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성
1. 개요
우산성은 충청남도 청양읍 우산에 위치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965m이며, 북쪽 성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고 동쪽과 남쪽은 인위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했다. 자연석을 길이모쌓기로 축조했으며, 동남쪽과 동북쪽 모서리에는 치성을 설치했다. 3개소의 성문 터가 확인되었으며, 북문 터 근처에서는 백제 토기 조각이 출토되어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이름 | 우산성 |
|---|---|
| 영문 이름 | Usanseong Fortress |
| 국가 | 대한민국 |
| 위치 |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읍내리 산4-1번지 외 |
| 종류 | 충청남도 기념물 |
| 지정 번호 | 81 |
| 지정일 | 1989년 12월 29일 |
| 시대 | 백제 |
| 길이 | 965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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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의 문화유산 -
청양 모덕사 최익현 초상
청양 모덕사 최익현 초상은 채용신이 1909년에 이모한 작품으로, 73세 최익현의 오사모와 단령 차림의 전신좌상이며, 구한말 유학자의 풍모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모덕사에 소장되어 최익현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 채용신의 초상화 기법을 보여준다. -
청양군의 문화유산 -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충청남도 청양군에 위치한 고려 시대의 거대한 석조 삼존불상으로, 둥근 얼굴과 부드러운 선, 자연스러운 옷 주름 등 고려 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며, 미륵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신앙의 융합을 보여주는 국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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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상당산성
청주 상당산성은 청주시 시가지에 인접한 산 정상에 축조된 둘레 약 4.2km의 산성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축성되었으며 조선 시대 수축과 개축을 거쳐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백제의 성 -
익산 토성
익산 토성은 오금산 정상에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으며 백제, 통일신라, 고려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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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나성
부여 나성은 백제 사비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538년경에 축조된, 둘레 8km의 흙으로 쌓은 성으로, 금강과 자연 지형을 활용한 이중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는 일부 흔적만 남아있다. -
충청남도의 성 -
보령 남포읍성
보령 남포읍성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위치한 조선시대 읍성으로, 왜구 침입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으며, 돌과 흙으로 쌓은 성벽과 방어 시설, 그리고 관아 건물이 남아 있어 당시 읍성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 위치 및 지형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우성산에 있는 산성으로, 산꼭대기를 빙 둘러 쌓았으며, 자연지형을 이용한 동쪽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돌을 이용하여 쌓았다.
성의 둘레는 약 965m이고, 잘 남아 있는 곳의 성벽은 높이 7m, 폭 6m가량 된다. 남벽과 동벽, 북벽과 동벽이 만나는 부분은 다른 곳보다 높은데, 아마도 전투시 장수가 올라서 지휘하던 장대가 있던 곳으로 보인다. 동남쪽과 동북쪽 모서리는 성벽 바깥으로 사각형 모양의 성벽을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이 있었던 것 같다. 성문은 남·서, 남, 북쪽에서 확인되는데 북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있으며, 성벽에서 약 2m 정도 안쪽으로 들여서 문을 만든 것 같다. 성 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와 저장용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우물 2개가 있다고 한다.
3. 구조 및 특징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우성산에 있는 산성으로,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았다. 백제 때 쌓아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에서 보이는 유물은 백제 토기 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와 조각도 확인된다. 성 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와 저장용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우물 2개가 있다고 한다. 북문 터 근처에는 50×50m 규모의 건물 터가 있다.
3.1. 성벽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우성산에 있는 산성으로, 산꼭대기를 빙둘러 자연지형을 이용한 동쪽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돌을 이용하여 쌓았다. 성의 둘레는 약 965m이고, 잘 남아 있는 곳의 성벽은 높이 7m, 폭 6m가량 된다. 남벽과 동벽이 만나는 곳, 북벽과 동벽이 만나는 부분은 다른 곳보다 높은데 아마도 전투시 장수가 올라서 지휘하던 장대가 있던 곳으로 보인다. 동남쪽 모서리와 동북쪽 모서리는 성벽의 바깥으로 사각형 모양의 성벽을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이 있었던 것 같다. 성문은 남·서, 남, 북쪽에서 확인되는데 북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있으며, 성벽에서 약 2m 정도 안쪽으로 들여서 문을 만든 것 같다. 성 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와 저장용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우물 2개가 있다고 한다.
성의 이름은 산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북쪽의 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해 성을 쌓았고 동쪽과 남쪽의 벽은 인위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는 식으로 쌓았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길이모쌓기로 축조하였고, 잘 남은 곳은 높이가 7m 정도이다. 동남쪽과 동북쪽 모서리에는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치성을 시설하였다. 성내의 시설을 안쪽으로 폭 2~3m의 도랑을 팠다. 3개소에 문의 터가 확인되었는데 남쪽이 주된 문의 터인 듯하고, 북문의 터가 가장 잘 남아 있는데 성벽보다 약 2m 정도 들여서 문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3.3. 성문
성문은 남·서, 남, 북쪽에서 확인되는데 북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있으며, 성벽에서 약 2m 정도 안쪽으로 들여서 문을 만든 것 같다. 성 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와 저장용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우물 2개가 있다고 한다.
3.4. 내부 시설
성의 둘레는 약 965m이고, 잘 남아 있는 곳의 성벽은 높이 7m, 폭 6m가량 된다. 남벽과 동벽, 북벽과 동벽이 만나는 부분은 다른 곳보다 높은데, 아마도 전투시 장수가 올라서 지휘하던 장대가 있던 곳으로 보인다. 동남쪽 모서리와 동북쪽 모서리에는 성벽 바깥으로 사각형 모양의 성벽을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이 있었던 것 같다. 성문은 남·서, 남, 북쪽에서 확인되는데 북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있으며, 성벽에서 약 2m 정도 안쪽으로 들여서 문을 만든 것 같다. 성 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와 저장용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우물 2개가 있다고 한다. 성내 북문의 터 근처에는 50×50m 규모의 건물 터가 있다.
4. 출토 유물
성에서 보이는 유물은 백제 土器중국어 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와 조각도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은 백제 때 쌓아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내 북문의 터 근처에는 50×50m 규모의 건물 터가 있고, 백제 토기 조각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된다.
5. 역사적 의의
우산성은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우성산에 있는 산성으로, 산꼭대기를 빙 둘러 쌓았으며, 동쪽 일부는 자연 지형을 이용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돌을 이용하여 쌓았다.
성의 둘레는 약 965m이고, 잘 남아 있는 성벽은 높이 7m, 폭 6m가량 된다. 남벽과 동벽, 북벽과 동벽이 만나는 부분은 다른 곳보다 높은데, 아마도 전투시 장수가 올라서 지휘하던 장대가 있던 곳으로 보인다. 동남쪽과 동북쪽 모서리에는 성벽 바깥으로 사각형 모양의 성벽을 튀어나오게 쌓은 치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은 남·서, 남, 북쪽에서 확인되는데, 북문 터가 잘 남아 있으며, 성벽에서 약 2m 정도 안쪽으로 들여서 문을 만든 것 같다. 성 안에서는 건물터 몇 곳과 저장용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에서는 백제 토기 조각이 주로 발견되며, 고려와 조선 시대 기와 조각도 확인되어, 백제 때 쌓아 조선 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