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남포읍성
1. 개요
보령 남포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읍성이다. 서해안의 요충지로서 왜구를 방어하고 해상 교통을 보호하며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온 유적으로, 고려 우왕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축조되었으며 공양왕 2년(1390)에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되었다. 성벽은 돌과 흙으로 쌓았으며, 옹성, 관아 건물, 배수 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 이름 | 보령 남포읍성 |
|---|---|
| 로마자 표기 | Boryeong Nampo Eupseong |
| 유형 | 충청남도 기념물 |
| 지정 번호 | 10 |
| 지정일 | 1973년 12월 24일 |
| 주소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
| 시대 | 조선시대 |
| 면적 | 105,283m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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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의 문화유산 -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높이 4.1m의 석탑으로, 2중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며, 각 면 기둥 형태 조각과 1층 탑신 문비 조각이 특징이고 통일신라 후기 석탑 양식을 보여주는 보물이다. -
보령시의 문화유산 -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은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석탑으로, 2단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1층 몸돌 아래 괴임돌을 넣어 고려 석탑 양식을 보여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의 성 -
운화리성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운화리에 위치한 운화리 성지는 대운산 지맥을 따라 타원형으로 축조되었으며, 자연석과 흙으로 쌓은 높이 2~3m의 성벽과 석단 시설을 통해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산성이다. -
조선의 성 -
백마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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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의 성 -
부여 나성
부여 나성은 백제 사비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538년경에 축조된, 둘레 8km의 흙으로 쌓은 성으로, 금강과 자연 지형을 활용한 이중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는 일부 흔적만 남아있다. -
충청남도의 성 -
보령 충청수영성
보령 충청수영성은 조선 시대에 조운선 보호, 왜구 방어, 이양선 감시 등을 위해 설치되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2. 남포읍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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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邑城)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남포읍성은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으로, 남포는 백제 때 사포현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읍성은 원래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던 성이었다.
2.2. 조선 시대
남포읍성은 원래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던 성이었는데, 공양왕 2년(1390)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바깥쪽 벽은 돌을 이용하여 직각으로 쌓았고, 성벽의 안쪽은 흙으로 쌓아올렸다. 동·서·남 세 곳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4m 높이로 성 바깥에 설치하는 또 하나의 성벽인 옹성을 둘렀는데, 1m 이상의 큰 돌로 축성하였다. 성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튀어나오게 쌓았으며, 그 양쪽 성벽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시설을 해놓았다.
성 안에는 3채의 관아 건물인 진남루와 옥산아문, 현청이 보존되어 있으며, 동서에 80cm 높이로 배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우물이 세 군데 있었다고 한다.
이 읍성은 서해안의 요충지로 왜구를 경계하는 한편, 해상 교통을 보호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던 곳으로 여겨진다.
3. 남포읍성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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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남포읍성은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으로, 백제 때에는 사포현이라고도 불렸다.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고, 공양왕 2년(1390)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하였다. 이 읍성은 서해안의 요충지로 왜구를 경계하고 해상 교통을 보호하며 감시하는 역할을 하던 곳으로 여겨진다.
3.1. 성벽 및 옹성
성벽은 바깥쪽은 돌을 이용하여 직각으로 쌓았고, 안쪽은 흙으로 쌓아올렸다. 동·서·남 세 곳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4m 높이로 성 바깥쪽에 옹성(甕城)을 둘렀는데, 1m 이상의 큰 돌로 축성하였다. 성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튀어나오게 쌓았으며, 그 양쪽 성벽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시설을 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