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히메노 오오키미
1. 개요
야마토히메노 오오키미는 645년 10월 7일에 태어났으며, 아버지 후루히토노오에노미코는 나카노오에노 황자에게 살해당했다는 설이 있다. 덴지 천황 7년 4월 10일에 덴지 천황의 대후가 되었으며, 덴지 천황이 병에 걸렸을 때 덴무 천황은 야마토히메노 오오키미가 즉위하고 오토모노미코가 섭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덴지 천황의 위독과 붕어 시에 야마토히메노 오오키미가 지은 노래 4수가 만엽집에 수록되어 있다. 사토나카 마치코의 『천상의 무지개』, 나가오카 료코의 『꿈 속의 오성』 등 만화 작품에도 등장한다.
| 이름 | 야마토히메노 오오키미 (倭姫王) |
|---|---|
| 칭호 | 일본 제38대 황후 |
| 재위 기간 | 덴지 천황 7년 2월 23일 (668년 4월 10일) -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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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미상 |
| 사망일 | 미상 |
| 아버지 | 후루히토노오오에노미코 (古人大兄皇子) |
| 어머니 | 미상 |
| 배우자 | 덴지 천황 |
| 릉 | 시모사카모토 능묘 참고지 (시가현오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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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시대의 여성 황족 -
키비히메노오오키미
키비히메노오오키미는 아스카 시대 스이코 천황의 어머니이자 쇼토쿠 태자의 측근 아토노 오미의 딸로, 소가 씨와의 연관성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문화 및 외교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
덴지 천황 -
백강 전투
백강 전투는 663년 백제 부흥군과 일본군 연합군이 나당 연합군과 금강 하구에서 벌인 전투로, 백제 부흥 운동의 종말과 동아시아 국제 정세 변화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일본의 국가 체제 개혁과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덴지 천황 -
다이카 개신
다이카 개신은 7세기 중반 일본에서 소가 씨의 권력 독점을 종식시키고 천황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추진된 정치 개혁으로, 을사의 변 이후 고토쿠 천황과 덴지 천황이 공지공민제, 반전수수법 등의 개혁 조치를 단행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려 했으며 당나라의 율령 체제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 실효성과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
만엽 가인 -
지토 천황
지토 천황은 덴지 천황의 딸이자 덴무 천황의 아내로, 덴무 천황 사후 즉위하여 아스카기요미하라령 제정, 후지와라쿄 조영 등을 통해 율령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며, 섭정 및 양위를 거쳐 태상천황이 되었다. -
만엽 가인 -
야마베노 아카히토
나라 시대의 가인 야마베노 아카히토는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와 함께 '가성'으로 불리며, 《만엽집》에 작품이 수록되었고, 후지산을 묘사한 서경가와 백인일수에 채택된 시로 유명하다.
2. 생애
645년 10월 7일(다이카 원년 음력 9월 12일), 아버지 후루히토노오오에노미코가 나카노오에노 황자(훗날의 덴지 천황)에게 모반 혐의로 처형당했다는 설이 있다. 덴지 천황 7년 4월 10일(음력 2월 23일), 나카노오오에노미코가 덴지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야마토히메노오키미는 황후(대후(大后))가 되었다. 덴지 천황의 병환 및 승하와 관련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고하면 된다. 또한, 만엽집에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2.1. 출생과 초기 생애
645년 10월 7일(다이카 원년 음력 9월 12일), 아버지 후루히토노오오에노미코가 나카노오에노 황자(훗날의 덴지 천황)에게 모반 혐의로 처형당했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야마토히메노오키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2.2. 덴지 천황의 황후
덴지 천황 7년 4월 10일(음력 2월 23일), 나카노오오에노미코가 덴지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야마토히메노오키미는 황후(대후(大后))가 되었다.
덴지 천황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오오아마노 황자(훗날의 덴무 천황)는 "야마토히메노 오오키미가 즉위하고, 오오토모노미코가 태정대신으로서 섭정을 해야한다"고 진언했다. 또한, 덴지 천황 붕어 후에 야마토히메노오키미의 즉위 또는 칭제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덴지 천황의 위독・붕어 때에 부른 우타 4수가 『만엽집』 2-147, 2-148, 2-149, 2-153에 수록되어 있다.
2.3. 덴지 천황의 병환과 덴무 천황의 진언
덴지 천황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오아마노 황자(훗날의 덴무 천황)는 "야마토히메노 오오키미가 즉위하고, 오토모 황자가 태정대신으로서 섭정을 해야한다"고 진언했다. 또한, 덴지 천황 승하 후에 야마토히메노오키미의 즉위 또는 칭제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