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택식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양택식은 대한민국의 공무원이자 기업인이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경상남도 부지사,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철도청장, 부산시 부시장, 경상북도지사를 역임했다. 1970년 서울특별시장으로 부임하여 여의도 사업을 마무리하고 강남 개발을 추진했으며,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착공했다. 육영수 저격 사건으로 시장에서 물러난 후 대한주택공사 사장과 동서석유화학 회장을 지냈다. 1971년 광주 대단지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양택식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철도청장 - 이용 (1923년)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 복무 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에 참전한 이용은 5.16 군사 정변 이후 강원도지사, 교통부 차관, 철도청 청장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 기업인이다.
  • 부산광역시 부시장 - 오거돈
  • 부산광역시 부시장 - 허남식
    허남식은 1976년 고등고시 합격 후 부산광역시 기획관리실장과 정무부시장을 거쳐 제31·32·33대 부산광역시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을 지냈으나 엘시티 비리 연루 의혹으로 논란이 있었다.
  • 경상북도지사 - 이상배 (1939년)
    이상배는 행정고시 합격 후 울진군수, 안동시장, 경상북도지사, 환경청장, 서울특별시장 등 주요 행정 관료를 역임하고 제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 경상북도지사 - 구자춘
    구자춘은 5·16 군사정변에 가담한 후 박정희 정부에서 제주도지사, 수산청장, 경상북도지사, 서울특별시장,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국회의원도 지낸 인물로, 서울시장 시절 서울 지하철 2호선 건설과 강남 개발을 추진했으며 군사정권 협력, 부정축재 혐의에 대한 비판도 존재하지만, 지하철 2호선 건설과 강남 개발은 주요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남해군에서 태어났다. 194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10월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설정 당시 모습
1970년 10월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설정 당시 모습

2.1. 공직 경력

1964년 1월 11일 경상남도 부지사가 되었고, 10월 6일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66년 철도청장, 부산시 부시장, 1967년 경상북도지사를 역임했다.

1970년 서울특별시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었던 손정목에 의하면, 양택식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주말과 밤낮도 없이 일에만 몰두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시장 부임 후 김현옥 전임 시장에 의해 추진되고 있었던 여의도 사업을 마무리지었으며, 지금의 강남에 해당하는 영동지구 개발을 추진하였다. 또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착공, 3년 뒤 개통하여 서울에 지하철 시대를 여는 데도 기여했다.

1970년 10월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설정 당시 모습
1970년 10월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설정 당시 모습


1974년 육영수 저격사건으로 시장에서 물러난 뒤, 1975년 대한주택공사 사장을 맡아 1980년까지 근무했고, 1981년부터 1986년까지 동서석유화학 회장을 지냈다.

2.2. 서울특별시장 재임 (1970-1974)

梁澤植중국어1970년 서울특별시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었던 손정목에 의하면, 양택식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주말과 밤낮도 없이 일에만 몰두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시장 부임 후 김현옥 전임 시장에 의해 추진되고 있었던 여의도 사업을 마무리지었으며, 지금의 강남에 해당하는 영동지구 개발을 추진하였다. 또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착공, 3년 뒤 개통하여 서울에 지하철 시대를 여는 데도 기여했다.

1970년 10월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설정 당시 모습
1970년 10월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설정 당시 모습

2.3. 서울특별시장 퇴임 이후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으로 서울특별시장 직에서 물러난 뒤, 1975년 대한주택공사 사장을 맡아 1980년까지 근무했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동서석유화학 회장을 지냈다.

3. 사건

1971년 8월 10일, 광주 대단지 사건 당시 경기도 성남출장소 지역 주민들과의 면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군중들이 봉기하는 시발점을 제공하였다.

3.1. 광주 대단지 사건 (1971)

1971년 8월 10일, 양택식은 광주 대단지 사건 당시 경기도 성남출장소 지역 주민들과의 면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분노한 군중들이 봉기하여 사건의 시발점을 제공하였다.

4. 기타

양택식은 서울특별시장 재임 시절 '두더지 시장'과 '호마이카'라는 두 가지 별명으로 불렸다. '두더지 시장'은 1기 지하철 건설 현장을 자주 방문한 데서, '호마이카'는 이마가 대머리여서 광택제 이름에서 유래한 별명이다.

원래 이름은 양탁식(梁鐸植)이었으나, 1970년 서울시장 부임 직후 "주위에서 '택식'으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아 아예 이름을 바꿨다"고 밝혔다.

4.1. 개명

양택식은 1970년 서울특별시장에 부임하면서 원래 이름인 양탁식(梁鐸植)에서 '택식'으로 개명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래 이름은 양탁식이 맞지만 주위에서 '택식'으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아 아예 이름을 바꿨다"며 "'탁'보다는 '택'이 부르기 좋으니 한문이 한글을 따르는 한 예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특별시장 재임 시절, 그는 1기 지하철 건설 현장을 자주 방문하여 '두더지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이마에 광택이 나는 대머리였기 때문에 광택제의 일종인 '호마이카'라는 별명도 얻었다.

4.2. 별명

서울특별시장 재임 시절 양택식의 별명은 '두더지 시장'과 '호마이카' 두 가지였다. '두더지 시장'은 1기 지하철 건설 기간 내내 공사 현장을 누볐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고, '호마이카'는 이마에 광택이 날 정도로 대머리였기 때문에 광택을 내는 칠의 이름인 호마이카를 따서 붙여진 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