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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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막은 삼국 시대 오나라의 장군으로, 손침의 전횡을 경고하고 손침 제거에 기여했다. 손량이 폐위되고 손휴가 즉위한 후 손침이 무창 주둔을 요청하자, 위막은 손침의 반란을 예견하며 이를 경고했다. 이후 손휴와 측근들의 계획에 따라 손침이 제거되었으며, 《삼국지연의》에서는 정봉, 시삭과 함께 손침 일족을 사로잡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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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오 사람 - 시삭
시삭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위사로, 손침의 모반을 고발하고 제거 계획에 참여했으며, 손침 제거 후 그의 일족 처형에 협력했고 그의 아들 시참은 진나라의 도교 도사였다. - 동오 사람 - 사광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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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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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태평 3년(258년), 손침이 손량을 폐위하고 손휴를 황제로 즉위시켰다. 손침은 제멋대로 정치를 했지만, 어느 날 맹종을 통해 무창에 주둔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손휴는 이를 허가했다.[1]
장군 위막은 "손침은 지방에 나가면 반드시 변고를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경고했고, 무위사 시삭도 손침의 모반 증거를 고발했다. 손휴는 장포에게 대책을 물었고, 장포는 정봉과 함께 손침을 주살할 계획을 세웠다.[1]
영안 원년(258년) 12월, 이 계획이 실행되어 손침 일족은 몰살되었다.[2]
삼국지연의에서는 위막과 시삭이 정봉과 함께 손침의 일족을 사로잡는 것으로 묘사된다.
2. 1. 손침의 전횡과 위막의 경고
손침(孫沈)은 손휴가 자신을 비방하는 자를 붙잡아 보내면 그들을 죽였지만, 자신을 싫어하는 자가 많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껴 맹종(孟宗)을 통해 무창에 주둔하기를 청했다.[1]손휴가 이를 허락하자 위막은 '''"손침은 지방에 나가면 반드시 변고를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무위사 시삭도 손침이 무창에 주둔할 때 무기와 병사를 모아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상소했다.[2]
이후 정봉의 계략에 따라 장포가 손침을 죽이자 정봉, 시삭 등과 협력해 손침의 동생을 붙잡아 처형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위막과 시삭이 정봉과 함께 손침의 일족을 사로잡는 것으로 묘사된다.
2. 2. 손침 제거
손휴는 손침을 두려워하여, 손침을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붙잡아 손침에게 보냈다. 손침은 손휴가 보내는 사람마다 죽였지만, 자신을 싫어하는 자가 많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껴 맹종(孟宗)을 통해 무창에 주둔하기를 청했다.[1]손휴가 이를 허락하자, 손침은 무창에 주둔하게 되었다. 위막은 '''손침이 지방에 주둔하게 되면 머지않아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무위사 시삭이 손휴에게 손침이 모반할 징후가 있다고 보고했다. 시삭은 손침이 무창에 주둔할 때 무기와 병사를 모아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상소했다. 이후 노신(老臣) 정봉의 계략에 따라 장포가 손침을 죽이자, 위막은 정봉, 시삭 등과 협력해 손침의 동생을 붙잡아 처형했다.[1]
태평 3년(258년), 손침에 의해 손량이 폐위되고, 손휴가 꼭두각시 황제로 즉위했다. 손침은 이전까지 제멋대로 정치를 했지만, 어느 날 맹종을 통해 지방으로 나가 무창에 주둔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손휴는 그것을 허가하는 동시에, 그 휘하의 기병 정예병 1만여 명에게 모두 완전 무장을 시키고, 그들이 지금까지 사용하던 무기고의 병기도 모두 그들에게 지급했다.[1]
이를 본 장군 위막은 "손침은 지방에 나가면 반드시 변고를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무위사 시삭도 "손침이 모반을 꾸미고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라고 고발했다. 손휴는 몰래 대책을 측근 장포에게 묻고, 장포는 정봉과 함께 조회 자리에서 손침을 주살할 계획을 세웠다.[1]
같은 해(영안 원년) 12월, 계획이 실행되어 손침의 일족은 몰살되었다.[2]
삼국지연의에서는 위막과 시삭이 정봉과 함께 손침의 일족을 사로잡는 것으로 묘사된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손침이 무창에 주둔할 때 무기와 병사를 모아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상소했으며, 훗날 노신(老臣) 정봉의 계략에 따라 장포가 손침을 죽이자 정봉, 시삭(施朔) 등과 협력해 손침의 동생을 붙잡아 처형한다.
참조
[1]
서적
呉歴
[2]
서적
三国志 (歴史書) 呉志 孫綝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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