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례복류
1. 개요
억례는 억뢰(憶頼)로도 표기되며, 백제의 성지, 또는 백제의 아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 인물이다. 663년 백제 부흥 운동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665년 달솔 사비복부와 함께 지쿠시국에 오노성과 연성을 축조했다. 671년 대산하의 관위를 받았으며, 761년 억뢰자노가 그의 일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찬성씨록에 따르면 근초고왕의 손자이자 석야련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억례복류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 이름 | 억례복류 |
|---|---|
| 원어 이름 | 憶禮福留 |
| 성별 | 남성 |
생애
| 출생일 | 미상 |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일 | 미상 |
| 사망지 | 미상 |
관직
| 군주 | 백제 의자왕 |
|---|---|
| 직책 | 백제의 달솔 |
| 직책 2 | 일본의 대선하 |
군사 활동
| 참전 | 백제부흥운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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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록 및 활동
억례복류는 백제 부흥 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로, 병법에 능통했다. 663년 백강 전투에서 백제가 패배한 후, 여자신, 목소귀자, 곡나진수 등 다른 백제 유민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663년 9월 24일(갑술)에 대례성에 도착하여 다음 날 일본으로 떠났다.
665년 8월, 사비복부와 함께 지쿠시국에 오노성과 연성(고대 산성)을 쌓았다. 671년 1월에는 대산하 관위를 받았다.
2.1. 백제 부흥 운동과 일본 망명
663년 백강 전투에서 패배한 후, 여자신, 목소귀자, 곡나진수 등 다른 백제 유민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이들은 663년 9월 24일(갑술)에 대례성에 이르렀다가 다음 날 일본으로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