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 하루야스
1. 개요
에토 하루야스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야하타 중학교와 호세이 대학에서 활약했으며, 학도 출진으로 타이완에서 종전을 맞았다. 프로 입단 전에는 모지 철도국과 다이요 어업에서 활동했다. 1949년 한신 타이거스와 난카이 호크스 간의 이중 계약 파동의 중심에 있었으며, 1950년 난카이 호크스에서 14승을 기록하고, 1951년에는 다승왕과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 1955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으며, 은퇴 후에는 NTT에서 근무하며 덴덴 긴키에서 코치를 맡았다. 2016년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선수명 | 에토 하루야스 |
|---|---|
| 원어명 | Haruyasu Eto |
| 일본어 표기 | ja |
| 로마자 표기 | Etō Haruyasu |
| 가나 | えとう はるやす |
| 한자 | 江藤 晴康 |
| 국적 | 일본 |
|---|---|
| 출신지 |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
| 생년월일 | 1922년 5월 9일 |
| 사망일 | 2016년 2월 21일 |
| 신장 | 179cm |
| 체중 | 75kg |
| 수비 위치 | 투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우타 |
| 프로 입단 연도 | 1949년 |
|---|---|
| 드래프트 순위 | 해당사항 없음 |
| 첫 출장 | 1950년 |
| 마지막 경기 | 1955년 |
| 연봉 | 해당사항 없음 |
| 고등학교 | 야하타 중학교 |
|---|---|
| 대학교 | 호세이 대학 |
| 실업팀 | 모지 철도국 |
| 실업팀 | 다이요 어업 |
| 프로 구단 | 오사카 타이거스 (1949) |
| 프로 구단 | 난카이 호크스 (1949 ~ 1953) |
| 프로 구단 | 다카하시 유니온스 (1954) |
| 프로 구단 | 도에이 플라이어스 (1955) |
| 코치팀 | 덴덴 긴키 |
|---|
-
도에이 플라이어스 선수 -
장훈
장훈은 일본 히로시마 출신의 재일 한국인 야구 선수이자 해설가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다 안타 기록과 3,000안타-500홈런-300도루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보유했으며, 은퇴 후에는 해설가로 활동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
도에이 플라이어스 선수 -
백인천
백인천은 중화민국 출신의 대한민국 야구 선수 및 감독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하며, KBO 리그에서 1982년 최고 타율을 기록하고, LG 트윈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
퍼시픽 리그 베스트 나인 -
오타니 쇼헤이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투수와 타자 모두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MVP를 수상하고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도류 야구 선수이다. -
퍼시픽 리그 베스트 나인 -
장훈
장훈은 일본 히로시마 출신의 재일 한국인 야구 선수이자 해설가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다 안타 기록과 3,000안타-500홈런-300도루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보유했으며, 은퇴 후에는 해설가로 활동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2. 프로 입단 전
야하타 중학교(현 후쿠오카현립 야하타 고등학교)와 호세이 대학에서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였다. 재학 중 학도병으로 소집되어 타이완에서 종전을 맞았다.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모지 철도국과 다이요 어업에서 활약했다.
3. 프로 입단을 둘러싼 배경
1949년, 오사카 타이거스와 난카이 호크스 간의 이중 계약이 드러났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다. 이전에 다케스에 싯쇼의 영입을 둘러싸고 양 구단이 쟁탈전을 벌였고, 다케스에가 난카이에 들어온 것을 ‘빼앗겼다’라고 생각한 오사카의 와카바야시 다다시 감독이 난카이의 야마모토 가즈토 감독에게 항의하자, 야마모토는 “다케스에는 난카이, 에토는 오사카로 하자”라고 말했다. 이 시점에서 에토는 이미 난카이와 가계약을 맺고 있었지만, 와카바야시의 이야기를 들은 오사카의 도가시 고이치 대표가 시모노세키에 있는 에토에게 찾아가서 “야마모토가 너를 우리에게 양도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니까”라고 계약서를 내밀었다.
에토는 “야마모토 감독에게 전화하고 나서”라고 말했지만, 도가시 대표는 “내가 계약했다고 전해달라”며 계약을 강행했다. 신문 보도로 이중 계약 사실을 알게 된 난카이 측은 에토를 즉시 오사카에 불렀지만, 오사카 측도 이를 감지하여 오사카역에서 양 구단 관계자가 신병 확보를 다투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난카이 측이 에토를 확보한 뒤 그대로 잠복시켰다. 오사카 측은 “1년 간만 오사카에 소속”이라는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난카이 측은 이를 거부하고 연맹에 제소했다. 형식적으로 오사카에 입단한 뒤 바로 난카이에 트레이드로 이적하는 재정에서 해결을 노렸지만, 이 논란으로 인해 에토는 1949년 시즌 1년 간 출전 정지 처분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4. 프로 야구 선수 시절
1950년, 징계 해제 후 난카이 호크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4승을 기록했다. 1951년에는 24승을 거두며 다승왕 타이틀과 베스트 나인(투수 부문)을 수상했다. 1952년에는 11승을 기록했으나, 이후 성적이 하락했다. 1953년에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다카하시 유니온스로 이적했다. 1954년 다카하시 유니온스에서 1승 8패를 기록했다. 1955년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하여 등록명을 본명인 '에토 하루야스'로 변경했지만,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 못하고 은퇴했다.
| 연도 | 소속팀 | 경기 수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배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투구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평균 자책점 | WHIP | ||||
|---|---|---|---|---|---|---|---|---|---|---|---|---|---|---|---|---|---|---|---|---|---|---|---|---|
| 1950 | 난카이 | 47 | 29 | 13 | 3 | 2 | 14 | 9 | -- | -- | .609 | 236.2 | 218 | 17 | 62 | -- | 2 | 78 | 0 | 0 | 92 | 77 | 2.92 | 1.18 |
| 1951 | 45 | 24 | 17 | 1 | 3 | 24 | 5 | -- | -- | .828 | 268.2 | 227 | 16 | 47 | -- | 2 | 100 | 0 | 1 | 81 | 68 | 2.28 | 1.02 | |
| 1952 | 32 | 22 | 7 | 0 | 0 | 11 | 10 | -- | -- | .524 | 163.2 | 159 | 6 | 47 | -- | 0 | 58 | 0 | 1 | 73 | 61 | 3.35 | 1.26 | |
| 1953 | 9 | 5 | 0 | 0 | 0 | 0 | 2 | -- | -- | .000 | 33.2 | 44 | 2 | 7 | -- | 0 | 9 | 0 | 0 | 18 | 15 | 3.97 | 1.51 | |
| 1954 | 다카하시 | 21 | 10 | 1 | 0 | 0 | 1 | 8 | -- | -- | .111 | 82.0 | 103 | 6 | 23 | -- | 0 | 31 | 0 | 0 | 60 | 50 | 5.49 | 1.54 |
| 1955 | 도에이 | 1 | 0 | 0 | 0 | 0 | 0 | 0 | -- | -- | ---- | 2.2 | 3 | 2 | 0 | 0 | 0 | 0 | 0 | 0 | 2 | 2 | 6.00 | 1.13 |
| 통산: 6년 | 155 | 90 | 38 | 4 | 5 | 50 | 34 | -- | -- | .595 | 787.1 | 754 | 49 | 186 | 0 | 4 | 276 | 0 | 2 | 326 | 273 | 3.12 | 1.19 |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
5. 은퇴 후
은퇴 후에는 일본전신전화공사(현 NTT)에 입사했고 사회인 야구팀 덴덴 긴키에서 코치를 맡았다. 2016년 2월 21일, 노환으로 후쿠오카현 유쿠하시시 자택에서 사망했다(향년 93세).
6. 상세 정보
에토 하루야스는 야하타 중학교(현 후쿠오카현립 야하타 고등학교)와 호세이 대학에서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대학 졸업 후 모지 철도국과 다이요 어업을 거쳐 1949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했다.
프로 입단 과정에서 오사카 타이거스와 이중 계약 문제가 발생했다. 타케스에 싯쇼 획득 경쟁에서 난카이에 "빼앗겼다"고 생각한 오사카의 와카바야시 타다시 감독이 난카이의 야마모토 가즈토 감독에게 항의했고, 야마모토 감독은 "타케스에는 난카이, 에토는 오사카로 하자"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에토는 이미 난카이와 가계약을 마친 상태였다. 결국 난카이가 에토를 확보했지만, 오사카는 "1년간만 오사카에 재적"이라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난카이는 거부했다. 최종적으로는 연맹에 제소하여 형식적으로 타이거스에 입단한 후, 바로 호크스로 트레이드 이적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었지만, 이 문제로 1949년 시즌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처분이 풀린 1950년에 14승, 1951년에는 24승을 올려 최다승과 베스트 나인 타이틀을 획득했다. 1953년에는 다카하시 유니온즈로 이적했지만 1승밖에 거두지 못했고, 1955년 도에이 플라이어스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은퇴했다.
올스타전 출장은 1회(1951년)이다.
선수 시절 등번호는 다음과 같다.
| 연도 | 등번호 |
|---|---|
| 1949년 | 22 |
| 1949년 ~ 1953년, 1955년 | 10 |
| 1954년 | 19 |
1955년 등록명은 江藤 晴康일본어이다.
6.1. 출신 학교
* 야하타 중학교 (현 후쿠오카현립 야하타 고등학교)
* 호세이 대학
6.2. 선수 경력
에토 하루야스는 야하타 중학교(현 후쿠오카현립 야하타 고등학교)와 호세이 대학에서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재학 중 학도병으로 소집돼 타이완에서 종전을 맞았다.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모지 철도국과 다이요 어업에서 활약했고, 1949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했다.
선수 경력은 다음과 같다.
프로 입단 과정에서 오사카 타이거스와 난카이 호크스 간의 이중 계약 문제가 발생했다. 타케스에 싯쇼 획득을 둘러싼 경쟁에서 난카이에 "빼앗겼다"고 생각한 오사카의 와카바야시 타다시 감독이 난카이의 야마모토 가즈토 감독에게 항의하자, 야마모토 감독은 "타케스에는 난카이, 에토는 오사카로 하자"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에토는 이미 난카이와 가계약을 마친 상태였다. 와카바야시의 이야기를 들은 오사카의 토가시 코이치 대표는 에토를 찾아가 계약을 강행했다. 이중 계약 사실이 알려지자 난카이는 에토를 오사카로 불렀고, 오사카역에서 양 구단 관계자가 에토를 확보하기 위해 다투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난카이가 에토를 확보했지만, 오사카는 "1년간만 오사카에 재적"이라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난카이는 거부했다. 최종적으로는 연맹에 제소하여 형식적으로 타이거스에 입단한 후, 바로 호크스로 트레이드 이적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었지만, 이 문제로 에토는 1949년 시즌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처분이 풀린 1950년에 14승, 3년 차에는 24승을 올려 최다승과 베스트 나인 타이틀을 획득했다. 4년 차에도 11승을 기록했지만, 이후 성적이 하락하여 1953년에는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다카하시 유니온즈로 이적했다. 다카하시에서도 1승밖에 거두지 못하고, 1955년에는 도에이 플라이어스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7년 만에 은퇴했다.
6.3.1. 타이틀
다승왕: 1회(1951년)
6.4. 개인 기록
올스타전 출장 : 1회(1951년)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선발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1950년 | 난카이 | 47 | 29 | 13 | 3 | 2 | 14 | 9 | -- | -- | .609 | 968 | 236.2 | 218 | 17 | 62 | -- | 2 | 78 | 0 | 0 | 92 | 77 | 2.92 | 1.18 |
| 1951년 | 45 | 24 | 17 | 1 | 3 | 24 | 5 | -- | -- | .828 | 1065 | 268.2 | 227 | 16 | 47 | -- | 2 | 100 | 0 | 1 | 81 | 68 | 2.28 | 1.02 | |
| 1952년 | 32 | 22 | 7 | 0 | 0 | 11 | 10 | -- | -- | .524 | 691 | 163.2 | 159 | 6 | 47 | -- | 0 | 58 | 0 | 1 | 73 | 61 | 3.35 | 1.26 | |
| 1953년 | 9 | 5 | 0 | 0 | 0 | 0 | 2 | -- | -- | .000 | 149 | 33.2 | 44 | 2 | 7 | -- | 0 | 9 | 0 | 0 | 18 | 15 | 3.97 | 1.51 | |
| 1954년 | 다카하시 | 21 | 10 | 1 | 0 | 0 | 1 | 8 | -- | -- | .111 | 371 | 82.0 | 103 | 6 | 23 | -- | 0 | 31 | 0 | 0 | 60 | 50 | 5.49 | 1.54 |
| 1955년 | 도에이 | 1 | 0 | 0 | 0 | 0 | 0 | 0 | -- | -- | ---- | 11 | 2.2 | 3 | 2 | 0 | 0 | 0 | 0 | 0 | 0 | 2 | 2 | 6.00 | 1.13 |
| 통산: 6년 | 155 | 90 | 38 | 4 | 5 | 50 | 34 | -- | -- | .595 | 3255 | 787.1 | 754 | 49 | 186 | 0 | 4 | 276 | 0 | 2 | 326 | 273 | 3.12 | 1.19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
6.5. 등번호
江頭 晴八일본어의 등번호는 다음과 같다.
| 연도 | 등번호 |
|---|---|
| 1949년 | 22 |
| 1949년 ~ 1953년, 1955년 | 10 |
| 1954년 |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