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P. 쉬세
1. 개요
얀 P. 쉬세는 노르웨이의 정치인으로,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노르웨이 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1957년 오슬로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보수 학생회 등에서 활동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1963년 오슬로 시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69년 국회의원이 되었다. 통상에너지부 장관, 우파당 대표, 북유럽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정치적 동료와 반대자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
우파당 (노르웨이)의 정치인 -
에르나 솔베르그
에르나 솔베르그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노르웨이 총리를 역임했으며, 보수당 대표를 지내면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국제 관계,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 추진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
우파당 (노르웨이)의 정치인 -
코레 빌로크
코레 빌로크는 1928년 오슬로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전공하고, 노르웨이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총리, 장관, 주지사 등을 역임했으며, 2021년 사망했다. -
노르웨이의 정치인 -
오드바르 노를리
오드바르 노를리는 노르웨이의 정치인으로, 1976년부터 1981년까지 노르웨이 총리를 지냈으며, 질병 보험 급여 개선, 낙태법 자유화 등을 추진하고 2018년 사망했다. -
노르웨이의 정치인 -
요한 뉘고르스볼
요한 뉘고르스볼은 노르웨이의 정치인으로,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총리를 역임하며 국민 연금 보험 도입 등 개혁을 추진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망명 정부를 이끌었으며 1952년 사망했다. -
노르웨이의 총리 -
오드바르 노를리
오드바르 노를리는 노르웨이의 정치인으로, 1976년부터 1981년까지 노르웨이 총리를 지냈으며, 질병 보험 급여 개선, 낙태법 자유화 등을 추진하고 2018년 사망했다. -
노르웨이의 총리 -
에르나 솔베르그
에르나 솔베르그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노르웨이 총리를 역임했으며, 보수당 대표를 지내면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국제 관계,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 추진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2. 생애
얀 P. 쉬세는 베스트폴 주 출신으로, 오슬로 대학교 법학과를 1957년에 졸업했다. 1963년 오슬로 시 의회 의원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고, 1969년 노르웨이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노르웨이 통상에너지부 장관을, 1988년부터 1991년까지는 우파당 대표를 역임했다. 1989년에는 노르웨이의 총리직을 수행했으며, 1988년과 1993년에는 북유럽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쉬세는 북유럽 및 발트 3국과의 협력을 중시했으나, 발트 3국의 북유럽 이사회 가입에는 반대했다. 사후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연설 등을 담은 책을 출판했다.
2.1. 초기 생애 및 경력
얀 P. 쉬세는 베스트폴 주 뇌테뢰이에서 치과 의사이자 지방 정치인이었던 아버지 페테르 쉬세(1888–1965)와 어머니 마그닐드 비에르네스(1898–1985)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9년에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을 통과했으며, 1957년 오슬로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학생 시절 보수 학생회, 노르웨이 학생 협회, 샤토 뇌프 건설 위원회 의장을 역임하며 정치 활동을 했다.
1955년 오슬로 대학교 학생 시절 엘세 발스타드(1936–2021)를 만나 1959년에 결혼했다. 슬하에 철학자 헨리크 쉬세와 외교관 크리스티안 쉬세 두 아들을 두었다.
첫 직장은 심해 해운 회사인 빌헬름 빌헬름센(Wilh. Wilhelmsen)의 변호사이자 매니저였다. 쉬세는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시기에 빌헬름센에서 근무했으며, 빌헬름센의 뉴스레터인 Skib-rederi의 편집자로도 일했다.
1963년 오슬로 시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69년 9월 13일 노르웨이 의회 오슬로 대표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2. 정치 경력
1957년부터 보수당 전국 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63년 오슬로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선출직 정치 경력을 시작하여 두 번의 임기를 역임했다.
1965년 스토르팅의 부대표로 선출되었다. 1969년 보르텐 내각의 카레 빌로크를 대신하여 정식 의원이 되었다. 의회 활동 기간 동안 사법, 행정, 재정, 확대 외무 및 헌법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유엔 총회, 북유럽 이사회, 국제 의회 연맹 및 기타 국제 기구에 의회 대표로 파견되기도 했다. 페르 보르텐 내각에서 1970년 11월 1일부터 1971년 3월 17일까지 법무부의 정무 차관을 지냈다. 1983년 9월 16일부터 1985년 10월 4일까지 빌로크 2기 내각에서 산업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1989년 10월 16일부터 1990년 11월 3일까지 쉬세 내각의 총리를 지냈다.
3. 정치적 유산
쉬세는 정치적 동료와 반대자 모두에게 호감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북유럽 지역 내 협력을 위해 노력했으며, 발트 3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 노력했다. 다만, 그는 발트 3국의 북유럽 이사회 가입에 반대했다. 그의 아들 크리스티안 쉬세와 헨리크 쉬세는 쉬세의 연설과 스타일을 담은 책 Ta ikke den ironiske tonen - tanker og taler av Jan P. Syse노르웨이어|타케 이케 덴 이로니스케 토넨 - 탕케르 오그 탈레르 아브 얀 P. 쉬세}}(오슬로, Forlaget Press, 2003)를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