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군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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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덕군은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설되어 1963년 청송군 선거구와 통합되어 폐지된 대한민국의 옛 선거구이다. 역대 국회의원으로는 오택열, 한국원, 김원규, 김영수가 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택열이 당선되었고, 1950년 선거에서는 한국원이 당선되었다. 1954년과 1958년에는 김원규가, 1960년에는 김영수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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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 (선거구) - [선거구 정보]에 관한 문서 | |
---|---|
선거구 정보 | |
이름 | 영덕군 |
의회 | 국회 |
큰 지도 | 경상북도 |
연도 | 1948년 |
폐지 | 1963년 |
유형 | 국회 |
이후 선거구 | 청송군·영덕군 |
의원 수 | 1인 |
2. 역사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영덕군 전 지역을 관할하는 선거구로 신설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청송군 선거구와 통합되어 청송군·영덕군 선거구가 되면서 폐지되었다.
3. 역대 국회의원
3. 1. 제1대 (1948년)
오택열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은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영덕군 선거구에 단독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익 단체였다.
3. 2. 제2대 (1950년)
1950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한국원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6.25 전쟁 직전에 치러졌다.
후보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한국원 | 무소속 | 7,184 | 20.67 |
김영수 | 무소속 | 6,155 | 17.71 |
박치호 | 무소속 | 5,813 | 16.72 |
김중한 | 민주국민당1949 | 4,412 | 12.69 |
오택열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4,075 | 11.72 |
박상호 | 민주국민당1949 | 2,312 | 6.65 |
김응조 | 무소속 | 2,307 | 6.63 |
김구연 | 제일동포거류민단 | 1,489 | 4.28 |
서호 | 무소속 | 999 | 2.87 |
합계 | 34,746 |
3. 3. 제3대 (1954년) ~ 제4대 (1958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김원규 후보가 53.41%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당선되었다. 다른 후보로는 무소속 신삼선(15.06%), 무소속 김정한(11.29%), 무소속 남건모(10.37%), 무소속 김영수(5.33%), 무소속 김무환(4.51%) 후보가 출마했다.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김원규 후보가 단독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 여당 이었다.3. 4. 제5대 (1960년)
4.19 혁명 이후 치러진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수가 민주당 소속으로 경상북도 영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는 24,467표(57.61%)를 득표하여, 무소속 신삼휴 후보(9,498표, 22.36%)와 무소속 김병윤 후보(8,499표, 20.01%)를 제쳤다.4. 역대 선거 결과
4. 1. 제1대 (1948년)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택열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경상북도 영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4. 2. 제2대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한국원 후보가 20.6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김영수, 박치호, 김중한, 오택열 등 다른 후보들은 모두 낙선하였다.4. 3. 제3대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김원규 후보가 19,824표(53.41%)를 얻어 당선되었다. 무소속 신삼선 후보는 5,589표(15.06%), 무소속 김정한 후보는 4,193표(11.29%), 무소속 남건모 후보는 3,850표(10.37%), 무소속 김영수 후보는 1,980표(5.33%), 무소속 김무환 후보는 1,674표(4.51%)를 얻었다.4. 4. 제4대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김원규 후보가 무투표 당선되었다.4. 5. 제5대 (1960년)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수 후보가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김영수 후보는 24,467표(57.61%)를 득표하였다. 신삼휴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9,498표(22.36%)를 얻었고, 김병윤 후보 역시 무소속으로 8,499표(20.01%)를 득표하였다. 총 투표수는 42,464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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