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진씨
1. 개요
양산 진씨는 진한의 황제 진우량의 아들 진리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진리는 원나라 말기에 진한의 2대 황제가 되었으나, 홍무제에게 항복하여 고려로 보내졌다. 고려 공민왕은 진리에게 삼베를 하사했으며, 진리는 병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후손들이 한국에 남아 양산 진씨를 이루었다.
| 가명 | 양산 진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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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표기 | 梁山陳氏 |
| 로마자 표기 | Yangsan Jin ssi |
| 국가 | 한국 |
| 지역 | 양산현 |
| 창시자 | 진보재(陳普才) |
| 주요 인물 | 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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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2015년) | 1,04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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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조 진리(陳理)
양산 진씨의 시조 진리는 원나라 말기의 군벌이자 진한(陳漢)의 황제였던 진우량의 아들이다. 진리는 진한의 두 번째 황제였다.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에게 항복한 후 귀덕후에 봉해졌으며, 이후 고려로 보내져 진왕(陳王)으로 알려졌다. 고려 공민왕은 진리에게 삼베 아홉 필을 하사했다. 진리는 병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후손들은 한국에 남아 양산 진씨가 되었다. 진리의 아들 중 한 명은 진명선이었다.
2.2. 진리의 고려 귀화
진우량의 아들 진리는 진한의 두 번째 황제로 즉위했다.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는 명나라에 항복한 진리를 귀덕후에 봉했다. 이후 진리는 고려로 보내졌고, 진왕(陳王)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고려 공민왕은 진리에게 아홉 필의 삼베를 하사했다. 진리는 병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후손들은 한국에 남아 양산 진씨가 되었다. 진리의 아들 중 한 명은 진명선이었다.
3. 양산 진씨의 정착과 발전
진리는 명나라에 항복한 후 귀덕후에 봉해졌다. 이후 고려로 보내져 첸 왕(진왕)으로 알려졌으며, 고려 공민왕은 진리에게 아홉 필의 삼베를 하사했다. 진리는 병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후손들은 한국에 남아 양산 진씨를 이루었다. 진리의 아들 중 한 명은 진명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