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량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손량은 오나라의 황제(252년 ~ 258년)이다. 손권과 반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손권의 막내 아들로 태자 경쟁에서 승리하여 황위에 올랐다. 즉위 후 제갈각, 손준, 손침 등 권신들의 전횡으로 인해 불안정한 정국을 겪었다. 손량은 친정을 시도했지만, 손침의 쿠데타로 폐위되어 회계왕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유배 도중 사망했으며, 진수는 손량의 폐위는 섭정들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손량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손량
칭호황제
재위 기간252년 5월 23일 – 258년 11월 9일
손량
자명
생년243년
몰년260년 (17세)
아버지손권
어머니반황후
배우자전황후
왕조동오
묘호없음
시호폐제
능묘뢰향
즉위 및 퇴위
즉위252년 5월 23일
퇴위258년 11월 9일
폐위 후 봉작회계왕 (258년 11월 9일 – 260년)
후관후 (260년)
연호
연호건흥 (252년 – 253년)
오봉 (254년 – 256년)
태평 (256년 – 258년)
관직
전임손권
계승손휴
전임 (황태자)손하
계승 (황태자)손완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동오의 황제 - 손호
    손호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즉위 초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폭정을 일삼아 오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으며, 서진의 침공으로 항복한 후 귀명후에 봉해졌다가 낙양에서 생을 마감했다.
  • 동오의 황제 - 손휴
    손휴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세 번째 황제로, 손침을 제거하고 즉위하여 재위 기간 동안 교육을 장려했으나, 촉한 멸망과 교지 반란 속에서 젊은 나이로 사망하여 사후 손호가 즉위하면서 그의 아들들은 비극을 맞았다.
  • 손권의 황자 - 손휴
    손휴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세 번째 황제로, 손침을 제거하고 즉위하여 재위 기간 동안 교육을 장려했으나, 촉한 멸망과 교지 반란 속에서 젊은 나이로 사망하여 사후 손호가 즉위하면서 그의 아들들은 비극을 맞았다.
  • 손권의 황자 - 손려
    손려는 손권의 둘째 아들로, 총명함과 학식으로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으며, 진군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반주를 통치했으나 20세에 요절했다.
  • 260년 사망 - 발레리아누스
    발레리아누스는 3세기 위기 시대에 로마 황제로서 아들 갈리에누스와 공동 통치하며 사산 제국과의 전쟁을 수행했으나, 샤푸르 1세에게 패배하여 포로로 잡히는 치욕을 겪고 기독교 박해 정책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60년 사망 - 조모 (위나라)

2. 생애

243년 손권과 그가 총애하던 후궁인 반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손권은 늙은 나이(손량 출생 당시 60세)에 막내 아들을 얻어 매우 기뻐하며 보살폈다. 어머니의 낮은 출신에도 불구하고, 손권의 총애를 많이 받은 데다 막내아들이었기 때문에 손권의 귀여움을 받았다.

적오 13년(250년) 8월, 황태자 손화가 폐위된 후, 11월에 대신 황태자로 옹립되었다. 손노반은 손량을 유력 가문과 연결시키기 위해 남편 전종의 종손녀인 전회계와 결혼시켰다.

태원 원년(251년) 여름, 어머니가 황후가 되면서 황후 소생의 적출 황자로서의 지위를 더욱 굳혔다. 손량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성인과 같은 판단력이 있었고, 황태자로서 예를 다해 대신들의 존경을 받았다.

252년 4월, 손권이 붕어하자 9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손권은 제갈각을 태부(太傅)로, 손준을 보정(輔政)으로 임명했으나, 권력은 제갈각에게 집중되었다. 253년 10월, 손량은 손준과 모의하여 제갈각을 죽이고, 승상이 된 손준이 실권을 장악했다.

256년, 손준이 죽자 그의 사촌동생 손침이 뒤를 이어 나랏일을 전단했다. 257년 4월, 대사령을 내리고 친정을 시작했으며, 병사들과 장수들의 자제를 모아 근위 군대를 편성하고 훈련시켰다.

258년 8월, 손침의 전횡으로 손노반, 전상 등과 함께 손침 살해를 도모했으나 실패하고, 손침에게서 회계왕으로 쫓겨났다.

영안 3년(260년), 손량이 다시 황제가 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돌았고, 무녀에게 기도를 시켰다는 참언을 받아 후관후(候官侯)로 격하되었다. 후관후국으로 이송되던 중 손량은 자살하거나, 독살당했다.

2.1. 즉위 전

243년 손권과 그의 총애를 받던 후궁인 반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손권의 막내 아들로, 늙은 나이(손량 출생 당시 60세)에 아들을 얻어 매우 기뻐했던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았다. 어머니는 출신이 낮았지만 손권의 총애를 유달리 많이 받았고, 그 위에 자신도 막내아들이었기 때문에, 특히 손권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그 출신지와 출생 연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여섯째 형인 손휴 (후의 경제, 손량이 태어나기 전에는 막내)의 젊은 시절 기록은 극히 간략하여,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적오 6년(243년), 황제 손권과 부인 반숙 사이에서 건업 궁내전에서 태어났다.

셋째 형인 황태자 손화 (당시)는 처음에는 손권에게 귀여움을 받았지만, 넷째 형인 노왕 손패와의 다툼과 맏누나인 전공주로부터의 중상으로 인해, 손권으로부터의 총애가 쇠퇴하게 되었다(이궁의 변). 아버지에게 새로운 황태자를 원하게 되어, 적오 13년(250년) 8월, 손화가 폐위된 후, 11월, 대신 황태자로 옹립되었다.
250년 9월 또는 10월, 손패의 잦은 손화에 대한 공격에 지친 손권손패에게 자결을 명하고 손화를 폐위시켰다. 손화와 그의 어머니 왕부인에 대한 거짓 비방을 일삼아 손화의 폐위를 원했던 맏딸 손노반의 권유로, 그는 250년 12월 또는 251년 1월에 손량을 새로운 태자로 삼았다. 손노반은 이후 손량과 그녀의 남편 전종의 종손녀인 전회계를 결혼시켜 손량을 유력 가문과 연결시켰다.

태원 원년(251년) 여름, 어머니가 손권의 황후가 되면서 황후 소생의 적출 황자로서의 지위를 더욱 굳히게 된다. 같은 해 겨울, 손권이 위독해지자 대장군 제갈각을 태자태부로 삼고, 중서령 손홍을 태자소부로 삼고, 회계태수 등윤을 태상으로 삼아 장군 여거, 시중 손준과 함께 손량을 보정하게 했다. 손량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성인과 같은 판단력이 있었고, 황태자로서 부상에게 예를 다해, 대신들의 존경을 받았다.

2.2. 즉위 후: 권신들의 전횡

252년 4월, 손권이 붕어하자 9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손권은 죽기 전 제갈각을 태부(太傅)로, 손준을 보정(輔政)으로 임명했으나, 권력은 제갈각에게 집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섭정단에 내분이 발생하여, 손홍이 제갈각을 제거하고자 불러들였으나 손준이 이를 제갈각에게 알려 제갈각은 손홍을 죽였다.

253년 10월, 손량은 무위장군 손준과 모의하여 제갈각을 죽였고, 승상이 된 손준이 실권을 장악했다. 제갈각은 그해 12월에 쳐들어온 제갈탄, 호준을 동흥에서 격파했으나, 253년에 위나라를 쳐서 대패해 민심을 잃었다.

256년, 손준이 죽었고, 유언으로 그의 사촌동생 손침이 뒤를 이어 나랏일을 전단했다. 여거와 등윤은 손침이 섭정을 맡은 것에 저항하여 싸웠으나 패배하여 삼족이 멸해졌다.

257년 4월, 대사령을 내리고 친정을 시작했으며, 병사들과 장수들의 자제를 모아 근위 군대를 편성하고 훈련시켰다. 258년 8월, 손침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누나 손노반, 장인 태상 전상과 그 아들 황문시랑 전기, 장군 유승과 함께 손침 살해를 도모하고 전기에게 밀조를 내려 전상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전상은 생각 없이 자기 아내에게 누설했고, 손침의 사촌 누나인 전상의 아내는 이를 손침에게 흘렸다. 그 때문에 손침의 선제공격을 받아 유승은 죽임을 당했고 전상은 사로잡혔다. 손침에게서 회계왕으로 쫓겨났다.

2.3. 폐위와 죽음

태평 3년(258년) 8월, 손침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누나 손노반, 장인 태상 전상과 그 아들 황문시랑 전기, 장군 유승과 함께 손침 살해를 도모했다. 손량은 전기를 통해 전상에게 밀조를 내렸으나, 전상은 경솔하게도 이를 아내에게 누설했다. 손침의 사촌 누나인 전상의 아내는 이 사실을 손침에게 알렸다. 이로 인해 손침이 먼저 공격하여 유승은 죽임을 당하고, 전상은 사로잡혔다. 결국 손침에 의해 손량은 회계왕으로 쫓겨났다.

영안 3년(260년), 손량이 다시 황제가 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돌았고, 무녀에게 기도를 시켰다는 참언을 받아 후관후(候官侯)로 격하되었다. 후관후국으로 이송되던 중 손량은 자살하거나, 독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3. 가족 관계

* 아버지: 손권
* 어머니: 반황후
* 황후: 전황후

孫亮중국어손침의 전횡에 혐오감을 느껴 전상, 전공주, 장군 유승 등과 모의하여 손침을 주살하려 계획했다는 기록이 있다.

4. 평가

진수는 "손량은 어렸지만, 좋은 보좌관을 얻지 못했다. 그가 퇴위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평가했다.

5. 기타

손량은 매실을 꿀에 찍어 먹는 것을 즐겼다. 어느 날, 환관이 가져온 꿀에 쥐똥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쥐똥을 쪼개어 속이 마른 것을 보고 환관이 꿀을 가져온 후에 쥐똥을 넣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배송지는 이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않지만 손량의 총명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량은 창고지기에게 환관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지 물었고, 창고지기가 과거에 환관의 요청을 거절했음을 밝히자 환관을 추궁하여 자백을 받아냈다고 한다.

손량은 친족을 생각하는 자상한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관련 일화는 다음과 같다.

* 조카 손기가 황제의 말을 훔쳐 탄 죄로 사형 위기에 처했을 때, 손량은 법의 평등성을 강조하며 감정에 호소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조현의 제안대로 궁중 범위에서 은사를 내려 손기를 구했다.
* 형 손분이 관리 살해죄로 서인이 되었을 때, 손량은 손분을 용서하고 장안후에 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