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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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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림동은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동으로, '버드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볕이 잘 드는 숲을 의미한다는 설, 버드나무가 많은 곳을 의미한다는 설 등 세 가지 지명 유래가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는 광주 정씨 집성촌이 있었고,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정착하면서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전통 문화와 서양 문화가 결합되어 김현승, 정율성 등 많은 문화예술인을 배출했으며, 현재는 '문화예술마을'로 불린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양림호랑가시나무 등 기독교 선교 문화 유적과 이장우 가옥, 최승효 가옥 등 전통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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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양림동
한자 표기楊林洞
영문 표기Yangnim-dong
광역시/도광주광역시
시/군/구남구
면적0.68
세대3,809
세대 조사2012.8.1.
인구6948
인구 조사2022년 3월
법정동양림동, 방림동
16
79
동 주민센터광주광역시 남구 3·1만세운동길 6
홈페이지양림동 행정복지센터

2. 유래

양림동이라는 이름이 '버드름'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는 마을의 지형적 특징에서 비롯된다. 양림동 뒤편의 산이 능선을 이루며 광주천까지 뻗어 내려가는 모습, 즉 '뻗다(延)'에 접미사 '-으름'이 결합된 '버드름'이라는 우리말 지명이 한자화되었다는 것이다.[1]

'버드름'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버드'는 '버들 (楊)'로, '름'은 발음이 비슷한 '림(林)'으로 차용되어 '양림(楊林)'이 되었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楊이나 柳는 지명에서 버드나무가 아닌 뻗어나간 산버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1]

2. 1. 볕 양(陽), 수풀 림(林)

양림동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세 가지 다른 설명이 있다.

첫째, 볕 양(陽) 자와 수풀 림(林) 자를 써서 '볕이 잘 드는 숲'을 의미한다는 설이다. 양림산은 햇볕이 잘 들고 광주읍성 근처에 있어 양반들이 많이 거주했으며, 광주 정씨 집성촌이 있었다.[1] 조선시대에는 부동방면(佛洞坊面)에 속했는데, 이는 불교에서 저승을 맡아 어두운 곳의 사람들을 밝은 곳으로 이끄는 부동명왕에서 유래했다.[1] 양림동은 대추나무와 대나무가 유명했으며, 양림산에는 광주관아에서 특별 관리하던 대숲이 있어 조선 4대 죽산품 산지 중 하나였다.[1] 1481년 신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는 양림산(陽林山) 기록이 있는데, 현의 서쪽 2리에 있다는 것으로 보아 현재 사직공원이 있는 양림동 뒷산으로 추정된다.[1]

둘째, 버들 양(楊) 자와 수풀 림(林) 자를 써서 '버드나무가 많은 곳'을 의미한다는 설이다. 광주천변에 위치한 양림동은 버드나무가 많아 자연스럽게 버들숲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1] 1611년 정엄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문에 양촌(楊村) 정선생이라는 표기가 있고,[1] 1759년 여지도서에는 광주목 부동방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효자 정엄 조의 내용을 보면 그 문려는 양림촌(楊林村)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1]

셋째, '버드름'이라는 우리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양림동 뒤에 있는 산이 능선을 이루며 광주천까지 뻗어 내리는 지세를 '버드름'이라고 하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양림'이 되었다는 것이다.[1] '버드름'은 '뻗다(延)+으름(접미사)'으로 구성된 말로, 양림산에서 시작된 산 능선이 양파정 능선으로 이어져 광주천에 닿은 모습을 나타낸다.[1]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광주에 들어오면서 양림동은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1] 이들은 양림산턱에 정착하여 '서양촌'을 이루고, 구빈, 교육, 의료 활동을 통해 기독교를 전파했다.[1] 배유지(1868~1925) 선교사의 임시사택에서 광주근대 병원(제중원)이 시작되었고,[1] 오기원의 이름을 딴 오웬 기념각에서는 일제 강점기에도 강연회, 가극대회 등 대중 행사가 열렸다.[1] 선교사들은 외래종 수목을 심고, 의료 선교와 호혜를 실천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갔다.[1]

양림동은 정낙교, 최상현을 비롯한 광주 5대 부자들이 살았던 곳으로, 전통문화와 서양 문화가 결합하여 김현승, 정율성, 정준채, 정추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했다.[1] 1950년대에는 시인들이 많이 살면서 '시인의 마을'로 불렸으며, 현재는 '문화예술마을'로 불린다.[1] 우일선 선교사 사택 및 400년이 넘은 양림호랑가시나무 등 기독교 선교문화 유적과 이장우가옥, 최승효 가옥 등 전통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1]

2. 2. 버들 양(楊), 수풀 림(林)

양림동(楊林洞)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세 가지 다른 설명이 있다.[1]

  • 볕 양(陽), 수풀 림(林): 볕이 잘 드는 숲이라는 의미로, 양림산이 햇볕이 잘 들고 광주읍성 부근에 위치하여 양반들이 많이 거주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조선시대에는 대추나무와 대나무가 유명했으며, 광주관아에서 양림산의 대숲을 특별 관리했고 조선 4대 죽산품 산지 중 하나였다.[1] 1481년 신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양림산(陽林山)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부터 '햇볕숲'을 의미하는 양림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
  • 버들 양(楊), 수풀 림(林): 버드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로, 광주천변에 위치한 양림동의 지리적 특성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광주천 제방에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고, 1611년 정엄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문에 양촌(楊村)이라는 표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마을 이름이 양촌(楊村) 혹은 양림촌(楊林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 1759년 여지도서에는 광주목 부동방면으로 기록되어 있고, 효자 정엄 조의 내용에 문려가 양림촌(楊林村)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1]
  • 버드름: 마을 뒤 산이 능선을 이루며 광주천까지 뻗어 내리는 지세를 일컫는 '버드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버드름'은 '뻗다(延)+으름(접미사)'로 구성된 말로,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양림(楊林)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楊이나 柳는 지명에서 버드나무가 아닌 뻗어나간 산버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1]


양림동은 구한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정착하면서 '서양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1904년 배유지(裵裕祉, 유진 벨), 오기원(오원, 클레멘트 오웬) 등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터를 잡고, 구빈, 교육, 의료 활동을 통해 기독교를 전파했다.[1] 오웬 기념각에서는 일제강점기에도 강연회, 가극대회 등 대중 행사가 열려 지역 주민들에게 위안을 주었다.[1] 선교사들은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외래종 수목을 심었으며, 1905년 배유지 선교사 임시사택에서 광주근대 병원(제중원)이 시작되었다.[1] 1909년에는 나환자들을 위한 구라사업과 광주 나병원, 결핵 진료원 등을 열어 의료 선교와 호혜를 실천하였다.[1]

양림동은 정낙교, 최상현을 비롯한 광주 5대 부자들이 살았던 곳으로, 전통문화와 서양 문화가 결합되어 김현승, 정율성, 정준채, 정추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했다.[1] 1950년대에는 시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시인의 마을'로 불렸으며, 현재는 '문화예술마을'로 불린다.[1] 우일선교사 사택 및 400년이 넘은 양림호랑가시나무 등 기독교 선교문화 유적과 이장우가옥, 최승효가옥 등 전통 문화재가 많이 보존되어 있다.[1]

2. 3. '버드름'에서 유래

양림동이라는 이름이 '버드름'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는 마을의 지형적 특징에서 비롯된다. 양림동 뒤편의 산이 능선을 이루며 광주천까지 뻗어 내려가는 모습, 즉 '뻗다(延)'에 접미사 '-으름'이 결합된 '버드름'이라는 우리말 지명이 한자화되었다는 것이다.[1]

'버드름'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버드'는 '버들 (楊)'로, '름'은 발음이 비슷한 '림(林)'으로 차용되어 '양림(楊林)'이 되었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楊이나 柳는 지명에서 버드나무가 아닌 뻗어나간 산버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1]

3. 역사

조선후기에는 광주군 부동 방면에 속했다. 1947년 8월 15일 광주시 양림동으로 개칭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동구 양림동이 되었다.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서구 양림동이 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이 되었다.

3. 1. 구한말 ~ 일제강점기

조선후기 광주군 부동 방면에 속했다. 1947년 8월 15일 광주시 양림동으로 개칭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동구 양림동이 되었다.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서구 양림동이 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이 되었다.

3. 2. 해방 이후 ~ 현재

1947년 8월 15일 광주시 양림동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동구 양림동이 되었다가,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 서구 양림동으로, 1995년 3월 1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으로 변경되었다.

4. 문화

4. 1. 문화 유적

4. 2. 문화 예술

5. 교육

6. 주거 시설

wikitable

단지명건설사시행사주소입주비고
양림휴먼시아 1단지동부건설
㈜한양
대한주택공사2008년 5월
양림휴먼시아 2단지남해종합개발2008년 10월국민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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