰謝料求め朝日新聞社を提訴: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5-01-26
[367] 웹사이트 朝日慰安婦報道の集団提訴2万3000人に——原告「世界に対して謝罪・訂正させる」 https://www.bengo4.c[...] 2022-10-04
[368] 웹사이트 【朝日慰安婦報道】1万7千人が追加提訴 計約2万5700人に - 産経ニュース https://www.sankei.c[...] 2015-04-02
[369] 웹사이트 慰安婦報道巡る名誉毀損訴訟、二審も朝日新聞社勝訴判決 東京高裁 https://www.asahi.co[...] 2022-10-04
[370] 웹사이트 政界往来|政治の正体を明らかにする http://www.seikai.jp[...] 2020-07-14
[371] 뉴스 原告ジレンマ3件の「朝日慰安婦訴訟」 裁判所は「国民の被害なし」と判断するが https://www.sankei.c[...] 2022-10-10
[372] 웹사이트 慰安婦報道訴訟、朝日新聞社の勝訴が確定 最高裁 https://www.asahi.co[...] 2022-10-04
[373] 웹사이트 「慰安婦像設置で嫌がらせ受けた」朝日新聞を提訴 在米日本人ら - 産経ニュース https://www.sankei.c[...] 2015-02-18
[374] 웹사이트 慰安婦めぐる訴訟、二審も朝日新聞勝訴 東京高裁:朝日新聞デジタル https://www.asahi.co[...] 2018-02-08
[375] 웹사이트 朝日新聞の「WHOは『布マスクどんな状況でも勧めない』」記事は誤解生むのでは? 案内は医療従事者向け https://news.yahoo.c[...] Yahoo!ニュース 2020-04-03
[376] 웹사이트 #東京脱出、専門家「やめて」 帰省で家族に感染、新たなクラスターも 新型コロナ https://www.asahi.co[...] 2020-04-07
[377] 웹사이트 朝日新聞「#東京脱出」警告記事に浮上した「マッチポンプ説」 https://re-geinou.co[...] 2020-04-07
[378] 웹사이트 ハッシュタグ「東京脱出」は本当にTwitter上で拡散されていたのか? 朝日新聞の記事による影響を調査してみた https://nlab.itmedia[...] ITmedia 2020-04-08
[379] 웹사이트 コロナ対応に海外から批判続出 政府、発信力強化に躍起:朝日新聞デジタル https://www.asahi.co[...] 2020-05-07
[380] 웹사이트 「海外から批判」はフェイクニュース⁈ 朝日新聞に批判続出 https://agora-web.jp[...] 2020-05-08
[381] 웹사이트 五輪スポンサー担う朝日新聞、社説で五輪の中止を訴え https://www.cnn.co.j[...]
[382] 웹사이트 「五輪中止を求める」朝日新聞の社説に「3つの疑問」あり https://www.news-pos[...] 小学館 2021-05-26
[383] 웹사이트 「五輪中止」を訴える朝日新聞 スポンサーは継続、高校野球はOKの支離滅裂 https://www.cyzo.com[...] 2021-07-08
[384] 웹사이트 「五輪中止を訴えても甲子園はやる」朝日新聞の"二枚舌ジャーナリズム"にはうんざりだ だから読者から見捨てられてしまう https://president.jp[...] プレジデント社 2021-06-09
[385] 웹사이트 東京2020オフィシャルパートナーとして https://www.asahi.co[...]
[386] 웹사이트 朝日新聞「五輪中止」社説で主張したけど「オフィシャルパートナーは続けます」 https://www.bengo4.c[...] 2021-09-29
[387] 뉴스 安倍氏川柳への批判「重く、真摯に受け止める」 選出・掲載の朝日新聞社が回答 https://www.j-cast.c[...] 2024-08-04
[388] 뉴스 連載:朝日川柳 朝日川柳 西木空人選 https://www.asahi.co[...] 2024-08-04
[389] 뉴스 朝日川柳 朝日川柳 西木空人 https://www.asahi.co[...] 2024-08-04
[390] 웹사이트 朝日新聞とは https://kotobank.jp/[...] 2022-10-04
[391] 웹사이트 Japan https://www.digitaln[...]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2022-10-04
[392] 웹사이트 朝日新聞の信頼度、五大紙の中で最下位 産経新聞を下回った理由とは https://news.yahoo.c[...] 2022-10-04
[393] 웹사이트 Japan https://www.digitaln[...]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2022-10-04
[394] 웹사이트 Japan http://www.digitalne[...]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2020-09-03
[395] 웹사이트 Japan https://reutersinsti[...]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2022-10-04
[396] 서적 朝日新聞血風録 文春文庫 1996-06
[397] 서적 朝日新聞の「戦後」責任 国を危める報道と論説を糺す 展転社 1998-02
[398] 서적 朝日新聞の正義 小学館文庫 1999-12
[399] 서적 朝日新聞の大研究 国際報道から安全保障・歴史認識まで 扶桑社 2003-07
[400] 문서 沖縄県民集会の参加者数を巡る論争
[401] 간행물 朝日新聞・NHKの大罪
[402] 간행물 朝日は腐っている! 2005-11
[403] 서적 Zaimusho bunsho kaizan hodo to asahi shinbun goho kyoho zenshi. https://www.worldcat[...] Asukashinsha 2018-04
[404] 문서 朝日新聞〈朝鮮版〉の研究
[405] 문서 新聞不信
[406] 문서 アサヒる問題
[407] 서적 天皇と右翼・左翼――日本近現代史の隠された対立構造 筑摩書房 2020
[408] 서적 現代政治 一九五五年以後 下 東京大学出版会 1985
[409] 뉴스 世迷言 2007-09-14
[410] 뉴스 2009-09-27
[411] 웹사이트 「朝日は人の悪口ばかり」橋下知事、本紙社説を批判 http://www.asahi.com[...] 2022-10-04
[412] 웹사이트 【書評】『約束の日 安倍晋三試論』小川榮太郎著+(1/2ページ) - MSN産経ニュース http://sankei.jp.msn[...] 2012-10-04
[413] 웹사이트 時事ドットコム:参院予算委の質疑要旨 http://www.jiji.com/[...] 2014-07-27
[414] 뉴스 「安倍政府打倒は朝日の社是」安倍首相が発言 そんな「社是」本当にあるの? http://www.j-cast.co[...] 2022-10-10
[415] 웹사이트 首相「これで撃ち方やめになれば」 枝野氏資金問題受け: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10-31
[416] 웹사이트 「撃ち方やめ」報道、首相側近「私が言った」 説明修正: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10-31
[417] 뉴스 中国への対抗勢力として日本に期待=フィリピン外相 https://jp.reuters.c[...] 2022-10-04
[418] 웹사이트 【あめりかノート】「右傾化」批判の誤り ワシントン駐在編集特別委員・古森義久+(1/3ページ) - MSN産経ニュース http://sankei.jp.msn[...] 2013-04-01
[419] 서적 なぜ朝日新聞はかくも安倍晋三を憎むのか 飛鳥新社 2014-08
[420] 서적 私の「戦争論」 ぶんか社 1999-08
[421] 웹사이트 【吉田調書】門田隆将氏、朝日新聞抗議に「全く的外れ!」「自らの姿勢を問い直してほしい」 - 産経ニュース https://www.sankei.c[...] 2014-08-19
[422] 간행물 事件の現場から 産経スクープ「吉田調書」の衝撃 ワック・マガジンズ 2014-10
[423] 웹사이트 石破氏「国会で追及も」 朝日新聞の慰安婦報道一部取り消し https://www.nikkei.c[...] 2014-08-05
[424] 웹사이트 「読者の信頼傷つけた」朝日新聞社長会見、主なやりとり: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09-11
[425] 웹사이트 「吉田調書」の記事めぐり、朝日新聞・木村社長が会見:朝日新聞デジタル http://www.asahi.com[...] 2014-09-11
[426] 뉴스 慰安婦報道で官公庁から取材拒否続出 朝日幹部対応メモ入手 https://www.news-pos[...] NEWSポストセブン 2014-09-21
[427] 뉴스 【阿比留瑠比の極言御免】蔓延するフェイクニュース 朝日新聞のスクープ記事もなぜか不自然 加計学園問題の文書写真が… https://www.sankei.c[...] 2017-06-23
[428] 뉴스 朝日と毎日は「ゆがめられた行政が正された」の加戸守行前愛媛県知事発言取り上げず https://www.sankei.c[...] 2017-07-12
[429] 뉴스 朝日新聞に著書“出版禁止”を出された社員が語る「新聞社の言論規制」調査で明らかになった「臆病になる新聞」 https://smart-flash.[...] 2023-07-04
[430] 웹사이트 掲載エリアと販売部数:メディアデータ http://adv.yomiuri.c[...] 2012-03-19
[431] 논문 現代日本の新聞読者層-JGSS-2002からのデータをもとにして- https://jgss.daishod[...] 2004-03-31
[432] 보고서 日経企業イメージ調査・一般個人編 2008-07-01
[433] 보고서 第8回J-READ 2008-10-01
[434] 웹사이트 渡辺謙さん、語り継がれる「命の投稿」 新聞投稿欄に現れた有名人 https://withnews.jp/[...]
[435] 웹사이트 『朝日新聞』の題字の「新」の字は、よく見ると「木」の部分が「未」になっています。そのような字は実在するんでしょうか? https://kanjibunka.c[...] 大修館書店
[436] 웹사이트 題字 - 朝日新聞社広告局 http://adv.asahi.com[...] 2012-05-21
[437] 서적 統一基準漢字書体帳 朝日新聞社 1956-12
[438] 문서 2007年1月9日付朝日新聞朝刊1面の告知 2007-01-09
[439] 웹사이트 長期連載 新聞製作技術の軌跡 第2回 太平洋戦争終結までの新聞製作技術 その2 活字(CONPT 通巻227号所収) https://www.conpt.jp[...] 日本新聞製作技術懇話会 2014-09-01
[440] 웹사이트 朝日書体 https://www.iwatafon[...] イワタ
[441] 웹사이트 ことば談話室 知られざる もう一つの朝日題字 http://www.asahi.com[...] 2014-12-18
[442] 웹사이트 教団論のための教学論 http://home.att.ne.j[...] 2013-07-28
[443] 웹사이트 「ONE PIECE」が朝日新聞ジャック - MSN産経ニュース http://sankei.jp.msn[...] 2009-12-07
[444] 웹사이트 人気漫画「ワンピース」、朝日新聞を広告ジャック https://www.j-cast.c[...] 2009-12-04
[445] 웹사이트 「基準にそって審査、掲載した」 ヌード広告掲載の朝日新聞 - MSN産経ニュース http://sankei.jp.msn[...] 2010-04-23
[446] 웹사이트 「嵐」広告特集に異例の反響 朝日新聞売り切れ続出 https://www.j-cast.c[...] 2011-02-04
[447] 웹사이트 会社案内 https://web.archive.[...] 日刊編集センター
[448] 웹사이트 セット紙面発行地域案内 http://33.asahi.com/[...] 2009-04-01
[449] 웹사이트 朝日、山梨で夕刊廃止:時事ドットコム http://www.jiji.com/[...] 2016-04-24
[450] 웹사이트 朝日新聞縮刷版 https://publications[...]
[451] 웹사이트 여러 도서관 목록 여러 url
[452] 웹사이트 新聞の保存・所蔵状況 - 大分県立図書館 http://library.pref.[...] 2014-04-06
[453] 웹사이트 新聞記事の探し方 {{!}} 文献の探し方 {{!}} 情報検索サポート {{!}} 一橋大学附属図書館 http://www.lib.hit-u[...] 2009-05-12
[454] 서적 特別縮刷版 昭和から平成へ その日の朝日新聞
[455] 서적 朝日新聞大阪本社版紙面集成―阪神大震災
[456] 서적 朝日新聞縮刷版 東日本大震災
[457] 웹사이트 論座 - 朝日新聞社の言論サイト https://webronza.asa[...] 2022-10-31
[458] 웹사이트 朝日新聞デジタルマガジン&[and] https://www.asahi.co[...] 2022-10-31
[459] 웹사이트 「朝日新聞デジタルマガジン&」をリブランディング https://www.asahi.co[...] 2022-10-31
[460] 웹사이트 朝日新聞EduA{{!}}我が子の確かな学びをサポート https://www.asahi.co[...] 2022-10-31
[461] 웹사이트 教育情報サイト 「朝日新聞EduA」(エデュア)オープン! https://prtimes.jp/m[...] 2022-10-31
[462] 웹사이트 Moovoo (ムーブー) https://moov.ooo/ 2022-10-31
[463] 웹사이트 朝日新聞、「bouncy」「Moovoo」手掛ける「朝日デジタルラボ」分社化 https://www.itmedia.[...] 2022-10-31
[464] 웹사이트 NewsVideo https://newsvideo.jp[...] 2022-10-31
[465] 웹사이트 withnews(ウィズニュース) {{!}} 気になる話題やネタをフカボリ取材(ウニュ) https://withnews.jp/ 2022-10-31
[466] 웹사이트 朝日新聞、「CNET」日本版を事業継承 https://xtech.nikkei[...] 2022-10-31
[467] 웹사이트 好書好日|Good Life With Books https://book.asahi.c[...] 2022-10-31
[468] 웹인용 Thinking_about_the_comfort_women_issue http://www.microsoft[...] 2014-08-29
[469] 웹인용 SPECIAL_REVIEW_of_The_Asahi_Shimbun’s_“Comfort_Women”_Reporting_/_The_paper_slow_to_correct_its_errors http://www.microsoft[...] 2014-08-29
[470] 웹사이트 https://news.v.daum.[...] 2014-09-12
[471] 뉴스 日 아사히신문 또 오보기사 취소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14-09-12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