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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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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칠성은 일제강점기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한 한국인으로, 본명은 양칠성이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코마루딘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연합군 포로 감시원으로 임명되었고, 인도네시아 독립 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남아 인도네시아 여성과 결혼했다. 네덜란드군의 침략에 맞서 인도네시아 국군에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벌였으며, 1949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이후 한국과 일본 학자들에 의해 신원이 확인되었고, 인도네시아 독립에 기여한 인물로 재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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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칠성
기본 정보
본명양칠성 (梁七星)
다른 이름고마루딘 (Komarudin)
야나가와 시치세이 (梁川七星, Yanagawa Shichisei)
출생1919년
출생지전라남도 완도군
사망1949년
사망지인도네시아 자바
국적대한민국
직업독립운동가
활동
주요 활동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참여
소속인도네시아 독립군
훈장인도네시아 정부 훈장
기타
참고 사항인도네시아 역사 교과서에 등재

2. 초기 생애

양칠성은 1919년 5월 29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다.[1] 1942년 일본 제국에 의해 반둥에서 연합군의 보호자로 임명되었다. 당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모두 일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다. 1945년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독립한 후, 양칠성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아 이름을 코마루딘으로 바꾸고 인도네시아 여성과 결혼했다. 네덜란드 군이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군사적 침략을 시작하자, 코마루딘은 반둥에서 온 두 명의 일본 군인과 함께 인도네시아 국군에 합류하기 위해 가룻으로 갔다. 그들은 마르카스 베사르 게릴랴 갈룽궁(MBGG)의 "파수칸 팡게란 파팍"이라는 그룹에서 게릴라전을 벌였으며, 코사시 소령의 지휘를 받아 가룻 와나라자에 주둔했다.[2] 하세가와(아부바카)와 아오키 마사히로(우스만)라는 두 명의 일본 군인과 코마루딘은 뛰어난 전투 기술로 알려졌으며, 이 부대는 반둥 불바다 사건에서도 싸웠다.[2] 코마루딘은 치마누크 다리를 파괴하여 네덜란드가 와나라자를 점령하려는 시도를 좌절시켰다.[3]

3. 인도네시아에서의 활동

양칠성은 1942년 일본 제국에 의해 반둥에서 연합군 포로 감시원으로 임명되었다.[1] 당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모두 일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다.[1][2] 1945년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독립한 후, 양칠성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았다. 그는 이름을 코마루딘으로 바꾸고 인도네시아 여성과 결혼했다. 네덜란드 군이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군사적 침략을 시작하자, 코마루딘은 반둥에서 온 두 명의 일본 군인과 함께 인도네시아 국군에 합류하기 위해 가룻으로 갔다.[2] 그들은 마르카스 베사르 게릴랴 갈룽궁(MBGG)의 "파수칸 팡게란 파팍"이라는 그룹에서 게릴라전을 벌였다. 그들은 코사시 소령의 지휘를 받았으며 가룻 와나라자에 주둔했다. 하세가와(아부바카)와 아오키 마사히로(우스만)라는 두 명의 일본 군인과 코마루딘은 뛰어난 전투 기술로 알려졌다.[2] 이 부대는 반둥 불바다 사건에서도 싸웠다.[2] 코마루딘은 치마누크 다리를 파괴하여 네덜란드가 와나라자를 점령하려는 시도를 좌절시켰다.[3]

3. 1.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참여

4. 체포 및 처형

1949년 8월 10일, 네덜란드군이 가룻을 공격했을 때, 파팍 왕자 부대는 후퇴했으나, 첩자의 정보로 인해 양칠성을 비롯한 코마루딘(양칠성), 아부바카르, 우스만 3명의 게릴라는 체포되었다.[3] 이들은 가룻의 케르코프에서 처형되었다.[2] 함께 체포된 인도네시아인 전사 조에하나는 치피낭 교도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3] 이들은 보고르의 TPU 파시르에 묻혔다가 1975년에 가룻 텐졸라야 영웅 묘지로 이장되었다.[4] 양칠성은 사망 당시 아들이 있었다.[4]

5. 신원 확인 및 재평가

과거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양칠성의 삶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일본대한민국 역사학자들에 의해 코마루딘이 한국인이라는 신원이 밝혀졌다.[1] 아직 생존해 있는 양칠성의 동료들의 증언도 확보되었다.[2] 1995년 7월, 인도네시아 정부와 대한민국 대표는 코마루딘 묘비 교체식을 군사적으로 거행했다. 그 이후 양칠성은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재평가되고 있다.[1][2] 최근 대한민국에서 그의 이야기가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6. 대한민국과의 관계

참조

[1] 웹사이트 Yang Chil Sung:Purnama Menyinari Kemerdekaan Indonesia http://world.kbs.co.[...] KBS World 2017-05-06
[2] 웹사이트 Yang Chil Sung, Sang Pahlawan Garut dari Korea (Bagian I) http://fokusjabar.co[...] Wayback Machine 2017-05-06
[3] 뉴스 Pejuang Asing Ditangkap Militer Belanda http://arsipindonesi[...] Arsip Indonesia 2017-05-06
[4] 웹사이트 Yang Chil Sung, Sang Pahlawan Garut dari Korea (Bagian II-Habis) http://fokusjabar.co[...] Wayback Machine 2017-05-06
[5] 웹인용 故 양칠성씨…인도네시아 역사교과서에 실린다 https://www.donga.co[...] 동아일보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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