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만도코로
1. 개요
와카만도코로는 이케다 쓰네오키의 딸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미요시 노부요시(도요토미 히데쓰구)에게 시집갔다. 1593년에는 히데요시로부터 히데쓰구, 그의 어머니 닛슈니와 함께 고려 대구를 받았으며, 1594년에는 히데쓰구의 딸 야오히메의 쾌유를 기원하는 서장을 보냈다. 사망 시점에 대한 기록은 불분명하나, 히데쓰구 사건 이전에 사망했다는 설과 구명되어 친정으로 돌아갔다는 설이 있으며, 1601년에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 유형 | 기구 |
|---|---|
| 위치 | 무로마치 막부 |
| 역할 | 쇼군의 가족, 특히 미다이도코로의 업무를 관장하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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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사망 -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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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사망 -
모리 히데카네
모리 히데카네는 모리 모토나리의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인물이다. -
16세기 출생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16세기 출생 -
빌럼 바런츠
빌럼 바런츠는 북동 항로를 탐험하다가 노바야제믈랴에서 조난당해 사망했지만, 그의 탐험은 북극 지역에 대한 유럽인들의 지식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여자 -
호소카와 가라샤
호소카와 가라샤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로 태어나 호소카와 다다오키와 결혼하였으며, 혼노지의 변 이후 남편의 보호 아래 신앙을 지키다 이시다 미쓰나리의 인질이 되려 하자 가신에게 죽임을 당했다.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여자 -
요도도노
2. 생애
일반적으로 와카만도코로는 아버지가 섭정ㆍ관백 직을 겸하고, 자신 또한 공경의 정실에게 사용되는 칭호이다.
여기서는 도요토미 히데쓰구의 정실이었던 이케다 쓰네오키의 딸에 대해 기술한다.
2.1. 혼노지의 변 이후
혼노지의 변 이후, 아버지 이케다 쓰네오키는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둘째 아들 이케다 데루마사를 히데요시의 양자로 보내고, 딸(와카만도코로)을 미요시 노부요시(후의 도요토미 히데쓰구)에게 시집보내기로 약속했다.
와카만도코로가 히데쓰구에게 시집갈 때, 미코시후쿠(御輿副)를 이케다 가신 코사이 마타이치가 맡았다고 한다. 히데쓰구와의 사이에서 자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분로쿠 2년 (1593년) 12월 16일, 히데요시로부터 히데쓰구, 히데쓰구의 어머니 닛슈니와 와카만도코로에게 고려 대구가 보내졌다.
분로쿠 3년 (1594년), 히데쓰구의 딸인 야오히메(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약혼자였다고 한다)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는 서장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사망 연도는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야오히메의 기일이 7월 13일이라는 사료가 있어, 히데쓰구의 할복 사건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와카만도코로도 히데쓰구 사건 이전에 사망했다는 사료도 있지만, 구명되어 친정으로 돌려보내졌다는 사료가 더 일찍 성립되어 신빙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게이초 6년 (1601년) 8월 20일에 사망했다.
2.2. 히데쓰구에게 시집가다
혼노지의 변 이후, 아버지 이케다 쓰네오키는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둘째 아들 이케다 테루마사를 히데요시의 양자로 삼고, 딸(와카만도코로)을 미요시 노부요시(후의 도요토미 히데쓰구)에게 시집보낼 것을 약속했다. 와카만도코로가 히데쓰구에게 시집갈 때, 이케다 가신 코사이 마타이치가 가마 부관을 맡았다고 한다. 히데쓰구와의 사이에서 자녀는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