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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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영복은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 강사, 육군사관학교 교관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저술가, 서예가이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20일간 복역 후 가석방되었으며, 출소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했다. 성공회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2016년 피부암으로 별세했다. 저서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처음처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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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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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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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이름 | 申榮福 |
이름 | 신영복 |
출생일 | 1941년 8월 23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의령 |
사망일 | 2016년 1월 15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
국적 | 대한민국 |
종교 | 무종교 |
웹사이트 | 신영복 교수 개인 홈페이지 |
활동 | |
장르 | 경제교육학 저술 |
활동 기간 | 1964년 ~ 2016년 |
소속 | 前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前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원장 |
직업 | 작가, 교수 |
학력 | |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
경력 | |
경력 |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동아시아문화공동체포럼 대표 |
2. 생애
신영복은 1959년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1963년 학사, 1965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를 겪으며 학생 운동에 참여하였다.
1965년 숙명여자대학교 강사를 거쳐 1966년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임용되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전향서를 쓰고 20년 20일 복역 후 가석방되었다.
1988년 수감 중 서신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경제학원론, 한국사상사, 정치경제학 등을 가르쳤다.
대전교도소 수감 시절 만당 성주표, 정향 조병호 등에게서 붓글씨를 배웠고, 노촌 이구영에게서 동양 고전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민중의 정서를 담은 '신영복체'를 개발하여 대중과 소통하였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피부암 투병 중 2016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자택에서 향년 76세로 별세하였다.[1]
2. 1. 출생과 성장
1959년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1]2. 2. 대학 시절과 학생 운동
1959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시절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를 겪으며 학생 운동에 참여하였다.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65년 같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 3. 초기 교육 활동
1965년 9월 숙명여자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과 강사로 초빙되었다.[1] 1966년 6월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으로 임용되었다.[1]2. 4. 통일혁명당 사건과 수감 생활
1968년 8월 20일, 대한민국 정부는 중앙정보부를 비롯해 육·해·공·해병대 작전참모부와 합동참모본부, 치안국이 동시에 참여한 대규모 검거 작전(‘독 안의 쥐 작전’, 훗날 Z 작전으로 불림)을 펼쳤다.[1] 이 작전으로 대한민국 측은 북한군 12명을 사살하고, 2명을 생포했으며, 공작선을 나포하는 성과를 올렸다.[1]4일 뒤인 1968년 8월 2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김종태가 전후 4차례에 걸쳐 북한의 김일성과 면담하고 '통일혁명당'을 결성하여 혁신정당으로 위장한 뒤 합법화하여 반정부 및 반미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 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라고 발표했다.[1] 중앙정보부는 김종태 등 3명을 포함해 관련자 158명을 검거하여 73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1]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북한에서 로동당에 입당한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이 집행되었고,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1] 그 외 이재학, 오병철, 신광현, 정종소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1] 박성준은 15년형, 김종태의 아내 임영숙은 1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기타 인물들은 5년 이하의 형을 선고받았다.[1] 당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은 전향서에 서명하고 20년 20일을 복역한 후 가석방되었다.[1]
2. 5. 출소 후 활동
1988년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묶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했다.[1]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1] 경제학원론, 한국사상사, 정치경제학, 중국고전강독, 교육사회학 등을 가르쳤다.[1]어릴 적 할아버지 슬하에서 붓글씨를 시작했고, 대전교도소 수감 당시 교정 당국에서 초빙했던 만당 성주표, 정향 조병호 선생으로부터 붓글씨를 배웠다.[1] 한학자인 노촌 이구영 선생과 같은 방에서 지내며 동양 고전을 익혔다.[1] 민중의 정서를 담은 글씨체를 모색하던 중 어머님의 모필에서 영향을 받아 연대체, 민체, 어깨동무체라고 불리는 '신영복체'를 개발했다.[1] 독창적이고 민중적인 서화, 강연, 저서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 노력하였다.[1]
2. 6. 말년과 죽음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1] 피부암으로 투병하다가 2016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자택에서 향년 76세로 별세하였다.[1]3. 저서
출판 연도 | 제목 | 비고 |
---|---|---|
1988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
1993 | 엽서 | |
1996 | 나무야 나무야 | |
1998 | 더불어 숲 1권 | |
1998 | 더불어 숲 2권 | |
2003 | 더불어숲 | |
2003 | 신영복의 엽서 | |
2004 |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 |
2007 | 처음처럼 | |
2008 | 청구회 추억 | |
2008 | For the First Time: 처음처럼(영문판) | |
2009 | 느티아래강의실 | |
2010 | 신영복-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 |
2012 | 변방을 찾아서 | |
2015 |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 |
2017 |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유고 | |
2017 | 손잡고 더불어, 신영복 유고 |
4. 학력
5. 경력
연도 | 경력 |
---|---|
1965년 9월 | 숙명여자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과 강사 |
1966년 6월 |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 |
1989년 3월 | 성공회신학대학 경제학과 강사 |
1998년 5월 ~ 2006년 6월 |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1999년 12월 | 성공회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 |
2002년 2월 | 동아시아문화공동체포럼 대표 |
2003년 3월 | 성공회대학교 민주사회교육원 원장 |
2004년 3월 |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원장 |
2006년 ~ 2014년 |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
6. 상훈
참조
[1]
뉴스
우리 시대의 지성 신영복 교수가 걸어 온 길
https://news.naver.c[...]
뉴스1
2016-01-16
[2]
뉴스
우리는 한 그루 나무일 뿐…故신영복이 남긴 위안과 지혜(종합2보)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6-01-16
[3]
뉴스
신영복 교수 '희귀 피부암' 75세 타계 '우리시대 대표 진보 지식인'
http://entertain.nav[...]
헤럴드경제
201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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