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크 우드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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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크 우드매에는 에스토니아의 육상 선수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세단뛰기 금메달리스트이다. 1954년 탈린에서 태어나, 에스토니아 농업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1975년 에스토니아 SSR 실내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1977년 유럽 실내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1979년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은메달, 1980년 유럽 실내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심판진의 구성과 판정 논란이 있었다. 1981년 유러피언컵에서 우승했고, 월드컵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1983년 유럽 실내 선수권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 후 육상 지도자 및 정계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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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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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야크 우드매에
원어 이름Jaak Uudmäe에스토니아어
Яа́к Яа́кович Уудмя́э러시아어
본명야크 야아코비치 우드매에
출생일1954년 9월 3일 ()
출생지탈린, 에스토니아
신장190cm
소속팀여우드 타르투
코치얀 위르게손
안츠 쿠시크
선수 경력
종목육상 경기
세부 종목세단뛰기
최고 기록세단뛰기 - 17.35m (1980년)
메달 기록
올림픽1980 모스크바: 세단뛰기 금메달
유럽 실내 선수권 대회1977 산세바스티안: 은메달
1980 진델핑겐: 은메달
1979 빈: 동메달
세계 대학 경기 대회1979 멕시코시티: 은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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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야크 우드매에는 1954년 에스토니아 SSR의 수도 탈린에서 태어났다. 1972년 타르투 제8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에스토니아 농업 아카데미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2.1. 선수 경력

야크 우드매에는 1969년에 안츠 쿠시크의 지도를 받으며 운동을 시작했으며, 1972년부터 1977년까지 아르보 릴레스티크의 지도를 받았다. 1975년 에스토니아 SSR 실내 육상 선수권 대회 세단뛰기 부문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드러냈고, 1977년에 소련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3월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에서 열린 1977년 유럽 실내 선수권 대회 세단뛰기에서 16.46m를 기록하며 빅토르 사네예프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1979년 2월 오스트리아 에서 열린 1979년 유럽 실내 선수권 대회 세단뛰기에서 16.91m의 기록으로 겐나디 발류케비치, 아나톨리 피스쿨린의 뒤를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9월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1979년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17.2m의 기록으로 윌리 뱅크스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 업적으로 1979년 올해의 에스토니아 스포츠 선수로 선정되었다.

1980년 3월 서독 진델핑겐에서 열린 1980년 유럽 실내 선수권 대회에서 16.51m의 기록으로 헝가리의 버코시 벨러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7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1980년 하계 올림픽 세단뛰기 결승에서 17.35m의 기록으로 사네예프와 브라질의 주앙 카를루스 지 올리베이라를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 경기의 심판진은 모두 소련인으로 구성되어 형평성 논란이 있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이언 캠벨 등이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우드매에는 이 업적으로 그 해의 에스토니아 스포츠 선수로 선정되었고, 그의 코치인 얀 위르겐손도 올해의 소련 코치로 선정되었다.

1981년 8월 1981년 유러피언컵 세단뛰기에서 16.97m의 기록으로 영국의 애스턴 무어와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시 스레요비치를 제치고 우승했다. 같은 해 9월 월드컵 세단뛰기에서 16.83m을 기록하여 브라질의 올리베이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쩌우전셴, 미국의 뱅크스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1983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1983년 유럽 실내 선수권 대회에서 16.56m의 기록으로 5위를 했다. 이 대회 이후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으며, 1980년대까지 에스토니아 SSR 지역 대회에 출전했다.

2.2. 은퇴 이후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캐아리쿠에서 육상 지도자로 활동했고, 1989년부터 에스토니아 올림픽 위원회 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소련 해체 후에도 에스토니아 올림픽 위원회에서 일했으며, 에스토니아 육상 협회를 거쳐 탈린 시의원 등 정계에서도 활동했다.

야크 우드매에는 멀리뛰기 선수 출신 육상 지도자인 마이에 라츠페라와 결혼했고 슬하에 아들 야누스, 야크, 요나스, 멜리스와 딸 메릴륀을 두었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를 이어 멀리뛰기나 세단뛰기 선수의 길을 걸었는데, 특히 장남 야누스는 에스토니아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국제 대회에서 활동했다.

2.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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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비고
배우자마이에 라츠페라멀리뛰기 선수 출신 육상 지도자
장남야누스육상 선수(세단뛰기, 멀리뛰기)
차남야크육상 선수(세단뛰기, 멀리뛰기)
3남요나스육상 선수(세단뛰기, 멀리뛰기)
4남멜리스육상 선수(세단뛰기, 멀리뛰기)
장녀메릴륀육상 선수(세단뛰기, 멀리뛰기)

야크 우드매에는 멀리뛰기 선수 출신 육상 지도자인 마이에 라츠페라와 결혼했다. 슬하에 아들 야누스, 야크, 요나스, 멜리스, 딸 메릴륀을 두었다. 이들은 모두 부모의 뒤를 이어 멀리뛰기나 세단뛰기 선수가 되었는데, 특히 장남 야누스는 에스토니아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국제 대회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