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염계
1. 개요
왕염계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고제 5년 낭중주하령을 시작으로 위장군, 정위 등을 역임했다. 진희의 반란을 진압하고 팽월을 숙청하는 데 관여했으며, 고후 4년에는 양나라 승상으로서 산도후에 봉해졌다. 문제 3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정(貞)이고, 작위는 아들 왕중황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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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77년 사망 -
관영 (전한)
관영은 전한 시대의 무장으로, 유방을 섬겨 진나라와 항우를 격파하고, 한나라 건국 후 진희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여씨의 난 때 유씨 가문을 지지하여 문제의 즉위에 기여한 인물이다. -
기원전 177년 사망 -
심이기
심이기는 전한 초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 유태공을 보좌하다 고황후 여치의 측근으로 우승상까지 올랐으나 여후 사후 면직되었고, 회남왕 유장에게 살해당한 후 유후로 시호를 받았으나 아들의 모반으로 후국이 단절되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고제 5년(기원전 202년)에 낭중주하령(郞中柱下令)이 되었다.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가을, 진희가 대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위장군이 되어 진희를 쳤다.
이때 양나라 왕 팽월은 몸소 종군하지 않아 고제의 미움을 샀고, 후에 반란을 일으켰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정위 왕염계는 팽월을 죽일 것을 주장하였고, 고제는 팽월의 삼족을 멸하고 봉국을 폐지하였다.
고후 4년(기원전 184년), 양나라 승상이었던 왕염계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산도후(山都侯)에 봉해졌다. 문제 3년(기원전 177년)에 죽으니 시호를 정(貞)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왕중황이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임명
고제 5년, 낭중주하령(郞中柱下令)이 되었다.
고제 11년 가을, 진희가 대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왕염계는 위장군이 되어 진희를 쳤다.
이때 양나라 왕 팽월은 몸소 종군하지 않아 고제의 미움을 샀고, 후에 반란을 일으켰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정위였던 왕염계는 팽월을 죽일 것을 주장하였고, 고제는 팽월의 삼족을 멸하고 봉국을 폐지하였다.
고후 4년, 양나라 승상이었던 왕염계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산도후(山都侯)에 봉해졌다.
2.2. 진희의 난 진압
기원전 196년 가을, 진희가 대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왕염계는 위장군이 되어 진희를 쳤다.
양나라 왕 팽월은 직접 참전하지 않아 고제의 미움을 샀고, 이후 반란을 일으켰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정위였던 왕염계는 팽월을 처형할 것을 주장하였고, 고제는 팽월의 삼족을 멸하고 봉국을 폐지하였다.
2.3. 팽월 숙청 관여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가을, 진희가 대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양나라 왕 팽월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참전하지 않아 고제의 미움을 샀고, 이후 반란을 일으켰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정위였던 왕염계는 팽월을 죽일 것을 주장하였고, 고제는 팽월의 삼족을 멸하고 봉국을 폐지하였다.
2.4. 산도후 책봉과 사망
고후 4년(기원전 184년), 왕염계는 양나라 승상으로서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산도후(山都侯)에 봉해졌다.
문제 3년(기원전 177년)에 사망하였고, 시호는 정(貞)이라 하였다. 작위는 아들 왕중황이 이었다.
3. 관직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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