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토르 야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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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엑토르 야살데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로, 공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클루브 아틀레티코 피라냐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클루브 아틀레티코 인데펜디엔테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두 번 경험했다. 이후 스포르팅 CP로 이적하여 1973-74 시즌 프리메이라리가에서 46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뉴웰스 올드 보이스, 클루브 아틀레티코 우라칸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으로 10경기에 출전하여 197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1981년 은퇴 후 선수 에이전트로 활동하다가 1997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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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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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인데펜디엔테 소속의 야살데
본명엑토르 카시미로 야살데
로마자 표기Héctor Casimiro Yazalde
애칭Chirola
출생일1946년 5월 29일
출생지아베야네다
사망일1997년 6월 18일
사망지부에노스아이레스
176cm
포지션스트라이커
선수 경력
유소년 클럽해당 없음
클럽 경력1962–1966: 피라냐
1967–1971: 인데펜디엔테 (112경기 72골)
1971–1975: 스포르팅 CP (104경기 104골)
1975–1977: 마르세유 (44경기 23골)
1977–1981: 뉴얼스 올드 보이스 (120경기 54골)
1981: 우라칸 (2경기 0골)
총 출장 및 득점392경기 253골
국가대표 경력1970–1974: 아르헨티나 (10경기 2골)
감독 경력
감독 경력1986: 우라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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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야살데는 클루브 아틀레티코 인데펜디엔테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1967-68, 1969-70), 스포르팅 CP에서 프리메이라리가(1973-74)와 타사 드 포르투갈(1972-73),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쿠프 드 프랑스(1975-76) 우승을 차지했다. 스포르팅 CP 소속으로 1973-74 시즌 46골, 1974-75 시즌 30골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포르투갈 리그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다. 이후 뉴웰스 올드 보이스, 클루브 아틀레티코 우라칸을 거쳐 1981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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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르헨티나 시절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아베자네다에서 태어난 야살데는 우연한 계기로 축구를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수도에 있는 아마추어 클럽인 클루브 아틀레티코 피라냐에서 뛰고 있던 친구를 방문했는데, 훈련에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져 바로 계약을 맺게 되었다. 이후 클루브 아틀레티코 인데펜디엔테로 이적하여 팀이 두 번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2.2. 포르투갈과 프랑스 시절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아베자네다에서 태어난 야살데는 친구를 따라 클루브 아틀레티코 피라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클루브 아틀레티코 인데펜디엔테로 이적하여 팀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에 기여했다.

1971-72 시즌을 앞두고 스포르팅 CP와 계약을 맺은 야살데는 1973-74 시즌 프리메이라리가에서 29경기 만에 46골을 넣어 리스본 팀의 1974년 프리메이라리가 우승에 기여했다. 이는 포르투갈 국내 및 유럽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었다. 1974-75 시즌에는 30골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 득점자이자 유럽 2위 득점자가 되었다. 1973년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도 차지했다.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한 야살데는 토요타 자동차를 받았고, 이를 팔아 팀 동료들과 돈을 나누었다. 포르투갈에서의 선수 생활 이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했고, 쿠프 드 프랑스에서 1회 우승 (1975-76)을 하였다.

2.3. 아르헨티나 복귀와 은퇴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한 야살데는 토요타 자동차를 받았고, 이를 팔아 팀 동료들과 돈을 나누었다. 포르투갈에서의 선수 생활 이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뉴웰스 올드 보이스를 거쳐 CA 우라칸에서 1981년 현역에서 은퇴했고, 조국에서 선수 에이전트가 되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야살데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10경기에 출전했으며, 197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3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이 두 골은 모두 아이티를 상대로 기록했으며, 경기는 4-1로 승리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선발되기를 희망했으나,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 회장 훌리오 그론도나로부터 최종 명단에 포함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선발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야살데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4. 개인사

야살데는 8남매 중 여섯째로, 디에고 마라도나와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 그는 처음에는 의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가족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길거리에서 여러 물건을 팔았다. 그는 작은 동전(그 단수형이 그의 별명이 된 '치롤라'로 알려짐)으로 주머니를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야살데는 1973년 7월 16일 포르투갈 모델 겸 배우 마리아 두 카르모 데 데우스와 결혼했다. 그가 스페인어로 '카르멘'이라고 불렀던 마리아 두 카르모는 '브릿 니콜스'라는 이름으로 유럽 컬트 영화에 잠시 출연했지만, 야살데와 결혼 후에는 이 시기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마리아 두 카르모는 야살데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정착했지만, 두 사람은 14년 후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채 헤어졌다. 그들은 아들 곤살루를 두었다.

5. 사망

야살데는 1997년 6월 18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혈과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51세였다.

6. 수상 내역

엑토르 야살데는 CA 인데펜디엔테, 스포르팅 CP,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여러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개인적으로는 아르헨티나 올해의 축구 선수, 프리메이라리가 득점왕, 유러피언 골든슈 등을 수상했다.

6.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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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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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연도
아르헨티나 올해의 축구 선수1970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1973–74, 1974-75
유러피언 골든슈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