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중군
1. 개요
운중군은 전한 시대에 대나라에서 분할되어 설치된 군으로,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시 일대에 위치했다. 흉노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무제의 흉노 공격 시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다. 신나라 시기에는 수항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으며, 후한 시대에는 선비족의 공격으로 쇠퇴하여 신흥군에 통합되었다. 이후 북위 시대에도 존속하다가 수나라에 의해 폐지되었다. 당나라 때 산서성 대동시 일대에 운중군이 설치되기도 했다.
| 국가 | 중국 |
|---|---|
| 시대 | 전국시대 ~ 당나라 |
| 폐지 시기 | 당나라 |
| 전국시대 | 윈중 군 |
|---|---|
| 진나라 | 윈중 군 |
| 서한 | 윈중 군 |
| 신나라 | 쇼우 강 군 (Shòu Jiàng Jùn, 受降郡) |
| 동한 | 윈중 군 |
| 삼국시대 | 폐지 |
| 서진 | 폐지 |
| 동진 | 폐지 |
| 남북조시대 | 윈중 군 |
| 수나라 | 폐지 |
| 당나라 | 윈중 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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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의 군 -
서하군
서하군은 전한 무제가 상군 북부를 분할하여 설치한 군으로, 삭방자사부에 소속되어 현재의 어얼둬쓰 시, 뤼량 시, 위린 시 일대에 걸쳐 있었으나, 왕망의 신나라 때 잠시 귀신군으로 개칭되었고, 후한 시대, 전조, 북위, 북주, 수나라를 거치며 행정 구역의 변화를 겪다가 당나라 때 호주, 분주로 개칭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내몽골의 군 -
정양군 (행정 구역)
정양군은 전한 시대에 흉노의 공격으로부터 대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되어 병주자사부에 속했으며, 왕망 시기에 득강군으로 개칭되었다가 후한 시대에는 신흥군으로 개편되었고, 수나라 시기에 흔주가 정양군으로 개칭되기도 했지만 당나라 무덕 4년에 폐지되었다. -
진나라의 군 -
태산군
태산군은 중국의 행정 구역으로, 진나라의 제북군을 전신으로 하여 전한 시대에 설치되어 예주에 속했으며, 후한, 서진, 남조 송, 북위 시대를 거치며 관할 현의 변화와 명칭 변경을 겪다가 북제 시대에 동평군으로 개칭되었다. -
진나라의 군 -
회계군
회계군은 중국 고대 월나라의 중요 지역으로, 우와 관련이 깊으며 진시황에 의해 설치되어 여러 왕조를 거치며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번영을 누렸던 행정 구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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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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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2. 역사
운중군은 전한 초기에 대나라의 지군이었다. 기원전 196년, 고제는 흉노 등 북방 민족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나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운중군을 분할하여 한나라 직할 군으로 삼았다. 분리된 운중군 동부는 정양군이 되어 여전히 대나라에 속했다. 이후 전한 멸망까지 행정 구역의 변동은 없었다.
병주자사부에 속했으며,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38,303호, 173,270명이 있었다. 치소는 운중현이었다. 원연·수화 연간(기원전 8년 무렵)에는 총 11개의 현을 가지고 있었다.
왕망은 군의 이름을 수항(受降)으로 고치고, 일부 현의 이름을 변경했다.
| 전한 | 신 |
|---|---|
| 운중 | 원복(遠服) |
| 함양 | 분무(賁武) |
| 도림 | 정륙(楨陸) |
| 사릉 | 희은(希恩) |
| 무천 | 순천(順泉) |
| 양수 | 상득(常得) |
신나라 시기에는 11현, 5,351호, 26,430명의 주민을 통치했다. 후한 시기부터 선비족의 공격으로 인구가 급감했고, 215년 정양군, 삭방군, 오원군과 함께 현으로 격하되었다. 치소는 신저우 시 위안핑 시 서부로 이전되었고, 신흥군으로 통폐합되면서 옛 운중군 지역은 버려졌다. 버려진 운중군 지역은 탁발선비가 차지했다.
| 현명 | 한자 | 대략적 위치 | 비고 |
|---|---|---|---|
| 운중현 | 雲中縣 | 변화없음 | |
| 함양현 | 咸陽縣 | ||
| 기릉현 | 箕陵縣 | 호흐호트 시 칭수이허 현 북서 황하강변 | |
| 사릉현 | 沙陵縣 | 변화없음 | |
| 사남현 | 沙南縣 | ||
| 북여현 | 北輿縣 | ||
| 무천현 | 武泉縣 | ||
| 원양현 | 原陽縣 | ||
| 정양현 | 定襄縣 | 호흐호트시 남동 | 정양군에서 이관되었다. |
| 성락현 | 成樂縣 | 호흐호트 시 호린게르 현 북서 | 정양군에서 이관되었다. 탁발선비가 이곳을 초기 근거지로 삼았다. |
| 무진현 | 武進縣 | 호흐호트시 호린게르 현 북동 | 정양군에서 이관되었다. |
탁발선비가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삼은 후 큰 변동 없이 유지되어 북위의 영역이 되었다. 처음에는 삭주에 속했다가 후에 운주(雲州)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연민현(延民縣)과 운양현(雲陽縣)의 2현을 두었고, 성락 지역은 성락군으로 분리되었다.
북위 멸망 후 동위, 북제의 지배를 받다가 북제가 멸망하면서 수나라의 전신인 북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수나라는 운중군을 폐지했다.
운중군은 전국 시대 조의 무령왕 (재위 기원전 326년 - 기원전 298년)이 임호와 누번을 격파하고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안문군, 대군과 함께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진나라 때 운중현에 군 치소가 설치되었다.
전한 시대에 운중군은 북쪽의 흉노와 접하는 최전선이었다. 고조 (유방) 시대에는 한나라에서 흉노로 투항한 조리·왕황이 빈번하게 안문·대·운중을 침략했다. 문제 6년(기원전 174년)에는 흉노의 3만 기병이 운중에 침입했다. 문제 14년(기원전 166년) 이후, 연이은 흉노의 침공으로 운중군은 살해와 약탈로 1만 명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후원 4년(기원전 160년)경에도 흉노의 3만 기병이 침입했다.
무제가 반격에 나서자, 운중군은 한나라의 출격 거점 중 하나가 되었다. 원광 6년(기원전 129년)의 첫 대공세에서는, 공손하가 운중군에서 출격했다. 원삭 2년(기원전 127년)에는 대장군위청이 운중에서 진격하여 전과를 올렸다. 얼마 동안 흉노의 침입은 다른 군으로 빗겨갔지만, 태초 3년(기원전 102년)에는 다시 흉노가 운중을 침략했다. 본시 3년(기원전 73년), 선제의 치세에서, 운중군에서 전장군의 한증이 3만여 기병을 이끌고 출격했다.
원봉 5년(기원전 106년)에 전국에 주가 설치되었을 때, 운중군은 병주에 속했다. 운중·함양·도림·정릉·독화·사릉·원양·사남·북여·무천·양수의 11현을 관할했다. 『한서』에 따르면, 전한 말기에 3만 8303호, 17만 3270명이 있었다.
왕망 시대에는 수강군으로 개칭되었다. 후한이 건국되자, 운중군의 명칭으로 돌아갔다. 후한 시대에 운중군은 운중·함양·기릉·사릉·사남·북여·무천·원양·정양·성락·무진의 11현을 관할했다.
215년 (건안 20년), 조조가 운중·정양·오원·삭방의 4군을 현으로 고치고, 4현을 관할하는 신흥군을 세웠다.
진의 혜제 시대에 신흥군은 진창군으로 개칭되었다. 304년 (영흥 원년), 유연이 한왕을 칭하고 자립하자, 병주 전역을 한(전조)이 장악했다. 유요가 도읍을 장안으로 옮기자, 평양 이동 지역은 석륵에게 장악되었고, 삭방에 삭주가 설치되었다.
북위 시대에 다시 운중군이 설치되었다. 삭주에 속했고, 후에 운주에 속하여, 연민·운양의 2현을 관할했다.
수 시대에는 마읍군운내현이 설치되었다. 621년 (무덕 4년), 당나라가 유무주를 평정했다. 623년 (무덕 6년), 운내현 항안진에 북항주가 설치되었고, 운내현은 운중현으로 개칭되었다. 624년 (무덕 7년), 북항주는 폐지되었다. 640년 (정관 14년), 삭주의 북쪽 정양성에서 운주와 정양현이 이전되었다. 682년 (영순 원년), 운주는 돌궐에게 공격당해 폐지되었고, 그 지역의 민중은 삭주로 이전되었다. 732년 (개원 20년), 다시 운주가 설치되었다. 742년 (천보 원년), 운주는 운중군으로 개칭되었다. 이 운중군은 현재의 산서성대동시에 해당한다. 758년 (건원 원년), 운중군은 운주로 개칭되었고, 운중군의 호칭은 사라졌다.
3. 행정 구역
전한 초기에 운중군은 전한의 제후왕국인 대나라의 지군이었다.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고제는 흉노 등 북방 민족들에게 시달리는 대나라의 방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운중군을 분할하여 한나라의 직할 군으로 삼았다. 분리된 운중군 동부는 정양군이 되어 여전히 대나라에 속했다. 이후 전한 멸망까지 행정구역의 변동은 없었다.
병주자사부에 속했으며,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38,303호, 173,270명이 있었다. 치소는 운중현이었다. 원연·수화 연간(기원전 8년 무렵)의 현황으로 총 11현을 관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