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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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종렬은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로, 1938년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사회운동가 오정근이며, 오종렬은 전남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전국교사협의회 출범에 참여하여 교육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장을 역임했다. 정치 활동으로는 광주광역시 의원을 지냈으며,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의장 등을 역임하며 시민운동, 통일운동, 반미 운동 등 다양한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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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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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오종렬 |
출생일 | 1938년 11월 28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전라남도 광산군 |
사망일 | 2019년 12월 7일 |
사망지 | 대한민국 광주 |
거주지 | 대한민국 광주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시민사회운동가 사회기관단체인 교육자 |
정당 | 무소속 |
학력 | 전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육학 학사) |
자녀 | 4남 (그 중 장남 오정규) |
부모 | 오정근 (부) |
웹사이트 | 오종렬의 대장간 |
정치 경력 | |
의원 선수 | 1 |
2. 생애
오종렬은 1938년 11월 28일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사회운동가 오정근(吳正根)의 아들로 태어났다.[2] 전남대학교 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고 육군제2훈련소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교원으로 일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광주지부장, 광주시 의회 의원 등을 역임했다.[1] 1989년 전교조 관련자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1]
1991년 광주시 의회 의원에 당선되었고,[3][4]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의장 등으로 활동하며 강연, 칼럼 기고 활동을 했다. 2002년 효순 미선 살인사건 당시 여중생 범대위를 지도하였고, 노무현 탄핵 때는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이끌었다.[5]
참여 정부의 농민운동 탄압에 맞서 전용철농민살해범국민대책위(전용철범대위),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2006년 한미 FTA 반대, 2008년 광우병 수입소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하였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시민운동, 통일운동 과정에서 보수단체로부터 비난과 협박을 받기도 했다.[5]
2. 1. 생애 초반
오종렬은 1938년 11월 28일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사회운동가 오정근(吳正根)의 아들로 태어났다.[2] 아버지 오정근은 도쿄 전기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동맹에서 활동하다가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와 나주인민위원회에서 활동했으나, 미군정에 의해 광주형무소로 수감되었다. 오종렬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965년 광주사범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 (교육학 학사)를 졸업하고, 육군제2훈련소 경비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교원에 임용되었다.2. 1. 1. 출생과 유년기
오종렬은 1938년 11월 28일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사회운동가 오정근(吳正根)의 아들로 태어났다.[2] 아버지 오정근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일본 유학을 다녀와 도쿄 전기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그 뒤 여운형의 건국동맹에서 활동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여운형, 박헌영 등이 조직한 건국준비위원회와 나주인민위원회 농민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45년 10월 맥아더와 존 하지의 점령정책에 따라 미군정에 의해 나주에서 광주형무소로 끌려갔다. 그의 외삼촌 역시 광산군 인민위원장으로 공산당 활동을 하다 미군정에 의해 수감되었다.이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업에 힘써 1965년 광주사범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 (교육학 학사)를 졸업했다.
2. 1. 2. 학창 시절과 교육 활동
육군제2훈련소 경비대대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이후 교원에 임용돼 고흥에서 초등 및 중등 교원 자격을 취득하고 중등교사로 부임하였다. 금산초등학교, 광주 동명여자중학교, 전남대학교 사대부속고등학교 교사 등을 거쳐 전국교사협의회 대의원대회 의장에 선출되었다.[1]전남고등학교, 전남여고 교사로 재직하였다.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전교조의 전신) 출범에 참여하였고,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이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였으나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 광주시 의회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1]
1989년 전교조 관련자로 구속되었다가 수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1]
2. 2. 정치 활동과 사회 운동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의장 등으로 활동하며 강연, 칼럼 기고 활동을 했다. 2002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발생한 효순 미선 살인사건 당시 여중생 범대위를 지도하였고, 노무현 탄핵 때는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이끌었다.[5]참여 정부의 농민운동 탄압에 맞서 전용철농민살해범국민대책위(전용철범대위),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2004년 민중연대 상임대표, 2005년 반(反)부시국민행동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2006년 말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했고, 2008년 5월 광우병 수입소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하였다.
시민운동, 통일운동 등을 하며 보수단체로부터 비난과 표적이 되기도 했으며 협박과 인신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5]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2. 2. 1. 광주광역시의회 의원 활동
1991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제1대 광주광역시 의회 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시의원 재직 중 교육 분야 개혁안을 발의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3][4]2. 2. 2. 민주화, 통일 운동 참여
1994년 6월 10일 범민련 광주시, 전남지역본부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통일운동 관련 팜플렛을 배부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3][4] 이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의장 등으로 활동하며 강연, 칼럼 기고 활동을 했다. 2002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주한미군 탱크에 여중생 2명이 사망한 효순 미선 살인사건 때 여중생 범대위를 지도했으며, 노무현 탄핵 때는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이끌었다.2004년 민중연대 상임대표[5], 2005년 반(反)부시국민행동 상임대표를 지냈고, 참여 정부에서 농민운동을 탄압하자 전용철농민살해범국민대책위(전용철범대위),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2006년 말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강행하려 하자, 한미 FTA 반대 활동을 했고, 2008년 5월 광우병 수입소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하였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등을 지냈으며, 시민운동, 통일운동 과정에서 보수단체로부터 비난과 표적의 대상이 되어 협박과 인신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2. 2. 3. 반미 운동과 촛불집회 참여
2002년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주한미군 탱크에 의해 여중생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해 11월 효순 미선 살인사건 여중생 범대위를 지도하였다.[5] 노무현 탄핵 때는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이끌었다.2004년 민중연대 상임대표[5], 2005년 반(反)부시국민행동 상임대표를 거쳐 참여 정부에서 농민운동을 탄압하자 전용철농민살해범국민대책위(전용철범대위),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활약하였다. 2006년 말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를 강행하려 하자, 한미 FTA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그 뒤 2008년 5월 광우병 수입소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하였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3. 평가
오종렬에 대한 평가는 진보와 보수 진영 간에 극명하게 엇갈린다.
진보 진영에서는 오종렬을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 사회 운동의 원로로서 존경한다. 그의 헌신과 희생을 높이 평가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한다. 특히, 5·18 민주화 운동,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결성 등 굵직한 사건들에서 그가 보여준 지도력과 헌신은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오종렬을 과격한 좌파 인사로 비판한다. 그의 활동이 사회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다고 주장하며, 특히 전국연합 상임의장 시절 그의 활동을 문제 삼는다. 그의 통일 운동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그의 활동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참조
[1]
웹사이트
‘민주·통일운동 원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별세
https://www.hani.co.[...]
2023-07-14
[2]
문서
[3]
뉴스
경향신문
1994-12-31
[4]
뉴스
동아일보
1994-12-31
[5]
뉴스
소설가 이인휘씨, 국회의원 전원에게 신작소설 전달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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