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영우
1. 개요
위산영우는 771년에 태어나 853년에 입적한 당나라의 승려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삭발하고 계율을 받은 후, 선사 백장 회해의 제자가 되었다. 위산 밀인사에 거주하며 많은 문하생을 훈육했고, 제자 앙산 혜적과 함께 위앙종을 개창했다. 백장선사의 질문에 정병을 발로 차는 일화로 유명하며, 앙산혜적에게 참 부처에 대해 설법하기도 했다. 시호는 대원선사이며, 청정탑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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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년 사망 -
오노노 다카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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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년 사망 -
구다라노 가나와리
구다라노 가나와리는 헤이안 시대 초기의 궁중 화가이자 지방 관리로, 그림 실력으로 어전 벽화 제작 등에 참여했으며 무예에도 능했던 인물로, 개인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화가로 평가받는다. -
771년 출생 -
콘스탄티노스 6세
콘스탄티노스 6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어머니 이리니와 권력 다툼, 간통 논쟁, 불가리아 원정 실패 등으로 혼란을 야기하다가 이리니의 반란으로 폐위되어 사망했다. -
771년 출생 -
알 하캄 1세
알 하캄 1세는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코르도바를 통치한 우마이야 왕조의 아미르였으며, 삼촌들의 반란과 여러 도시의 반란을 진압하고 귀족들을 학살하는 등 강압적인 통치를 하다가 822년에 사망했다. -
불교 -
산신
산신은 동아시아에서 산의 정령으로 숭배되며, 한국에서는 사찰이나 신당에서 노년 남성의 모습으로 호랑이와 함께 모셔지고, 불교에서는 호법신으로, 중국에서는 오악의 신, 일본에서는 야마노카미, 베트남에서는 특정 산에 깃든 신으로 숭배받으며 각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반영한다. -
불교 -
천수경
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중심으로 여러 진언과 게송을 모아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강조하는 불교 경전으로, 불교 의식에서 널리 사용되며 대중매체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2. 생애
771년, 푸젠성 창시에서 속성 조(趙)씨로 태어났다. 785년 15세에 불교 승려가 되었고, 푸젠성의 산젠 사원에서 삭발 의식을 거행했으며, 항저우의 롱싱 사원에서 계율을 받고 경전과 율장을 공부했다.
793년, 23세에 선사 백장 회해를 따라 그의 법맥 제자가 되었다.
820년, 34세에 푸젠의 사찰을 떠나 영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매일 1만 번의 주먹질과 기도를 15년 동안 쉬지 않고 하면서 불교 신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산에서 수년을 보냈다. 산에서 내려온 후 불교적인 육체적 힘, 자비심, 그리고 지혜를 보여주는 능력으로 명성과 존경을 받았다. 당나라 원화 말년(806~820)에 백장회해의 명을 받아 장사로 가던 중에 대위산을 지날 때 군민이 다투어 모여들었다. 여기에 절을 짓고 40여년 불법을 설하였다.
853년 83세에 사망 당나라 대중 7년(853) 정월에 아무런 병도 없이 앉아서 입적했다.
3. 일화
위산영우는 15세에 불교 승려가 되었고, 백장 회해의 법맥 제자가 되었다. 805년 34세에 푸젠의 사찰을 떠나 영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매일 1만 번의 주먹질과 기도를 15년 동안 쉬지 않고 하면서 불교 신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산에서 수년을 보냈으며, 산에서 내려온 후에는 불교적인 육체적 힘, 자비심, 그리고 지혜를 보여주는 능력으로 명성과 존경을 받았다.
3.1. 정병 이야기
백장선사가 위산의 개산을 제자인 화림각과 영우 중 누구에게 시킬지 결정하려 할 때, 정병을 가리키며 "이 정병을 정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뭐라고 부르겠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화림각은 "나무 조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영우는 정병을 발로 차고 나가 버렸다. 영우의 대답에 만족한 백장선사는 영우를 위산의 주지로 삼았다. 이 고사를 화제로 한 선화에 "위산 척병도" 등이 있다.
3.2. 참 부처
앙산혜적이 위산영우에게 참 부처가 어디에 머무느냐고 물었다. 위산영우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생각하되 생각함이 없는 묘로써
신령한 불꽃의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여
생각이 다하고 근원에 돌아가면
성품과 형상이 항상 머물며
이치와 현상이 둘이 아니며
참 부처가 여여하니라
앙산혜적은 이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았다.
4. 사상
백장회해의 법맥을 이은 위산영우는 불교 선종의 승려였다. 그는 15년 동안 매일 1만 번의 주먹질과 기도를 쉬지 않고 하는 등 불교 수행에 정진했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그는 불교적인 육체적 힘, 자비심, 그리고 지혜를 보여주는 능력으로 명성과 존경을 받았다.
5. 위앙종
정원 9년(793년) 23세에 홍주로 가서 백장회해에게 배우고, 그의 법사가 되었다. 원화 15년(820년)경 위산(潙山) 밀인사(密印寺)([호남성 장사시 영향시 위산향)에 거주하며, 다수의 문하생을 훈육했다. 주지했던 사찰은 동경사라는 호를 받았다. 제자 중에 앙산혜적이 있었으며, 그들의 문파를 후세에 "위앙종"이라고 칭했다.
6. 전기 자료
771년, 당나라 복주 장계현에서 태어났다. 785년(정원 원년), 15세에 출가하여 복주 건선사의 법상 율사에게서 삭발하고, 항주 용흥사에서 수계했다. 경율을 배웠다.
793년(정원 9년), 23세에 홍주로 가서 백장회해에게 배우고 그의 법사가 되었다. 820년경(원화 15년), 위산(潙山) 밀인사(密印寺)([호남성 장사시 영향시 위산향)에 거주하며, 다수의 문하생을 훈육했다. 주지했던 사찰은 동경사라는 호를 받았다. 제자 중에 앙산혜적이 있었으며, 그들의 문파를 후세에 "위앙종"이라고 칭했다.
853년(대중 7년) 정월 9일에 입적했다. 춘추 83세, 법랍 64세(《송고승전》에서는 59세). 시호는 대원선사이며, 탑은 청정탑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