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쿠니
1. 개요
오다 노부쿠니는 고가 하타모토 오다 노부히데의 넷째 아들로, 오다 노부토미의 양자가 되어 가독을 상속받았다. 번주가 된 후 요시다 겐바를 등용하여 번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겐바가 연루된 메이와 사건으로 인해 칩거 명령을 받고 동생에게 가독을 물려주었으며, 데와국 다카하타 번으로 징벌적 이봉되었다. 39세에 사망했다.
| 씨족 | 오다 씨 (노부나가 혈족)→오다 씨 (노부나가 혈족) 노부카쓰 계 노부요시 류) |
|---|---|
| 묘소 | 도쿄도분쿄구무코가오카고린지 |
| 계명 | 정옹원전묵암요연대거사 |
| 시대 | 에도 시대 |
|---|---|
| 출생 | 엔쿄 2년 (1745년) |
| 사망 | 덴메이 3년 7월 8일 (1783년8월 5일) |
| 개명 | 고햐쿠하치 (유명) → 노부쿠니 |
| 관위 | 종5위 하・미노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하루 |
| 번 | 고즈케오바타 번 번주 |
| 부모 |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 어머니: 불명 양아버지: 오다 노부토미 |
|---|---|
| 형제자매 | 노부유키, 노부타다, 노부쿠니, 노부우키, 마쓰다이라 친아키라 실, 사카이 마사카쓰 실, 오쿠보 다다모토 실 외 5남 5녀 양형제자매: 나가이 나오카타 실 |
| 배우자 | 정실: 오다 노부토미 양녀・고히메 |
| 자녀 | 노부야스, 미쓰히메 양자: 노부우키 |
| 직책 | 오다 씨 단조노조 분가 노부카쓰 계 노부요시 류 당주 |
|---|---|
| 임기 | 1764년 ~ 1767년 |
| 전임자 | 오다 노부토미 |
| 후임자 | 오다 노부치카 |
| 직책 | 오바타 번 번주 |
|---|---|
| 임기 | 1764년 ~ 1767년 |
| 전임자 | 오다 노부토미 |
| 후임자 | 마쓰다이라 다다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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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타번주 -
마쓰다이라 다다쓰네 (1720년)
마쓰다이라 다다쓰네는 고오리 번의 2대 번주 마쓰다이라 다다아키의 차남으로 태어나 형의 요절로 적자가 되었고, 아버지의 사망으로 번주가 된 후 주자반, 지샤 봉행, 와카도시요리를 역임했으며, 오바타 번으로 이봉된 이듬해에 사망했다. -
오바타번주 -
나가이 나오카쓰
나가이 나오카쓰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겨 주요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도요토미 성을 받기도 했고, 그의 자손들은 작가, 소설가, 광대 등으로 이어졌다. -
1783년 사망 -
장 르 롱 달랑베르
장 르 롱 달랑베르는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이자 음악 이론가로서, 달랑베르의 원리를 제시하여 역학 발전에 기여하고 드니 디드로와 함께 《백과전서》를 편찬하며 계몽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1783년 사망 -
홍대용
홍대용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천문학자로 북학파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하며 서양 천문학 지식을 접하고 지구 자전설과 우주 무한론을 주장하여 학계에 영향을 미쳤고, 사헌부 감찰과 영주군수를 역임하며 실학적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했다. -
쇼바타 오다씨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쇼바타 오다씨 -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전국 시대의 무장으로, 오와리 출신에서 시작하여 일본 통일을 목표로 센고쿠 시대를 지배하며 막강한 세력을 구축했으나 혼노지의 변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2. 생애
고가하타모토였던 오다 노부히데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메이와 원년(1764년) 오다 노부토미의 마지막 양자가 되어 가독을 상속받았다.
노부쿠니는 요시다 겐바를 가로로 등용하여 번정 개혁과 재정 재건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메이와 사건으로 인해 막부의 처분을 받아 칩거하고, 동생에게 가독을 상속해야 했다. 덴메이 3년(1783년) 7월 8일,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가독 상속
메이와 원년(1764년) 7월 29일, 선대 번주 오다 노부토미의 마지막 양자로서 가독을 상속받고, 노부토미의 양녀인 고히메를 정실로 맞이했다. 같은 해 8월 15일, 10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하루에게 오메미를 하고, 11월 13일 종5위하 미노노카미에 서임되었다. 메이와 2년(1765년) 6월 15일, 번주로서 처음으로 입국을 허가받았다.
2.2. 번정 개혁과 메이와 사건
메이와 원년(1764년) 7월 29일, 선대 번주 오다 노부토미의 마지막 양자로서 가독을 상속하고, 노부토미의 양녀인 고히메를 정실로 맞이했다. 같은 해 8월 15일, 10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하루에게 오메미를 하고, 11월 13일 종5위하 미노노카미에 서임되었다. 메이와 2년(1765년) 6월 15일, 번주로서 처음으로 입국을 허가받았다.
번주가 된 노부쿠니는 요시다 겐바를 가로로 등용하여 번정 개혁과 재정 재건을 목표로 했다. 겐바는 막정에 비판적이었던 학자 야마가타 다이니의 문하생이었고, 그 외의 번사에게도 문하생이 많았지만, 메이와 3년(1766년), 다이니가 에도 성의 공방에 대해 병학을 논한 것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고발당해 다음 해 처형되었다(메이와 사건). 겐바와 대립 관계에 있던 요인 마쓰바라 군다유 등은 "겐바가 다이니와 모반의 의혹을 꾸미고 있다"라고 노부쿠니에게 참소하여 실각을 꾀했다. 노부쿠니는 막부에 상담하지 않고 번의 독단으로 요시다 등을 처분하여 사건의 수습을 도모했다. 그러나 막부는 노부쿠니 및 그 가로들의 대응이 부적절하다고 하여 처분을 결정했다. 메이와 4년(1767년) 8월 21일, 막부는 노부쿠니에게 칩거를 명하고, 친동생 노부우키에게 가독을 상속하게 했다. 동시에 국주격의 접대를 폐지하고, 데와국다카하타 번으로 징벌적인 이봉을 명했다. 가치바시몬 내의 에도 상옥도 몰수되었다. 가로인 츠다 요모, 요인의 츠다 쇼조, 도시요리의 츠게 겐시로는 중추방, 마쓰바라 군다유 등은 추방되었다.
2.3. 징벌적 이봉과 죽음
메이와 원년(1764년) 7월 29일, 선대 번주 오다 노부토미의 마지막 양자로서 가독을 상속받고, 노부토미의 양녀인 고히메를 정실로 맞이했다. 같은 해 8월 15일, 10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하루에게 오메미를 하고, 11월 13일 종5위하 미노노카미에 서임되었다. 메이와 2년(1765년) 6월 15일, 번주로서 처음으로 입국을 허가받았다.
노부쿠니는 번주가 된 후 요시다 겐바를 가로로 등용하여 번정 개혁과 재정 재건을 목표로 했다. 겐바는 막정에 비판적이었던 학자 야마가타 다이니의 문하생이었고, 다른 번사 중에도 그의 문하생이 많았다. 그러나 메이와 3년(1766년), 다이니가 에도 성의 공방에 대해 병학을 논한 것을 두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고발당해 다음 해 처형되었다(메이와 사건). 겐바와 대립 관계에 있던 요인 마쓰바라 군다유 등은 "겐바가 다이니와 모반을 꾀하고 있다"라고 노부쿠니에게 참소하여 실각을 꾀했다. 노부쿠니는 막부에 상담하지 않고 번의 독단으로 요시다 등을 처분하여 사건의 수습을 도모했다.
그러나 막부는 노부쿠니 및 그 가로들의 대응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처분을 결정했다. 메이와 4년(1767년) 8월 21일, 막부는 노부쿠니에게 칩거를 명하고, 친동생 노부우키에게 가독을 상속하게 했다. 동시에 국주격의 접대를 폐지하고, 데와국다카하타 번으로 징벌적인 이봉을 명했다. 가치바시몬 내의 에도 상옥도 몰수되었다. 가로인 츠다 요모, 요인 츠다 쇼조, 도시요리 츠게 겐시로는 중추방, 마쓰바라 군다유 등은 추방되었다.
덴메이 3년(1783년) 7월 8일, 향년 39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