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적슨
1. 개요
윌리엄 적슨은 16-17세기 영국의 성직자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세인트 자일스 교회 목사, 서머턴 교구 사제, 세인트 존스 칼리지 총장, 옥스퍼드 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했다. 찰스 1세의 은밀한 시종관으로 임명되었고, 우스터 교구 교구장, 헤리퍼드 주교, 런던 주교를 거쳐 잉글랜드 대재무관과 해군 제독을 지냈다. 잉글랜드 내전 시기에는 찰스 1세의 조언자 역할을 했으며, 왕정복고 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런던의 적슨 하우스, 옥스퍼드의 적슨 거리, 램버스의 적슨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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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년 사망 -
효강장황후
효강장황후는 청나라 순치제의 후궁이자 강희제의 어머니이며, 강희제를 낳은 후 황태후가 되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효릉에 부장되었다. -
1663년 사망 -
프란체스코 마리아 그리말디
프란체스코 마리아 그리말디는 이탈리아의 예수회 사제이자 과학자로, 자유 낙하 연구, 월면도 제작, 빛의 회절 현상 발견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빛의 회절 현상을 최초로 정확하게 관찰하고 '회절'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 동문 -
토니 블레어
토니 블레어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노동당 정치인으로, '제3의 길' 노선을 추구하며 북아일랜드 평화 협정 체결에 기여했으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으로 논란을 겪었고 퇴임 후 국제적인 활동과 자선 활동을 이어가며 경제적 성공과 사회 개혁, 이라크 전쟁 책임에 대한 복잡한 평가를 받고 있다. -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 동문 -
딘 러스크
딘 러스크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쿠바 미사일 위기 외교적 해결 지지, 베트남 전쟁 미국 군사 개입 확대 옹호 등의 활동을 했다. -
캔터베리 대주교 -
매슈 파커
매슈 파커는 1504년에 태어나 1575년에 사망한 잉글랜드의 종교 지도자이며, 앤 불린의 사제로서 1559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어 잉글리칸 교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학문적 업적과 사본 수집으로 알려져 있다. -
캔터베리 대주교 -
윌리엄 템플
윌리엄 템플은 사회 정의, 교회 일치 운동, 교육 개혁에 헌신한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이자 신학자로서,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내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교회들을 이끌고 전후 사회 재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여 복지 국가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윌리엄 적슨은 치체스터에서 태어나 프레벤달 학교, 머천트 테일러스 학교, 옥스퍼드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교육받았다. 1598년에는 장학금을 받았다.
옥스퍼드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성직에 입문하여, 1609년 세인트 자일스 교회, 옥스퍼드 목사, 1615년 서머턴 교구 사제가 되었다. 1621년 12월 윌리엄 로드의 뒤를 이어 세인트 존스 칼리지 총장이 되었다.
1633년 7월 선출 확인으로 헤리퍼드 주교가 되었으나, 10월 윌리엄 로드의 뒤를 이어 런던 주교로 서임되어 헤리퍼드에서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1636년 3월, 찰스 1세는 적슨을 잉글랜드 대재무관 겸 해군 제독으로 임명했다. 1641년 5월까지 재무관직을 수행하며 재정적 어려움 등에 대처했다. 잉글랜드 내전 기간 동안 풀럼 궁전에서 지냈으며, 찰스 1세 처형 직전 마지막 의식을 집행했다.
1646년 10월 9일 의회에 의해 런던 교구에서 해임되었고, 잉글랜드 연방과 호국경 기간 동안 주교 제도가 폐지되어 리틀 콤프턴으로 은퇴하였다. 찰스 2세의 복고 시기에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1660년 9월 2일).
2.1. 교육
윌리엄 적슨은 치체스터에서 태어나 지역 문법 학교인 프레벤달 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이후 런던의 머천트 테일러스 학교와 옥스퍼드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수학했으며, 1598년 장학금을 받았다.
2.2. 성직
적슨은 옥스퍼드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이후 성직에 입문하여 1609년 세인트 자일스 교회, 옥스퍼드의 목사가 되었고, 1615년 서머턴, 옥스퍼드셔의 교구 사제가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1621년 12월, 그는 친구 윌리엄 로드의 뒤를 이어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총장이 되었고, 1626년과 1627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1632년 찰스 1세 국왕의 은밀한 시종관이 되었다.
1627년 그는 우스터 교구의 교구장이 되었고, 1632년에는 헤리퍼드 교구에 지명되어 1633년 1월 세인트 존스 칼리지 총장직을 사임했다. 1633년 7월 말 선출 확인을 통해 법적으로 헤리퍼드 주교가 되었지만, 1633년 10월 로드의 뒤를 이어 런던 주교로 서임되었기 때문에 헤리퍼드에서 직무를 수행하지는 않았다.
2.3. 정치 활동
1636년 3월, 찰스 1세는 윌리엄 적슨을 잉글랜드 대재무관 겸 해군 제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1641년 5월까지 재무관직을 수행하며 여러 재정적 어려움 등에 대처했다. 잉글랜드 내전 기간 동안 적슨은 풀럼 궁전에서 별다른 방해 없이 지냈다. 찰스 1세는 적슨을 높이 평가하여 자주 조언을 구했으며, 찰스 1세 처형 직전 마지막 의식을 집행하도록 그를 선택했다.
2.4. 은퇴와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
적슨은 1646년 10월 9일 의회에 의해 런던 교구에서 해임되었고, 잉글랜드 연방과 호국경 기간 동안 주교 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는 글로스터셔(현재 워릭셔)의 리틀 콤프턴으로 은퇴하였다. 찰스 2세의 복고 시기에 적슨(복원된 런던 주교)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하는 칙서가 발행되었다(1660년 9월 2일).
그는 1660년 9월 20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캔터베리 대주교로 선출 확정되었고, 9월 25일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즉위했다.
3. 기념
런던 러드게이트 힐의 적슨 하우스, 옥스퍼드 제리코의 적슨 거리, 램버스 워크의 적슨 거리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