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덕읍
1. 개요
원덕읍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에 속하는 읍이다. 신라 시대에는 죽령현으로 불렸으며,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1910년 원덕면이 신설되었고, 1980년 12월 1일 원덕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행정 구역 개정을 거쳤으며, 현재 갈남리, 임원리 등 11개의 법정리를 관할한다. 호산초등학교, 임원초등학교, 원덕중학교, 임원중학교, 원덕고등학교 등의 교육 시설이 위치해 있다.
| 이름 | 원덕읍 |
|---|---|
| 한자 표기 | 遠德邑 |
| 영어 표기 | Wondeok-eup |
| 광역시도 | 강원특별자치도 |
| 시군구 | 삼척시 |
| 면적 | 175.94 |
| 세대수 | 3,333 |
|---|---|
| 세대수 조사 기준일 | 2015년 12월 31일 |
| 인구 | 3,200 |
| 인구 조사 기준일 | 2022년 2월 |
| 법정리 | 11 |
|---|---|
| 행정리 | 30 |
| 반 | 147 |
| 읍사무소 주소 | 삼척시 원덕읍 삼척로 440 |
|---|---|
| 홈페이지 | 원덕읍 행정복지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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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의 행정 구역 -
근덕면
근덕면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에 속하는 면으로, 20개의 법정리와 여러 학교, 초당굴 등의 관광 명소를 포함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 -
중구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중구는 부산의 중심지로, 과거 왜관이 위치했으며 부산부청과 부산시청이 있었고 현재는 교통의 요지이자 다양한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 -
한남동
한남동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하며 성동구, 이태원동, 보광동과 접하고 한강과 마주하며, 한남대로를 통해 강남과 연결되고 능터골 전설이 전해지며, 한남역, 한강진역과 한남대교, 한남대로, 소월로 등의 교통 요충지이며, 서울한남초등학교, 리움미술관, 백범김구기념관 등 교육 및 문화 시설이 위치한 지역이다. -
1980년 설치 -
동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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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설치 -
제천시
제천시는 충청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도농복합시로,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한말 의병 운동의 거점, 풍부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3차 산업이 발달했으나 최근 인구 감소 문제에 직면해 있다.
2. 연혁
신라 시대부터 조선 고종 10년(1906년)까지 원덕읍은 여러 명칭으로 불렸다. 1910년 원덕면이 신설되어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43년 초곡리와 매원리가 근덕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12월 1일 원덕면에서 원덕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4월 1일 오저출장소가 가곡면으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87년 1월 1일 장호리와 용화리가 근덕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5월 19일, 원덕읍 일대의 행정 구역이 개정되었다.
2.1. 고대
신라 시대에는 죽령현(竹嶺縣)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죽령현(竹嶺縣)·옥원현(沃原縣)이었다. 조선 인조 8년(1630년)에는 덕번(德蕃) - 원덕(遠德), 근덕(近德)이었다. 조선 현종 3년(1662년)에는 덕번하(德蕃下) 또는 원덕번(遠德蕃)이었다. 조선 영조 때에는 원덕면(遠德面) 또는 원덕면(願德面)으로 불렸다. 조선 순조 1년(1801년)에는 신덕(新德) 또는 원덕번(遠德蕃)으로 불렸다.
2.2. 조선 시대
조선 인조 8년(1630년)에 덕번(德蕃)은 원덕(遠德)과 근덕(近德)으로 불리었다.
조선 현종 3년(1662년)에는 덕번하(德蕃下) 또는 원덕번(遠德蕃)으로 불리었다.
조선 영조 때에는 원덕면(遠德面) 또는 원덕면(願德面)으로 불리었다.
조선 순조 1년(1801년)에는 신덕(新德) 또는 원덕번(遠德蕃)으로 불리었다.
조선 고종 10년(1906년)에는 치남(峙남), 치북(峙北) 또는 천남(川南), 천북(川北)으로 불리었다.
2.3. 일제강점기 및 광복 이후
1910년에 원덕면이 신설되어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43년에는 초곡리와 매원리가 근덕면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 12월 1일에 원덕면에서 원덕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4월 1일에는 오저출장소가 가곡면으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87년 1월 1일에는 장호리와 용화리가 근덕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5월 19일, 원덕읍 일대의 행정 구역이 다음과 같이 개정되었다.
1913년 일제는 임원리 국유림 횡포와 부당한 측량을 실시하였고, 이에 주민 70여명이 재측량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관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포악한 횡포와 부당한 측량을 계속하였고, 주민들이 격렬하게 대응하자 주모자 색출 과정에서 산양서원을 불태우고 마을 이름을 비하하는 의미의 '축천리'로 강제 개명했다. 1995년, 일제강점기에 강제 개명된 마을 이름을 되찾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마을 형성 당시부터 사용했던 '산양'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산양리로 개정되었다.
2.4. 1995년 행정 구역 개정
1995년 5월 19일, 원덕읍 일대의 행정 구역이 다음과 같이 개정되었다.
| 개정 이전 | 개정 이후 | |
|---|---|---|
| | 법정리 || 행정리 | ||
| 축천1리, 축천2리 (법정리 축천리) | 산양리 | 산양1리, 산양2리 |
| 노경리 | 노경리 | 노경1리, 노경2리, 노경3리 |
| 노곡1리, 노곡2리 | 노곡리 | 노곡1리, 노곡2리 |
| 길곡리 | 노곡3리 | |
| 비화리 | 노곡4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