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 (전한)
1. 개요
오공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하남태수를 거쳐 정위까지 올랐다. 가의를 발탁하여 문제에게 천거하는 등 정치 활동을 했으며, 정치 개혁과 민본주의 사상을 주장했다. 또한 과진론, 조굴원부, 복조부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당대와 후대에 걸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공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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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1. 초기 생애와 등용
가의는 학문으로 명성을 떨쳤고, 하남수 오공은 그를 불러들여 문하에 두고 매우 총애하였다.
문제 즉위 초, 하남수 오공은 치적이 으뜸이라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오공이 이사와 같은 고향 출신이고 동문수학한 사이임을 알고 그를 정위에 임명하였다. 정위 오공은 가의가 어린 나이에 제자백가의 학술에 통달하였다며 문제에게 천거하였고, 문제는 가의를 박사(博士)로 발탁하였다.
3.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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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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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가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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