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파호
1. 개요
여파호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수형도위와 운중태수를 역임했다. 소제가 즉위한 시원 원년(기원전 86년)에 수형도위에 임명되어 익주군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병사를 모집하고 반란군을 격파했다. 시원 4년(기원전 83년)에 익주에서 다시 반란이 일어나자 진압에 나섰으나, 익주 태수가 살해되고 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군정의 왕평과 대홍려 전광명이 증원으로 파견되어 반란을 진압했고, 시원 6년(기원전 81년)에는 운중태수로 전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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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전한의 재상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전한의 재상 -
병천
병천은 전한 초 유방을 도와 진나라 평정과 항우 격파에 공을 세워 고원후에 봉해졌고, 중위를 지낸 인물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소제 즉위 후, 여파호는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여러 요직을 거쳤다.
| 기간 | 직책 | 주요 사건 |
|---|---|---|
| 시원 원년(기원전 86년) ~ 시원 6년(기원전 81년) | 수형도위 | 익주 반란 진압 |
| 시원 6년(기원전 81년) 이후 | 운중태수 |
시원 6년(기원전 81년), 수형도위 임기를 마치고 운중태수로 전임되었다.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2.1. 수형도위 임명과 익주 반란 진압 (기원전 86년 ~ 기원전 83년)
시원 원년(기원전 86년), 여파호는 수형도위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익주에서 염두(廉頭)와 고증(姑繒)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한나라 관리들을 살해했다. 장가의 담지(談指)·동반(同竝) 등 24개 현에서도 이에 동조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인원이 3만여 명에 달했다. 여파호는 촉군을 떠나 건위에서 만여 명의 병력을 모아 장가를 공격하여 크게 물리쳤다.
시원 4년(기원전 83년), 고증·엽유(葉榆)에서 다시 반란이 일어났다. 여파호는 군사를 이끌고 진압에 나섰으나, 적극적으로 진군하지는 않았다. 그 사이 반란군은 익주태수를 죽이고 기세를 올렸고, 여파호와 맞서 싸웠다. 이 전투에서 여파호의 군사 4천여 명이 물에 빠져 죽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2.2. 운중태수 좌천 (기원전 81년)
시원 6년(기원전 81년), 여파호는 수형도위 임기를 마치고 운중태수로 전임되었다.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3. 출전
시원 원년(기원전 86년), 수형도위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익주의 염두(廉頭)와 고증(姑繒)의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관리들을 죽이고, 장가의 담지(談指)·동반(同竝) 등 24개 현에서 동조하니, 그 인원이 3만여 명이었다. 여파호는 촉군을 떠나 건위에서 만여 명을 모아 장가를 쳐서 크게 물리쳤다.
시원 4년(기원전 83년), 고증·엽유(葉榆)에서 다시 반란을 일으키니 여파호는 군사를 이끌고 진압에 나섰으나 진군하지 않았다. 오랑캐들은 익주태수를 죽이고 기세가 등등하여 여파호와 싸웠는데, 싸우다 물에 빠져 죽은 이가 4천여 명이었다.
시원 6년(기원전 81년), 운중태수로 좌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