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연
1. 개요
양성연은 전한 시대의 군장 출신 관료로, 장락궁, 미앙궁, 장안성 축조에 참여했다. 고황후 원년(기원전 187년) 공을 인정받아 오후(梧侯)에 봉해졌으며, 식읍 5백 호를 받았다. 기원전 182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제(齊)이고, 작위는 아들 양성거질이 계승했다.
-
기원전 182년 사망 -
진서 (용경후)
진서(용경후)는 전한 초 한 고제를 따라 항우를 쳐 조구를 죽인 공으로 용후에 봉해졌으며, 기원전 182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경이라 하고 아들 진견이 뒤를 이었다. -
기원전 182년 사망 -
영상 (전한)
영상은 전한 시대에 유학에 밝아 선제의 자문을 구하고 흉노와의 관계 개선을 주장했으며,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려 노력하고 토지 제도 개혁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부와 중위를 역임한 인물이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양성연은 군장(軍匠)으로 겹(郟) 땅에서 종군하였고, 이후 소부가 되어 장락궁, 미앙궁, 장안성 축조에 참여하였다. 고후 원년(기원전 187년), 고후는 여(呂)씨 일족의 정권 장악을 위해 힘썼으며, 양성연은 그 동안의 공적으로 오후(梧侯)에 봉해지고 식읍 5백 호를 받았다. 고후 6년(기원전 182년)에 사망하였고, 시호는 제(齊)이며, 작위는 아들 양성거질이 이었다.
2.1. 초기 활동
양성연은 군장(軍匠)으로써 겹(郟) 땅에서 종군하였고, 이후 소부가 되어 장락궁, 미앙궁, 장안성 축조에 참여하였다.
고후 원년(기원전 187년), 고후는 여(呂)씨 일족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하기 위하여 손을 썼는데, 이때 양성연은 그 동안의 공적으로 오후(梧侯)에 봉해지고 식읍 5백 호를 받았다.
고후 6년(기원전 182년)에 사망하였고, 시호를 제(齊)라 하였으며, 작위는 아들 양성거질이 이었다.
2.2. 관료 생활과 축조 사업
양성연은 군장(軍匠)으로써 겹(郟) 땅에서 종군하였고, 이후 소부가 되어 장락궁, 미앙궁, 장안성 축조 사업에 참여하였다.
고후 원년(기원전 187년), 고후는 여(呂)씨 일족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하기 위하여 손을 썼다. 이때 양성연은 그 동안의 공적으로 오후(梧侯)에 봉해지고 식읍 5백 호를 받았다.
2.3. 오후(梧侯) 책봉
고후 원년(기원전 187년), 고후는 여(呂)씨 일족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하기 위하여 손을 썼다. 이때 양성연은 그 동안의 공적으로 오후(梧侯)에 봉해지고 식읍 5백 호를 받았다.
2.4. 사망
고황후 6년(기원전 182년)에 죽었으며, 시호는 제(齊)이다. 작위는 아들 양성거질이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