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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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승상은 고대 중국의 관직으로, 행정의 수장이자 군사를 지휘하는 최고 권력자를 의미했다. 승상은 때로는 황제를 보좌하거나 대행하는 역할을 했으며, 권력이 막강하여 황위를 찬탈하려는 시도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진나라의 이사, 전한의 소하, 촉한의 제갈량 등이 대표적인 승상으로, 각 왕조와 시대에 따라 그 역할과 위상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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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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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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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직책 종류 | 관직 |
임명권자 | 황제 |
존속 시기 | 기원전 8세기 ~ 1380년 |
소멸 사유 | 폐지 |
유사 직책 | 재상 |
상세 정보 | |
승상 (한자) | 丞相 |
로마자 표기 | Chéngxiàng |
일본어 음독 | じょうしょう (Jōshō) |
베트남어 | Thừa tướng |
역사 | |
기원 | 원래는 진나라의 승상은 황제를 보좌하는 최고 관료였다. 승상은 전국 시대부터 존재했지만, 그 권력과 중요성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
역할 | 승상은 일반적으로 황제를 보좌하고 정책 결정을 지원하며, 정부 부처를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권력 | 승상의 권력은 황제의 성격과 능력, 그리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강력한 황제 밑에서는 승상이 단순한 자문 역할에 머물렀지만, 무능하거나 어린 황제 밑에서는 승상이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기도 했다. |
폐지 | 승상 제도는 명나라의 홍무제에 의해 폐지되었으며, 이후에는 유사한 역할을 하는 다른 관직들이 생겨났다. |
같이 보기 | |
관련 문서 | 재상 태합 국무총리 |
2. 권위
역사적으로 승상은 행정의 수장이자 군사의 최고 지휘관을 겸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때로는 그 권력이 주군을 능가하기도 했다.
진나라 장양왕의 즉위에 큰 공을 세운 여불위나, 한 고조 (유방)를 초기부터 보좌해 온 소하와 조참과 같이 큰 공을 세운 신하가 승상 직에 오르는 경우, 그 공적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상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춘추 전국 시대에 상방(相邦)의 권위가 지나치게 높아져 군주의 권력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부재상(副宰相)에 해당하는 "승상" 직책을 새로 만들었고 이것이 점차 재상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는 연구도 있으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다.
역사상의 승상 중 다수는 행정의 수장이자 군사의 최고 지휘관을 겸하는,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 권력이 주군을 능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으며, 동탁이나 조조의 예처럼 거의 황제 대행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며 찬탈이 가능한 지위이기도 했다. 역사학자 나카 미치요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승상 직은 국가 찬탈의 계단이다.''' 간웅이 황위 찬탈을 꾀할 때 먼저 노리는 것이 승상의 자리였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2] 물론 제갈량과 같이 황위를 넘보지 않고 충의를 다한 승상도 존재했지만[2], 많은 경우 승상직은 최고 권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으로 여겨졌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촉한의 유비가 임종 시 승상 제갈량에게 남긴 유언이 있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그대의 재능은 위의 조비의 10배는 되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 아들 유선이 황제로서 자질이 있다면 보좌해주고, 만약 보좌하기에 부족하다면 그대가 직접 황제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라"고 말했다. 이 유언에 대해 청의 강희제는 자치통감을 읽고 "유비는 제갈량을 물과 물고기의 만남에 비유하며 그의 충성심을 잘 알았을 텐데, 왜 유언에서 배신을 의심하는 듯한 말을 남겼을까? 삼국 시대가 속고 속이는 시대였기 때문인가"라며 의문을 표했다.[1]
하지만 나카 미치요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당시 승상은 동탁이나 조조의 경우처럼 황제를 대신할 정도의 강력한 권력을 가졌으며, 마음만 먹으면 황위를 찬탈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비의 유언은 제갈량이 실제로 황제가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카 미치요는 "중국 중세의 승상 중 황위를 노리지 않고 충의를 다한 인물은 제갈량 외에 동진의 왕도, 전진의 왕맹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제갈량 등 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사마소, 유유, 소도성, 후경, 양견, 이연 등 승상 직에 있던 인물들은 모두 황위 찬탈을 꾀했다. '''승상 직은 국가 찬탈의 계단이다.''' 간웅이 황위 찬탈을 꾀할 때 먼저 노리는 것이 승상의 자리였다"라고 평가했다.[2]
3. 호칭
승상이 두 명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는 각각 "우승상(右丞相)"과 "좌승상(左丞相)"이라고 불렀다. 어느 쪽이 더 높은 지위인지는 왕조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진나라와 한나라 시대에는 오른쪽(右)을 더 높게 여겨 우승상이 좌승상보다 위였지만, 위진남북조 시대 이후에는 왼쪽(左)을 더 높게 여겨 좌승상이 우승상보다 위였다. 또한, 환관이 승상에 임명될 경우에는 중인(中人, 환관을 의미)의 승상이라는 뜻으로 "중승상(中丞相)"이라고 불렀다.
한편, 일본에서는 아스카 시대 말기에 중국의 율령제가 도입되면서 국가 기구가 정비되었다. 행정, 입법, 사법을 총괄하는 최고 국가 기관으로 태정관(太政官)이 설치되었는데, 그 장관인 좌대신(左大臣)과 우대신(右大臣)을 당명(唐名, 중국식 명칭)으로 각각 '좌승상', '우승상'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예를 들어, 헤이안 시대의 우대신이었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간승상'(菅丞相, 스가와라 승상)이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4. 역사
4. 1. 진 (秦)
승상의 기원은 전국 시대이며, 백관의 우두머리로 여겨졌다. '승상'이라는 관직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진나라의 진 무왕 때이다.[4] 당시 진나라에서는 좌승상과 우승상을 함께 두거나, 때로는 단독으로 상방을 두기도 했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좌승상과 우승상 제도로 정착했으며, 진나라 시대에는 우승상의 지위가 좌승상보다 높았다. 대표적인 진나라의 승상으로는 이사가 있다. 한편, 환관이 승상을 맡는 경우 '중승상'이라 불렀는데, 조고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4. 2. 한 (漢)
전한의 초대 승상은 소하였다. 초기 전한에서 승상은 어사대부, 태위와 함께 삼공의 수장으로서, 관료 조직의 정점에 위치하며 높은 권위와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한 무제가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황제의 측근인 시중이나 황제의 문서 업무를 처리하는 상서가 점차 정치의 중심이 되면서 승상의 권위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결국 전한 애제 원수 2년(기원전 1년)에는 승상이라는 명칭이 대사도로 바뀌면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한편, 전한 시대에는 각지에 봉건된 제후왕국의 재상도 '승상'이라 불렀다. 하지만 한 경제 중원 5년(기원전 145년)에 이들의 명칭을 "상"으로 변경하여 황제가 임명하는 승상과 구별하도록 하였다(역사 용어로는 제후상이라고 불러 구별한다).
후한 시대에는 태위, 사도, 사공이 삼공을 구성했으며, 승상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한 말, 실권을 장악한 조조가 건안 13년(208년)에 승상직을 다시 만들고 스스로 그 자리에 올랐다.
4. 3. 삼국·위진 (三國·魏晉)
삼국 시대에는 위, 촉, 오 모두 승상이 설치되었다.
촉한에는 제갈량 단 한 명이 승상으로 임명되었다. 제갈량 사후에는 승상 직책이 설치되지 않았다. 하지만 장완과 비의는 대장군 및 녹상서사 등의 고위 관직을 모두 겸임하여 승상과 거의 동일한 직권을 행사했다.
오에서는 승상 직책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나 주로 고문 역할을 수행했고, 그 실권은 상대장군, 대장군, 대사마의 군직이 계승했다.
위에서는 그 시조인 조조 자신이 후한 말 헌제 때 승상으로 불렸으며, 이 때문에 승상은 오랫동안 설치되지 않다가 후기에 사마의가 승상으로 임명되었으나 고사했다. 이후 그의 아들 사마소가 상국으로 임명되었고,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이 이를 계승했다. 사마염은 이를 발판으로 위 왕조를 선양의 형식을 빌려 찬탈했다.
이 당시의 승상은 동탁·조조가 그랬던 것처럼 거의 황제 대행에 가까웠으며, 찬탈이 가능한 지위였다. 촉한의 유비가 승상인 제갈량에게 남긴 유언은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그대의 재능은 위의 조비의 10배는 된다.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킬 것이다. 내 아들 유선이 황제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보좌해주기 바란다. 만약 내 아들이 보좌하기에 부족한 어리석은 자라면, 망설이지 말고 그대가 황제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라"고 유언했다. 훗날 청의 강희제는 자치통감의 이 부분을 읽고 "유비는 제갈량을 물고기의 만남에 비유하며, 제갈량이 충신이고 성실한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유언에서 제갈량의 배신을 의심하는 듯한 내용을 왜 썼을까? 삼국 시대는 속고 속이는 것을 좋아하는 시대였기 때문일까, 심한 이야기다!"라고 탄식하며 자신의 장서에 코멘트를 남겼다[1].
역사학자 나카 미치요는 이 점을 지적하며 "중국 중세의 승상 중, 황위를 노리지 않고 충의를 다한 것은 제갈량 외에는 동진의 왕도, 전진의 왕맹 등 몇 명 뿐이다"라고 말했고, "제갈량 등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사마소, 유유, 소도성, 후경, 양견, 이연 등의 승상 직에 있던 인물은 모두 황위 찬탈을 꾀했다. '''승상 직은 국가 찬탈의 계단이다.''' 간웅이 황위 찬탈을 꾀할 때 먼저 노리는 것이 승상의 자리였다"라고까지 극언했다[2].
4. 4. 남북조·수·당 (南北朝·隋·唐)
4. 5. 송·원·명 (宋·元·明)
5. 역대 승상
- 이사(李斯) - 진(秦)의 승상
- 소하 - 전한의 초대 승상
- 조조 - 후한 헌제 때 후한의 승상
- 제갈량 - 촉한의 유일한 승상이자 충무후
- 사마의 - 위나라의 승상. 진(晉)을 세우고 위촉오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의 조부이다.
- 육손 - 오나라의 승상이자 대도독
- 위징 - 당 태종 때 당나라의 승상
- 이선장 - 명나라의 초대 승상
'''진'''
'''조'''
'''전한'''
전한 승상, 상국, 대사도 목록 참조.
'''유망'''
'''유현'''
'''유분자'''
'''후한'''
후한 상국, 승상 목록 참조.
'''삼국'''
삼국 상국, 승상, 사도 목록 참조.
'''서진, 동진'''
진조 상국, 승상 목록 참조.
'''십육국'''
십육국 상국, 승상 목록 참조.
'''남조'''
남조 상국, 승상 목록 참조.
'''북조'''
북조 상국, 승상 목록 참조.
'''수'''
'''수말 당초의 군웅'''
'''토욕혼'''
- 선왕
'''당 (이중복)'''
- 정음 (좌승상)
- 장령균 (우승상)
'''당 (상서례사 개)'''
- 장설 (우→좌승상)
- 원건요 (좌승상)
- 송경 (우승상)
- 소숭 (우승상)
- 배요경 (좌승상)
- 장구령 (우승상)
'''후당'''
- 두로혁 (행대 좌승상)
- 노정 (행대 우승상)
'''오'''
- 서온 (대승상)
- 서지고 (대승상)
'''남당'''
- 송제구 (좌승상)
- 서계 (우승상)
'''초'''
- 요언장 (좌승상)
- 허덕훈 (우승상)
'''오월'''
'''요'''
'''송 (상서례사 개)'''
- 우윤문
- 양극가
- 증회
- 엽형
- 사호
- 조웅
- 왕회
- 주필대
- 류정
- 갈필
- 조여우
- 여단례
- 경당
- 사심보
- 진자강
- 한탁주
- 전상조
- 사미원
- 정청지
- 교행간
- 최여지
- 이종면
- 사숭지
- 범종
- 두범
- 유사
- 조괴
- 사방숙
- 오잠
- 동괴
- 정원봉
- 정대전
- 가사도
- 정원봉
- 엽몽정
- 강만리
- 마정란
- 왕약
- 장감
- 진의중
- 유몽염
- 오견
- 문천상
- 이정지
- 육수부
'''금 (상서례사 개)'''
- 완안희윤
- 한기업
- 얼로관
- 올출
- 호로
- 새리
- 오야
- 적고내
- 소중공
- 아로
- 완안병덕
- 당괄변
- 대고
- 유괄
- 누반온돈사충
- 신토만
- 오대
- 분도
- 장호
- 복산사공
- 채송년
- 소유
- 소옥
- 복산충의
- 올륜
- 이석
- 호사호
- 완안종헌
- 흘석렬지녕
- 완안수도
- 당괄안례
- 석거
- 도단합희
- 오고론원충
- 완안경
- 도단극녕
- 완안양
- 협곡청신
- 완안종호
- 복산단
- 도단일
- 도단공필
- 고기
- 고여려
- 완안새불
'''원 (중서승상)'''
- 마마
- 불화
- 홀로불화
- 사천택
- 야율주
- 선진
- 탑찰아
- 홀도찰아
- 안동
- 백안(바아린부)
- 옹길랄대
- 화례곽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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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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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보보
- 백사리
- 사남답리
- 첩리첩목아
- 완자첩목아
- 야속
- 실렬문
- 경동
'''명 (중서승상)'''
'''태평천국 (육관승상)'''
참조
[1]
서적
御批歴代通鑑輯覽
[2]
서적
支那通史
岩波文庫
[3]
문서
[4]
서적
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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