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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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니 블레어는 1953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영국의 정치인이다. 그는 1994년 노동당 대표가 되었고,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영국 총리를 역임하며 '신노동당'을 이끌었다. 재임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자치권을 강화하고 북아일랜드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등 국내 개혁을 추진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여 외교 정책에서 논란을 겪었다. 총리 퇴임 후에는 자선 활동과 저술 활동을 이어갔으며, 2022년 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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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블레어 -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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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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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존칭 접두사 | 각하 |
이름 | 토니 블레어 경 |
존칭 접미사 | 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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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이름 | 앤서니 찰스 린턴 블레어 |
출생일 | 1953년 5월 6일 |
출생지 |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
정당 | 노동당 |
배우자 | 셰리 부스 (1980년 3월 29일 결혼) |
자녀 | 4명 (이언과 니키 포함) |
아버지 | 레오 블레어 |
친척 | 윌리엄 블레어 (형) |
교육 | 코리스터 학교 페테스 칼리지 |
모교 | 세인트 존스 칼리지, 옥스퍼드 (문학 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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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Institute for Global Change |
영국 총리 | |
직위 | 영국 총리 |
재임 기간 | 1997년 5월 2일 – 2007년 6월 27일 |
군주 | 엘리자베스 2세 |
부총리 | 존 프레스콧 |
전임 총리 | 존 메이저 |
후임 총리 | 고든 브라운 |
중동 4자 특사 | |
직위 | 중동 4자 특사 |
재임 기간 | 2007년 6월 27일 – 2015년 5월 27일 |
전임 특사 | 제임스 울펀슨 |
후임 특사 | 키토 데 보어 |
야당 대표 | |
직위 | 야당 대표 |
군주 | 엘리자베스 2세 |
총리 | 존 메이저 |
부대표 | 존 프레스콧 |
재임 기간 | 1994년 7월 21일 – 1997년 5월 2일 |
전임 대표 | 마거릿 베켓 |
후임 대표 | 존 메이저 |
노동당 대표 | |
직위 | 노동당 대표 |
부대표 | 존 프레스콧 |
재임 기간 | 1994년 7월 21일 – 2007년 6월 24일 |
전임 대표 | 존 스미스 |
후임 대표 | 고든 브라운 |
그림자 내각 포트폴리오 (1987년~1994년) | |
그림자 장관 | 1988년~1989년: 에너지 1989년~1992년: 고용 1992년~1994년: 내무부 |
그림자 장관 | 1987년~1988년: 통상 |
영국 의회 | |
의회 | 영국 |
지역구 | 세지필드 |
재임 기간 | 1983년 6월 9일 – 2007년 6월 27일 |
전임 의원 | 선거구 신설 |
후임 의원 | 필 윌슨 |
선거 이력 | |
총선거 | 베이컨스필드 보궐선거 1997년 총선거 2001년 재선 2005년 재선 |
보궐선거 | 세지필드 보궐선거 |
주요 정책 | |
정책 | 새로운 노동당, 영국을 위한 새로운 삶 블레어주의 신노동당 제3의 길 |
임명 | |
임명 | "토니의 친구들" "블레어 베이브" |
제1기 내각 및 임기 | |
내각 | 내각 |
선거 | 1997년 선거 |
재무장관 |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
예산안 | 1997년 예산안 1998년 예산안 1999년 예산안 2000년 예산안 2001년 예산안 |
협정 | 굿프라이데이 협정 |
평화 프로세스 | 평화 프로세스 |
홍콩 이양 | 홍콩 이양 |
국민의 공주 | 국민의 공주 |
전쟁 | 코소보 전쟁 |
개입 | 시에라리온 내전 군사 개입 |
제2기 내각 및 임기 | |
내각 | 내각 |
선거 | 2001년 재선 |
테러 | 9/11 |
전쟁 | 테러와의 전쟁 |
전쟁 | 아프가니스탄 전쟁 |
전쟁 | 2003년 이라크 침공 |
이라크와 대량 살상 무기 | 이라크와 대량 살상 무기 |
사담과 알카에다 | 사담-알카에다 음모론 |
부시-블레어 메모 | 부시 메모 |
메모 | 다우닝가 메모 |
2월 보고서 | 2월 보고서 |
9월 보고서 | 9월 보고서 |
최후 통첩 | 이라크 최후 통첩 |
전쟁 | 이라크 전쟁 |
예산안 | 2002년 예산안 2003년 예산안 2004년 예산안 2005년 예산안 |
제3기 내각 및 임기 | |
내각 | 내각 |
선거 | 2005년 재선 |
개각 | 내각 개편 |
예산안 | 2006년 예산안 2007년 예산안 |
스캔들 | 현금 대 명예 |
테러 | 런던 폭탄 테러 |
존중 어젠다 | 존중 어젠다 |
리더십 계승 | 리더십 계승 |
총리 퇴임 후 | |
보궐선거 | 세지필드 보궐선거 |
직위 | 중동 4자 |
자서전 | 여정 |
회사 | 어소시에이츠 |
재단 | 신앙 재단 |
조사 | 이라크 조사 |
재단 | 스포츠 재단 |
연구소 | 글로벌 변화 연구소 |
2. 가족배경과 어린시절
앤서니 찰스 린턴 블레어(토니 블레어)는 1953년 5월 6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퀸 메리 산부인과 병원에서 레오와 헤이즐 블레어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5][6][7][8] 아버지 레오는 두 명의 연예인의 사생아로 태어나 글래스고 조선소 노동자에게 입양되었고,[10] 어머니 헤이즐은 아일랜드(Ireland) 도네갈주(County Donegal) 밸리섀넌(Ballyshannon) 출신이었다.[11][12] 블레어에게는 형 윌리엄과 여동생 사라가 있었다.
블레어는 생후 19개월 만에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남호주(South Australia) 애들레이드(Adelaide)로 이주하여, 애들레이드 대학교(University of Adelaide)에서 법학을 강의하던 아버지를 따라 덜위치 교외에서 살았다.[13][14] 1958년 중반 영국으로 돌아온 후, 더럼 대학교(Durham University)에서 강사직을 맡은 아버지를 따라 더럼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13] 어린 시절부터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팬이었다.[15][16][17]
13세에 '스코틀랜드의 이튼'이라 불리던 페테스 칼리지(Fettes College)에 입학했으나,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 측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다.
2. 1. 교육 및 법조 경력
Tony Blair영어는 19세에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입학하여 3년 동안 법학을 공부했다.[23] 학생 시절 그는 어글리 루머스라는 록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으며,[24][25]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기도 했다.[26] 그는 동료 학생이자 성공회 사제인 피터 톰슨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 신앙과 좌파 정치에 눈을 떴다. 옥스퍼드 재학 시절, 블레어는 레온 트로츠키의 전기를 쓴 아이작 도이처의 1권을 읽은 후 "마치 불이 켜진 것 같았다"며 잠시 트로츠키주의자였었다고 말했다.[27][28] 그는 1975년 22세의 나이에 옥스퍼드를 졸업하여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29][30]옥스퍼드를 졸업한 후 블레어는 링컨즈 인에서 변호사 수습 과정을 거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그의 미래 아내인 셰리 부스를 데리 어빈(블레어의 첫 번째 법무장관이 될 사람)이 설립한 11 킹스 벤치 워크 챔버스에서 만났다.[33]
3. 정치 활동
1983년 총선에서 잉글랜드 북부 세지필드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다. 1984년에는 재무·경제 관련 야당 대변인이 되었고, 1987년 그림자 내각의 각료가 되어 1988년까지 그림자 에너지 담당 장관, 1988년부터 1989년까지 그림자 고용 담당 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고용 담당 야당 대변인을 거쳐 1992년부터 1994년까지 그림자 내무장관을 역임했다.
블레어는 고든 브라운과 함께 당의 현대화를 주장하는 "모더나이저" 그룹의 리더였다. 이들은 반자본주의적인 정책을 개혁하고, 대처 수상의 경제 정책으로 혜택을 받은 중산층에게 새로운 지지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4년 존 스미스 당수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열린 당수 선거에서 마가렛 베켓 당수 대행을 제치고 노동당 당수가 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브라운이 블레어를 지지하는 대신, 훗날 브라운이 블레어의 후계자가 된다는 (블레어=브라운 밀약)이 있었다고 한다.
당수 선거에서 일반 당원의 투표권을 강화하고, 노동조합의 블록 투표를 크게 제한했다. 또한 노동당 강령에서 생산 수단과 수송의 국유화를 삭제하고 경제 정책을 자유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제3의 길" 노선으로 변경했다. 이러한 변화는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압승(659석 중 419석 획득)을 이끌어내며 블레어를 총리 자리에 오르게 했다.
1997년 집권 이후, 블레어 정부는 국내 정치에서 많은 개혁 성과를 이루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 자치권을 부여하여 수백 년 만에 지방의회가 재구성되었고, 북아일랜드에서는 벨파스트 협정을 통해 오랜 분쟁을 종식시켰다. 또한 귀족 중심의 상원을 직능단체 대표 중심으로 개혁하여 보수적인 정치 풍토를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365]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블레어 정부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연평균 3% 내외의 꾸준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의 제3의 길 정책은 여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경제 정책에 영향을 주었으며,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세골렌 루아얄 후보 진영의 이상향이었다.[366]
그러나 2000년 7월, 블레어의 장남 유안이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367][368] 블레어는 자녀 양육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총리이기 이전에 가장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367]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블레어 행정부의 핵심 정책은 해외 문제에 집중되었다. 특히 친미적인 정책으로 국내외 비판을 받았지만, 블레어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영국군을 파병하는 등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적극 지지하였다. 보수당조차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블레어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비판했다.
블레어는 중동 지역의 민주주의 확대, 인권 신장, 영국의 석유 및 금융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참전을 위한 정부 자료가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369] 미국 신보수주의(네오콘) 세력에 휘둘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진보 진영과 이라크 전쟁에 비판적인 많은 사람들은 그를 '부시의 푸들'(Bush's Poodle)이라고 불렀다.[370]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마거릿 대처의 비호를 받았으나, 블레어는 1998년 피노체트를 체포하여 영국 교도소에 구속했다. 하지만 2000년 피노체트는 건강상의 이유로 가석방되어 칠레로 귀국했다.
2006년 9월 7일, 블레어 총리는 2007년 9월에 열릴 영국 노동 조합 회의 시기에 맞춰 사임하고 당 지도자로 복귀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후 2007년 5월 스코틀랜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블레어는 6월 27일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노동당 당수직은 6월 전당대회에서 사임하겠다고 선언했다.
3. 1. 초기 정치 경력
블레어는 1975년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노동당에 입당했다. 1980년대 초, 그는 핵니 사우스 앤 쇼어디치에서 노동당 정치에 참여하며 당내 "온건 좌파"와 연대했다. 1982년 핵니 의회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34]1982년, 블레어는 비컨스필드 보궐선거에 노동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보수당의 텃밭이었고 포클랜드 전쟁의 영향으로 보수당에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큰 표차로 패배했다.[35] 하지만 이 선거를 통해 마이클 풋 당수, 닐 키녹, 존 스미스 등 당 지도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풋 당수는 BBC 인터뷰에서 "우리는 블레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결과가 어떻든 그는 언젠가 영국 정치에서 거물이 될 것이다"라고 극찬했다.[334]
블레어는 1982년 7월 마이클 풋에게 보낸 서한에서 자신이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사회주의에 이르렀다"고 밝히며, 토니 벤과 마찬가지로 "노동당 우파"가 파산했다고 믿었다.[37][38] 그는 "사회주의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더 나은 마음에 호소해야 합니다. 권력을 잡는 실용적인 시대에 너무 오염되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37][38] 그러나 그는 극좌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총선이 다가오자 블레어는 데리 어빈의 조언에 따라 승산 있는 지역구를 찾기 시작했다. 노동당이 선거구 변경에 대한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세지필드 선거구가 블레어에게 기회가 되었다. 블레어는 트리몬 지부의 존 버튼의 지지를 얻어 막판에 후보 명단에 추가되었고, 결국 후보로 선출되었다.[41]
존 버튼은 블레어의 선거 사무장이 되었고, 1983년 총선에서 블레어는 좌익 정책을 지지했다.[43] 그는 EEC 탈퇴를 주장했지만,[44] 1975년 국민투표에서는 잔류에 투표했다고 밝혔다. 핵무기 폐기 운동 회원이기도 했지만, 일방적 핵무기 폐기를 강력하게 지지하지는 않았다.[47] 블레어는 팻 피닉스의 도움을 받아 선거 운동을 했고, 1983년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1983년 7월 6일 하원 첫 연설에서 블레어는 "나는 교과서를 읽거나 무비판적인 전통 때문에 사회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가장 잘 발휘될 때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는 대결이 아닌 협력, 공포가 아닌 동지애를 의미합니다. 평등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했다.[48]
당선 후, 블레어는 빠르게 정치적 성장을 이루었다. 1984년 닐 키녹은 그를 재무부 대변인 보좌관으로 임명했고,[49][50] 1985년에는 BBC ''질문 시간''에 출연하여 공공 질서 백서를 비판했다.[51]
블레어는 존슨 매티 은행 구제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며 당의 개혁 성향과 연대했고, 1988년 무역산업부 그림자 팀으로 승진했다.[52] 1987년 그림자 내각 선거에서 71표를 얻었다.[53] 1992년 총선 후 존 스미스 하에서 그림자 내무장관이 되었다. 블레어는 사회민주당과 자유당의 합당으로 만들어진 자유민주당이 노동당의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중산층을 포용하는 새로운 노동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인 일표제를 통해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줄이고, 4조항을 폐지하여 당의 목표를 근본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4]
3. 2. 야당 당수
1983년 총선에서 잉글랜드 북부 세지필드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다. 이듬해 1984년에는 재무·경제 관련 야당 대변인이 되었다. 1987년에는 그림자 내각의 각료가 되어, 1988년까지 그림자 에너지 담당 장관, 1988년부터 1989년까지 그림자 고용 담당 장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고용 담당 야당 대변인을 거쳐 1992년부터 1994년까지 그림자 내무장관을 역임했다.[52]블레어는 맹우 고든 브라운과 함께 당의 현대화를 주장하는 "모더나이저" 그룹의 리더였다. 모더나이저들은 반자본주의적인 정책을 개혁하고, 새처 혁명의 혜택을 받은 중산층에게 새로운 지지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4년 전 당수 존 스미스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열린 당수 선거에서 당수 대행이었던 마가렛 베켓 부당수를 제치고 노동당 당수가 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브라운이 블레어를 지지하는 대신, 후에 브라운이 블레어의 후계자가 된다는 (블레어=브라운 밀약)이 있었다고 한다.[58][59][60]
당수 선거에서 일반 당원의 투표권을 강화하고, 노동조합의 블록 투표를 크게 제한했다. 노동당 강령에서 생산 수단과 수송의 국유화를 삭제하고 경제 정책을 자유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제3의 길" 노선으로 변경했다. 이것이 성공하여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압승(659석 중 419석 획득)으로 이끌고 총리가 되었다.[72]
3. 3. 총리 재임 (1997-2007)






토니 블레어는 1997년 5월 2일 영국 총리가 되었는데, 43세의 나이로 1812년 42세의 나이로 총리가 된 리버풀 경 이후 가장 젊은 총리였다.[74] 그는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태어난 최초의 총리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이후 태어난 최초의 총리였다. 1997년, 2001년, 2005년의 승리로 블레어는 노동당의 최장수 총리가 되었고,[75] 세 번의 연속 총선 승리를 이끈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인물이었다.[76]
블레어 총리는 재임 기간 동안 국내 및 국제 문제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국내적으로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지방 자치, 북아일랜드 평화 협정, 상원 개혁 등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경제적으로는 제3의 길 노선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이끌었지만, 장남의 음주운전 사건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블레어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적극 지지하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영국군을 파병했다. 이라크 침공은 특히 논란이 많았는데, 광범위한 여론의 반대에 직면했고 블레어의 의원 139명이 이에 반대했다.[86] 2009년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더라도 그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88] 극작가 해롤드 핀터와 전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블레어를 전쟁 범죄로 고발했다.[89][90]
2010년 이라크 조사에 증언하면서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이 "괴물이었고 단지 지역뿐 아니라 세계를 위협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91] 그는 9.11 테러 이후 후세인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태도가 "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침공으로 인해 세계가 더 안전해졌다고 믿는다고 말했다.[92]
2015년 CNN 파리드 자카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블레어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실수"를 사과하고 침공이 ISIS의 부상을 촉진하는 데 "일정 부분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94] 2016년 칠콧 조사 보고서는 블레어의 이라크 전쟁 역할에 대해 비판하는 평가를 내렸지만, 전 총리는 미국 주도 침공을 지지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다시 사과하기를 거부했다.[95]
총리 재임 초기, 블레어는 총리 질문 시간을 주 2회 15분에서 주 1회 30분으로 변경하고, 월례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소통 방식을 변화시켰다.[96] 그러나 때로는 내각 동료나 의원들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98][99]
이라크 전쟁의 사상자가 증가함에 따라 블레어는 의회를 기만했다는 비난을 받았고,[104][105] 그의 인기는 하락했다.[106][107] 2006년 여름, 많은 국회의원들은 블레어가 이스라엘-레바논 분쟁에서 휴전을 촉구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109] 2006년 9월 7일, 블레어는 2007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되는 노동조합총연맹 회의 때까지 당수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110] 2007년 5월 10일, 트림돈 노동자 클럽에서 연설하는 동안 블레어는 노동당 당수이자 총리직에서 사임할 의사를 발표했다.[111]
2007년 6월 24일 맨체스터에서 열린 특별 당 대회에서 블레어는 공식적으로 노동당 당수직을 고든 브라운에게 넘겨주었다.[113] 블레어는 6월 27일 총리직에서 사임했고, 브라운은 같은 오후에 취임했다. 블레어는 칠턴 백작령 관리직을 수락하여 세지필드 지역구 의원직에서 사퇴했으며,[114] 사임 명예 목록을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현대 시대의 총리 중에서는 처음으로 그렇게 하지 않은 총리가 되었다.[116]
3. 3. 1. 국내 정책
1997년 집권 이후, 블레어 정부는 국내 정치에서 많은 개혁 성과를 이루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 자치권을 부여하여 수백 년 만에 지방의회가 재구성되었고, 북아일랜드에서는 벨파스트 선언을 통해 오랜 분쟁을 종식시켰다. 귀족 중심의 상원을 직능단체 대표 중심으로 개혁하여 보수적인 정치 풍토를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365]경제적으로도 블레어 정부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연평균 3% 내외의 꾸준한 성장을 달성했다. 그의 제3의 길 정책은 여러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경제 정책에 영향을 주었으며,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세골렌 루아얄 후보 진영의 이상향으로 여겨졌다.[366]
그러나 2000년 7월, 블레어의 장남 유안이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되면서 비판을 받았다.[367][368] 블레어는 자녀 양육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총리이기 이전에 가장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367] 이 사건은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아들, 내무부장관 잭 스트로, 세실 파킨슨 보수당 상원의원의 자녀들의 마약 복용 문제와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367] 유안은 대입 수능 시험을 마친 뒤 과음하고 음주운전을 하다 런던 시내 광장에 쓰러진 채 발견되어 경찰서로 이송되었다.[367][368]
블레어는 헌법 개혁, 성소수자(LGBTQ+) 권리 신장, 영국과 EU 간 관계 강화 등에도 힘썼다. 2004년 시민 파트너십법(Civil Partnership Act 2004)을 통해 동성 커플에게 결혼과 유사한 권리를 부여했고, 성관계 동의 연령을 이성애 커플과 동등하게 조정했으며, 군대 내 동성애자 복무 금지를 해제했다. 성별 인정법 2004(Gender Recognition Act 2004)로 성별 불일치(gender dysphoria)를 겪는 사람들의 법적 성별 변경을 허용했고, 28조(Section 28)를 폐지하고 동성 커플의 입양권을 허용하는 등 다양한 반차별 정책을 도입했다. 2014년 ''게이 타임스(Gay Times)''는 블레어를 "게이 아이콘"으로 선정했다.[128]
블레어 정부는 체포 가능 범죄를 늘리고, DNA 기록 의무화, 분산 명령 등을 통해 경찰 권한을 강화했다.[129] 새로운 법률 제정이 증가하면서 비판도 제기되었다.[130][131] 또한, 강력한 테러 방지 법안과 신분증 법안을 도입했다.
1997년부터 비유럽 이민이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1997년 6월 블레어 정부가 '주목적 규정(primary purpose rule)'을 폐지하면서 영국 거주민이 외국인 배우자를 더 쉽게 데려올 수 있게 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141]
3. 3. 2. 경제 정책
1997년 집권 이후, 블레어 행정부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3% 내외의 꾸준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의 정책은 제3의 길이라고도 불렸으며, 많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경제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당시 세골렌 루아얄 후보 진영의 이상향이었다.[366]블레어는 영국 시민들의 실질 소득이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8% 증가하는 등 강력한 경제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은 급속한 생산성 향상과 상당한 GDP 성장을 보였으며, 빈곤율과 불평등도 감소했는데,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했지만 신노동당의 경제 정책(예: 세금 공제) 덕분에 억제되었다. 부동산 시장에서 금융 버블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성장은 금융적 호황이 아닌 교육 투자와 재정 건전성 유지 덕분이라고 평가된다.[132]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블레어는 직접세는 낮게 유지하면서 간접세를 인상하고, 인적자본에 상당한 투자를 했으며,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일부 새로운 고용권을 도입했다(하지만 마거릿 대처의 노동조합 개혁은 유지했다).[133] 그는 교육 및 보건 부문에서 상당한 시장 기반 개혁을 도입했고, 학생 수업료를 도입했으며, 복지에서 일자리로의 전환 계획을 도입했고 특정 유형의 복지 급여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는 전임자인 존 메이저가 시행한 철도 민영화를 되돌리지 않았고, 대신 철도규제청(Office of Rail Regulation)을 설립하여 규제를 강화하고 요금 인상을 물가상승률 +1%로 제한했다.[134][135][136]
블레어와 브라운은 NHS 및 기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늘려 2010~11년 GDP의 39.9%에서 48.1%로 증가시켰다.[138][139] 그들은 2001년에 NHS 지출을 다른 유럽 국가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고, 실질적으로 지출을 두 배 이상 늘려 영국에서만 1000억파운드가 넘는 금액을 투자했다.[140]


3. 3. 3. 외교 정책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블레어 행정부의 핵심 정책은 해외 문제에 집중되었다. 특히 친미적인 정책으로 국내외 비판을 받았지만, 블레어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침공에 영국군을 파견하는 등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적극 지지하였다.[344] 보수당조차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블레어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비판했다.중동 지역의 민주주의 확대, 인권 신장, 영국의 석유 및 금융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참전을 위한 정부 자료가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369] 미국 신보수주의(네오콘) 세력에 휘둘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진보 진영과 이라크 전쟁에 비판적인 많은 사람들은 그를 '부시의 푸들'(Bush's Poodle)이라고 불렀다.[370]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마거릿 대처의 비호를 받았으나, 블레어는 1998년 피노체트를 체포하여 영국 교도소에 구속했다. 그러나 2000년 피노체트는 건강상의 이유로 가석방되어 칠레로 귀국했다.[170]
블레어는 북아일랜드 평화 과정에 기여하여 벨파스트 협정(Good Friday Agreement) 협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77][78] 1998년 8월 15일, 진짜 IRA(Real IRA)가 일으킨 오마(Omagh) 폭탄 테러로 29명이 사망하자, 블레어는 타이론주(County Tyrone) 마을을 방문하여 피해자들을 만났다.[79]
집권 초기 6년 동안 블레어는 영국군을 5차례 전투에 투입했다. 1998년과 2003년 이라크(1998년, 2003년), 1999년 코소보(코소보), 2000년 시에라리온(시에라리온), 2001년 아프가니스탄(아프가니스탄)이었다.[80]
코소보 전쟁에서 블레어는 빌 클린턴이 주저했던 지상 공격을 강력히 주장했다.[81] 시에라리온에서는 팔리서 작전을 통해 반군 세력에 대한 전세를 역전시켰다.[82] 블레어는 시에라리온 반군에게 잡힌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바라스 작전을 명령했다.[84]
2001년 테러와의 전쟁 시작 이후, 블레어는 조지 W. 부시의 외교 정책을 강력히 지지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은 광범위한 여론의 반대에 직면했고, 블레어 의원 139명이 반대했다.[86] 2009년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도 그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88] 해롤드 핀터와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블레어를 전쟁 범죄로 고발했다.[89][90]
2010년 1월 29일 이라크 조사에서 블레어는 9.11 테러 이후 후세인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태도가 "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92] 2015년 10월 CNN 인터뷰에서 블레어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실수"를 사과하고 침공이 ISIS 부상에 "일정 부분" 기여했음을 인정했다.[94] 2016년 칠콧 조사 보고서는 블레어의 이라크 전쟁 역할을 비판했지만, 블레어는 침공 지지 결정을 사과하지 않았다.[95]
블레어는 지구 온난화 해결을 위해 다른 정부들을 비판했다. 1997년 미국 방문 중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에 실패한 "주요 산업 국가들"을 언급했고,[145] 2003년 미국 의회에서 기후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145] 블레어와 그의 당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20% 감축을 약속했다.[146]
블레어는 외교 정책에서 "개입주의"라는 적극적인 철학을 추가했다. 2001년 영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에 합류했다.[149]
블레어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150] 앙겔라 메르켈(독일),[151] 니콜라 사르코지(프랑스) 등 여러 유럽 지도자들과 우정을 쌓았다.[152]
빌 클린턴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도, 블레어는 조지 W. 부시와 강력한 정치적 동맹을 맺었다. 부시는 블레어와 영국을 칭찬했다.[153] 그러나 이 동맹은 영국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영향력에 분노하게 만들었다.[154] 블레어는 미국과의 유대를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 영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156]
2003년 1월 30일, 블레어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는 "8개국 서한(The letter of the eight)"에 서명했다.[159]
블레어는 이스라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160] 그는 노동당 이스라엘 친구들(Labour Friends of Israel)의 회원이었다.[161] 1994년 블레어는 마이클 레비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162] 탐 댈리엘(Tam Dalyell) 의원은 블레어의 외교 정책 결정이 유대인 고문들의 "비밀 모임"에 의해 과도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164]
블레어는 2006년 레바논 전쟁(2006 Lebanon War)에서 즉각적인 휴전 촉구에 실패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168]
2012년 ''선데이 타임스''는 블레어 정부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기사 작위 수여를 고려했다는 사실을 밝혔다.[170]
블레어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171][172] 리비아 내전 이후에도 그는 리비아 지도자와의 관계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173]
블레어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과 적대적인 관계였으며, 2000년대 초 무가베에 대한 정권 교체를 계획했다고 알려졌다.[175] 타보 음베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블레어가 남아공에 짐바브웨 "정권 교체 계획"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말했다.[175]
블레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쟁과 평화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이 만남은 휴먼 라이츠 워치와 국제앰네스티로부터 비판을 받았다.[177] 2018년, 전 MI6 국장 리처드 디어러브 경은 이 방문이 푸틴의 권력 장악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 "상당한 유감"을 표명했다.[178]
3. 3. 4. 이라크 전쟁과 그 여파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블레어 행정부의 핵심 정책은 해외 문제에 집중되었다. 블레어는 친미적인 정책으로 국내외 비판을 받았지만,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침공에 영국군을 파견하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지지했다.[370] 심지어 보수당조차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블레어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비판했다.블레어는 중동 지역의 민주주의 확대와 인권 신장, 그리고 영국의 석유 및 금융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참전을 위해 작성된 정부 자료가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369] 미국 신보수주의(네오콘) 세력에 휘둘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진보 진영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부시의 푸들'(Bush's Poodle)이라고 비난했다.[370]
2003년 이라크 침공은 광범위한 여론의 반대에 직면했고, 블레어의 의원 139명이 반대하는 등 논란이 많았다.[86] 2009년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었더라도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것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88] 해롤드 핀터와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블레어를 전쟁 범죄로 고발하기도 했다.[89][90]
2010년 이라크 조사에서 블레어는 후세인이 "괴물"이며 "지역뿐 아니라 세계를 위협"한다고 믿었다고 증언했다.[91] 그는 9.11 테러 이후 후세인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태도가 "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92]
2015년 CNN 인터뷰에서 블레어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실수"를 사과하고, 침공이 ISIS 부상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했다.[94] 2016년 칠콧 조사 보고서는 블레어의 이라크 전쟁 역할을 비판했지만, 블레어는 미국 주도의 침공을 지지한 결정에 대해 다시 사과하지 않았다.[95]
이라크 전쟁의 사상자가 증가하면서 블레어는 의회를 기만했다는 비난을 받았고,[104][105] 그의 인기는 하락했다.[106][107]
3. 4. 총리직 사임과 그 이후
2006년 9월 7일, 토니 블레어 총리는 2007년 9월에 열릴 영국 노동 조합 회의 시기에 맞춰 사임하고 당 지도자로 복귀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정확한 사임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이후 2007년 5월 스코틀랜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블레어는 6월 27일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노동당 당수직은 6월 전당대회에서 사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총리 취임 10년 만이었다.[1]후임자로는 재무부장관이자 이라크전에 회의적이었던 고든 브라운이 지명되었다.[1]
블레어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의원직을 사퇴하고 2015년까지 중동 4자 회담의 특사로 임명되었다. 2016년부터는 토니 블레어 국제변화연구소의 회장을 역임하며 정치에 간헐적으로 개입해왔고, 키어 스타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4] 2009년에는 조지 W. 부시로부터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으며,[4] 2022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가터 훈장 기사 작위를 받았다.[4]
4. 총리 이후 활동
2007년 6월 27일, 블레어는 10년간의 재임 기간 후 공식적으로 총리직에서 사퇴하였고, 유엔, 유럽 연합, 미국, 러시아의 중동 특사로 공식 임명되었다.[205] 블레어는 당초 총리직 사퇴 후에도 의원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중동 특사직을 수락하면서 수익직을 맡아 하원 의원직을 사퇴하였다.[114]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블레어에게 특사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는 예비 협상을 진행하였다. 백악관 관계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이 제안에 동의했다"고 밝혔다.[206][207] 2008년 5월, 블레어는 평화 계곡 계획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평화와 팔레스타인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였다.[208] 블레어는 2015년 5월 특사직에서 사퇴하였다.[209]
2008년 1월, 블레어가 투자은행 JP모건 체이스에 "고위 자문 역할"로 합류하고 취리히 금융 서비스에 기후 변화 문제를 자문할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210] 블레어는 또한 강연을 통해 90분 강연에 최대 25만 달러를 벌었으며, 2008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연설가로 알려졌다.[211]
블레어는 2008-09 학년도에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신학교에서 하울랜드 특별 연구원으로서 신앙과 세계화 문제에 대한 강좌를 가르쳤다. 2009년 7월, 이 업적에 이어 미국 예일대학교, 영국 듀럼 대학교, 아시아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와 함께 재단과 파트너십을 맺어 대학원 과정을 제공하는 신앙과 세계화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212][213]
블레어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상업적 및 무료(pro bono) 기반으로 정치 및 경제 동향과 정부 개혁에 대한 전략적 자문을 제공할 수 있도록" 토니 블레어 어소시에이츠(Tony Blair Associates)를 설립했다.[216]
블레어는 중동 특사로서의 외교적 역할과 토니 블레어 어소시에이츠에서의 활동 사이의 이해 상충 가능성에 대해 비판을 받았으며,[218][219][220] 카자흐스탄 정부와 협력하여 사법, 경제 및 정치 개혁에 대한 자문을 제공했지만, 정권의 이미지와 인권 기록을 "미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222]
4. 1. 자선 및 비영리 활동
2007년 11월, 블레어는 토니 블레어 스포츠 재단(Tony Blair Sports Foundation)을 설립하여, 특히 사회적 배제가 더 심한 영국 북동부 지역의 아동들의 스포츠 활동 참여를 증진하고 전반적인 건강 증진 및 아동 비만 예방을 목표로 했다.[229] 2008년 5월 30일에는 서로 다른 종교들이 존중과 이해를 증진하고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으로 토니 블레어 신앙 재단(Tony Blair Faith Foundation)을 설립했다. 블레어 자신의 신앙을 반영하지만 특정 종교에 헌신하지 않는 이 재단은 "신앙이 현대 세계에서 얼마나 강력한 선한 힘인지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230]2009년 2월에는 토니 블레어 아프리카 거버넌스 이니셔티브(Tony Blair Africa Governance Initiative)라는 자선 단체 설립을 신청했고, 같은 해 11월 승인을 받았다.[231]
2016년 12월, 블레어는 정부와 기관들의 세계적인 시각을 증진하기 위해 토니 블레어 연구소(Tony Blair Institute)를 설립했다.[233][234]
5. 논란과 비판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블레어 행정부의 핵심 정책은 해외 문제에 집중되었다. 특히 친미국적인 정책으로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는 대중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침공에 영국군을 파병하는 등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지지하였다. 보수당 조차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블레어가 미국에 너무 의존한다고 비판하였다.
블레어는 중동 지역의 민주주의 확대, 인권 신장, 영국의 석유 및 금융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참전 명분을 위해 작성한 정부 자료들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369] 미국 신보수주의(네오콘) 세력에 지나치게 끌려다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그에게 진보 진영과 이라크 전쟁에 비판적인 다수의 국민들과 세계인들은 그를 '부시의 푸들'(Bush's Poodle)이라고 혹평했다.[370]
한편, 블레어는 1998년 마가렛 대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체포하여 영국 교도소에 구속 수감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대처의 비호를 받던 피노체트였지만, 블레어는 부정부패 척결 의지가 강하여 자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2000년 피노체트는 건강상의 이유로 가석방되어 칠레로 귀국했지만, 이후에도 가택 연금 등의 처벌을 받다가 사망했다.
5. 1. 전쟁 범죄 혐의
테러와의 전쟁 당시 블레어 행정부는 친미국적인 정책으로 국내외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침공에 영국 군대를 파견하는 등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지지하였다.[369] 보수당 조차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블레어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비판하였다.블레어는 중동 지역의 민주주의 확대, 인권 신장, 영국의 석유 및 금융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참전 명분을 위해 작성한 정부 자료들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369] 미국 신보수주의(네오콘) 세력에 끌려다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진보 진영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부시의 푸들'(Bush's Poodle)이라고 비판했다.[370]

이라크 전쟁 이후, 블레어는 전쟁 범죄 혐의로 비판받았다. 데스몬드 투투 주교,[248] 해럴드 핀터,[249] 아룬다티 로이[250] 등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그를 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구했다.
2011년 11월, 쿠알라룸푸르 전쟁범죄위원회는 블레어가 이라크 전쟁에서 평화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251] 이 재판은 5명의 판사, 변호팀, 프랜시스 보일 국제법 교수를 포함한 검찰팀으로 구성되어 나흘 동안 진행되었다.[252]
2012년 9월, 데스몬드 투투는 블레어가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 전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전례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248] 인권 변호사 제프리 바인드먼은 투투의 제안에 동의했다.[253] 블레어는 자신의 행동을 옹호했고,[248] 팔콘 경은 전쟁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441호에 의해 승인되었다고 주장했다.[253]
2017년 7월, 이라크 전 장군 압둘와히드 알-라바트는 런던 고등법원에 블레어, 잭 스트로 전 외무장관, 골드스미스 남작 전 법무장관을 "침략 범죄"로 기소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침략 범죄가 국제법에서는 인정되지만 영국 법률상 범죄는 아니므로 기소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254][255][256][257]
일부 인사들은 블레어가 총리 재임 중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비난에 대해, 블레어에 대한 어떤 사건도 재판에 회부된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블레어가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258][259][260]
블레어는 이라크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라크 전쟁 개입을 옹호했다. 이라크 조사단은 사담 후세인이 제재를 무력화하여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재개하려 했다고 밝혔다.[261]
6. 개인사
1953년 5월 6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레오 블레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는 잉글랜드 배우의 사생아로 태어나 에든버러의 조선소 노동자에게 입양되었다. 블레어에게는 빌이라는 형이 있었다. 레오가 더럼대학 법학 교수가 되면서 가족은 잉글랜드 북동부 더럼 시로 이주했다. 이후 레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원 진출이 좌절되고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져 가족은 다시 에든버러로 돌아왔다.
1966년 13세에 '스코틀랜드의 이튼'이라 불리던 페테스 중등학교(Pettes College)에 입학했으나,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 측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1971년 페테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1년간 프랑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프랑스어를 익혔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재학 중에는 "어글리 루머스(Ugly Rumours)"라는 하드록 밴드의 보컬로 활동했고, 존 맥머레이의 사상과 기독교 사회주의에 심취했다. 아이작 도이처를 통해 마르크스주의, 특히 트로츠키주의의 영향도 받았다.[331][332][333] 페비안 협회에도 소속되어 있었다.
대학 졸업 2주 후 어머니 헤이즐(1923~75)을 여의고, 노동당에 입당했다. 런던 링컨 법조원에서 법정 변호사 자격 시험 수습을 받고 법정 변호사가 되었다. 이때 스승은 데리 어바인이었고, 셰리 부스와 동료로 만나 1980년 봄에 결혼했다.
수상 재직 중이던 2000년 막내아들 레오가 태어났을 때 육아 휴가를 고려했지만, 공식적인 육아 휴가는 사용하지 않았다. 2005년에는 테러 대책 법 강화를 추진하려는 블레어와 기본적 인권을 지키려는 셰리의 대립이 보도되기도 했다.
6. 1. 가족
1980년 3월 29일, 블레어는 변호사 사무소 동기였던 셰리 블레어와 결혼했다.[281] 이들 부부는 유언, 니키, 캐서린, 레오, 이렇게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282] 2000년 5월에 태어난 막내아들 레오는 토니 블레어의 아버지(본인에게는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으로, 1849년 7월 11일 존 러셀 경에게 태어난 프랜시스 러셀 이후 150년 만에 재임 중인 총리에게서 태어난 첫 합법적인 자녀였다.[283] 블레어의 어머니 헤이즐 엘리자베스 로잘린 코스캐든(1923년 6월 12일~1975년 6월 28일) 덕분에 네 자녀 모두 아일랜드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284]
블레어 가족은 코넛 스퀘어에 주택을 두고 있으며, 총 여덟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285] 2016년 10월에는 첫 손주(여자아이)가 태어났다.[286]
블레어는 독서, 축구 관람(뉴캐슬 유나이티드 팬), 테니스, 스쿼시, 음악 감상을 즐긴다. 더 다크니스(The Darkness)의 팬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1997년에는 오아시스(Oasis)를 총리 관저에 초청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TV 카메라 앞에서 기타를 잡는 등 "록 음악 팬"임을 어필하기도 했다.
6. 2. 종교
블레어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종종 성경을 읽는 습관이 있었다고 그의 정부 홍보 담당관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292]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옳고 그름은 궁극적으로 신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 믿었으며, "만약 신앙을 갖고 있다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신을 믿는다면, 그 판단은 신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291] 그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신앙심이 깊지 않았다. 옥스퍼드에서 호주인 사제를 만나면서, 자신과 사회, 그리고 세상을 보는 관점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293]블레어는 잉글랜드 국교회 신자였지만, 그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모두 가톨릭 신자였다. 2007년 6월, 총리직 사임 직전에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 블레어가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301] 2007년 12월 22일, 블레어는 잉글랜드 국교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299][300]
2006년 3월 4일, ITV1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블레어는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에 자신의 신앙이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다.
7. 평가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피터 맨덜슨은 흔히 노동당을 영국 정치의 중심으로 이끌었다고 일컬어지며, 그의 주도로 이루어진 노동당의 집권 전략을 "신 노동당(New Labour)"이라 부른다.
그는 자신의 정책을 "현대 사회민주주의"와 "제3의 길"이라 부른다. 그러나 제레미 코빈 등을 비롯한 정통 노동당원들은 그가 영국 노동당의 기본 이념을 배반했다고 느끼거나 비판하며, 블레어 정부가 소득의 분배 등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관심에서 벗어나 너무 우편향으로 치우쳤다고 보기도 한다.[371]
8. 저서
- A Journey영어 (2010년). 런던: 랜덤 하우스.
- 우리 신념의 용기 (2002년). 런던: 패비안 협회.
- 초강대국: 초국가 아닌가?(연방 신탁 유럽 에세이) (2000년). 런던: 교육 및 연구를 위한 연방 신탁.
- 제3의 길: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정치 (1998년). 런던: 패비안 협회.
- 길을 이끄는 것: 지방 정부를 위한 새로운 비전 (1998년). 런던: 공공정책연구소.
- 새로운 영국: 젊은 나라에 대한 나의 비전 (1997년). 뉴욕: 베이직 북스.
-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1995년). 런던: 패비안 협회.
- 안전한 사회를 위한 어떤 대가? (1994년). 런던: 패비안 협회.
- 사회주의 (1994년). 런던: 패비안 협회.
- ブレア回顧録일본어 (전2권, 석주가히코 역, 일본경제신문출판사, 2011년)
- 혼란의 본질일본어 장-클로드 트리셰, 크리스틴 라가르드 외 공저(도쿠가와 이에히로 역, 토요사, 2012년)
- Leadership영어: 21세기를 위한 교훈 (2024년). 런던: 허치니슨 하이네만.
2010년 3월, 블레어의 회고록 ''The Journey''가 9월에 출판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236][237] 7월, 회고록 제목이 ''A Journey''로 변경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238] 이 회고록은 많은 사람들에게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그의 직책과 해외 전쟁(널리 잘못된 것으로 여겨짐)[241][239][240]과 관련된 행위로 이익을 얻으려는 또 다른 시도로 여겨져 출시 전부터 분노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239]
2010년 8월 16일, 블레어는 회고록의 460만 파운드 선금과 모든 인세를 영국 왕립 레기온(Royal British Legion) 자선 단체에 기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해당 자선 단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기부였다.[241][242]
갑작스러운 발표에 대한 언론 분석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를 평가 순위에서 부진한 굴욕적인 "출판 실패"[243]에 대한 더 나은 출시 반응을 얻기 위한 "절망적인 행위",[241][243]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희생된 생명에 대한 "피의 돈(blood money)",[241][240] "숨겨진 동기" 또는 "죄책감"의 표현,[241][239] PR 관점에서 "토니 블레어는 가장 독성이 강한 브랜드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천재적인 행동", 그리고 "과거를 지우기 위한 냉소적인 술책"으로 묘사되었지만, 반성하려는 시도로 보기도 했다.[243] 지인들은 이 행위가 부분적으로 "명성을 회복하려는" 욕망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었다고 말했다.[241]
이 책은 9월 1일에 출판되었고 출시된 지 몇 시간 만에 역대 최단 시간 최다 판매 회고록이 되었다.[244] 9월 3일, 블레어는 아일랜드의 ''The Late Late Show''에서 출판 이후 첫 라이브 인터뷰를 가졌고, 그곳에는 시위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245] 9월 4일, 블레어는 더블린 O'Connell Street의 Eason's 서점에서 회고록 사인회를 열기 전에 200명의 반전 시위대와 강경파 아일랜드 민족주의 시위대에게 맞닥뜨렸다. 분노한 활동가들은 "전범"이라고 외치며 "손에 피가 묻었다"고 비난했고, 이손스 매장 밖 경찰(Garda Síochána)이 보안 경계를 뚫으려 하자 충돌했다. 블레어는 계란과 신발 세례를 받았고, 전쟁범죄로 시민 체포 시도를 경험했다.[246]
2024년에 출판된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의 평에 따르면, ''리더십: 21세기를 위한 교훈''은 "제가 읽어본 정치 관련 서적 중 가장 실용적인 안내서"이다.[247]
9.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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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블레어는 시에라리온 마헤라 마을의 추장들과 주민들로부터 최고 추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그의 정부가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수행한 역할을 인정하여 수여된 것이다.[305]
2009년 1월 13일, 블레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블레어가 "모범적인 업적을 인정하고 미국 국민의 최고의 존경을 전달하기 위해" 이 상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지지와 북아일랜드 평화 달성에 대한 그의 역할을 상을 수여한 이유로 언급했다.[308][309]
2010년 9월 13일, 블레어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미국 헌법 센터에서 자유 메달을 받았다. 이 상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수여했으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유의 축복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용기와 신념을 가진 남녀"에게 매년 수여된다.
2021년 12월 31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블레어를 가터 훈장 기사단원(KG)으로 임명했다고 발표되었다. 블레어는 퇴임 당시 전임 총리들에게 수여되는 전통적인 기사 작위나 귀족 작위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전쟁에서의 그의 역할을 기사 작위를 박탈해야 할 이유로 제기한 청원은 100만 건이 넘는 서명을 받았다. 그는 2022년 6월 10일 윈저 성에서 여왕으로부터 가터 훈장 휘장을 받았다.[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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ブレア労働党勝利も三期目は前途多難(イギリス:2005年6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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ブレア元英首相のナイト爵位に100万人超が剥奪要求する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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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イラク調査委、ブレア政権のイラク参戦は不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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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ギリスの感染対策の「顔」がサーやデイムに 新年の叙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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ブレア元英首相のナイト受勲、反対署名に70万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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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stair Campbell diaries: How Blair's Bible reading prompted Iraq 'wob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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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ir 'prayed to God' over Ir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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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30 years as a closet Catholic, Blair finally puts faith before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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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퇴장, 토니 블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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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보다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루아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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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문제로 가슴앓이하는 유력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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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인사들 '무자식이 상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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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은 잘못 영국민 민의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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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는 '부시의 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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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버리고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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